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푸르른 날은
떠나보내기엔
적당한 날이 아니다
소설가 손홍규 ‘작별 고하던 날’
날이 궂었다면 나았을까 맑은 하늘 그것마저 서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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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떠받친 국회의사당의 부드러운 옥빛 돔마저 오늘은 하나의 기원처럼 여겨졌다. 사람들의 시선은 옥빛 돔을 더듬다가 먼 하늘로 옮겨갔다. 끝을 알 수 없으므로 오래도록 바라볼 수는 없었다. 점심 무렵이 되자 분향소 앞의 줄이 길어졌다.
사람들은 분향을 하고 서명을 한 뒤 저마다 손에 그이의 일기가 실린 인쇄물을 쥐고 그늘을 찾아갔다. 겨우 한 뼘 높이의 턱이어도 좋고 그냥 맨바닥이어도 좋고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생을 더듬듯 그이의 일기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찬찬히 읽었다. 누군가는 안경을 닦고 누군가는 옆 사람의 어깨를 꼭 쥐어주고 누군가는 소리 죽여 웃기도 했다. 햇살은 더 강렬해졌고 더러운 건물 속의 죄악이 발효하기 좋은 시각이 되었다. 배고픈 이들은 동행과 김밥을 나눠먹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도시락을 까먹기도 했다. 그들 사이를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연락선처럼 누비고 다녔다. 함께 있어도 외로웠고, 홀로 있어도 외로울 것을 알기에 그 자리를 떠나지는 못했다. 그렇게 우리가 생의 한 면을 공유했던 사람을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슴이 헛헛한 이유는
투정부릴 누군가를
영영 잃고 말았기 때문
정해진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눈에 띄게 불었다. 국회의사당 정문 맞은 편 도로를 따라 서강대교 방향으로 길게 경찰의 통제선이 늘어섰고 그와 평행을 이루며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분향소 좌우의 대형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영결식이 시작된 것이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규정내릴 수 있는 낱말은 없었다. 플랫슈즈에서 하이힐까지, 고무신에서 샌들까지, 운동화에서 구두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조선 시대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 마냥 한복을 차려입고 상투 튼 머리에 망건까지 얹은 어르신도 보였다. 그러니까 이곳엔 백년이 모인 것이다. 우리의 과거부터 우리의 현재, 그리고 우리의 미래인 저 순진무구한 아이들까지 포함하여, 백 년의 세월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다.
대형 텔레비전을 통해 영결식 장면이 비쳐졌다. 사람들은 마치 초대권이 무슨 소용이냐는 듯, 바로 이곳이 영결식장이기라도 한 듯, 일어서라면 일어섰고 묵념하라면 고개를 숙였고 앉으라면 앉았으며 애국가가 흐르면 가슴에 손바닥을 댔다.
영결식이 진행되는 내내 매미는 울었다. 저기에 자신의 온 생을 탈탈 털어 민주와 통일에 일시불로 스스로를 지불해버린 이가 누워 있었다. 일어나라고 다시 한 번만 일어나라고 매미는 울었다. 약력소개와 조사, 추도사, 종교의식이 끝나고 그이가 지불했던 생의 편린들이 영상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신의 말씀을 빙자하면서 죄책감도 없이 세계와 인간을 파괴하는 자들에 맞서 평생을 싸운 그이의 생전 모습이었다.
우리는 단수가 아닌 복수
최선을 다해 그에게 화답했다
예포소리가 나자 앉았던 사람들도 모두 일어섰다. 운구행렬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움직였고 나도 그 물결을 따라 걸어갔다. 인도에서 그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적막하고 쓸쓸했다. 내 옆의 중년 여인은 주문을 외듯, 안 오시네, 안 오시네, 중얼거렸다. 조금 뒤 운구행렬이 도로에 모습을 드러냈다. 햇살은 너무 강렬했고 그래서 오열하기엔 멋쩍었다. 슬픔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 사람들답게 허둥대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살짝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운구행렬이 눈앞을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용서를 구하듯, 편히 가세요, 라고 속삭였다. 귓가를 간질이는 저 나직한 고백들. 고백의 사태들 속에서 나는 오한을 느꼈다. 이토록 무더운 날 한기를 느끼는 이유가 무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해 겨울, 15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그날 나는 정처 없이 도시를 떠돌았고 밤이 이슥해서야 단골 술집을 찾았다. 투표는 잘 했냐는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나는 선거권이 없었다. 집행유예로 출소한 지 겨우 한 달. 나에게는 처음이었을 대통령 선거였건만 나는 투표를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나는 아마도 좀 서글프게 웃었을 것이다. 그리고 밤새 어둡고 더럽고 좁은 술집에서 텔레비전을 지켜보았다. 다음 해 군대에 갔고 그곳에서 사면소식을 들었다. 불침번을 서고 화장실에 들어가 소리 죽여 울었다.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가는 거라고 다짐을 하면서.
그러나 오늘 나는 또 다시 구경꾼이 되어 그이를 보냈다. 가슴이 헛헛한 이유는 그이에게 못되게 군 게 아파서가 아니라, 투정부리듯 못되게 굴 누군가를 영영 잃고 말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슬픔은 이기적이다.
선두차량이 서강대교 입구에 다다르자 이별이란 그런 식이어야 한다는 듯 속도를 높여 순식간에 운구행렬이 멀어졌다. 운구차와 나란히 걷던 사람들이 뛰었다. 나도 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서강대교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 행렬이 사라진 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기어이 가셨구나. 누군가 이렇게 중얼거렸고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그이를 떠나보내는 우리는 단수가 아닌 복수였다. 그러니 또한 그이를 마중 나오는 이들 역시 복수일 것이다. 그들 중에는 석 달 먼저 우리가 떠나보냈던 이도 있을 것만 같다. 카뮈는 말했다. 우리 사회에 새로운 것을 가져오려면 개인적인 행동이 아니라 집단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우리는 오늘 최선을 다해 그이에게 화답했다. 눈이 부신데도. 손홍규/소설가 *
행동하는 양심을 위하여 / 문병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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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주의 승리가를 불렀습니다
호남지역 푸대접의 역사
군부정권 30년의 창칼을 굴복시키고
우리는 평화와 자유의 종을 울렸습니다
불바다 민주항쟁의 강을 건너서
캄캄한 고래의 뱃속 같은
그 억압의 세월 사슬을 끊고
역사의 한풀이 새벽을 열었습니다
원한의 대치 분단 60년
태극기와 인공기를 만나게 하고
통일기 손에 들고 맞이한 6·15 공동선언
29년 전 이 자리에서
거룩한 민주 수호의 피를 뿌린
눈물강 피바다 5월의 원한을 넘어서
평화적 정권교체의 파도치는 금남로
백만 그 축하 인파 온 밤을 새웠습니다
10년 전 그 승리의 이 자리에서
다시 찾은 10년의 민주 승리를 안고
꺼져가는 불씨 다시 봉화 올린
노무현 대통령 그 눈물 적시어
오늘은 또 통일 대통령 영결식을 올립니다
대통령 중의 대통령
임기가 없는 영원한 우리의 민주 대통령
김대중, 그 이름 석자,
바로 우리의 깃발이 되게 하소서
신의주에서 목포까지
서울에서 평양까지
하나의 마음 하나의 꿈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한용운 스님이 불렀던 민족의 이름으로
침묵하지 않는 그 님을 소리 높게 부르게 하소서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게 하소서
김대중, 김대중
연호하던 10년 전 그 눈물과 열정
임기 없는 대통령 우리 곁에 영원히 꽃피어 나소서.
※ 이 시는 지난 22일 저녁 광주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행사에서 낭독돼 시민들의 심금을 울렸다. *
인절미 갖고 갈게요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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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 대신 인절미 서너 개 드신다 하셨지요. 아니 밥 먹을 짬도 없을 땐 인절미만한 것이 없다 하셨지요.
밥 굶는 어린이에게도, 도시락 못 싸는 학생에게도
연탄보일러도 못 때는 가난한 달동네 이웃에게도
쌀과 옷과 김장김치와 인절미를 나눠드리자 하셨지요.
방앗간의 우렁찬 힘과 절구질이 만나 쿵쿵 흥겨운 떡.
고물고물 인정이 서린 인절미가 좋다 하셨지요.
며칠 아끼다 딱딱해진 것도 다시 쪄먹을 수 있는
떡 중의 떡, 인절미를 좋아한다 하셨지요.
아! 목멤 없이 어찌 인절미를 먹을 수 있으리오? 하셨지요.
숭늉 한 잔 건네주는 사랑 없이 어찌 인절미리오? 하셨지요.
동치미와 곁들이지 않는 인절미가 어찌 우리 것이오? 하셨지요.
내남 없이 나눠 먹지 않는다면 그게 어찌 인절미리오? 하셨지요.
하지만 아직은 제 입에만 콩가루 묻히기 바쁜 사람들.
막돼먹은 집안, 막돼먹은 나라를, 우리는 콩가루가 되었다고 하지요.
아, 어서어서 민주의 쌀, 평화의 물, 통일의 불길로 떡을 만들어야지요.
기러기 똥으로 키운 철원 쌀을 백두산 천지 물로 잘 불려야지요.
지리산 박달나무 떡메로 떡쌀을 쳐서 해남 콩고물로 잘 버무려야지요.
아, 더덩실 골고루 잘 나눠 먹어야지요. 서로서로
민주의 콩고물, 평화의 콩고물, 통일의 콩고물이 되어야지요.
막돼먹은 콩가루가 아니라 잘돼먹은 콩고물이 되어야지요.
아,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 떡이 되어야지요.
목이 멤 없이, 어찌 우리가 당신의 나라에 다다르겠는지요?
이정록/시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리며 | ||
ㆍ인동초의 노래_임동확
다시금 살아서 가난한 자, 고통 받는 자 곁으로 지팡이를 짚고 아프고 지친 다리를 끌며 다가오는 너의 발자국 소리 잠시나마 네 고단한 생의 불편을 감추려는 듯 때마침 여름비가 쏟아지고 네 육성에 묻어나던 지난날들의 꿈과 악몽, 사랑과 절망들이 급기야 누군가 밀어주는 휠체어, 은빛 기억의 바큇살을 타고 밀려온다 여전히 거짓을 진실이라 우겨대는 더러운 혀와 위장된 평화와 진실을 독점하는 가면들에 삼중 사중으로 포위되어 있는 너. 죽어서도 근거 없는 낙인과 더러운 음모, 이름 모를 증오와 이유 없는 질시에도 예전처럼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고 고개 수그리던 너의 장례식장에 가냘픈 몇 개의 잎으로 모진 겨울을 이겨낸다는 인동초의 향기가 퍼져 오른다 젊은 날 총살 직전의 감옥 탈출과 느닷없는 14톤 트럭의 돌진, 그리고 토막 살해와 수장(水葬)의 위협과 시도를 애써 감추려는 듯 너의 제단은 희고 순결한 인동초로 장식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인동초란 너의 별명이 결코 원치 않았을 납치와 망명, 투옥과 감형, 그리고 사형선고가 가져다준 처참한 은유였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널 가택연금하고 끄덕하면 감옥으로 끌어가고 끊임없이 절라도놈이라 손가락질하고 걸핏하면 빨갱이라 몰아세우던 자들 길고 오랜 감시와 집요하고 질긴 박해가 만들어낸 위대하고 거룩한 비유라는 것을. 그러나 너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 넌 신이 아니었다. 넌 눈물 많은 한 사내에 불과했다 그래서 때로 넌 용서받을 수 없는 실수와 과오를 보여줬다 제 아무리 불가피한 경우라고 해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세력과 타협해, 무수한 비난과 야유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때로 잠시의 권력에 취한 이들이 눈먼 돈과 고급술을 탐하는 치명적인 비리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넌 지친 자들이 기꺼이 찾아들던 외로운 섬, 모함 받거나 쫓겨난 자들의 증인, 오래 햇빛 들지 않는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겨울 산동네 응달 길의 시멘트 계단, 결코 잘나지 못한 자들의 푸념, 늘 빈손인 자들의 반항과 불평 많은 시인들의 광기로 차린, 한없이 빈약한 밥상에 초대된 최초의 대통령. 오! 하늘이여! 땅이여! 그리고 사람들이여! 오, 다시 최루가스 화약냄새수상한 시절의 밤 여기 잠들어 가는 양심과 양처럼 순해 빠진 눈빛과 악다문 침묵의 입들을 벌리는 꽹과리를 앞장서 치며 폭정의 한복판을 휘저으며 건너가는 저 당당한 하의도 섬 소년을 보라 힘없는 역사의 발걸음과 간단없는 회의, 깊은 슬픔과 한없는 연민의 눈길, 그리고 텅 빈 희망을 자궁을 감싸 안는 넉넉한 감동과 낙관의 내일을 노래하는 수리성의 가객 풍류남아를 기억하라 그래, 넌 안 되면 벽에 욕이라도 퍼부으며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저항, 결코 지지 않은 고난의 힘을 보여주며 늙고 병든 조국의 멱살을 뒤흔드는 다시금 독한 양심의 바람소리로 살아 있다 결코 달라지지 않는 거리의 험담과 힘없는 자들의 분노가 들끓는 분단의 땅, 넌 언제나 푸른 미소가 넘쳐나는 얼굴, 영원히 젊은 세계의 바다물결 소리로 깨어나고 있다 |
뜨거운 사투리 / 유용주 | |||||||||||||||||||||||||||||||||
선생님, 입추 지나 처서로 달려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 처연합니다. 어느덧 누렇게 물들기 시작한 들판 위에 먼 바다에서 건너온 가을바람 소슬하군요. 손잡으려 하면 언제나 가없는, 저 남쪽 바다 끝 섬처럼 떠 있는 당신, 그리운 사람들은 항상 멀리 있고 엎드려 절하며 생의 사표로 삼고 싶은 스승들은 하나둘씩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집니다. 선생님, 그해 여름, 서산남부농협 신축공사장에는 아침부터 뜨거운 햇볕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렸는데요, 새참으로 나온 컵라면과 소주잔을 앞에 놓고 철근팀과 목수팀들이 한바탕 붙은 적이 있었습니다. 예덕리 장씨와 홍천리 김씨가 멱살까지 붙잡고 험악하게 싸운 이유가 다름 아닌 김대중은 빨갱이다, 아니다였어요.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한 언쟁이 결국 예덕리 장씨 아저씨가 에이 씨발놈의 세상! 하면서 망치자루를 던지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어이, 자네는 음료수도 해태 걸로만 먹는다메, 묻더군요. 할 수 있다면 3m가 넘는 장빠루로 세상 천장을 피터지게 한번 뚫고 싶었습니다. 밀물이 들면 썰물이 빠져나가듯 우리네 인생이란 한번 들어오면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투리는 매웠습니다. 사투리는 무서웠습니다. 우리가 걸어온 숱한 거리에서 공사 현장에서 포장마차에서 술집에서 구멍가게에서 항구에서 터미널에서 역전에서 시장바닥에서 이룰 악물고 싸웠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 선생님을 간첩이다 아니다, 빨갱이다 아니다로 끊임없이 물어뜯고 피를 흘렸습니다. 항상 쪽수에서 밀린 가난한 사투리들은 숨을 곳이 없었어요. 말없이 눈물을 찬밥에 말아 거칠게 씹어 삼키곤 했지요. 세상 가장 낮은 그늘에서 세상 가장 높은 그늘까지 선생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상처와 갈등 속에 언제나 따뜻한 그늘은 없는 법입니다. 선생님은 그 뚜렷한 그늘 때문에 영광과 좌절을 한꺼번에 겪어오셨습니다. 죽음과 삶이라는 반찬을 한 밥상에 받으면서 견뎌내셨어요. 모두들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 시절들이었지요. 오랜 세월 아픔이었고 절망이었고 고통이었고 부끄러움이었고 울음이었고 한이었고 증오였고 끝끝내 치유할 수 없는 상처처럼 보였던, 그러나 너무나 큰 사랑이었던, 뜨거운 사투리는 동서화합의 가교로, 남북통일의 디딤돌로 우리들 가슴속에 튼튼하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사투리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죽이는 세월은 그만두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그 모든 죄를 선생님이 대속하여 피 흘리고 가셨으니 말입니다. 십자가는 그것 하나만으로 족합니다. 그만하면 됐습니다. 저기, 장마 끝나고 쨍하니 빛나는 햇볕 아래 목수들, 다시 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억센 근육질 어깨에 땀방울 눈물처럼 흘러내리는군요. 후제, 우리 목수팀 통일 세상에서 선생님 다시 만나면 홍탁삼합에다 막걸리 넘치게 받아놓고 잔치 한판 벌이자구요. 춤 한번 덩실덩실 춰 보자구요. 유용주/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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