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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읽다 - 명사 시사 칼럼

박근혜대통령 탄핵 인용 전문

by 싯딤 2017. 3. 11.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박근혜대통령탄핵심판 선고가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재로 열렸다.

 

지금부터 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선고에 앞서 이 사건의 진행경과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재판관들은 지난 90여일 동안 이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왔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께서도 많은 번민과 고뇌의 시간을 보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재판관들은 이 사건이 재판소에 접수된 지난 해 12. 9. 이후 오늘까지 휴일을 제외한 60여일 간 매일 재판관 평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재판과정 중 이루어진 모든 진행 및 결정에 재판관 전원의 논의를 거치지 않은 사항은 없습니다.

저희는 그 간 3차례의 준비기일과 17차례에 걸친 변론기일을 열어 청구인측 증거인 갑 제174호증에 이르는 서증과 열두 명의 증인, 5건의 문서송부촉탁결정 및 1건의 사실조회결정, 피청구인측 증거인 을 제60호증에 이르는 서증과 열일곱 명의 증인(안종범 중복하면 17명), 6건의 문서송부촉탁결정 및 68건의 사실조회결정을 통한 증거조사를 하였으며 소추위원과 양쪽 대리인들의 변론을 경청하였습니다.

증거조사된 자료는 48,000여 쪽에 달하며, 당사자 이외의 분들이 제출한 탄원서 등의 자료들도 40박스의 분량에 이릅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 아시다시피,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재판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의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하려 합니다. 저희 재판부는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루어지는 오늘의 선고가 더 이상의 국론분열과 혼란이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도 법치주의는 흔들려서는 안 될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 가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 사건 탄핵소추안의 가결절차와 관련하여 흠결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소추의결서에 기재된 소추사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아니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헌법상 탄핵소추사유는,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고 여기서 법률은 형사법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탄핵결정은 대상자를 공직으로부터 파면하는 것이지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피청구인이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심판대상을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관계를 기재하면 됩니다. 이 사건 소추의결서의 헌법 위배행위 부분이 분명하게 유형별로 구분되지 않은 측면이 없지 않지만, 법률 위배행위 부분과 종합하여 보면 소추사유를 특정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이 사건 탄핵소추안을 의결할 당시 국회 법사위의 조사도 없이 공소장과 신문기사 정도만 증거로 제시되었다는 점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국회의 의사절차의 자율권은 권력분립의 원칙상 존중되어야 합니다. 국회법에 의하더라도 탄핵소추발의시 사유조사 여부는 국회의 재량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그 의결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다음, 이 사건 소추의결이 아무런 토론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의결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토론 없이 표결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나, 국회법상 반드시 토론을 거쳐야 한다는 규정은 없고 미리 찬성 또는 반대의 뜻을 국회의장에게 통지하고 토론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토론을 희망한 의원은 한 사람도 없었으며, 국회의장이 토론을 희망하는데 못하게 한 사실도 없었습니다.

탄핵사유는 개별 사유별로 의결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여러 개 탄핵사유 전체에 대하여 일괄하여 의결한 것은 위법하다는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소추사유가 여러 개 있을 경우 사유별로 표결할 것인지, 여러 사유를 하나의 소추안으로 표결할 것인지는 소추안을 발의하는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의사에 달린 것이고, 표결방법에 관한 어떠한 명문규정도 없습니다.

8인 재판관에 의한 선고가 9인으로 구성된 재판부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아홉 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재판관의 공무상 출장이나 질병 또는 재판관 퇴임 이후 후임재판관 임명까지 사이의 공백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일부 재판관이 재판에 관여할 수 없는 경우는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헌법과 법률에서는 이러한 경우에 대비한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탄핵의 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고, 재판관 7인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홉명의 재판관이 모두 참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은, 현재와 같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할 수 있는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결국 심리를 하지 말라는 주장으로서, 탄핵소추로 인한 대통령의 권한정지상태라는 헌정위기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가 됩니다.

여덟 명의 재판관으로 이 사건을 심리하여 결정하는 데 헌법과 법률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상 헌법재판소로서는 헌정위기 상황을 계속해서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회의 탄핵소추가결 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위법이 없으며, 다른 적법요건에 어떠한 흠결도 없습니다.

이제 탄핵사유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탄핵사유별로 피청구인의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하여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을 침해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노 국장과 진 과장이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라 문책성 인사를 당하고, 노 국장은 결국 명예퇴직하였으며, 장관이던 유진룡은 면직되었고,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이 제1차관에게 지시하여 1급 공무원 여섯 명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아 그 중 세 명의 사직서가 수리된 사실은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나타난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피청구인이 노 국장과 진 과장이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방해가 되었기 때문에 인사를 하였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고, 유진룡이 면직된 이유나 김기춘이 여섯 명의 1급 공무원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받도록 한 이유 역시 분명하지 아니합니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청구인은 피청구인이 압력을 행사하여 세계일보 사장을 해임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계일보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사실과 피청구인이 이러한 보도에 대하여 청와대 문건의 외부유출은 국기문란 행위이고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해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하며 문건 유출을 비난한 사실은 인정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나타난 모든 증거를 종합하더라도 세계일보에 구체적으로 누가 압력을 행사하였는지 분명하지 않고 피청구인이 관여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다음 세월호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의무 위반의 점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2014. 4. 16. 세월호가 침몰하여 304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피청구인은 관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헌법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건은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 준 참사라는 점에서 어떠한 말로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할 것입니다. 피청구인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 보호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고 직책을 수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재난상황이 발생하였다고 하여 피청구인이 직접 구조 활동에 참여하여야 하는 등 구체적이고 특정한 행위의무까지 바로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세월호 사고는 참혹하기 그지 없으나, 세월호 참사 당일 피청구인이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였는지 여부는 탄핵심판절차의 판단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피청구인의 최서원(최순실)에 대한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피청구인에게 보고되는 서류는 대부분 부속비서관 정호성이 피청구인에게 전달하였는데, 정호성은 2013년 1월경부터 2016년 4월경까지 각종 인사자료, 국무회의자료, 대통령 해외순방일정과 미국 국무부장관 접견자료 등 공무상 비밀을 담고 있는 문건을 최서원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최서원은 그 문건을 보고 이에 관한 의견을 주거나 내용을 수정하기도 하였고, 피청구인의 일정을 조정하는 등 직무활동에 관여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최서원은 공직 후보자를 추천하기도 하였는데, 그 중 일부는 최서원의 이권 추구를 도왔습니다. 피청구인은 최서원으로부터 케이디코퍼레이션이라는 자동차 부품회사의 대기업 납품을 부탁받고 안종범을 시켜 현대자동차그룹에 거래를 부탁하였습니다.

피청구인은 안종범에게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법인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하여, 대기업들로부터 486억 원을 출연받아 재단법인 미르, 288억 원을 출연받아 재단법인 케이스포츠를 설립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재단법인의 임직원 임면, 사업 추진, 자금 집행, 업무 지시 등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은 피청구인과 최서원이 하였고, 재단법인에 출연한 기업들은 전혀 관여하지 못했습니다.

최서원은 미르가 설립되기 직전인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를 설립하여 운영했습니다. 최서원은 자신이 추천한 임원을 통해 미르를 장악하고 자신의 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와 용역계약을 체결하도록 하여 이익을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서원의 요청에 따라, 피청구인은 안종범을 통해 케이티에 특정인 2명을 채용하게 한 뒤 광고 관련 업무를 담당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 뒤 플레이그라운드는 케이티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되어 케이티로부터 68억여 원에 이르는 광고를 수주했습니다.

또 안종범은 피청구인 지시로 현대자동차그룹에 플레이그라운드 소개자료를 전달했고, 현대와 기아자동차는 신생 광고회사인 플레이그라운드에 9억여 원에 달하는 광고를 발주했습니다.

한편, 최서원은 케이스포츠 설립 하루 전에 더블루케이를 설립하여 운영했습니다. 최서원은 노승일과 박헌영을 케이스포츠의 직원으로 채용하여 더블루케이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도록 했습니다. 피청구인은 안종범을 통하여 그랜드코리아레저와 포스코가 스포츠팀을 창단하도록 하고 더블루케이가 스포츠팀의 소속 선수 에이전트나 운영을 맡기도록 하였습니다.

최서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종을 통해 지역 스포츠클럽 전면 개편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 내부 문건을 전달받아, 케이스포츠가 이에 관여하여 더블루케이가 이득을 취할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또 피청구인은 롯데그룹 회장을 독대하여 5대 거점 체육인재 육성 사업과 관련해 하남시에 체육시설을 건립하려고 하니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여 롯데는 케이스포츠에 70억 원을 송금했습니다.

다음으로 피청구인의 이러한 행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지를 보겠습니다.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여 공무원의 공익실현의무를 천명하고 있고, 이 의무는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자윤리법 등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피청구인의 행위는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헌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입니다.

또한,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스포츠의 설립, 최성원의 이권 개입에 직,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피청구인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피청구인의 지시 또는 방치에 따라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많은 문건이 최서원에게 유출된 점은 국가공무원법의 비밀엄수의무를 위배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피청구인의 법위반 행위가 피청구인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것인지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피청구인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 및 케이디코퍼레이션 지원 등과 같은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하였습니다.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왔습니다. 그 결과 피청구인의 지시에 따른 안종범, 김종, 정호성 등이 부패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되는 중대한 사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입니다.

한편, 피청구인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였습니다. 이 사건 소추사유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결정에는 세월호 참사 관련하여 피청구인은 생명권 보호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헌법상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의무를 위반하였고, 다만 그러한 사유만으로는 파면 사유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재판관 김이수, 재판관 이진성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선고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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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를 파멸로 몬 결정적 10장면

/ 한국일보: 2017.03.10 14:27

 

 

세월호 수색이 한창일 때 박근혜 대통령은 미용시술 흔적. 세월호 유족 면담 3일 전 얼굴에 피멍 든 박 대통령.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이 한창이던 2014년 5월 13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자리로 향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에 피멍자국이 선명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4년 남짓한 박근혜 정부를 돌이켜 보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대선 직후 불거진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은 국정원장의 구속으로 이어졌고 이듬해는 세월호 참사로 국가적 비극을 맞았으며 메르스 사태,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동 등으로 민생은 고달팠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과 무능력, 아집에 대한 원성도 높았다. 박 대통령의 낡은 리더십은 결국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만천하에 드러났고 헌정사상 초유의 파면 사태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 4년을 파멸로 내몬 결정적 10장면은 그의 업보였던 셈이다.

① 국정원 댓글, 정권 내내 정당성 논란

박근혜정권은 태동부터 심상치 않았다. 2012년 대선 직전 터진 국정원의 댓글 공작 사건은 정권 내내 정당성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논란 끝에 정권 출범 직후 검찰이 원세훈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여야는 국정조사까지 벌이며 공방을 벌였다. 이 와중에 여당인 새누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북방한계선(NLL)을 포기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반격에 나서 파장이 확대됐다. 궁지에 몰린 국정원이 대화록 사본을 공개하는 극단적 카드까지 내밀었지만 끝내 전모를 밝히는 데는 실패했다. ‘사초(史草)실종’ 논란이라는 소모적 논쟁만 반복하다 대화록 정국은 유야무야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댓글 사건에서는 검찰이 120만여 건의 국정원 트위터 글을 밝혀내고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국가기관의 조직적 대선 개입 사건으로 증폭됐다. 원세훈 원장은 고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이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려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3년 9월 13일, 사퇴의사를 밝히고 대검찰청을 떠나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② 채동욱 찍어내기, 막무가내 인사 전형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논란은 막가파식 불통 인사의 전형이었다. 채 총장이 사퇴하게 된 결정적 사건은 2013년 9월 6일 조선일보의 혼외자 보도였다. 하지만 당시 채 총장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 적용여부를 놓고 청와대나 법무부, 국정원과 갈등을 빚고 있던 터라,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인사를 끌어 내리려는 모종의 힘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채 총장에 대한 전격적인 감찰 지시를 내리자 채 총장은 “조직 수장으로 단 하루라도 감찰 조사를 받으면서 일선 검찰을 지휘하는 건 부적절하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개입설을 강하게 부인하던 청와대는 채 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지 보름만에 사표를 수리하면서 사태는 일단락 지어졌다. 이후 채 총장의 혼외자로 지목된 채모군의 인적사항을 파악하는데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과 조이제 서초구청 국장, 국정원 정보관 송모씨 등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았을 뿐이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침몰사건

③ 세월호 참사, 골든타임 놓친 위기대응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정부 위기관리 능력의 총체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고 발생 직후 해양경찰청과 안전행정부를 비롯해 정부의 중앙재해대책시스템은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었다. 사고 당일 오전 8시52분 첫 신고가 접수되고 배가 완전히 기울어 침몰할 때까지 1시간 넘는 ‘골든 타임’ 동안 국가 재난기구와 컨트롤타워는 작동되지 않았다. 295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됐고, 실종자 9명은 아직도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

사고 발생의 정확한 원인 규명 등을 위한 세월호특별법이 제정돼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정부여당의 미온적 태도 등으로 파행을 거듭하다 의미 있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마무리 됐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세월호 인양 작업에 나섰지만 사고 발생 3년이 다 되도록 결론을 못내고 있다. 박 대통령의 당일 7시간 행적 또한 여전히 미궁 속이다. 검찰과 특검의 잇단 수사에서도 명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고 헌법재판소 또한 심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함에 따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또다시 검찰의 손을 넘어가게 됐다.

④ 메르스 사태

2015년 한 해를 질병 공포에 떨게 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는 국내 방역시스템의 허술함을 그대로 노출시킨 사건이었다. 첫 감염 의심 환자가 발생한 이래 초기 대응에 실패, 연말까지 186명이 감염되고 38명이 숨졌다. 다른 국가에서도 발병한 메르스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치사율이 20.4%에 이를 정도로 문제가 된 건 허술한 방역체계 때문이었다. 메르스 사태 초기 보건당국이 환자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 환자들이 거쳐간 병원을 공개하지 않다가 화를 키웠고, 이후 보건복지부와 삼성서울병원 등은 책임을 떠미는 촌극까지 연출했다. 정부는 첫 의심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은 5월 20일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보름쯤 지나 박 대통령이 미국 순방 일정을 연기한 채 국립중앙의료원의 국가지정 음압 격리병상을 찾는 등 부산을 떨었다. 첫 환자 발생 후 218일만인 12월 23일 공식적으로 상황종료를 선언했지만, 이미 방역 당국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고 경제는 초토화된 뒤였다. 

 

  ⑤ 정윤회 문건파동, 최순실 게이트 예고편

이른바 ‘십상시’가 등장하는 문건 파동은 최순실 게이트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2013년 세계일보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자 최순실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가 국정을 농단했다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문건에 따르면 정씨는 박 대통령 비선 실세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사퇴를 유도하고,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등 소위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청와대 비서관 등과 수시로 만나면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씨가 강력 부인하고 박 대통령까지 나서 “찌라시에 나라가 흔들렸고 문건 내용은 허위”라고 단정지은 뒤 검찰은 “정윤회 문건은 증권사 정보지에 근거한 허위”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자 검찰은 문건 내용에 대한 진위 규명이 아닌 유출 경로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벌여 박관천 경정을 구속시켰다. 사건 이후 정씨는 최씨와 이혼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정씨 사건의 본질을 외면한 박 대통령은 인의장막 속에서 불통 정치를 계속하다 결국 국정농단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⑥ 안대희ㆍ문창극ㆍ이완구… 총리 연쇄 낙마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의 연쇄 낙마는 몰락의 예고편이었다. 4년 동안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6명 중 3명은 청문회 문턱도 넘지 못한 채 낙마하고 말았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인 2013년 1월 24일 첫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 전관예우, 아들의 병역문제, 부동산 투기 논란 등이 제기되면서 지명 5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이후 정홍원 총리가 박근혜정부 초대 총리로 취임했으나 2014년 세월호 참사 부실 대응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후임자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은 변호사 시절 고액 수임 등 전관예우 논란으로 6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뒤이어 후보자로 지명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도 역사인식 논란으로 2주 만에 낙마했다.

총리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로 정 총리가 사의 표명 60일 만에 ‘도로 총리’로 유임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정 총리 후임으로 2015년 2월 임명된 이완구 총리는 갖은 의혹을 떨치고 총리에 임명됐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연루, 취임 63일 만에 사퇴하면서 역대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박 대통령의 수첩 불통 인사가 잇단 인사 참극의 요인이었다.

2014년 6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김주성기자

 

 

 

 

 

 

 

 

 

⑦ 국정교과서, 여론 외면 강행하다 좌초

박근혜 정부 시간표대로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인 올해 새 학기부터 중고교생들이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게 돼 있었다. 새 교육과정 적용을 역사 과목만 서두른 결과였다. 그러나 박근혜표 역사교과서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고 지난해 11월 공개 뒤에는 박정희 미화 등 현대사 왜곡, 사실 오류 등 함량 논란에 휩싸여 기어코 좌초했다. 내년부터 역사 국정교과서는 검정교과서와 혼용된다.

발단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사태였다. 2013년 8월 우편향, 완성도 부족으로 물의를 빚고도 좌편향된 역사교육을 바로잡겠다는 정부ㆍ여당의 의지 속에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 당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201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정화를 시사했고 이후 당정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이듬해 11월 황교안 국무총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확정 발표했다. 정부는 집필진을 공개하지 않은 채 교과서 제작에 착수했고 비난 여론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상실과 함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도 좌절됐다.

한일 위안부 합의, 졸속 타결로 후폭풍

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해 위안부 지원이 목적인 재단을 설립한다는 게 합의의 골자였다. ‘불가역적이고 최종적인 합의’라고 양국은 못박았다.

숙원을 풀었다는 정부 평가와 달리 당사자들은 반발했다. 피해자들의 동의 없이 합의가 졸속으로 이뤄졌다는 이유에서다. “돈으로 피해자를 우롱하는 사기극”(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라는 성토까지 나왔다. 10억엔이 법적 배상금은 아니라는 일본 정부의 방침도 반감을 자극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7월 10억엔으로 피해자를 지원하겠다며 ‘화해ㆍ치유재단’을 출범시켰고, 기존 합의를 무효화하고 차기 정부가 재협상해야 한다는 요구는 여전하다. 박 대통령이 파면 당하면서 위안부 무효화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⑨ 사드 배치 속도전, 내우외환만 커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는 박근혜 정부 2년 차에 공론화했다. 2014년 6월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이 사드 전개를 자국 정부에 요청한 적 있다고 발언하면서다. 그러나 정부는 요청도 협의도 없었고 결정도 없다는 ‘3No’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입장이 급반전했다. “사드 배치는 국익에 따라 검토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입장이 나온 뒤 한 달도 안 돼 국방부가 한미가 한반도 사드 배치 공식 협의에 착수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후 사드배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국방부는 작년 7월 한미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고 공식 발표했고 닷새 뒤엔 사드 배치 지역까지 경북 성주군으로 결정했다. 사드 배치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는 야권의 요구에도 정부는 6일 밤 일부 장비를 기습 반입했다. 중국의 보복이 확산 일로인 가운데 사드 문제는 조기대선 국면뿐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도 최대 과제가 돼 버렸다.

 

 

 

 

 

 

 

 

 

 

 

 

'정신적 충격', '강압 수사' 등의 사유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출석 요구에 6차례나 응하지 않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지난 1월 체포영장이 집행돼 서울 강남구 특검 사무실에 출두하며 소리치고 있다. 연합뉴스

 

⑩ 국정농단 하나하나 벗겨지며 국민 공분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는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가져 온 결정적 사건이다. 언론보도를 통해 불거진 최씨의 미르ㆍK스포츠 재단 사유화 의혹에서 시작한 파문은 끝내 박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검찰과 특검 수사를 통해 미르ㆍK스포츠 재단 사유화에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최씨 지인이었던 광고감독인 차은택씨와 최씨 조카 장시호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한 사실도 속속 밝혀졌다. 또 최씨의 딸인 정유라씨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에 최경희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이 대거 동원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정씨의 승마 지원에 삼성 개입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 대통령과 최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 다시 시작된 검찰 수사의 칼끝은 탄핵된 박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김성환,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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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롤 2개 단 채 출근 ‘국민 화제’된 이정미 대행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오른쪽)이 10일 오전 헌법재판소로 출근하고 있다. 이 권한대행의 머리 위에 분홍색 헤어롤이 보인다.

 

10일 오전 7시50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검은색 에쿠스 한 대가 들어섰다. 차문이 열리고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이정미(55)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었다.
 
그는 말없이 취재진을 향해 목례를 하곤 바삐 걸음을 옮겼다. 불과 열 발짝 남짓한 사이 사복경찰에 에워싸인 그의 모습은 취재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뒤 ‘이 권한대행의 출근길’이란 사진 한 장이 화제에 올랐다. 분홍색 헤어롤 두 개가 뒷머리에 매달려 있는 사진이었다. 한 법조인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 선고를 앞두고 긴장한 나머지 실수한 것 같다”며 “인간적인 모습으로 국민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 권한대행은 지난 1월 31일 박한철 전 헌재소장이 퇴임한 뒤 소장 권한대행에 선출됐다. 헌정 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심판이란 중차대한 상황에서 그것도 ‘8인 체제’의 비상 헌재를 이끌어왔다. 이 권한대행은 극렬한 대립이 벌어진 탄핵 찬반 여론 속에 살해 위협까지 받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심리를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권한대행과 함께 근무했던 한 법관은 그를 ‘외유내강(外柔內剛)’형 인물로 평가했다. “외부로 밝히지 않을 뿐 자기 생각이 분명한 사람으로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난 석 달간 대통령 탄핵 재판 과정 중에서도 그런 면모가 드러났다. 재판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 김평우 변호사로부터 “왜 헌법재판관씩이나 하느냐”는 막말을 들었지만 법정 퇴장으로 응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권한대행이 여성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임명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임명했단 이유로 중도진보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법리에 충실하고 합리성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법관”이라고 평했다.
 
이 권한대행이 처음부터 법관의 길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경남 마산여고 출신인 그는 수학선생님을 꿈꿨지만 고3 시절이던 1979년 법관으로 진로를 바꿨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집 근처에서 과격한 시위가 일어났다. 어떤 방향이 사회가 올바로 가는 길일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한 이 권한대행은 84년 사법시험(제26회)에 합격했다. 그의 연수원 동기는 “말수가 적고 착실한 친구”라고 회상했다. 당시 별명은 ‘소외(訴外) 이정미’. 소외는 소송에서 소송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가 아닌 제3자를 뜻하는 법률 용어다. 연수원 교수들은 늘 말없이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 이 권한대행에게 재미삼아 이런 호(號)를 붙였다.
 
법관으로서 최고 영예인 헌법재판관까지 올랐지만 여성으로서의 삶은 여느 ‘일하는 엄마’와 다를 바 없었다. 한 동료 법관은 2010년 이 권한대행이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을 때 축하전화를 걸었더니 “사표를 냈어야 했나 보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다고 했다.
 
이 권한대행은 당시 중학생 자녀 둘을 키우고 있었는데 한참 엄마손이 필요할 때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니 판사직을 내놔야 하나라는 고민이 되더라는 것이다. 이 권한대행은 사표를 내는 대신 주말마다 비행기로 서울을 오가며 아이들을 보살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어려웠다. 늘 보따리를 들고 다녔다. 애들이 자면 일을 하고, 아니면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했다. 잠은 짬짬이 잤다”고 말했다.
 
가수 윤종신 “헤어롤, 짠하고 뭉클”
 
헌재의 탄핵 결정 후 전여옥 전 국회의원은 블로그에 “뒷머리에 클립을 하고 출근하는 장면. 이것이 바로 일하는 여성의 진짜 모습”이라며 “이정미 권한대행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가수 윤종신씨는 인스타그램에 “이 모습이 얼마나 짠하고 뭉클했는지, 재판관님들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고 상식과 우리 모두를 위한 이 아름다운 실수를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글을 올렸다. 이 권한대행은 오는 13일 30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친다.
 
글=김현예·윤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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