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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인간 노무현, 이런 사람이었다`

by 싯딤 2009. 7. 29.

[2009 06/09 위클리경향 ]


인간 노무현은 이런 사람이었다


전 청와대 행정관·문화계 인사·방송 진행자·시민이 밝힌 ‘노짱의 추억’

담배를 피우며 문건을 검토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제공=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많은 사람이 알려지지 않은 그와의 개인적인 인연을 말하고 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만나본 이 중 가장 매력적인 정치인’이라고 고백했다. 건축가 정기용씨는 ‘아방궁’이라는 항간의 험담에 대해 “봉하마을 사저는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흙집으로 지은 ‘지붕 낮은 집’이었다”고 차마 못 꺼낸 이야기를 공개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뗀 ‘인간 노무현’은 어떤 얼굴일까. 각계 인사들의 ‘노무현 대통령과 얽힌 인연’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안희정씨는 그래도 고대 나왔죠?”

1999년, KYC 지방자치단체센터가 주최한 첫 번째 ‘지방자치 아카데미’에서 여는 강의를 당시 국회의원 신분도 아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맡았다. 이어 지방자치의 현황에 대해 안희정씨(현 민주당 최고위원)가 강의했다. 안희정씨의 강의가 끝난 뒤 참가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안씨의 평가를 부탁했다.

안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체적인 정책을 토론해보면 나와 노무현의 차이가 드러난다. 난 속칭 진보지만 시장의 경쟁 필요성에 대해 더 적극적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 부분에 대해 더 조심스럽다. 토론이 격해지면 노무현이 나를 이렇게 구박한다. ‘안희정씨는 그래도 고대 나왔죠? 잘난 친구 많죠? 그러니까 경쟁해도 한 번 붙어볼 만하죠. 그런 것 없는 사람들 생각은 해봤나요? 배운 것 없고 빽없는 사람들 생각은 해봤나요?’ 그럼 나는 아무 말도 못한다. 노무현은 그런 사람이다.”


라디오 생방송 “준비 안 해왔는데요? 그냥 합시다”
_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내가 기독교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다. 그는 대선 후보 인터뷰 자리에 나와주었다. 자신이 출연하면 청취율이 훌쩍 뛸 거라며 호기롭게 스튜디오에 들어서던 대선 후보 노무현의 일행은 조촐하기 그지없었다. 이럴 수가 있나? 그래도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가 움직이는데…. 당시 그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었고 민주당에서는 후보 교체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하지만 그는 당당했다. 방송을 시작하고, 나의 첫 질문은 통상적인 것이었다. 대선 후보로서 청취자들에게 하실 말씀을 위한 시간을 드릴 테니 하시라는 것이다. 그의 대답은 “어, 준비 안 해왔는데요? 그냥 합시다”였다. 진행자인 나를 처음부터 당혹스럽게 만든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어쩌랴. 생방송이고 당사자가 준비해온 ‘원고’가 없다는데…. 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정치 개혁과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1년이 넘도록 방송을 진행하면서 만났던 숱한, 전형적인 정치인이 아닌, 그는 자신에게 솔직한 진짜 정치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 소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봉하마을>



실무진 입장에서는 중노동시킨 대통령
_ 김상철 전 청와대 행정관


“첫날 내려갔다가 직장 때문에 먼저 새벽에 올라왔습니다. 실무진 입장에서 기억하자면 정말 일을 많이 시키신 대통령이었습니다. 퇴임을 앞둔 2008년 1월, 차기 정부와 정부 조직 개편 논란이 불거지면서 ‘이에 대해 참여정부의 입장을 자료로 정리해 알리자’고 했을 때는 뒷목이 돌덩이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이·취임식을 앞둔 마지막 주까지 야근하고, 짐싸고 나가는 금요일까지 일처리하고 나왔습니다. 그냥 ‘허허‘ 웃으면서 했습니다. 당신께서 벌여놓은 일, 남겨놓은 숙제들. 우리 사회는 결국 다시 맞닥뜨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다시 곱씹고 고민하고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먼저 일한 사람으로서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위안받습니다.”

1주일에 한 시간씩 글씨 쓰는 공부를 했을까
_ 농산 정충락 서예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백수 시절, 그러니까 해양수산부 장관을 하기 전에 당시 소속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의 부총재인 한광옥씨와 함께 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그곳에는 한국서예협회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축하객으로 그가 참석한 것이다. 그때 나는 그 단체의 간부였고, 오신 손님에게 방명록을 작성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노 전 대통령의 글씨가 좀 못 쓴 것 같았다. 나는 ‘훌륭한 정치가는 예부터 글씨를 잘 썼는데, 어이해 그대는 글씨에 관심이 없는지요’라고 물었고, 그는 즉답하길 ‘선배님, 지금부터 1주일에 1시간은 글씨 쓰는 공부를 꼭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가 정말 1주일에 1시간씩 서예공부를 했을까. 궁금한 일이다.



대선 경선 출마한 노무현 “나 부족한 것 많지요?”
_ 정보연 KYC 공동대표


우연히 노무현님이 대선 경선에 나가려고 한다고 이야기하는 자리에 참여했다. 대략 20명 정도 모이는 자리였다.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노무현이 부족한 것이 많지요? 하지만 나를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노무현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나, 그렇게 살아왔지 않나요?”



노동조합 설립 컨설턴트한 노무현 변호사
_ 신혁진 불교포커스 기자


1999년 봄 주간신문인 ‘주간불교’에 입사할 당시, 선배들은 비밀리에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마땅히 아는 노무사도 없고, 돈도 없고…. 당시 수습 떼면 초봉이 98만 원이었습니다. 노조 만들어 회사와 싸워볼 요량이었죠. 당시 집에서 놀고 있던 노무현 변호사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주간불교’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어렵게 노무현 변호사에게 노조 설립에 관한 도움을 요청했고, 지금의 광화문사무실(변호사회관인 것 같습니다)에서 노조 설립 과정과 싸우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줬습니다. 물론, 공짜였지요.

감옥을 더 즐거워하던 노무현 변호사
_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블로그에 올린 글)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만났고 알아왔다. 그가 이상수 변호사와 함께 거제 대우 옥포조선소 노사분규에서 제3자개입죄로 감옥에 갔을 때 나는 그의 변호인이었다. 감옥에 있는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오히려 밖의 감옥보다 안에 있는 감옥을 더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인권변호사로서 민변을 만들었을 때 당연히 그는 우리의 멤버였다. 언젠가 민변 회의가 수안보온천의 한 호텔에서 열렸을 때 저녁 늦게 도착한 그가 부산의 인권활동 소식을 전하던 기억이 난다. 서울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했을 때 그의 지구당 사무실이 내가 사무처장으로 있던 참여연대 바로 옆에 있었다. 가끔 함께 식사하였다.

참여정부 내내 시행착오와 갈등이 수없이 빚어졌다. 뜻은 좋은데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정책도 적지 않았다. 개혁은 혁명보다 더 힘들다고 했던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우리는 그래도 참여정부가 훨씬 나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퇴임 후 아름다운가게 명예점장을 맡으면 어떠냐고 공개 제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향리 봉하마을에 돌아가 마을만들기에 집념을 보였다. 그러나 정치는 무상한 것, 새로이 권력을 잡은 측과 몇몇 언론은 집요하게 그를 공격했고 괴롭혔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습니다.
_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 (진보신당 게시판)


새벽부터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데, 심상정 전 대표가 사무실에 들어왔습니다. “보도 봤어요?” 졸음을 쫓느라 아침 신문 3개를 모두 본 나는 어리둥절했다. 봉하마을… 눈물로 뒤범벅된 사람들, 내 옛 동료들의 아픈 마음이 전해지는데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집에 돌아와서 내 옛 친구, 유시민이 오열하는 사진을 봐도 그렇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살갑던 노사모, 개혁당 사람들이 살아서, 힘을 찾아 정말 망할 게 뻔한 이 나라, 아니 죽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구하는 데 온 힘을 다했으면 하는… 그의 죽음에 화가 납니다. 건호와 정연이가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에… 큰 승부에 작은 것들이 너무 희생당한다는 생각에… 화가… 납니다.

당신은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분이었습니다
_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진보신당 게시판)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였습니다. 어느날 그의 열렬한 지지자인 이기명씨를 통해 전화가 왔더군요. 제 칼럼을 보고 저를 한 번 보고 싶다 한다고. 여의도의 한식집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대화의 결론은, 자기 캠프로 와줄 수 있냐는 것. 제 정치적 신념은 진보정당을 강화하는 데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은 데리고 있느니 차라리 밖에서 더러 쓴 소리도 하면서 그냥 놀게 해주는 게 아마도 더 도움이 될 거라고 덧붙였지요.

두 번째 만남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된 후의 일이었습니다. 월간 ‘인물과 사상’에서 제게 노무현 후보 인터뷰를 해달라고 요청해왔습니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같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저를 대하시는 태도가 약간 차가웠지요. 나름대로 준비를 해간다고 해갔는데, 질문 몇 개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입니다. “인터뷰를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지요.”라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면서, 가끔 내 물음을 자기 스스로 고쳐서 묻고는 스스로 대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도덕적으로 흠집을 남긴 것은 유감스러운 사실이지만, 다른 건 몰라도, 당신은 내가 만나본 정치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분이었습니다. 참으려고 하는데 눈물이 흐르네요…<정용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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