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bopstory.tistory.com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
김대중 대통령(이후, 인동초 표기 병행)은 한국 해방 전후사(근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숱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 기록들은 한 개인의 삶의 궤적이자, 역사가 되었습니다. 삶의 고비마다 그가 기록하고, 기록을 세웠던 자료들을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격동의 기록이자 행동하는 양심의 기록. 정적으로 쫓겨 외국 망명 생활을 할 때, 감옥에서도 그는 기록했습니다. 불멸의 사나이.과찬으로 끝내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 파란만장했습니다.
인동초가 남긴 기록들은 기록을 위한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기록을 만들려고 기록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지지했던 사람들의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록들을 살펴본다는 것은 역사책을 읽는 것입니다. 그의 이력만 살펴보아도 살아 생전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지 금방 가늠할 수 있습니다.
우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인동초와 함께 투옥되었던 시인 고은이 올해 글과 그림을 묶어 낸 책 ‘개념의 숲’ 에 실린 몇 개의 단상을 잠시 읽어 봅니다.
시詩
시는 17세부터 나의 북극성이다. 시는 나에게 길을 걸어가는 자이게 한다.
기록은 나의 북극성이다. 기록은 나에게 길을 걸어가는 자이게 했다. 김대중은 기록을 통해 기록을 세우면서 민주와 통일을 향한 길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망각
과거의 소멸,시간은 망각을 낳고 치매를 낳는다. 왜냐하면 세계는 늘 새로운 사태의 만원으로 과거를 돌아다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야누스 신은 없다.
그래서 5천 년 전의 파라오의 미라도 5천 년 전의 것이 아니라 오늘의 것이다.
우리들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 같지만, 잊고 삽니다. 과거를 돌아다 볼 겨를이 없기에, 언제나 후회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기록은 과거의 것이자 오늘의 것이며, 미래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정열
정열은 지혜보다 상위에 있어야 한다. 태풍과 허리케인, 지진, 시베리아 눈보라, 화산 대폭발, 타클라마칸 사막의 회오리, 기둥, 홍수.... 이런 것들이 정열의 교사다. 정열만이 창조의 힘이고 변혁의 수레바퀴다, 친구여 생명보다 정열 있는 시체가 되어라.
인동초의 삶은 정열의 기록이자, 행동하는 양심은 바로 정열에서 나왔습니다. 지혜를 넘어 정열의 바다에 이른 김대중 대통령. 가시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가 남긴 기록들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걸어갈 정열의 길을 떠올려 봅시다.
만약 시인 고은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면, 노벨문화상을 넘어 고난의 민중사를 함께 했던 김대중 대통령과 사선을 넘어 감옥에서, 북한을 함께 방문한 노벨상을 받은 두 명의 한국인이라는 진기록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1. 김대중을 상징하는 이름들
DJ. DJ는 김대중 대통령의 또 다른 이름 입니 다. 아마 DJ처럼 많이 회자되고 언론에 보도된 이니셜이 또 있을까요. 민주주의 화신, 행동하는 양심, 인동초, 4전5기의 신화 등그를 상징하는이름들이 많습니다.
2. 명예 학위들
김대중 대통령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학력의 딱지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인동초는 박사였습니다. 학습의 왕이었던 김대중. 독서광이었던 김대중. 알려진 자료에 따르면 그가 받은 명예학위만 해도 20개 가까이 됩니다. 학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얼마나 다방면에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대의 지성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1992년 - 러시아 모스크바 대학교 외교대학원 정치학박사 1983년 - 미국 에모리 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1992년 - 미국 가톨릭 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1994년 - 원광대학교 명예 정치학박사 1995년 - 미국 포트랜드 주립대학교 명예 인문학박사 1996년 - 호주 시드니 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1998년 - 미국 조지타운 대학교 명예 인문학박사 1998년 - 경희대학교 명예 경제학박사 1998년 - 고려대학교 명예 경제학박사 1998년 - 미국 워시본 대학교 명예 문학·인문학박사 2001년 -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2002년 -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명예 문학박사 2006년 - 영남대학교 명예 정치학박사 2006년 - 전남대학교 명예 인문학박사 2006년 - 공주대학교 명예 교육학박사 2007년 - 전북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2007년 -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명예 법학박사 2008년 - 미국 포틀랜드 대학교 명예 인문학박사 2008년 - 말레이시아 말라야 대학교 명예 인문학박사
3.받은 상들
한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 인동초는 참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그가 받은 굵직한 상만 21개 가량 됩니다.
1981년 -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1987년 - 미국 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 인권상(조지 미니상) 1987년 - 북미주 한국인권연합 인권상 1993년 - 한국애서가클럽 애서가상 1994년 - 미국 유니온신학대학교 유니온메달 1998년 - 국제인권연맹 인권상 1998년 - 무궁화 대훈장 1998년 - UN 인권협회 인권상 1999년 - 미국 필라델피아시 자유메달 2000년 - 라프토 인권상 2000년 - 노벨 평화상 2000년 - 국제평화상 2000년 - 노르웨이 라프토 인권상 2001년 - 세계정치지도자상 2002년 - 국제행동을 위한 의원연합의 민주주의 수호자상 2003년 - 늦봄통일상 2003년 - 제7회 만해상 2003년 - 칠레 대십자 훈장 2003년 - ‘춘사 나운규 영화제’ 공로상 2006년 - 코리아 소사이어티 선정 밴플리트상 2007년 - 제1회 자유상(베를린 자유대학)
1981년에 받은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4. 집필한 책들
많은 책들을 읽었으니, 당연히 저서도 많습니다. 대략 알려진 저서만 해도 23권이나 됩니다.
《분노의 메아리》 (1967년) 《내가 걷는 70년대》 (1970년) 《독재와 나의 투쟁》 (1973년, 일본어판) 《김대중 옥중 서신》 (1984년) 《행동하는 양심으로》 (1985년) 《대중경제론》 (1986년, 한 영어판) 《민족의 새벽을 바라보며》 (1987년) 《공화국 연합제》 (1991년) 《한국 : 민주주의의 드라마와 소망》 (1992년) 《세계 경제 8강으로 가는 길》 (1992년) 《한국의 통일》 (1993년)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993년) 《나의 길 나의 사상》 (1994년) 《김대중의 21세기 시민 경제 이야기》 (1997년) 《나의 삶 나의 길》 (1997년) 《대중참여경제론》 (1997년) 《내가 사랑한 여성》 (1997년) 《이경규에서 스필버그까지》 (1997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1998년) 《김대중 자서전 - 역사와 함께 시대와 함께》 (1998년) 《경천애인》 (2002년) 《21세기와 한민족》 (2004년) 《통일지향의 평화를 향하여》 (2007년)
5. 한국인 최초의 노벨 평화상.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요.
6.대통령의 연설
연설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김대중. 사람들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연설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김대중의 연설은 힘이 넘쳐나지만 논리적이고 청중을 사로 잡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또한 각본 없는 즉흥연설의 대가였습니다. 책과 글의 힘이 발휘된 것이지요. YS 연설은 감성적이지요. 인동초는 또한 6대 국회의원 시절 최장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기록을 세워 기네스북에 이름을 등재합니다. 1964년 김준연 의원은 “공화당 정권이 한일수교 협상 과정에서 1억3000만달러를 받아 정치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폭로합니다. 회기 마지막 날 김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을 전격 상정. 초선의원이었던 인동초는 동의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회기 마감인 오후 6시를 훌쩍 넘겨 5시간19분 동안 의사진행발언을 합니다.
7. 대통령 출마 기록
4전5기. 1971년 박정희와 맞붙은 7대 대통령선거를 시작으로 13대(1987년), 14대(1992년), 15대(1997년). 권투에 4전 5기 홍수환이 있었다면, 정치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있었습니다.
8. 최고령 대통령
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김대중 대통령느 만 74세. 이승만 전 대통령(만 73세)보다 한 살이 더 많았습니다. 인생 3모작이 아니라 외 길 인생이 이룬 결과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열정이 있어기에 가능했습니다.
9. 다섯 번의 죽음을 넘어
김대중 대통령 역정의 드라마를 이야기 할 때 가장 많이 이야기됩니다. 독재자의 하수인들이 그를 죽이려 했지만, 사선을 넘어 그는 끝내 살아 민주주의 쟁취라는 역사적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10. 6년의 감옥살이, 10년간 망명생활, 55회의 가택연금
사선까지 넘었는데, 투옥과 가택연금 쯤이야. 그렇지만 말처럼 쉬운 일입니까. 얼마나 긴 세월입니까.
11. 사형선고를 받은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을 빚대어, 한국의 만델라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만델라보다 더 격정의 삶을 살은 김대중.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요.
12.깨알같은 옥중서신
세계에 많은 양심정치인들과 사상가들이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글을 남겼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옥중에서 봉함엽서에 담긴 깨알 같은 기록들은 정말 기록감입니다. 일주일에 단 한 번만 보낼 수 있는 서신을 통해, 김대중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사상을 다듬어 나갔습니다.
13.최초의 남북정상회담
사람을 하늘처럼, 사람만의 희망이다는 생각을 가진 김대중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소설가 황석영이 이야기 한 것처럼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서거했지만, 그 기록들은 불멸의 기록이 되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침반 역할을 할 것입니다. 행동하는 지성인 김대중. 그이 이름을 다시 불러봅니다.
* 참고 및 부문 인용(글/사진) 발췌 자료: 김대중도서관,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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