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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벗겨드려야 할 DJ에 대한 오해

by 싯딤 2009. 9. 2.

DJ를 보내드리기 전 벗겨드려야 할 오해 5가지 

최재천 전 의원

 

민주당 최재천 전 의원이 ‘DJ를 보내드리기 전 벗겨드려야 할 오해 5가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다.
최 전 의원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문턱까지 갔던 내란음모사건의 2004년 재심 무죄판결 당시 변론을 맡은 것을 맡은 바 있다.
그는 “김대중 시대의 공과 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시작되고 있다”며 “당파성을 떠나 역사의 법정 앞에서 바르고 공정하게 평가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보수세력의 극단적 왜곡으로 (DJ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평가가 유통되는 것 같다”며, DJ에 관한 5가지 오해를 다음과 같이 풀어나갔다.

◆“햇볕정책이 북한의 핵무기를 만들었다?”-웃기는 소리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대한 야욕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반 현실화되기 시작합니다. 1993년부터 1994년 사이에 북핵위기가 터집니다.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몰아칩니다. 그때 이미 보수언론들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보도합니다. 그렇다면 보수세력이나 보수언론에게 묻고 싶습니다. 1994년 북핵위기와 그에 따른 보도와 당시 정부의 대응은 전적으로 거짓이었나요. 그런데도 허겁지겁 제네바 합의를 받아들이고 거의 10억달러에 이르는 경수로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기로 했던가요.김 전 대통령의 말입니다.

“1994년, 그때 북한이 핵 문제 가지고 제1차 핵전쟁 일어날 단계에 있었잖아요. 근데 그때는 6·15남북정상회담보다 6년 전인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요술 같은 일이 생겨난 거예요? 말이 안 되죠. "(2005년 2월 21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햇볕정책조차도 북한의 핵개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는 식의 논리라면 일부 동의할 수도 있겠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나름대로 북한과 미국 간에 교류가 시작되고 미국이 대북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려는 마지막 단계에까지 이릅니다. 그때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지요.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이 1년만 더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하고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겁니다. 부시 행정부 등장으로 고농축 우라늄 문제가 불거지고 제네바 협정은 파기됩니다. 북한은 핵개발을 가속화해 버립니다. 그리고 2006년 10월 핵실험으로 이어집니다.

 

◆“정상회담 대가로 돈을 주었다?”-아니다, 현대의 대북사업권 대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6월 현금으로 4억 5천만 달러가 건너간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현대의 포괄사업권 대가입니다. 이 자료는 2009년 7월 이명박 행정부의 통일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 중 일부입니다. 정상회담 대가가 아니라 현대의 포괄적이고 독점적인 대북사업권에 대한 대가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논란이 필요 없는 부분입니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의 8월 20일자 인터뷰입니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현대가 소위 7대 경제협력을 위한 선불금으로 지급한 것이라고 다 나와 있다. 정부는 송금의 편의를 제공했을 뿐이다. 정부가 세금을 쓴 일이 없다. 재판 기록과 검찰 공소장에 나오는 내용인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팩트는 팩트대로 얘기해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의 말씀입니다.

“북한에 대한 문제는 정부로서는 돈을 준 적이 없습니다. 현대가 주었는데 그것은 엄청난 북한의 이익권을 장악하고 대가를 준 것입니다. 마치 영국의 디즈레일리 수상이 수에즈 운하를 살 때 프랑스보다 영국이 먼저 샀는데, 그때도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즈레일리 수상은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돈을 개인에게 주어서 계약을 하도록 한 것과 같이 나도 북한에게 장차 우리가 북한에서 발언권을 강화시키는 데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고, 그것이 지금 부분적으로 실현되고 있습니다."(2006년 10월 9일 미국 CNN Talks Asia 대담)

이제와 생각해보면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대북송금 특검이 있었고, 결국 정치적으로 악용되면서 남북관계는 상당부분 후퇴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보수세력들은 지금도 정상회담을 돈으로 샀다며 비판하는 논거로 이를 악용하고 있습니다. 제발 판결문을 읽어 주십사 하고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입니다.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세력이라면 더 마땅히 그래야 되지 않을까요.

◆“대북 퍼주기다?”-천만에, ‘퍼오기’ 시대가 오고 있다
퍼주기가 아니라 퍼오기입니다. 물론 지금 당장의 일대일 거래를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래기간을 조금만 늘려 보십시오. 외상거래도 있지 않나요. 퍼주기가 아니라, 퍼오기입니다. 그래서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는 이야기는 국내 정치적 입장에서 나왔습니다.(2005. 12. 10. 김대중?폰 바이체커 KBS 특별 대담)”라고 얘기합니다.

뿌리지 않고 어떻게 거둘 수 있나요. 거기다 대부분의 돈은 민간기업 현대가 북한의 철도, 전력, 항만, 통신 등 앞으로 30~50년 동안의 사업권에 대한 대가나 관광비용 등으로 지급한 것입니다. 쌀과 비료 등은 미국조차도 하고 있는 인도적 지원입니다. 좀 더 들여다보자면 이산가족상봉과 사실상 연계되는 대가성 있는 지원입니다. 비료로 이산가족 만남을 사오는 형식이지요. 그래서 연세대 어느 교수는 햇볕정책이야말로 경제적 접근방식의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합니다. 지금 이산가족들 만날 수 있나요. 그 분들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건가요.

학술적으로는 평화비용과 분단비용을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당연히 남북교류·협력 비용이 분단비용보다 남는 장사입니다.(2009년 7월, 통일경제, 현대경제연구원) 서해교전이나 강릉의 무장간첩 사건 때 우리가 겪어야 했던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또 군비 증강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따져보십시오.

같은 포용정책을 폈던 독일은 어떠했을까요. 매년 32억달러를 동독에다 주었습니다. 우리는 매년 정부 7천만달러, 민간 3천만 달러 해서 1억달러 정도 됩니다. 서독의 32분의 1입니다. (2006년 10월 19일 서울대 통일연구소 초청 강연) 우리가 퍼주기면 독일은 ‘뿌리기’입니다.(최상천 교수)

◆“김대중은 친북좌파다?”- 색깔론은 그만
단지 승공통일 북진통일이 아니라, 대결과 냉전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을 주장하고 평화통일을 주장하고 교류를 주장하고 남북이 손을 잡고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루자고 주장하면 친북좌파가 되는 겁니까.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에 반대하면 그 순간 친북이 되는 겁니까. 헌법은 평화통일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논쟁이 필요 없는 부분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친북좌파를 가르는 주요한 기준 중 하나가 주한미군에 대한 평가여부입니다. 어이없지만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기 때문에 북한과 동일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곧 친북이라는 희한한 프레임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재정 교수의 말마따나 패전국이 아니면서 50년 넘도록 가장 적극적으로 외국군의 지배를 용인하고 전시작전권까지 넘겨 준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주한미군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이고 중립적인 논쟁은 늘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예나 지금이나 주한미군의 지위와 균형자적 역할을 철저하게 인정해 왔습니다. 도리어 국익에 적합하다는 겁니다. 일·중·러보다 미국이 도리어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심이 없다고까지 공식 발언한 적도 있습니다. 6·15 정상회담 때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긴 시간 동안 설명해서 마침내 동의를 구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굳이 논쟁하자면, 남로당에 가담했다가 나중에 전향해서 대통령이 되신 분도 있지요. 이 분에 대해서는 빨갱이라고 비난하지 않으면서, 왜 김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친북좌파라고 비난하고 낙인찍고 했을까요. 철저한 색깔론입니다.

◆“수조 원대 비자금이 있다더라”-천만에
여전한 뒷 공론이 있습니다. 수조 원대 비자금을 조성했고, 재산을 해외에 도피해 놓았다는 소문이 그것입니다. 얼마나 억울하셨으면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 김 전 대통령께서 마지막 일기에까지 억울함을 적어 놓으셨겠습니까.

정치자금법이 정비되지 않았던 시절 김 전 대통령도 정치자금을 마련하고 이 돈을 정치를 위해 썼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자면 때론 부정적 평가를 내릴 수도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그땐 다 그랬다라고 말하기에는 우리 정치가 다분히 후진적이었던 셈이지요. 하지만 야당 대표에게 무슨 대가가 있고 무슨 이권이 있었겠습니까. 참고로 대한민국에서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이 제대로 정비된 것은 노무현 행정부 시절인 2004년경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인으로 일하던 시절 정치자금을 제외하고는, 대통령 취임 전, 대통령 재임 시, 대통령 퇴임 후를 막론하고, 어느 시기 어느 경우에도 불법 비자금을 가진 적도 만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대통령 재임 시 수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했던 분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체의 은닉 재산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스위스 비밀계좌가 어떠니 하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월간조선과 주간동아 등 일부언론과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 등이 비자금 의혹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주성영 의원 사건에 대해선 2009년 2월 검찰이 김 전 대통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참으로 아니면 말고 식인거지요. 해외도피 의혹 등을 보도한 월간조선 등도 소송이 제기되자마자 정정보도문을 게재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합의를 마쳤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악의적 소문에 기초한 뒷공론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중앙일보 문창극 대기자의 칼럼이 대표적이었지요. 중앙일보와는 반론문을 게재해 주는 조건으로 더 이상 소송으로까지는 가지 않기로 합의했습니다.

고인의 명예 앞에 이런 식의 악소문이 더 이상 유통돼서는 안됩니다. 모든 재산은 이미 연세대학교에 기부된 김대중도서관을 통해 기부되었습니다. 언론 보도만 확인해도 이는 충분합니다. 과거 정치적 상대방을 제거하거나 모욕을 주기위한 명분으로 시도되었던 공작정치의 폐해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셈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 정치의 평생 야당으로서, 우리 사회의 비주류로서 살아온 것이 김 전 대통령의 일생입니다. 마침내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려가 시작됐고, 인권이 우리사회의 근본적 가치로 내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반대세력들에게는 늘 불편한 존재였으며 순전히 정치적 목적으로 김 전 대통령의 정책과 명예와 일생은 왜곡되기 일쑤였습니다.

이제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어둠 속 뒷공론이 아닌 역사적 법정에서의 공정하고 치열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역사적 평가는 달게 받을 것이고, 누구보다도 떳떳하게 역사적 법정에 설 것”입니다. 다만 떠나 보내드리기 전 최소한의 몇 가지 누명만큼은 벗겨드려야 할 것 같아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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