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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국민장] 영결식~정토원 안치

by 싯딤 2009. 7. 28.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 엄수

서울광장 노제·화장 이어 봉하마을 안치

»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릴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 식장에 조기가 게양돼 있다. 연합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國民葬) 영결식이 서거 이레만인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시민들의 애도 속에 시작돼 엄숙하게 거행됐다.

영결식에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 민주당 정세균 대표, 문희상 국회 부의장 등 정·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ㆍ정연씨를 포함한 유족 등 2천5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5시께 봉하마을에서 발인식을 치른 운구차량 행렬이 식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군악대의 조악 연주로 시작을 알렸다.

운구 행렬은 오픈카 1대에 설치한 가로 1.1m, 세로 1.4m 크기의 영정을 선두로 노 전 대통령에게 수여된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 영구차,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 등의 순으로 입장했다.

권 여사 등 유족은 식장에 입장하면서 행사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에게 목례를 했다.

이어 송지헌 아나운서의 사회로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고인 약력보고가 진행됐고,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가 이어졌다.

한승수 총리는 "노 전 대통령님과 마지막 이별하는 자리에서 우리 모두는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며 "우리는 대통령님의 뜻을 되새기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짐을 새롭게 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대통령님은 실패하지 않았다"며 "이제 저희들이 님의 자취를 따라 님의 꿈을 따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겠으며, 그래서 님은 온 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조사에 이어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의 종교의식이 진행됐으며, 노 전 대통령 생전의 영상이 제단 양옆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4분여간 방영됐다.

영결식은 유족과 고위인사 헌화, 국립합창단의 '상록수' 합창, 삼군(육ㆍ해ㆍ공군) 조총대원들의 조총 발사 의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영결식 장면은 공중파 TV뿐 아니라 광화문과 서울광장, 서울역 일대 대형 전광판에서도 생중계됐다.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해 시민들의 애도 속에 약 30분간 노제를 치른 뒤 시민들의 배웅 속에 서울역까지 도보로 이동한다.

노 전 대통령 유해는 이어 오후 3시께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며, 유골을 담은 함은 오후 9시께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가 향후 사저 옆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인철 기자

40여만 시민들 ‘마지막 가는 길’ 뒤따르며 배웅

ㆍ서울광장 노제 뒤 2000여 만장 앞세우고 서울역까지
ㆍ전국 관공서 일제히 조기 게양…화장 후 봉하마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서거 이레 만인 29일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시민들의 애도와 오열 속에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9일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국민장으로 거행되고 있다.|김영민기자


영결식에는 권양숙 여사와 건호·정연씨 등 유족과 이명박 대통령 내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김형오 국회의장, 이용훈 대법원장, 한나라당 박희태·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정·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등 2500여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5시쯤 봉하마을에서 발인식을 치른 운구 행렬이 식장으로 들어서면서 군악대의 조악 연주로 시작됐다. 이어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약력보고,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 불교·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 순으로 진행됐다.

한승수 총리는 조사에서 “대통령님의 일생은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삶이었다”면서 “고인께서 열망하던 화합과 통합을 실현하고 선진일류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명숙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님은 원칙과 상식의 정치, 개혁과 통합의 한길을 달려왔다”면서 “대통령님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추모했다. 한 전 총리는 “임은 꿈을 이루기 위해 좌절과 시련을 온몸으로 사랑했고, 어려울수록 더욱 힘차게 세상에 도전했다”면서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영결식은 노 전 대통령 생전의 영상 방영, 유족과 이 대통령 등의 헌화, 국립합창단의 ‘상록수’ 합창, 조총 21발 발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영결식을 마친 장의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고인을 상징하는 노란색 풍선·손수건·모자 등 노란색 물결 속에 40분간 노제를 치렀다. 세종로 로터리에서 시청 앞을 거쳐 서울역 앞까지 이어진 추모 인파 40여만명은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이후 운구차는 만장 2000여개를 들고 뒤따른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아침이슬’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불려지는 가운데 서울역까지 이동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을 보낼 수 없다면서 차도를 가로막거나 운구차를 에워싸면서 용산 삼각지까지 2㎞를 가는 데 3시간 이상 걸렸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이어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됐으며, 유골함은 봉하마을로 옮겨져 31일 새벽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7월10일 49재를 지낸 후 사저 옆에 조성되는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전국 관공서는 이날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조기를 게양했다. <최재영·유정인·김해 | 이인숙기자
운구행렬 서울역서 한때 멈춰 서수원 연화장 화장 일정 등 지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경복궁 앞뜰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지하철 경복궁역에서부터 경찰이 경복궁으로 향하는 길을 막아서고 있었으며, 초청장이 있는 시민들에게만 길을 열어 주었다. 많은 시민들이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노란 풍선 날리는 시민들 28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참석을 위해 서울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경복궁에서 영결식이 거행되자 일제히 노란 풍선을 날리고 있다. |남호진기자


경찰이 길을 열어주자 영결식장으로 가는 길은 쉬웠다. 인파로 가득했던 폴리스라인 밖과는 전혀 달랐다. 길을 메운 경찰과 경호요원을 빼면 텅 빈 공허한 거리였다.

영결식에는 정치인과 초청장을 받고 어렵게 영결식장으로 들어온 2500여명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경복궁 앞뜰은 온통 까만색이었다.

예정된 영결식 시작 시간보다 10분 이른 오전 10시50분쯤, 봉하마을에서 출발한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량이 경복궁 앞뜰에 도착했다. 권양숙 여사와 유족들이 비통한 표정으로 영결식장 안으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먼저 노 전 대통령의 약력을 소개하고, 공동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차례로 조사를 읽었다.

한승수 총리는 차분하고 다소 건조한 목소리로 조사를 읽어 내려갔다. 한 총리는 “대통령님의 일생은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권위주의 타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삶이었다”며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열어갈 것을 천명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헌신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한명숙 전 총리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 전 총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노무현 대통령님”이라고 조사를 읽기 시작하자 영결식장 곳곳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자전거 뒤에 태우고 봉하의 논두렁을 달리셨던,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라고 말하자 조문객들의 흐느낌은 더욱 커졌다.

한 전 총리 자신도 “대통령님,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울음을 참지 못했다. 점점 더 커진 흐느낌과 울음이 경복궁 안뜰을 가득 메웠다. 권 여사는 고개를 숙이고 두 눈을 질끈 감았고,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전직 대통령들은 굳은 표정으로 두 눈을 감았다.

한 전 총리가 조사를 읽는 동안 울음으로 들썩였던 영결식장은 뒤를 이은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의 장례의식이 엄숙하게 진행되는 동안 다시 차분함을 되찾았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이 대형 화면을 통해 상영되자 사람들은 다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생전 모습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가 낭독됐다.

이어 헌화가 시작됐다. 권 여사가 수척한 모습으로 흰 국화꽃을 들고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앞으로 다가가자, 조문객석에서는 “불쌍해서 어떡하나”라는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권 여사 및 유족의 헌화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헌화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격히 통제된 영결식장 밖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함성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곧 영결식 뒷좌석을 채운 조문객들이 일어나 야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하지 마라” “막아라” “살려내라” “무릎 꿇고 빌어라” “뻔뻔하다”고 큰 소리를 질렀다. 장내 아나운서가 “자중해달라”며 수차례 요청했지만 이 대통령이 한화를 마칠 때까지 사람들은 계속해서 소리 지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자리로 돌아가자 장내는 잠잠해졌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헌화를 할 때도 “반성하라” “하지마라”라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헌화를 하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자리에서 이동했다. 청와대의 반대로 영결식 조사를 할 수 없었던 김 전 대통령은 휠체어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영정 앞으로 길고 느리게 걸어갔다. 김 전 대통령이 헌화를 할 때 장내는 다시 차분하고 엄숙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헌화를 마친 뒤 권 여사를 비롯한 유족과 악수를 나누며 위로했다.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과 유족을 바라보며 다시 눈물을 지었다.

3군 의장대의 조총 의식을 끝으로 영결식이 끝나자, 운구차는 천천히 경복궁을 빠져나가 노제가 열리는 시청앞 광장으로 향했다. 조문객들은 천천히 걸어서 영결식장을 빠져나갔다. 경찰들은 그때까지도 도로와 거리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운구차량 뒤를 따르던 조문객들은 도로를 걸으며 경찰이 만든 선 밖에서 운구차량을 바라보던 시민들에게 “들어와요” “같이 걸어요”라고 외쳤다. 경찰들은 그제서야 도로를 막고 있던 폴리스라인을 트고 시민들이 도로로 들어갈 수 있게 허용했다.

그제서야 진정 시민들과 조문객들이 하나가 돼 노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함께 걸어갔다.

그러나 서울광장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을 시민들이 놓아주지 않았다. 서울역광장과 앞도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노무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운구차량을 뒤따랐다. 이 때문에 운구차량의 길이 열리지 않아 당초 예정보다 수원 연화장으로 가는 시간이 늦어졌다.<이영경기자 >
“마음 아프다, 가지말라”… 노란바다, 눈물바다
ㆍ서울 광장 노제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가 치러진 서울시청앞 광장은 40여만 시민들로 노란색 추모 물결을 이뤘다. 이별을 슬퍼하고 아쉬워하는 시민들이 “우리의 대통령을 이렇게 보낼 수 없다”며 마지막 가는 길을 막고 오열, 광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태평로 가득 메운 ‘바보연가’ 29일 경복궁 영결식을 마친 뒤 태평로를 지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운구행렬 주변으로 추모 시민들이 16차선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3일 이후 광장을 가로막았던 전경 버스는 7일 만인 이날 오전 8시쯤 철수했다. 주변에 있던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종이모자에 노란 스카프를 두른 채 노란 풍선을 들고 삽시간에 광장으로 들어섰다. 운구차가 영결식장인 경복궁을 떠나 서울광장까지 오는 세종로 연도에는 노란 풍선이 길다랗게 내걸렸다.

서울광장에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을 배웅하려는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경복궁 영결식이 시작된 오전 11시 서울광장 주변 세종로·태평로 일대에는 40여만명의 인파가 발디딜 틈 없이 들어서 있었다. 경찰은 18만여명으로 추산했고, 시민단체들은 5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결식장에 들어가지 못한 시민들은 서울광장과 광화문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봤다. 영결식 중간에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나오자 들고 있던 노란 풍선을 하늘로 날려보냈다. 이명박 대통령이 헌화하는 장면에서는 “살인자” 등의 야유가 쏟아졌다.

경복궁 영결식을 마친 뒤 운구행렬은 낮 12시10분쯤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경찰 사이드카가 선두에 서고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을 모신 오픈카가 천천히 뒤를 따랐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뒤따랐다.

사전 행사 사회를 맡은 방송인 김제동씨는 “오늘은 그분을 보내 드리는 날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담는 날입니다”라고 말했다.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하셨죠. 우리가 앉아 있는 잔디가, 하늘이 모두 자연의 하나입니다. 그분과 우리가 한 조각임을 느끼는 자리였으면 합니다.”

이어 민중가요 작곡가 윤민석씨의 추모곡 ‘바보연가’가 울려퍼졌다. 가수 안치환씨는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을 불렀다. 가수 양희은씨가 노 전 대통령이 평소 즐겨 불렀던 ‘상록수’를 부르자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함께 따라 불렀다.

오후 1시쯤 운구 행렬이 광장으로 들어서자 서울광장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폴리스라인도 속수무책이었다. 운구행렬을 따라 세종로부터 걸어온 시민들이 금방 태평로 양쪽 16차선 도로를 가득 메웠다. 흐느낌과 통곡이 퍼졌다.

시민 최영남씨(23·여)는 “봉하에서 행복하고 편하게 자전거 타시는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며 울먹였다. 남정례 할머니(76)는 “나라 이끌어가느라 수고 많았다. 부디 훌훌 털고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말했다.

시민들 사이를 어렵게 헤치고 온 운구차 행렬이 광장에 마련된 제단 앞에 멈춰 섰다. 광장 주변 시민들이 모두 일어서 영구차와 유족들을 맞았다. 노제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이 “노 전 대통령과 모든 국민들이 영원한 인연을 맞이하는 자리다. 박수로 고인의 넋을 맞이하자”고 개회선언을 하면서 노제가 시작됐다.

시인 안도현씨는 조시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를 낭독했다.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잖아요. 그러니 이제 일어나요, 당신.”

이날 서울 낮 최고기온은 29도. 뙤약볕 아래서도 자리를 뜬 시민은 없었다.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30여분간 진행된 노제는 사회를 맡은 도종환 시인이 “슬프지만 보내야 할 시간이다”라고 말하며 마무리됐다. 도 시인의 선창에 따라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운구차와 유족들의 행렬이 서울광장을 출발해 마지막 행선지인 서울역 분향소로 향했다. 시민들은 행렬을 따라가면서 “보낼 수 없다” “가지말라”며 통곡했다. 노란 종이비행기와 풍선이 날렸다.

운구차는 노란 시민들의 물결로 가득찬 거리를 가르며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의 시민들은 ‘사랑으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등을 부르며 자리를 뜨지 못했다. 서울역에서 국민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는 수원 연화장으로 향했다. 영정 속 ‘노무현’이 환히 웃으며 인사하는 듯했다. 안녕 여러분….

한명숙 전총리 “다음 세상에선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영결식장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29일 엄수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은 숙연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부부, 딸 정연씨(오른쪽부터)가 29일 경복궁 앞에서 엄수된 영결식장에서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박민규기자


이날 오전 10시59분 의장대의 인도를 받으며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량이 영결식장으로 들어서자 2500여명이 참석한 장내는 숙연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 등 유족이 차량 뒤를 따라 걸으며 입장했다.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명숙 전 총리는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홀로 떠나셨나. 얼마나 외로우셨나”는 말로 조사를 시작했다. 한 전 총리는 울먹이며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라는 글을 접하고서도 지키지 못한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다”며 “지켜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애통해했다. 장내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 전 총리는 이어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의 자연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지막 꿈만큼은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잔인한 세상은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갈 마지막 기회조차도 빼앗고 말았다”고 통한의 토로를 했다.

한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이 최근 쓴 글 중에서 “지금은 실패 이야기를 쓰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부분을 거론한 뒤 “대통령님은 실패하지 않았다. 끊이지 않는 저 추모의 행렬을, 수많은 사람들이 정성어린 마음을 대통령께 바치고 있지 않는가”라고 기렸다. 그러면서도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 하지 마십시오. 또 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라며 “그래서 부디 더는 혼자 힘들어 하시는 일이 없기를, 더는 혼자 무거운 짐을 안고 가시는 길이 없기를 빌고 또 빕니다”라고 말했다.

한 전 총리가 낭독한 조사는 노 전 대통령의 ‘필사’로 불리는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에 이어 불교(봉은사 주지 명진스님), 기독교(권오성 목사), 천주교(송기인 신부), 원불교(서울교구 이선종 교구장)의 순서로 종교의식이 진행됐다.

유족과 이명박 대통령 부부에 이어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이 헌화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헌화와 분향을 마친 후 휠체어를 타고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에게 다가가 위로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행사에 불참했다. 노 전 대통령을 정계 입문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영결식 내내 덤덤한 표정이었다.

헌화·분향에 이어 국립합창단이 노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노래 ‘상록수’를 부르자 일부 참석자들이 따라했고, 해금으로 ‘아침이슬’ ‘아리랑’ 등이 연주됐다.

낮 12시24분 육·해·공군 조총대원이 21발의 조총을 발사하면서 영결식이 끝났다. 운구차량은 노제가 열릴 서울광장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 등은 차량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권양숙 여사, DJ 위로에 참았던 울음 터트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들은 29일 노 전 대통령과 20시간의 ‘이별의식’을 치렀다. 울다 지쳐 눈물이 다 마른 듯하다가도 북받치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유족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권양숙 여사는 건강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봉하마을-서울-봉하마을’로 이어지는 영결식 일정을 의연하게 버텼다. 이날 새벽 4시쯤 모습을 드러낸 권 여사는 남편을 향한 마지막 예를 갖추려는 듯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었고 얼굴에는 옅은 화장기가 있었다.

오열하는 DJ 김대중 전 대통령이 29일 경복궁에서 거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도중 권양숙 여사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다가 오열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권 여사는 생전 노 대통령이 끔찍이 예뻐했던 손녀딸의 손을 잡고 운구차로 운반되는 남편을 지켜봤다. ‘죽음’이 뭔지 모른 채 분향소 영정에서 웃는 할아버지를 향해 ‘브이(V)’자를 그려보이는 손녀딸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봉하마을 추모객들의 눈물을 더 자아냈다. 건호씨는 봉하마을 분향소에서 열린 견전례에서 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리며 바닥에 굵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버지 영정과 함께 사저 곳곳을 돌아보고 나오던 건호씨는 차에 올라타며 끝내 손에 얼굴을 묻었다.

경복궁 앞뜰 영결식에서 유족과 지인들은 장의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의 조사를 낭독하는 내내 무겁게 굳어 있었다. 반면 유족 측 공동위원장인 한명숙 전 총리가 “얼마나 힘드셨습니까”라며 조사를 읽어내려가자 유족 측 자리는 눈물바다로 변했다. 눈가가 촉촉해진 권 여사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다. 건호씨, 정연씨 뺨에는 눈물이 쉼없이 흘러내렸다. “동생에게 한없이 미안한” 건평씨는 오열했다.

버티던 권 여사를 무너지게 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권 여사는 헌화를 마친 뒤 휠체어를 타고 유족들 자리로 위로하러 온 김 전 대통령을 보자, 손을 잡고 “고맙습니다”라며 허리를 숙였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며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김 전 대통령도 권 여사의 손을 잡고 애도를 표시하면서 오열했다. 김 전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이토록 오열한 것은 거의 전례 없는 일이다. 건호씨도 어머니 옆에서 흐느끼며 김 전 대통령에게 마음을 기댔다.

권 여사는 운구행렬이 서울광장에 들어섰을 때 시민들의 격려에 다시 눈시울을 뜨겁게 적셨다. 비교적 침착하던 정연씨는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에 ‘사랑으로’를 부르는 아버지의 육성이 울려퍼지자 손에 얼굴을 묻고 목놓아 울었다.

수원 화장장에서 유족들은 마지막 눈물을 다 쏟아냈다. 특히 권 여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수건을 연방 눈가로 가져갔다. “여사님 힘내세요!”라는 추모객의 격려가 쏟아지자 권 여사는 다시 북받치는 울음을 쏟아냈다. 그는 딸 정연씨와 함께 추모객에게 가벼운 목례로 답례했다.

8번 화장로가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8번 분향실. 노 전 대통령의 관이 8번 화장로 속으로 들어가자 분향실은 통곡으로 가득찼다. 허리를 숙이며 남편에게 마지막 고별인사를 하던 권 여사는 어깨를 들썩이다 의자에 주저앉았다. 권 여사와 정연씨, 며느리 배정민씨가 서로를 붙잡고 오열했다.

봉하마을의 장례절차 전반을 총괄해오면서도 좀체 눈물을 보이지 않던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발인식에서 대통령의 관을 뒤따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민주당 이광재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은 서울광장 노제에서 손을 꼭 잡고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 ‘사랑으로’를 눈물로 불렀다.

<이인숙기자>


100분간의 불꽃… 긴 여정 마치고 ‘한줌 재’로 귀향
ㆍ화장의식 엄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장의식은 유족과 화장장에 모여든 추모객 1만여명의 오열 속에 치러졌다.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량은 서울역 인근에서 추모 인파에 막히면서 예정보다 3시간여나 늦은 29일 오후 6시7분쯤 경기 ‘수원시 연화장’에 도착했다. 연화장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추모객들이 늘어섰고, 수천여개의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날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골이 30일 새벽 경남 김해 정토원에 도착한 후 아들 건호씨가 안치를 위해 법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현충원 의장대가 맞아 화장장 내부로 운구했다. 추모객들은 “안녕히 가세요”를 외쳤고, “노무현”을 연호하기도 했다. 유해가 화장로로 들어가기 전 유족들은 분향소에서 예를 올렸다.

예를 올린 유족들은 분향실로 모여 화장로에 입관될 고인의 관을 마지막으로 지켜보며 눈물을 쏟아냈다. 용주사 정호스님 등 100여명의 스님들이 다비의식을 진행하는 가운데 관은 오후 6시31분 8번 화로에 입관돼 화장이 시작됐다. 밖에서 전광판을 통해 이를 지켜보던 추모객들은 안타까운 탄식과 함께 흐느끼면서 주위는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을 치러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1000도에서 약 1시간40분 화장이 진행됐으며, 냉각과 유골을 모으는 수골, 분골 과정을 거쳐 한줌의 재가 돼 향나무 유골함에 모셔져 8시30분쯤 유족에게 인계됐다. 유족은 당초 통상적인 화장과 달리 분골을 하지 않기로 했으나 이날 분골을 택했다.

이에 앞서 경부고속도로 수원IC 입구부터 늘어선 1만여명의 시민들과 차량들은 화장장으로 가는 운구차량을 향해 묵념을 올리기도 했다. 수원나들목에서 연화장까지 약 6㎞의 도로 양옆은 노란 풍선과 리본으로 가득 메워졌다. 도로 곳곳에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 노무현’ ‘사랑해요 당신을 기억합니다’ 등의 추모 현수막 수백여개도 내걸렸다.

연화장에는 이날 아침부터 추모객이 몰려들었다. 오후 2시쯤에는 연화장 주변이 발디딜 틈도 없이 추모객으로 가득찼다. 오후 3시가 넘어서면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까지 몰리며 일부 추모객은 인근 야산으로 올라가기도 했다. 화장장 입구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추모객들이 1㎞가량 줄을 지어 분향했다. 아내와 함께 분향을 한 김병석씨(49·수원시 인계동)는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 하고 싶었다”며 “마침 수원에서 화장을 하신다고 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오전 10시쯤 아내와 함께 왔다”고 말했다. 박희찬씨(60·인천시)는 “국민들의 소리를 잘 들어주었던 서민 대통령님이 돌아가시고 온 국민이 추모하는 만큼 현 정부는 이 의미를 잘 새기고, 국민들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태극기와 흰 천에 싸인 노 전 대통령의 유골함은 8시55분쯤 아들 건호씨의 품에 안겨 추모객들의 애도 속에 다시 봉하마을로 향했다. 추모객들은 유골함을 보자 오열했고, 곳곳에서 촛불이 밝혀졌다.

유골함은 자정을 넘겨 봉하마을 정토원에 도착했다. 발인제 후 상경, 영결식·노제·화장을 거쳐 800여㎞에 이르는 긴 여정을 마친 귀향이다. 정토원 진입로와 법당 주변에는 추모객들이 재가 되어 돌아온 노 전 대통령을 맞았다. 유골함이 정토원 뜰에 도착하자 유족들은 반혼제(返魂薺·고인의 혼을 집으로 모시는 의식)를 올렸다. 유골함은 노 전 대통령의 부모와 장인의 위패가 모셔진 법당(수광전)에 안치됐고, 49재의 첫번째 제사가 치러졌다. 안장식은 49재가 끝난 뒤 사저 인근 장지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봉하마을에는 이날도 하루종일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고, 공식분향소는 임시분향소로 전환돼 당분간 추모객을 맞이하게 된다.
<수원 | 경태영기자 >

당신의 스러진 꿈 일으켜 세우렵니다

서울광장 50만 추모물결

» 국민 가슴에 잠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나는 길은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29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를 마치고 남대문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서울광장과 태평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이 노란색 풍선 등을 흔들며 노 전 대통령을 모하고 있다. 이날 국민장이 엄수된 서울의 세종로와 태평로, 남대문로 등은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김태형 기자

파란 하늘에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모진 세상에 대한 분노, 뒤늦게 깨달은 희망을 담은 비행기를 날렸다. ‘바보 노무현’이 떠나던 날, 온 국민은 저마다 가슴속에 슬픈 만장을 달고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29일 오전 경복궁 앞뜰에서 열렸다.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그 어여쁜 손녀들을 두고 떠나셨습니까….” 영결식 조사는 곳곳에서 떨렸다. ‘인간 노무현’으로 살아가지 못한 고인에게, 힘든 삶을 토로했을 때 달려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흐느꼈다.

노제가 열린 서울시청 앞 광장엔 50만 인파가 몰렸다. 세종로 네거리에서 숭례문까지, 인도와 차도는 거대한 노란색 물결로 출렁였다. 옅은 미소를 띤 영정이 나타나자, 미열 속 흐느낌은 통곡과 오열로 바뀌었다.

“미안해요 노무현! 다시 일어나요 노무현!” 삶과 죽음이 모두 한 조각이라던 마지막 말을 되뇌듯, 수십만 인파는 고인의 영혼을 목청껏 불렀다. 생전 육성이 선창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다시 한번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꿈을 한목소리로 약속했다. “사랑합니다. 당신의 꿈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고인이 삶을 던져 열어젖힌 광장을 떠나지 못한 채,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내 마음속 대통령’을 추억했다.

서울역으로 향한 운구 행렬은 이별을 아쉬워하는 절규 앞에 번번이 멈춰 섰다. 이제 가면 다시 못 올 길이기에 고인의 마지막 발길을 좀처럼 놔주지 않았다. 초로의 아낙은 운구차 앞에 널브러졌고 앳된 청년은 “살려내라”며 울부짖었다.

세상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고인은 한 줌 유골이 되어 고향 땅에 고단한 몸을 뉘었다.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은 굴곡진 삶을 뒤로하고 역사 속에 영면했다. 김회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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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지키지 못해 통탄” 한명숙 조사에 울음바다

유족·전현직대통령·외교조문단 등 3500여명 참석
DJ, 헌화뒤 권양숙씨 손잡고 비통한 눈물 쏟아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부인 권양숙씨 등 유족들과 전·현직 대통령, 각 당 대표, 국회의원, 외교조문단 등 3500여명이 참석한 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시종 침통한 표정이었고, 유족들과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은 통곡을 하기도 했다.

오전 11시 무궁화 대훈장을 앞세우고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모신 영구차가 영결식장에 들어서자 참석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췄다. 헌화대 정면의 맨 앞줄에는 왼쪽부터 노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 부부, 아들 노건호씨 부부, 권양숙씨, 공동장의위원장인 한명숙 전 총리와 한승수 총리, 이명박 대통령 부부,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 김형오 국회의장이 자리잡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건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유족과 참석자들은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노무현 전 대통령 약력 보고’와 한승수 총리의 조사 낭독 때까지 애써 눈물을 참았지만, 한명숙 전 총리가 조사를 낭독할 때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전 총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여러분은 이제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는 글을 접하고서도 님을 지키지 못한 저희들의 무력함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라고 하자 유족들은 입을 막고 흐느꼈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듯이,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대통령 하지 마십시오. 정치하지 마십시오. 또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살지 마십시오”라고 할 때도 장내 곳곳에서 통곡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한 전 총리의 이날 조사는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기초했다.

앞서 한승수 총리는 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평생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고난도 감내하며 입지전적 길을 걸어온 대통령님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라며 “이제 생전의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고 추도했다.

이어진 종교의식은 불교, 기독교, 천주교, 원불교 등 4개 종교가 순서대로 각각의 양식에 맞춰 진행했다. 특히 천주교 고별의식은 노 전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가 집전했다.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동영상도 4분간 영결식장 전광판을 통해 상영됐다. “바보라는 별명이 제일 맘에 든다”는 노 전 대통령 인터뷰로 시작해, 정치 역정과 소탈한 모습 등을 담은 내용이었다. 노건호씨와 노정연씨 등은 동영상을 바라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헌화는 유가족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 부부,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 차례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 부부는 헌화한 뒤 유족들 앞으로 다가와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권양숙씨 등 유족들은 앉은 채로 이를 외면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휠체어에 의지한 채 헌화한 뒤 권양숙씨에게 다가가 손을 잡은 채 함께 흐느꼈다. 유족들은 모두 일어나 김 전 대통령 부부와 악수를 나눴다.

추모 연주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불렀던 ‘상록수’가 울려 퍼졌고, 참석자들은 눈을 감고 음악에 맞춰 비장하게 따라 부르기도 했다. 이어 해금 연주가 강은일씨의 ‘아침이슬’과 ‘아리랑’ 연주가 이어졌다.

조총 21발에 이어 영구차가 헌화대 앞을 가르며 영결식장을 퇴장하자, 유족과 참석자들은 차량에 고개 숙여 묵념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강철 전 시민사회수석, 이광재·백원우 의원,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등은 땅바닥에 엎드려 영구차에 큰절을 올렸다.

권양숙 여사 끝내 눈물

장례기간 내내 참다 한 전 총리 조사에 흐느껴
딸 정연씨 오열·형 건평씨 통한의 눈물 계속 흘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헌화를 마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김 전 대통령도 통곡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기간 내내 평정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부인 권양숙씨가 남편을 영영 떠나보내는 날, 끝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권양숙씨는 29일 새벽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발인식이 치러지는 동안에도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검은색 정장 치마를 입고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사저를 향할 때는 슬픔을 이겨내려는 듯 손녀 서은(6)양의 손을 꼭 잡은 채 걸었다. 울음을 참기 힘들 때엔 여러 차례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그동안 함께 살던 사저에 들어서자 감정이 북받치는 듯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다 딸 정연씨의 부축을 받고서야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권씨는 서울 경복궁에서 치러진 영결식 식장에서도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노 전 대통령 약력 보고와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 낭독 때 이따금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권씨는 이날 오후 6시30분께 경기도 수원시 연화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이 화장을 위해 화로에 들어가기 직전,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에는 의자에 주저앉아 딸과 함께 흐느끼기도 했다.

아들인 노건호씨도 영결식 내내 침통한 마음을 억누르려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한 전 총리가 조사의 “대통령님을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부분을 읽을 때에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노건호씨의 부인 배정민씨는 영결식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입을 막고 흐느꼈다.

딸 정연씨도 서울광장에서 치러진 노제에서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애창곡이었던 ‘사랑으로’를 직접 부르는 육성을 따라 모든 시민들이 합창할 때에는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서울구치소 수감 도중 법원의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동생인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지킨 노건평씨는 이날 발인식과 영결식, 노제가 진행되는 동안 연방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쳤다. 노씨는 동생을 먼저 저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통한의 심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날 유족 가운데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다.

가족들의 이런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 전 대통령의 손녀 서은양(노건호씨 큰딸)은 발인식 도중 카메라를 향해 손으로 브이(V)자를 그려 보이는가 하면 눈물을 흘리는 권씨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자전거 뒤에 매단 수레에 태우고 가는 사진으로 화제가 됐던 서은양은 노 전 대통령의 생전에 사랑을 독차지했다. 김해/신동명, 황준범 기자

서울광장 추모물결.."이대론 못 보냅니다"

» 2009.05.29 서울시청앞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노란 풍선과 노란색종이로 접은 비행기를 하늘로 날리고 있다.탁기형 선임기자
마지막길 동행한 3가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시민들이 풍선과 모자등으로 그의 ‘상징’인 노란색 물결을 이룬 채 그가 즐겨 불렀던 노래들을 들려줬기 때문이다.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것은 ‘사람’과 ‘노란색’ 그리고 ‘노래’ 세 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9일, 서울에서만 50만명이 거리에서 그의 가는 길을 함께했다. 지난해 촛불집회가 절정을 이뤘을 때보다 더 많은 규모다.

노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과 세종로 네거리 곳곳에는 노란색 풍선이 내걸렸다. 그를 상징하는 ‘노란색’을 몸에 두른 사람들로 광장은 ‘노란 바다’가 됐다. 시민들은 노란색 두건을 팔과 손목에 두르고,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았다. 양복을 입은 사람들 가운데는 검은 넥타이 대신 노란 넥타이를 맨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얼굴에는 저마다 노란색 스티커를 붙였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노란색 종이모자를 나눠줬다. 노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는 노란 장미를 나눠주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박아무개(22·대학생)씨는 “노제가 진행될 때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노란 장미 63송이를 사왔다”며 “슬프지만 슬퍼하지 않고, 원망스럽지만 담담하게 끝까지 자리를 지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검은 운구차 위엔 시민들이 밤새 접어온 노란 종이비행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수북이 쌓였다. 이날 새벽 운구행렬이 발인식을 마치고 경남 김해시 봉화마을을 떠날 때와 노제를 마친 뒤 서울광장을 빠져나갈 때, 시민들은 애도의 뜻을 담은 노란 종이비행기를 운구차를 향해 날렸다. 시민들이 운구차를 기다리는 동안 슬픈 마음을 억누르며 분 노란 풍선은 이들이 가진 슬픔의 무게 만큼이나 묵직하게 거리에 내려앉았다.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은 운구행렬에서도, 분향소에서도 널리 불리며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경복궁에서 치러진 영결식에서는 국립합창단이 생전에 그가 좋아 한 <상록수>를 불렀다. 서울광장에서는 노제에 앞서 가수 양희은씨가 <아침 이슬>을, 이어 민중가수 안치환씨가 통기타를 치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과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각각 불렀다.

노제가 끝날 때 서울광장에 모인 이들이 한목소리로 합창한 <사랑으로>는 노래라기보다는 흐느낌에 가까웠다.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정유경 김성환 기자


»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노제가 열린 29일 오후 전통 상여 행렬이 서울시청 앞 광장 무대 위로 올라오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바보 대통령, 그러나 자랑스러웠던, 앞으로도 영원히 마음속에서 자랑스러울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님을 맞이하겠습니다.”

29일 오후 1시20분, 방송인 김제동씨의 말과 함께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50여만명의 시민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 풍선을 들고 노란 모자를 눌러쓴 추모객들이 금세 노란 물결을 일으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려는 시민들은 이렇게 ‘씻김굿’을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을 태운 운구 차량은 경복궁 영결식을 마친 뒤 태평로를 따라 수천개 만장의 대열을 통과해 비로소 서울광장에 들어섰다. 서민적이면서 소탈했던 생전의 그의 모습이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네”라고 읊조리는 ‘한계령’의 노랫가락과 함께 대형 스크린에 나오고 있었다.

운구 행렬은 이날 낮 12시20분께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끝낸 뒤 곧바로 출발했으나 오열하는 추모 인파에 막혀 예정보다 30여분 늦게 노제 장소에 도착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초여름의 뙤약볕과 인파 속에서 땀범벅이 된 채 줄지어 운구 행렬의 뒤를 따랐다. 50대 여성이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탄 차 앞으로 다가가 “여사님 힘내세요”라고 외치다 경찰에 제지당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추모객들은 노제 가는 길 곳곳에서 차량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노제는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노제 총감독)의 초혼으로 시작됐다. 김 전 장관은 큰 북소리에 맞춰 흰 수건을 흔들며 목 놓아 불렀다. “해동조선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복! 복! 복!” ‘복’(復)은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는 소리다. 시민들도 젖은 목소리로 함께 연호했다.

엄숙하고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국립무용단이 향로를 들고 ‘혼맞이 소리’를 하며 영구차를 한 바퀴 돈 뒤 무대에 올랐고, 이어 국립무용단의 ‘진혼무’가 이어졌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연탄>)라고 노래했던 안도현 시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시 ‘미안해요, 고마워요, 일어나요’를 낭송했다.

이어 도종환 시인이 ‘제관’(사회)을 맡은 가운데 장시아 시인의 유서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이 이어졌다. 도 시인이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목 놓아 외쳤다. 안타까움 사이로 다시 오열이 터져 나왔다.

노제에 앞서, 운구 행렬이 도착하기 전 광장에서는 김제동씨의 사회로 추모 공연이 진행됐다. 공연에 나선 가수 안치환씨는 구슬픈 목소리로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을, 윤도현씨는 ‘너를 보내고’를 불렀다. 이날 회사에 휴가를 내고 노제에 참여한 회사원 하윤희(38)씨는 “대한문 앞으로 두세 번 분향을 나가며 만난 고등학생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학교 수업을 빼먹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우리가 투표를 잘못해서 그렇다고 얘기했더니 ‘괜찮아요. 우리가 이제 제대로 뽑으면 되죠’라고 답하더군요. 그 얘길 듣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노제를 마무리 지으며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사랑으로’가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을 부르며 마지막 가는 노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서울역을 향했지만 노렇게 물든 추모 인파가 도로를 가득 메워 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노 전 대통령과 함께한 마지막 자리에서 시민들은 카랑카랑한 가수 양희은씨의 목소리에 맞춰 ‘상록수’를 불렀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상록수는 ‘끝내 이기리라’로 끝나는데, 그 말을 국민들이 가슴속에 깊이 새겼으면 좋겠다”며 “이제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들 원석(10)군과 함께 광장을 찾은 정진숙씨는 “아이에게 우리 대통령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보여주고 싶어 데리고 나왔다”며 “아이가 오늘 일을 평생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길윤형 권오성 이완 기자*

유해 긴 여정 끝 새벽 귀향…정토원에 안치

상경길 운구차위로 노란 종이비행기 날려보내
3만여명 눈물의 배웅
저녁 8시 분향소서 넋위로 진도씻김굿 열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검은 29일 저녁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을 마친 뒤 밤새 먼 길을 달려 30일 새벽 1시40분 그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 뒷산 정토원 법당 수광전에 안착했다. 향나무 유골함에 담겨, 장남 노건호씨의 품에 안긴 채였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49재가 끝나는 7월10일 집 뒷산 묏자리에 장사돼 영면한다.

영원처럼 긴 하루였다.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을 실은 운구차는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으로 가기 위해 29일 아침 6시께 봉하마을을 떠났다.

장의위원회는 노 전 대통령의 유골 도착을 기다리는 조문객들을 위해 분향소 옆에 대형 텔레비전을 설치했다. 저녁 8시에는 분향소에서 노 전 대통령의 넋을 위로하는 진도 씻김굿도 열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운구 행렬을 위해 전구를 넣은 노란 풍선을 봉하마을 진입로 양쪽에 설치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기다리는 조문객들의 발길도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부터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렸던 부엉이바위 등산로에 배치한 병력을 철수했다. 이에 따라 일부 조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새벽에 걸었던 등산로를 따라 부엉이바위에 올라가 뛰어내릴 당시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뿌렸다.

앞서 새벽 5시께 봉하마을에선 발인식이 열렸다. 노 전 대통령의 목관이 들려 나왔다. 밤새 봉하마을을 지킨 조문객 3만여명이 이를 지켜봤다. 국군 의장대 10명이 태극기를 두른 목관을 검은색 캐딜락 운구차로 옮기자, 노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고인의 영정을 들고 마을회관에서 먼저 나왔다.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 손녀의 손을 잡은 부인 권양숙씨, 형 노건평씨 등 유족들이 차례로 마을회관 옆 분향소로 걸어 나왔다.

상주 건호씨가 분향소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 영정 앞에 술잔을 올리자 유족 전체가 함께 절을 올렸다. 고인에게 술잔을 올린 뒤 5시17분께 유족들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들고 200여m 떨어진 사저로 들어가 고인이 생전에 생활했던 서재와 침실 등을 돌았다.

유족들이 사저를 돌아보는 동안 운구차가 경복궁 영결식장으로 가기 위해 광장 들머리로 조금씩 움직이자 눈물을 참고 있던 조문객들은 “사랑합니다” “가지 마세요”라고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수천명의 조문객들은 미리 준비한 노란 종이비행기를 운구차를 향해 날렸다.

운구차가 사저로 간 유족들을 기다리는 동안, 노 전 대통령이 즐겨 부르던 노래 ‘상록수’와 ‘타는 목마름으로’가 마을회관 방송에서 흘러나왔다. 노래에 이어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뭘 하실 거죠? 제가 대통령 되고 나면 여러분은 뭘 하지요?”라는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가 마을 방송에서 들리자 조문객들은 또다시 너도나도 울음을 터뜨렸다. 수천명의 조문객들과 ‘노사모’ 회원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원통함을 달랬다.
아침 6시께 운구차와 유족 및 장례위원들이 탄 승용차 등이 봉하마을을 천천히 빠져나가자 여기저기서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잘 가십시오” 등 노 전 대통령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일부 조문객들은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었다. 김해/김광수 최상원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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