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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흥덕4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흥덕현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 고향 "흥덕현" 조선왕조실록 태조 11권, 6년(1397 정축) 5월 21일 각도의 병마 도절제사를 파하고 각 진에 첨절제사를 두다 각도의 병마도절제사를 파하고 각진의 첨절제사를 두어 소속인 부근 고을의 병마를 거느려 수어(守禦)에 대비하고, 도관찰사로 하여금 부지런하고 게으른 것을 상고하게 하였다. 경상도는 4진인데, 합포(合浦)·강주(江州)·영해(寧海)·동래(東萊)이고, 전라도의 4진은 목포(木浦)·조양(兆陽)·옥구(沃溝)·흥덕(興德)이고, 충청도의 3진은 순성(蓴城)·남포(藍浦)·이산(伊山)이고, 풍해도(豊海道)의 2진은 풍주(豊州)·옹진(甕津)이고, 강원도의 2진은 삼척(三陟)·간성(杆城)이다. 정종 2권, 1년(1399) 12월 1일 휴가를 얻어 귀향하는 길에 기생첩 봉.. 2015. 1. 2.
추모음악 1.상록수/노 전대통령 2. 천상재회/최진희 3.촛불켜는밤/양하영 4. 바람이 되신이여/함현숙 5. 천개의 학이 되어 6.서쪽하늘/이승철 2010. 6. 6.
내 고향, 흥덕 내 고향, 흥덕 내 고향, 전북 고창군 흥덕면 치룡리. 멀리 보이는 산은 노령산맥의 방장산. 내 고향 흥덕興德은 전북 고창군의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면 소재지이다. 조선시대에는 현縣으로 사람들이 많이 붐볐지만 지금은 인접한 고창, 선운사, 정읍을 지나는 길목에 있는 작은 농촌의 면소재지이다. 조선조 문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정창손은 흥덕현의 객사客舍 서쪽, 배풍헌培豊軒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바다 곁의 큰 고을은 푸른 산봉우리와 마주하고 있고 구름 찌를 듯한 누대에는 우뚝하게 바람이 임하네 외로운 배는 사양斜陽 밖에 보였다 안보였다 하고 먼 산들은 구름 속에 아물아물한다 한 밤에 나팔소리 달 그림자를 흔들고 한 난간의 꽃빛깔은 봄 경치 곱게 하네 바다는 큰 물결 몰아가서 고요한데 물 넓고 하늘.. 2009. 10. 1.
세종실록에 기록된 내고향- 흥덕 에 기록되어 있는 내 고향 흥덕 다음은 세종 36년(1454)에 편찬된 에 기록되어 있는 내 고향 흥덕에 관한 내용이다. 흥덕현 興德縣 본래 백제의 상칠현上柒縣이었는데 신라에서 상질현尙質縣으로 고쳐서 고부군古阜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고, 고려에서 창덕현昌德縣으로 고쳐서 고창高敞으로써 감무監務를 겸하게 하다가, 충렬왕 24년에 흥덕현으로 고쳤다. 태조 원년에 다시 나누어서 두 현으로 하였다. 옛 속향屬鄕이 4이니, 좌향·갑향·남조향·북조향이다. 사방 경계는 동쪽으로 정읍에 이르는데 11리, 서·남쪽으로 고창에 이르는데 서쪽이 14리, 남쪽이 13리요, 북쪽으로 부안에 이르는데 9리이다. 호수가 216호요, 인구가 1,051명이다. 군정은 시위군이 23명이요, 진군이 52명이요, 선군이 198명이었다. 토성土.. 2009.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