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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김 전 대통령의 면모-깨알같은 글씨, 유머

by 싯딤 2009. 8. 24.

김대중의 면모

수첩엔 깨알글씨 빼곡…입담·유머 ‘타고난 연설가’

비서진에 하대하는 법 없어
소탈하고 정 많은 카리스마
완벽주의 성격의 논리적
“정치 안했다면 교육자 됐을 것

» 김대중 전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인권위 설립 5주년 기념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2006.11.24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란 책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교육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지식을 잘 정리해서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고, 스스로 천성이 매우 논리적이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모는 종종 다른 대통령들과 비교된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공동의장으로 활동할 때의 일화다. 민주화 서명작업의 목표를 놓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현실적’ 목표로 100만명을 제시했다. 그러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누가 숫자를 세어 보겠느냐”며 1000만명을 주장했다고 한다. 유종필 국회도서관장은 “김 전 대통령의 연설문에는 늘 ‘첫째, 둘째, 셋째’가 들어간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역식이라면 김 전 대통령은 귀납식”이라고 말한다.

이런 면을 뒷받침하는 것은 완벽주의에 가까운 꼼꼼함과 신중함이다. 그가 항상 들고 다니는 수첩과 메모지에는 언제나 깨알 같은 글씨가 빈틈없이 빽빽이 적혀 있다. 60년대 민주당 대변인 시절 1분에 불과한 성명을 준비하는 데 다섯 시간을 쏟아부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는 “나는 완벽주의자의 기질이 다소 있는데, 무슨 일을 하든 완전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치밀한 구상과 충분한 준비 없이 일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나의 삶 나의 길>)고 말했다.

» 김대중도서관 전시실에 보관돼 있는 김 전 대통령의 옥중 편지.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중이던 청주교도소에서 부인 이희호씨에게 보낸 것이다.<한겨레> 자료사진

아랫사람들을 다루는 방식도 독특하다. 그의 곁에는 “비서들은 있지만 참모는 없다”는 얘기가 많았다. 비서들은 제각각 일부만 알고, 전체는 김 전 대통령 혼자만 아는 식이다. 김 전 대통령이 워낙 철저하고 논리적으로 모든 것을 준비하기 때문에 밑에선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베르너 페니히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교수는 6·15 정상회담 5돌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김 전 대통령은 상대방을 잘 배려하고 호감을 주며 풍부한 유머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엄격한 면모를 갖췄다”며 “그가 최종적으로 발언을 하면 더 이상 토를 달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카리스마가 강하다는 얘기다.

신중하고 논리적인 그의 성격은 곧잘 지나치게 계산적이라든가, 의심이 많은 편이라는 부정적 평가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자금을 직접 관리했고, 당직자들한테 “술 마시라”며 돈을 줄 때도 다 보는 앞에서 지폐를 일일이 세어 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비서들한테도 하대를 하는 법이 거의 없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을 매우 아꼈다고 한다. 한상진 서울대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성품이 “소탈하고 정이 많은 아버지 같은 사람”이라며, 그의 전라도 입담과 유머 감각에서 소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을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털어놓곤 했다. “사실 죽는 것은 겁났다. 한참을 고민하다 바르게 살자고 결심했다.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은 살고 싶어 재판정에서 재판관 입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기징역만 받았으면 했다. ‘무’ 하면 입이 나오고 ‘사’ 하면 입이 찢어지게 보일 것 아닌가.” 인생 최악의 순간을 ‘남의 얘기’ 하듯 털어놓는 여유에, 주변에선 폭소가 터졌다.

그는 굉장한 대식가이고, 동물 비디오를 즐겨 봤다. <옥중서신>에선 가족들 말고도 집에서 기르던 개가 보고 싶다고 자주 썼다. 감옥과 영국에선 꽃을 즐겨 키웠다. 그 이유를 “꽃들의 정직성을 믿고 있고, 정성을 쏟으면 쏟은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해주는 정직성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연철 기자 ***

DJ "난 유머 많고 부드러운 남자"

"어떤 연예인들보다 더 카메라 앞에서 여유 있고 유머가 있으셨어요. 그 분이 말씀을 하시면 사람들이 굉장히 즐거워했거든요"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칭찬합시다' 등을 연출한 김영희 PD는 김 전 대통령을 "화법이 사람을 배려하면서도 위트가 있는 유쾌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 '살려주세요'가 아니라 '뜻대로 하소서'…나 서운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김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대통령이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유머를 모르고는 그분의 전체를 알 수 없다"고 하는 등 측근들은 김 전 대통령을 "죽음 앞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던 분"으로 추억한다.
한 번은 김 전 대통령이 사형선고를 받던 순간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얘기가 주변인들의 폭소를 자아낸 적이 있다.

"사실 죽는 것은 겁났다. 한참을 고민하다 바르게 살자고 결심했다. 큰소리는 쳤지만 사실은 살고 싶어 재판정에서 재판관 입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기징역만 받았으면 했다. '무' 하면 입이 나오고 '사' 하면 입이 찢어지게 보일 것 아닌가"
김 전 대통령이 정계 복귀 직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한 유머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서 특유의 유머감각을 지니신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내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는데 하루는 집사람이 면회와서 기도를 하는 것이다. 나는 집사람이 하나님께 '남편 살려주세요' 하고 기도할 줄 알았는데 집사람은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하는 거예요. 그때 나는 서운했다."
언젠가 한 측근이 남미여행에서 돌아와 토산품을 선물하며 "이것이 악운을 쫓고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라고 말하자 김 전 대통령은 "이 사람아, 이런 것은 진작 주어야지"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또 개그맨 심현섭이 자신의 성대모사로 인기를 누리는데 대해 "나를 흉내 내서 돈을 많이 벌었으면서 로열티도 내지 않고 과일상자 하나 안 보냈어요"라며 익살스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 사실은 유머 많고 부드러운 남자

김 전 대통령은 외워서 하는 유머보다 순간순간 대처하는 순발력이 뛰어나다.
한 동교동 인사는 "어색하거나 불쾌한 분위기에 제압당하지 않고 여유를 갖고 사물을 바라봐야 유머가 가능한 것인데 김 대통령은 엄청난 독서량에 투옥과 망명,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수 차례 넘겼기 때문인지 유머감각이 탁월하다"며 특유의 유머감각을 지닌 전 대통령의 모습을 추억했다.
자서전에서도 김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 '대통령 선거를 할 때마다 과격하고 강경하다는 오해'에 시달렸지만 사실은 유머가 많고 부드러운 남자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 '내가 사랑한 여성'에서 "나는 아내에게도 자주 농담을 하고 골려주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모든 것을 곧이곧대로 들어버려 난처할 때가 많다"며 "사실 나는 수도 없는 각종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대중들을 잘 웃기고 가벼운 농담으로 모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어가는 편"이라고 했다.
또 그는 "선거전에서 나의 토론이 장시간 방영되고 하면서 나의 유머 감각이 조금 부각 된 것 같다"면서 자신 본래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웃음을 좋아하고 그 의미를 알다보니 웃음을 만들 기회가 있으면 아낌없이 실천하면서 살아왔다는 김 전 대통령은 특히 개그우먼 이성미 씨와 김미화 씨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성미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곤 했다는 김 전 대통령은 또 김미화 씨에 대해서는 그 천연덕스러운 연기에 흠뻑 반했을 정도로 개그프로를 좋아했다.
기회가 되면 자신이 알고있는 우스꽝스런 이야기들을 가지고 개그맨들과 한바탕 유머 대결을 펼치고 싶다고 할 만큼 개그에 대한 욕심도 드러냈다.

▲ 글 속에도 유머 발휘

김 전 대통령의 유머감각은 특히 그가 쓴 글 속에도 발휘돼 읽는 이들을 웃음 짓게 한다.
"거미는 생긴 모양을 보면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거미가 감옥 생활의 무료를 달래 주고 흥미를 주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감방 천장에는 여기저기에 거미가 줄을 치고 산다. 내가 관찰한 바로 거미는 깔끔하고 의심이 많은 곤충이었다. 녀석은 죽은 파리는 잘 먹지 않고 살아있는 파리라 해도 사람이 보고 있으면 결코 접근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파리를 잡아서 거미줄에 걸어 줄 때 파리가 아주 죽지 않을 정도로 살짝 때려잡았다. 이것은 약간의 기술을 요하는 것이다. 또한 잡은 파리를 거미줄이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걸어 주는 것도 어려운 동작이다. 나는 몇 번의 반복 동작을 통해서 기술자가 다 되었다. 그런 후 녀석의 식사를 관찰하려면 방구석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 <내가 사랑한 여성> 中 -

이제 고인이 되어 떠나간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유머는 남아 있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과 함께 눈물을 머금게 하고, 당신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깊어지게 한다. ***
수행비서가 4년간 지켜본 DJ…"그는 위대한 지도자"

4년간 수행비서로 DJ를 지켜본 전갑길 광산구청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모든 부분에서 치밀했고, 완벽을 추구했던 위대한 지도자”라고 밝혔다.
전갑길 광주시 광산구청장은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약 4년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수행비서로 일했다.
전 청장이 경험한 DJ의 정치철학은 한마디로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자기 자신을 다듬고 나아갈 좌표를 설정하는 데는 지극한 원칙에서 출발하되, 실제 정치에 이르러서는 대중의 눈높이와 한국사회의 현실을 충분히 감안하여 구체적인 행동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청장이 김 전 대통령을 처음 대면한 것은 지난 1985년 5월 동교동 사저에서였으며 대학을 갓 졸업한 28세의 전 청장은 금문당출판사 김형문 대표의 소개로 김 전 대통령을 만났다.

김 대표는 당시 ‘김대중, 그는 누구인가’ ‘행동하는 양심’ 등 재야세력의 거물인 DJ에 관한 책을 출판해 베스트셀러로 올려 놓은 인물이다.
전 청장이 맨 처음 맡은 일은 민주화추진협의회 회계부 차장. 민추협은 한 해 전인 1984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4주기에 맞춰 창설된 상태였다.
민추협 주도세력들은 1985년 1월 18일 신한민주당(신민당)을 창당했다. 신민당은 선거 직전 귀국한 DJ의 열기에 힘입어 2월 12일 치러진 제12대 총선에서 원내 제1야당으로 부상했다.
신민당이 제12대 총선을 통해 원내 제1야당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민추협은 제도권 안팎에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했다.
민추협 활동을 시작한지 1년6개월여가 지난 1987년 전 청장은 DJ의 부름을 받아 정식 비서로 일하기 시작했다.
전 청장은 DJ를 수행하면서 말, 행동, 자기관리, 조직운영, 정치적 판단 등 직간접적으로 ‘정치’를 배웠다.
DJ는 ‘정치는 이렇게 해라’라고 명시적 가르침을 주지는 않았지만 정치는 물론 모든 생활영역에서 필요한 이런 저런 가르침을 주고는 했다.
외국인을 만나서 대화할 때의 매너, 회의를 진행하는 방법, 모든 일에서 준비가 갖는 중요성, 책읽기의 의미 등등.
전 청장은 DJ에 대해 ‘천재적’이라는 말보다는 ‘엄청나게 노력한다’는 말이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빼어난 두뇌를 가졌음에도 항상 배우고 익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최고의 연설가’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겉으로만 봐서는 즉흥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연설이 예정돼 있는 경우 DJ는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연설문을 작성했다.
비서들이 원고를 검토한 다음 정서로 대필해주면 30분 연설의 경우 세 차례, 약 두 시간 가량을 연습했다고 한다.
연습을 통해 연설 내용을 몸에까지 익히면 훨씬 더 호소력이 크다는 것이 DJ의 생각이었다. DJ는 회의가 잡히면 하루 전부터 준비를 했다. 간혹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철저한 준비를 통해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전 청장은 수행비서로 일했던 4년간 한국정치의 역동적인 변화를 DJ의 눈으로, DJ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경험한 데 대해 축복으로 느낀다고 덧붙였다.
전갑길 청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배운 ‘정치’를 바탕으로 광주시의원 3선을 거쳐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청장으로 활동 중이다.<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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