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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by 싯딤 2009. 8. 15.

반이명박’ 넘어 ‘대안정부’ 준비해야

 

» 최장집 교수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제도를 존중하고 이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제 그것에 반해서는 정치 안정도, 사회 안정도, 정권 유지도, 정책 추진도, 경제 발전도 가능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규모 촛불시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 전국적인 애도와 정부 비판의 큰 흐름은 이를 실증한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이 평범하지만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국의 서민, 소외 세력이 배출한 대통령의 인간적 고뇌와 굴욕감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그가 지키고자 했던 이상과 가치는 깊은 공명을 가져왔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정치적 출로도, 어떤 정신적·심리적 의탁도 갖지 못한 보통의 시민들에게 그의 죽음은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을 가져다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민주화는 권위주의 체제를 타파하는 데까지만 허용되고, 사회 여러 부문과 정당 체제, 나아가 체제의 운영 원리를 새롭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으로서 노무현 개인에 대해 과도하게 책임을 물었던 때도 많았다. 사실 그의 성취와 한계는 넓게는 한국 민주주의 전체, 좁게는 민주화 세력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민주화 세력 사이에서도 지난 정부, 지난 정치인들에 대해 지나치게 책임을 따지는 것보다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데 힘이 모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이 가능한가?

 

야당을 강화하여 현 정부를 대체할 대안 정부가 될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의 중요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기 어려울 것 같다. 방향에 대한 선택은 이처럼 비교적 간단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법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무척 어려운 것이 오늘의 정치 현실이다. 지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집합적 열정을 불러일으켜 권력에 항거하는 것보다, 이를 정치적으로 조직하여 집권파의 권력 남용을 견제하고 궁극적으로 차기 정부가 될 강력한 대안 세력을 형성해가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배웠다. 권력에 항거하는 열정의 분출이 반이명박 정서를 최대화할 수는 있지만, 이러한 대칭적 양분 구조가 가져올 정치적 효과는 기대와 다를 수 있다. 국내외의 수많은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듯이, 운동과 제도의 체제가 분리된 양극화된 갈등 구조는 보수의 장기 집권에 기여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1야당으로서 민주당이 대안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보수정부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대표하고, 정책 대안을 개발하고, 지지 기반을 다져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당은 외부로부터 인적 자원을 수혈하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보수적 이념에서 훨씬 더 개방적이고 유연해야 하고, 실현 가능한 성장 정책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 경제적 이슈와 노동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다뤄야 하고, 기존의 진보적 정당이나 노동운동과도 적극적인 연대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의 요구들은 새로운 리더십의 창출과 병행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 과정은 정치의 방법을 통해 대중적 에너지를 어떻게 결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모델이었다. 그가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 정치인들, 정치 지망생들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의 하나는, “모나면 정 맞는다”라는 말로 압축된 보수적 정치 규범에 순치되지 않고 보여준 과감함이다. 정치에서 비난받을 일은 대중의 에너지를 허비하는 일이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7년 전 노무현이 이룩한 일을 성취해낼 또다른 노무현을 요청하고 있다. 최장집(미국 스탠퍼드대 교환교수)

 

대비극을 대긍정으로 반전시키는 ‘시대적 소명’

 

» 박명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하나의 불꽃이 이토록 엄청난 힘으로 모든 기운을 빨아들인 적은 거의 없었다. 큰 죽음은 큰 각성을 통해 시대의 집합정신과 핵심과제를 표상한다. 현실에서의 죽음과 역사에서의 부활은 그렇게 만난다. 안중근, 김구, 김주열, 전태일, 박정희, 박종철처럼 노무현의 죽음은 시대의제를 떠안은 역사가 되었다. 무엇을 배워 이 비극을 죽음의 제의를 넘는 희망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오랫동안 한국사회는 주기적 응집과 폭발을 통해 시련을 전진으로, 고통을 희망으로 역전시켜왔다. 대비극에서 대긍정으로의 승화를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노무현의 성취와 한계를 안고 넘는 시대적 소명일 것이다.

 

첫째, 전국을 덮은 추모 열기의 바른 해석과 수용이다. 그 열기는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오열의 표현인 동시에 오늘의 급격한 민주주의 역전, 민생 위기, 한반도 평화 위협에 대한 저항과 소망을 함께 담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는 추모 열기를 적극 수용, 소통 부재-기업 제일-강권 통치-대결주의 국정 운영을 수정할 지혜가 필요하다. 노무현 산화가 제공해줄 그 역전의 정치는 대통령·정부·국가 모두를 위해 좋은 선택이 된다. 그렇지 않고 맞선다면 촛불 때처럼 집권 2년차를 허송하고, 2010년 지방선거를 포함한 향후 정치 일정을 고려할 때 아무런 업적이 없이 임기를 마칠 위험이 크다. 두렵겠지만 불가피한 현실이다.

 

둘째, 소통과 대화를 통한 인간적 가치의 실현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공적 공간인 언론과 정치의 이성 회복이 절실하다. 그곳은 지금 핵심 요체인 휴머니즘·공공성·배려·타협 대신 돈·권력·이념을 위한 언사와 쟁투만 난무한다. 필수 역할인 공공성 창출과 사회 책임은 고사하고 최소 합의와 인간적 품위조차 찾기 어렵다. 특히 상대를 공격하는 말들은 실제 현실보다 훨씬 이념적·극단적·허구적이다. 일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 수준의 분배개선 주장조차 반시장·친북·좌파로 낙인된다. 정치와 언론이 자본·권력·허구이념의 도구 역할을 계속할 때 한국사회는 결국 인간 냄새가 사라진 냉혈사회가 될 것이다. 아니 이미 냉혈사회가 되었는지 모른다.

 

셋째, 권력구조 혁신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검찰·감사원·국세청, 공정거래·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을 통한 감독부 신설과 이에 대한 의회 통제·시민 통제를 주장해왔다. 입법·사법·행정·감독부의 4권 분립을 말한다. 특히 검찰·감사원·국세청의 독립과 시민 통제는 화급하다. 검찰이 정치검찰로 존재하는 한 그들은 정권 교체 이후 곧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현 정부 핵심들을 노릴 것이다. 검찰이 최소한의 중립성을 인정받으려면 현재 권력에 대한 수사 역시 노무현 수사처럼 철저하고, 또 형법 136조를 위반하면서까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피의사실들을 공표해야 한다. 언론 역시 타자와 자기에 대한 알권리 및 명예훼손 기준의 형평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삼성, 노회찬, 장자연, 박연차 사건에서 드러난 끝없는 이중 기준에서 보듯 검찰과 언론의 양식과 준법의식은 기대 난망이다.

 

넷째, 진보개혁·민주담론이 갖는 최대강령주의의 문제이다. 자유-노동연합, 또는 시민-민중연합, 자유-사회(복지)연합을 포함한 진보개혁 진영의 정치연합은 여전히 한국 민주주의의 필수과제이다. 이명박 정부 1년은, 진보에서 보수로의 건국 이래 첫 평화적 정권 교체가 민주주의·인권·경제·사회·노동·문화·남북관계에서 보여준 급격한 역전을 증거한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비판 시 많은 진보개혁·민주담론들은 이들과 한나라당을 ‘같은’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비판하였다. 게다가 노무현은 반대하나 더 신자유주의적인 한나라당 집권을 민주주의 후퇴가 아니라는 자기부정까지 나아갔다. 거꾸로 진보개혁 진영 내부의 정치연합 추구는 ‘큰’ 노선 차이로 간주하며 비판·반대하거나 계속 분열하였다. 특정요인 근본주의(예: 경제), 또는 개인 증오(예: 노무현)로 인해 전체를 보지 못한 결과는 지금 어떠한가? 보수정부의 정책과 현실을 목도하고도 같은 오류를 반복할 때 진보개혁 담론과 진영의 희망은 없으며,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역시 어두울 것이다. 박명림/연세대 교수·정치학

 

정권과 유착한 검찰 안된다

 

»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 이후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대통령의 온 가족과 측근에 대한 ‘먼지 털기’식 전방위·저인망 수사, 뇌물공여자의 진술에만 의존한 채 노 전 대통령의 자백을 획득하려는 압박수사,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직접 중계하거나 조직 내부의 ‘빨대’를 통하여 언론에 전달하여 그를 ‘파렴치범’으로 만드는 피의사실 공표 수사 등이 그것이다.

 

물론 전직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부패 수사의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서 임채진 검찰총장의 지론인 “절제와 품격 있는 수사”는 사라졌다. 스스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린 노 전 대통령에게 ‘항장불살’(降將不殺)의 기본 예의를 지켜주기는커녕 ‘조리돌림’식의 수사가 계속되자, 그는 최소한의 자존을 지키고자 극단의 선택을 하고 말았다. 검찰의 칼이 ‘활인검’이 아니라 ‘살인검’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유념해야 한다. 과거 검찰은 검찰 개혁을 추진하던 노무현 정부와 계속 대립하였고, 평검사들마저 대통령과 ‘맞짱’ 뜨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검찰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정권이 촛불로 휘청거리자, 검찰은 정권과 유착하여 정권 수호에 앞장섰다. 검찰은 미네르바 사건, ‘피디수첩’ 및 <와이티엔> 사건 등에서 법리적 무리에도 불구하고 정부 비판 누리꾼과 언론인을 처벌하려고 했다. 촛불시위 참여 시민 및 시민·사회단체에 대해서는 ‘5공’식 강경처벌을 주도했고, ‘용산참사’ 재판에서는 1만500여쪽에 달하는 수사기록 중 2600여쪽을 공개하지 않으면서까지 철거민 처벌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처럼 비판자와 반대파를 모두 ‘범죄인’으로 규정하고 형벌로 진압함으로써 법질서를 유지하려는 ‘과잉범죄화’ 및 ‘경성(硬性)법치화’ 정책에 대하여, 검찰 내부에서 용기 있는 문제제기가 나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검찰이 요구한 정치적 독립성은 자신의 이익이나 입맛에 맞지 않는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이었을 뿐이었던가. 만약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 자리를 만든다면, 평검사들은 이 대통령을 과거 노 대통령 대하듯이 할 수 있을 것인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단지 전직 대통령의 부패 혐의에 대한 엄정한 수사 차원이 아니라, 현 정권의 위기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퇴임 대통령에게 ‘개망신’을 주고 그를 ‘물고’(物故) 내자는 정치적 결정이 검찰 윗선에서 이루어지고, 검찰은 이를 집행하려 하였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반면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과의 대결은 주저하고 있다. 검찰에서 이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 천신일, 이상득, 정두언씨 등 실력자가 등장하는 세무조사 비 사건, 이재오씨의 유학 비용의 출처 등에 대하여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지 의문이다.

 

‘검사’(檢事)는 종종 스스로를 ‘검사’(劍士)로 비유한다. 이들은 수사권과 공소권이라는 쌍검을 휘두르며 범죄와의 투쟁을 벌인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부패범죄와 기업범죄를 전담하는 중수부나 특수부 소속 검사들의 헌신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권력의 뜻과 이익의 범위 안에서 우쭐대는 것이고, 그 헌신이 권력이 쳐놓은 테두리 안에서 맴도는 것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또한 그 칼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칼이거나 권력의 의향에 따라 휘두르는 칼이라면 검사의 손에 있을 필요가 없다.

 

이제 검찰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이 권력의 요구에서 독립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범죄는 죽이고 사람은 살리는 절제된 ‘검무’(劍舞)를 추고 있는지, 아니면 권력의 유혹에 취한 추한 모습으로 마구 사람을 잡는 망나니 춤을 추고 있는지. 정권의 신뢰를 얻는 데 급급하여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검찰에 미래는 없다.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

 

 

‘노무현의 질문’ 기억하기

 

» 도정일 문학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노무현의 유산은 무엇이고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는 무엇인가. 나는 노무현이 대통령 되기 이전부터, 되고 나서, 그리고 퇴임 이후에도 시종일관 그의 삶과 행적을 이끈 커다란 질문을 하나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것은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추구해야 할 목표에 관한 질문이며 정신과 전, 꿈과 가치에 관한 질문이다. 그 질문을 망각한 사회는 제아무리 잘살아도 길 잃은 사회, 제아무리 휘황해도 어두운 사회, 제아무리 똑똑해도 눈먼 맹목의 사회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질문을 오랫동안 잊고 살지 않았던가? 우리가 망각한 그 질문의 환기, 그의 죽음이 벼락 치듯 우리에게 일깨운 그 화두야말로 노무현이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이다. 그의 죽음 이후의 과제들을 생각해본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그 질문의 거울 앞에 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노무현의 죽음이 절절한 애도의 물결을 일으킨 것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여의고 나서야 그가 꿈꾸었던 세상, 그가 만들어보고자 했던 사회의 비전에 대한 그리움에 흠뻑 젖었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 노무현이 꿈꾸었던 세상은 소박하다면 소박하게도 사람들이 민주주의라 부르는 체제의 원칙과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 링컨의 표현을 빌리면 ‘민주주의의 명제에 봉헌된’ 사회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은 결코 소박한 작업이 아니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그 작업이 우리에게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며 그가 우리 모두에게, 집권세력과 국민과 사회에 남긴 숙제들 중에서도 가장 큰 숙제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과제의 수행을 위한 방법적 측면에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쳐 ‘민주주의 문화’의 토양을 일구어 나가는 일이다.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일은 정치영역만의 작업이 아니다. 정치학자들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제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되었으니” 어쩌고 하는 망발에 가까운 발언들을 쏟아낸 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정치영역으로만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를 포함해서 사회 모든 영역의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하는 민주적 가치, 원칙, 태도, 의식, 정신상태- 곧 ‘시민문화’의 성숙을 요구한다. 그 문화의 토양 없이 민주사회는 요원하고 일시적으로 민주주의 같아 보이는 것도 쉽사리 엎어지거나 퇴행과 반전의 운명을 거듭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마라톤이다. 그것이 긴 마라톤인 이유는 민주주의의 문화를 키우고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생전의 노무현은 ‘민주주의의 문화’라는 표현은 별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가 시도했던 제도 개혁, 권력기관의 탈정치화, 인권과 시민 기본권의 존중, 약자 보호, 권력 분산, 지역주의 극복과 수직 서열주의 타파 같은 작업들의 기본 목표는 결국 민주주의의 문화를 키우는 데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거듭 말하지만 그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일은 정치권만의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가정과 직장, 교육과 언론을 포함해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어야 할 ‘사회 전체’의 과제이다. 우리 사회는 이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 시민교육 강화는 특히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이 나라에서 교육은 ‘시민’을 길러내고 있는가? ‘시민학’(Civics)을 기초과목으로 가르치는 대학이 있는가? 창조적 교육을 되뇌면서도 창조정신의 핵심이 비판적 사고라는 것을 지금의 우리 사회는 알고 있는가?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그들의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도정일

 

 


대한민국 재생의 윤리

» 이병천 강원대교수

사람이 사는 법과 죽는 법은 저마다 다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 생애를 허공에 던져, 죽어서 다시 살아난 사람이 되었다. 500만명에 이르는, 역대 최대 규모의 추모 행렬이 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하고 미안해하며 명복을 빌었다. 죽어서 부활하여 자유를 얻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겉은 살아 있으되 속은 텅 빈, 사실상 죽은 모양이 되었다. ‘노무현 죽이기’에 앞장선 것은 검찰과 보수언론이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고인의 비극적 죽음이 ‘정치적 타살’이라는 비판, 이 정권의 정치보복이 그 죽음을 불렀다는 무거운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게 됐다. 이 부메랑과 업보를 어찌할까. 죽은 자와 산 자의 처지가 뒤바뀌었다. 역사의 법정은 죽은 노무현에게 무죄를, 산 이명박에게 유죄를 선고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 큰 숙제를 남기고 떠났다. 우리 모두가 그가 던진 숙제를 풀면서 슬픔과 분노를 딛고 일어나, 대한민국이 새로운 ‘사람 사는 세상’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노무현 이후’의 과제를 논의할 때 많은 사람들이 제도 개혁을 말한다. 그 중요성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나는 이에 충분히 동감하면서 좀 다른 각도에서 대한민국의 재생을 정초할 윤리적 토대에 대해 몇 마디 하고자 한다.

 

공존과 화해. 비극은 이명박 정부가 전직 대통령을, 나아가 정치적 경쟁 상대를 적으로 간주해 이를 제거해서 내가 살겠다는 생각, 즉 적과 나의 흑백 이분법에서 비롯했다. 한국 주류는 비주류 대통령을 참을 수가 없었다. 피의 보복으로 얼룩진 야만과 광기의 이분법은 냉전 반공 구체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참여정부 시기 잠시 치유됐던 그 상처를 이명박 정부가 다시 칼질해 광기를 부활시켰다. ‘적대’에서 ‘공존’으로 가는 길은 이명박 정부와 주류의 결자해지에서 시작해야 한다. 죽은 자는 “원망하지 마라”는 말을 남겼다.

 

진정성과 존엄. 죽은 자는 운명에 대해 말했다. 어떤 운명인가. ‘바보’로서의 운명적 정체성 아니겠는가. 정치란 출세·권력·명예를 추구하는 것, 어떤 수단을 쓰든 이겨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정치는 더럽다. 대한민국도 더럽다. 그러나 죽은 자는 실패할 줄 알면서 가시밭길 비주류, 아웃사이더로서의 길을 걸었고 그 길의 진정성, 그리하여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었다. 이로써 그의 죽음은 또한 우리 민주공화국의 고귀한 윤리적 영혼을 살려냈다 하겠다. 그의 죽음은 공화국과 시민의 정화와 생환을 위한 죽음이 되었다. 진정성은 민주공화국의 토대 윤리가 되어야 한다.

 

소통과 서민성. 죽어서 산 자는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누구와도 쉽게 소통하고 대화하려 했다. 소통은 시민적 윤리인 동시에 공화국의 질서가 되어야 한다. 서민성은 소통과 단짝을 이루는 정치윤리인데, 이 또한 지도자의 자질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체의 근본 윤리가 돼야 한다. 소통이 ‘말이 통한다’, ‘이성과 합리가 통한다’는 의미라면, 서민성은 말과 이성보다는 감성적 공감과 동질감을 말한다. 서민이란 귀족·엘리트·특권·부자와 대비되는 소외계층·사회약자·민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서민을 배제하고 잠재적 폭도로 간주하며 1% 강부자를 위하는 ‘먹통’ 나라가 아니라, 서민이 정당한 권리 지분과 평등한 자유를 공유하면서 소통의 광장이 열릴 때, 그 활력 위에 사람 사는 세상, 광장이 있는 민생민주공화국이 꽃필 것이다.

 

노무현의 부활은 그가 남긴 실패의 부활까지 의미하지는 않는다. 큰 바보, 노무현의 죽은 것을 죽게 하고 산 것을 살게 해야 한다. 폭넓은 연대 위에서 진보의 새 길을 여는 것이 산 자의 과제다 / 이병천

 

 

“큰 정치를 해야 한다” / 김도형 도쿄 특파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에 한 여러가지 파격 발언 중에서도 강도가 센 것이 ‘공산당 허용론’이다. 일본 방문 마지막날인 2003년 6월9일 중의원 의장 주최 간담회에서 일본공산당의 시이 가즈오 위원장에게 “나는 한국에서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공산당과 교류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나일 것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때를 만난 듯 한목소리로 거세게 비판했다. 어쩌면 빨치산 장인을 둔 ‘눈엣가시 같은’ 대통령의 공산당 허용 발언은 보수세력에게는 절호의 공격 재료였는지도 모른다. 논란이 일자 당시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공산당 합법화는 서구나 일본처럼 제도화 테두리에서 활동하고 제도권에 진출한 그런 정당을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실제로 일본공산당은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전공투 학생운동의 주역이었던 신좌익 학생들의 주요 타도 대상이 될 정도로 진작부터 의회주의를 표방한 제도정당의 하나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산당 허용론만큼 노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관과 정치철학을 잘 드러내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사상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실천이라는 생각이 그의 말 속에서 쉽게 읽히기 때문이다.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는 원칙주의자의 면모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로부터 3년3개월 뒤인 2006년 9월5일 시이 위원장은 일본공산당 당수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에서 열린 제4회 아시아정당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노 전 대통령의 열린 자세가 없었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일본으로 돌아간 뒤인 9월25일 당 보고대회에서 “한국은 현재 민주주의가 다이내믹하게 발전하고 있다”며 “적어도 ‘반공의 벽’은 일본공산당과의 교류에서는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이 위원장의 평가와 달리, 노 전 대통령은 재임 내내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로부터 좌파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이를 받아 일부 일본 언론도 참여정부에 대해 좌파, 친북 정권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렇다면 그는 정말 좌파 대통령이었을까? 며칠 전 한국 정치에 정통한 일본 학자 4명에게 그의 재임시 정책 평가를 물어봤는데 좌파 정책을 펼쳤다고 주장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고용정책 면에서 김대중 정권 때보다 훨씬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많이 펼쳤다”고 진단했다.

 

노 전 대통령이 좌파든 아니든 일본공산당 안에서는 그의 때아닌 죽음을 애석해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시이 위원장은 지난 27일 주일 한국대사관을 방문해 조문한 뒤 권철현 대사에게 “돌연한 부음에 놀랍고 슬프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노무현의 광적인 팬’이라는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의 한 기자는 전화통화에서 “어젯밤 울적해 술을 마시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도전해서 쓰러져도 좌절하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게 우리 공산당과 같아서 공감하는 부분이다. 서민적인 감성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부분은 일본 정치인들에게선 보기 힘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8일 “보십시오. 시청 앞에서 분향하는 것조차 막고 있습니다”라며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개탄했다. 공산당과의 교류까지도 허용한 한국의 다이내믹한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찬사가 나온 지 3년도 안 된 시점이다. 기미야 교수는 “큰 정치를 해야 한다”고 이명박 정부에 주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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