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졌다"
전직 대통령들은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일제히 안타까움과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쉽고도 안타깝다"면서 "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김기수 비서실장이 전했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해 쾌유를 빌기도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상도동 자택에서 김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보고를 받고 무거운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측근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침통한 표정으로 "14일 문병을 갔었지만,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실 줄 몰랐다"면서 "지난 수십년간 파란 많은 정치역정을 걸어왔는데, 이제 천주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전 전 대통령은 또 "이희호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고 전 전 대통령 측은 전했다.
기관지 수술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노태우 전 대통령은 TV 방송을 통해 서거 소식을 접하고 충격적이고 애통한 표정을 지었다고 노 전 대통령 측이 전했다.
'DJP 연합'의 한 축이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고 한나라당 정진석 의원이 전했다.
한겨레 안용수 기자(서울=연합) *
학계 '현대사 최대 거목 졌다'
김대중 전(前)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학계는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한목소리로 현대사의 거목이 쓰러졌다고 평가했다.
진보적 성향의 김성보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얼마 안 돼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돌아가셔서 충격이 크다"면서 "1949년에 김구가 죽었고 1959년에 조봉암이, 1979년엔 박정희가 죽었는데 아홉수 해에 이렇게 거물들이 죽는 게 공교롭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 현대사에 많은 정치지도자가 있지만 역사에 대표적으로 남을 사람은 박정희와 김대중이라 생각한다"면서 "박정희가 냉전 시기에 한미동맹을 축으로 산업화를 이뤘다면 김대중은 탈냉전 흐름에서 남북 평화관계의 틀을 만들었다"고 평했다.
그는 이어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때문에 국민적 충격이 너무 크고 사회 분열이 더 깊어질까 굉장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같은 진보 성향인 여건종 숙명여대 영문과 교수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준비가 많이 된 대통령이었으며 한반도 상황에 대해 웬만한 학자보다 더 식견이 높았다"면서 "우연의 일치일지 몰라도 진보적 전직 대통령을 한 해에 두 사람이나 잃었다. 미디어법통과 등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변화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두 분이 돌아가신 것이 무언가를 상징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중도 성향의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남북 관계의 긴장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현대사 최대 거인 중 한 분이 돌아가신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면서 "'최대 거인'이란 말은 수사적으로 공허하게 쓰일 때도 있지만 김 전 대통령은 그런 표현이 내용과 일치하는 경우다. 그분을 잃은 것은 국가적으로 굉장한 손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고 인권 수준을 높였으며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장치를 만들었다"면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양쪽 차원에서 우리 사회를 위해 큰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보수학계를 대변하는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한국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사건"이라면서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현대사를 그대로 인생 안에서 보여준 인물이다. 민주화와 광주라는 두 화두가 김 전 대통령 안에 녹아들어 있었다"고 평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외환 위기 극복이라는 업적을 남겼고 한편으론 지역주의 심화라는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면서 "살아계실 때 존재감이 너무 커서 민주당도 북한에 대해 제 목소리를 못 냈는데 이젠 햇볕정책의 유산에서 벗어나 할 말은 하고 잘못된 것은 지적하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보수 성향의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쌍두마차인 양김 가운데 한 분이 서거했다"면서 "김 전 대통령은 대북정책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겼다. 기존의 봉쇄정책에서 탈피해 포용정책을 통해 과감한 대북화해협력을 추진한 것은 큰 업적이다. 부정적 측면도 있지만 기존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권에 던지는 메시지는 굉장히 큰 것으로 본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가 사회적 갈등구조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의 길은 무엇인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 김윤구 기자 (서울=연합) *
"살아계신 것만으로 큰 힘 됐는데" 온나라 충격
전국 애도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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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슬픔에 잠긴 광주
옛 전남도청엔 조기가 걸렸고, 주변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18일 저녁 광주시 동구 옛 전남도청 본관 앞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 분향소엔 밤늦게까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까지도 옛 전남도청 본관 건물 벽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김정원(35·광주시 북구 양산동)씨는 “오늘 어머니는 방송을 보시면서 펑펑 우셨다”며 “노 전 대통령의 쓸쓸한 모습을 보니 마치 노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슬퍼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80년 5월 시민군의 치열한 격전지였던 금남로 주변 충장로 상인회는 이날 저녁 고인을 애도하는 검은색 펼침막을 내걸었다. 최대웅(37·광주시 북구 매곡동)씨는 “1997년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때 시민들이 전남도청 앞으로 몰려들어 축제판을 벌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광주·전남의 시민들은 ‘독재에 항거한 자랑스런 호남 출신 지도자’의 서거를 슬퍼했다. 87년 6월항쟁으로 가택연금이 해제된 뒤 광주를 방문한 김 전 대통령은 망월동 5·18묘역에서 5·18 민주화운동 유족들을 안고 통곡했다. 강신석(72·광주종교인평화회의 상임대표) 목사는 “김 전 대통령이 85년 미국에서 돌아온 뒤 동교동 자택에서 내 손을 꼭 잡고 울면서 ‘모든 것이 내 죄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며 “80년 5월의 뜻을 평화통일의 물꼬를 트는 것으로 실천하신 분이다”라고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의 또다른 정치적 고향인 목포에서도 추모 분위기는 물결쳤다. 이날 저녁 전남 목포시와 민주당 목포시당이 목포역 광장에 마련한 김 전 대통령의 분향소엔 목포시의회 의원과 당원 등 10여명이 밤을 새우며 추모객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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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에 애도와 추모 물결
18일 오후 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한 원로 정치인인 송좌빈 민주당 대전시당 전 고문은 “김 전 대통령의 역할이 절실한 때에 이런 일을 당해 더욱 안타깝다”며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한 동지이자 지도자가 돌아가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어온 원로 사제인 김병상(78) 몬시뇰은 “정의로운 나라, 통일을 지향하는 나라로 흔들림 없이 발전해야 하는데 그런 지도자를 또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며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나라에 큰 힘이 됐는데 말할 수 없이 슬프다”고 말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낸 송기인 신부도 “민주화의 선구자이자 지도자인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한국 사회에 일대 타격”이라며 “부산에 오셔서 ‘민주공원 건립은 우리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일’이라고 하신 말씀이 아직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일제히 성명을 내어 슬픔을 표시했다. 참여연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현격히 퇴보하고 있고 남북관계도 위태로운 상황이기에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너무도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라고 애도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평화, 인권의 중요함을 몸소 보여준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환경연합, 경실련, 민주노총 등도 애도 성명을 냈다.
스포츠 무대에서도 추모 분위기가 이어졌다. 잠실·대전·광주·사직 등 이날 프로야구가 열린 4개 구장에서는 단체 응원전을 펼치지 않았고, 광주구장에서는 경기에 앞서 선수들과 관중들이 함께 애도 묵념을 했다.
추모 물결은 인터넷에서도 넘쳐났다. 여러 포털사이트들은 서거 직후 초기화면에 김 전 대통령의 서거 기사를 올리고 검은색과 회색으로 바탕화면을 바꿨으며, 누리꾼들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다음 아고라 등에도 추모글과 사이버 헌화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저녁 8시께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시민분향소가 차려졌다. 광장 내 잔디 위에 차려진 분향소에는 밤늦게까지 시민들이 줄을 서서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시민상주단은 19일 아침 정부의 공식 분향소가 문을 열어도 별도의 시민분향소를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 정대하 박영률, 최상원 권오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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