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의 현실인식 역사후퇴 개탄…‘시민의 힘이 현실 바꾼다’ 믿음 생전에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현재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서거 직전 두 사람의 현실인식 속엔 곱씹어보아야 할 중요한 열쇳말이 담겨 있다. |
노 전 대통령은 벼랑 끝에 몸을 던져 생을 끝낼 때까지, 현 정권을 직접 겨냥한 비판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가 인터넷 등에 남긴 몇가지 유고들은 주로 현실 정치에서 한발 떨어져 ‘진보주의의 미래’를 고민하는 담론들이다. 그의 정세분석은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과 나눈 이야기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노 전 대통령 추모·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로부터 <한겨레>가 받은 ‘방문객과의 대화록’을 보면, 그는 권력기관 사유화와 비판 봉쇄, 복지의 후퇴를 이 정부의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이 감사원의 저인망식 감사를 받고 물러나는 것을 보고 “감사원이 언론의 군기를 잡는 시대쯤 되면 그것은 이미 퇴보라고 생각한다”(2008년 8월9일)고 말했다. 정부의 감세정책과 예산편성에 대해서도 “한나라당대로 하면 5년 동안 85조원을 덜 거두게 되는데 이는 대부분이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아껴주는 게 아니고 부자들의 돈을 아껴주는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한테 돈이 가게 풀어야 성장의 효과도 더 빠르다”(2008년 11월12일)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경제지상주의’를 내세우는 이명박정부를 겨냥해 “민주주의를 죽이고 경제만 성공하겠다고 했던 나라가 성공한 나라는 없다”(2008년 10월), “대통령이란 1~2년에 경제 살리고 1~2년에 경제 죽이는 직업이 아니다, 대통령은 정치가 직업이지 경제는 정치의 일부”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현 정부 초반기엔 날선 비판을 삼갔다. 장신기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연구원은 “김 전 대통령도 처음엔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우는 ‘실용주의’에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며 “그러나 촛불이 사그라진 지난해 중반기부터 정부가 감세, 대결적 남북관계 등을 공격적으로 취하자 점차 실망감이 짙어졌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즈음부터 민주주의 후퇴·서민경제 위기·남북관계 위기 등 현 시국이 ‘3대위기’에 빠졌다고 짚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런 3대위기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행동’하고자 했다. 그의 한 측근은 “김 전 대통령은 ‘안되겠다. 나라도 나서야겠다’며 과거 윤보선·함석헌 선생 등과 함께했던 ‘3·1민주구국선언’ 같은 것을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해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전했다. 표현 방법은 조금 달랐지만,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현실을 바꾸는 힘은 시민의 역량에 달려있다”는 공통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김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기 석달 전에 만나 ‘왜 ‘행동하는 지성’이 아니고 ‘행동하는 양심’을 강조하냐고 물었더니, ‘자신들이 독재 쪽에 서 있으면서도 지성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지성이 아니라 양심이 행동할 수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양심은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1년전 이맘때쯤, 노 전 대통령도 봉하마을을 찾은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긴 합니다만, 그러나 어쨌든 역사는 본시 그런 것입니다.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국민이 눈감고 가만있으면 계속 뒤로 갈 수도 있죠.”(2008년 8월9일) 이유주현 기자 * ‘역사의 손수레’ 산 자들의 몫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사회는 ‘마침내’ 건국 이후의, 나아가 개항 이래의 한 역사적 마침표를 찍었다. 한 거대한 생애가 공동체에게 던지는 자장은 매우 크고 길어, 오랜 시간 여러 측면에서 되새겨야 할 것이나 우선 ‘지금 여기에서’ 김대중 이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여 이 마침표를 새 출발점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김대중은 삶과 죽음이 절묘하게 일치하는 생애를 보여주었다. 그가 삶에서 추구하였던 가치들은 죽음의 시점에서도 그대로 표출되었다. 가장 먼저 기려야 할 유산은 남북화해와 평화, 통일에의 헌신이다. 김대중은 죽음을 통해 북한 공식 조문단을 불러들여, 꽉 막힌 남북대화와 관계개선의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정부는 그의 죽음이 제공한 이명박 정부 하 최초의 고위급 남북대화를 민족의 상생·공영과 한반도 비핵화·평화를 위한 디딤돌로 적극 선용해야 한다. 거기에는 정주영-정몽헌-현정은으로 이어지는 현대가(家)의 창조적 기업가 정신과 실용주의도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김대중-정주영-김정일 조합이 이루어낸 드라마를 이명박-현정은-김정일이 재연하자. 현대가의 뚝심과 실용에 바탕한 소떼 방북·금강산 관광(정주영-김정일)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김대중-김정일)까지의 극적인 도정은, 이제 또 다른 뚝심과 인내가 이룬 김정일-현정은 ‘5개항 합의’로부터 새로운 이명박-김정일 공동 비전과 합의로 성큼 비약되어야 한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은 정주영의 창조성, 모험성, 실용성을 체득한 현대 출신이 아닌가? 화해와 일치는, 갈라진 오늘의 우리사회에게 요구하는 김대중의 죽음이 남긴 또 다른 과제이다. 5년반의 투옥, 3년여의 망명, 6년반의 가택연금이라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취임 이후 그는 정치보복을 감행하지 않았다. 게다가 최대 정적 박정희의 기념사업을 허용·지원하였고, 자신을 사형하려 한 전두환·노태우를 용서하였다. 또 청년기 자신을 처형하려했던 북한 공산주의자들에게도 공존과 포용의 손길을 내밀었다. 죽음을 맞아서는 최대의 동지이자 경쟁자인 김영삼 역시 아름다운 화해를 표하였다. 민주·인권·노동·(남북)협력 정책과 인사들이 좌파·급진·친북·반미로 배제되며 탄압받는 오늘의 현실은 우리사회의 화해와 통합에 반한다. 이명박 정부가 ‘국장’ 결정의 예우 정신을 국정 기조와 운영에서도 예우하길 소망한다. 끝으로는 국제연대와 글로벌 기준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워싱턴, 도쿄, 베를린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한국민주화 운동 연대의 한 축은 김대중 구명·구원과 직결되어 있었다. 박정희의 산업화가, 오늘날 20세기 후발 산업화의 한 상징적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듯 한국민주화의 역사는 냉전시대 국제 민주·인권연대의 한 표상이었고, 그 중심 한켠에 김대중이 있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김대중이 남한에서 추구한 민주주의·인권·자유·관용의 가치가 세계적이고 보편적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은, 그 개인은 물론 한국사회가 추구하고 도달한 보편가치에의 상찬이랄 수 있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인권·노동·복지·평등·평화 정책이 과연 21세기 글로벌 기준과 국제연대에 부합하는지 성찰 또 성찰하자. 이제 김대중의 업적과 한계는 역사가 되었다. 그 업적을 되살리고, 한계를 보완하여 이 공동체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과제는 남은 자들의 것이 되었다. 시민들과 대통령은 이를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 한 거인의 사거 앞에서 우리가 ‘김대중 이후’를 깊이 사려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 숙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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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유언은 화해와 용서,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이다. 그는 너무 어려운 숙제를 국민들에게 주고 떠났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하기 어려운 일이 화해와 용서다. 특히 자신을 핍박한 사람들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그들은 반성을 한 적도 없는데 용서를 한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은 흉내 내기 어렵다. 초인적인 의지를 가졌거나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제오늘 세상에 난무하는 화해와 용서라는 말을 들으면서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누가 누구를 향해 화해를 요청해야 하는가를 곱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희호씨는 서울광장에 모인 추모객들을 향해 행동하는 양심이 고인의 유지임을 재차 천명했다. 화해와 용서가 국민들에게 주는 사랑의 메시지였다면 양심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말은 국민들에게 주는 채찍질이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투옥과 고문, 납치와 망명을 겪으며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나기를 거듭하면서, 그때마다 정치적 입지를 새로이 다져가며 대통령에 올랐으니까, 고립무원과 절체절명의 시간을 이겨냈으니까, 그토록 확고하게 신념에 찬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면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실천의 순간마다 인간적 한계와 좌절에 빠진다.
2006년 10월 어느 날 동교동에서 연락이 왔다. 점심을 같이 하고 싶다고 했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한 적은 있었지만 독대의 기회를 가진 것은 처음이었다. 당시는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 이후의 대통령 후보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았고 무엇보다 ‘김심’이 어디에 있는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을 때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기가 거북해서 살아있는 정치사인 당신께서 그동안 겪어본 정치인 중에 가장 괜찮은 정치인이 누구인가 우회적으로 물었다. 그는 씩 웃으면서 “나는 객관적일 수 없어요. 나한테 잘해주고 나한테 충성한 정치인이 당연히 제일 괜찮고 이쁘지요”라고 답변을 피해갔다. 그래도 키워주고 싶은 정치인, 힘을 실어주고 싶은 정치인이 있을 것 아니냐고 물었다.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정치인은 누가 키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키워준다고 커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크는 것입니다. 정치 지도자가 되려면 겪어야 하는 온갖 구설과 비판을 이겨내야 합니다.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온갖 영욕을 혼자 감당해 낼 때 큰 정치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누가 키워준 것이 아니잖습니까. 판단은 국민이 하는 것입니다.”
벌써부터 ‘김심’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자신이 가신 분의 ‘정치적 적자’라고 나서는 것이야말로 부질없는 짓이고 고인을 욕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례명은 토머스 모어이다. 헨리 8세의 오른팔이었지만 결국 헨리 8세에 의해 단두대에 보내졌다. 같은 가톨릭교도였고 또한 정치의 최정점에 서 있던 인물인 토머스 모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역할모델이었던 것 같다. 토머스 모어도 그도 집필광이고 독서광이었다. 사형수로 옥중생활을 하며 그는 자신의 세례명이 토머스 모어여서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모든 국민이 용서와 화해를 하고 행동하는 양심을 보인다면 그런 세상이야말로 토머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일지 모른다.
지금 용서와 화해를 말해야 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이 정부고 이명박 대통령이다. 대화와 타협은, 용서와 화해는 칼을 쥔 사람이, 권력을 지닌 사람이 먼저 하는 것이다. 권력이 용서와 화해로 국면을 이끌지 못하면 국민은 오로지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길밖에 없다. 화해와 용서,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은 양날의 칼이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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