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극장
우리 읍내에는 극장이 없어 명절 같은 때 용돈이 생기면 고창, 정읍으로 영화보러 가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이라, 1년에 한 두번 읍내 장터에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조용하던 읍내 전체가 들썩거렸다.
장터 공터에 전나무 같은 장대를 높게 세우고 지저분한 광목천으로 휘장을 둘러 쳐 극장을 만들고는 가설극장이 들어왔
음을 알리는 유행가를 종일 틀어주었다.
남진, 나훈아, 이미자 레코드 판을 틀어 주면서 중간중간 한껏 멋을 낸 목소리로 오늘 상영될 영화를 선전하며 심금을 울
렸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흥덕면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합동영화사 **선전반입니다. 오늘 밤 흥덕면민 여러
분을 모시고 상영될 영화는 신영균, 남궁원, 문희 주연의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입니
다.
여러분이 기대하시고 고대하시던 영화 ’‘***"을 가지고 여러분을 모시겠사오니 오늘 밤 많이 왕림하여 주시면 감사하겠
습니다...."
학교 운동장, 논밭 일터를 비롯한 온 읍내에 유행가와 멋들어진 선전 방송이 울려 퍼지면 설레었다.
어머니를 졸라대면 할 수 없이 쌀을 팔거나 콩 같은 잡곡을 팔아 손에 쥐어 주었다. 아버지가 궁시렁 궁시렁 못마땅해 하
시면 어머니는 ‘아따 한 번만 보여 줍시다.’ 하셨다.
저녁을 먹고 설레는 맘으로 장터에 가면 벌써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아직 상영할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 있기에 어둠이 깔린 밤, 전깃불 밑에서 서성거리며 앞으로 상영될 영화 포스터를 보
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가설극장 주변엔 우리 동네 형, 누나 들 뿐만 아니라 먼 동네에서 모여 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형들은 동네 처녀들을 보면
아는 척 하며, 휘파람 소리로 신호를 보내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한 쪽에선 시끌벅쩍 말다툼에 패싸움이 벌어지기도 했
다.
어머니가 쥐어준 돈으로 입장표를 구해 안으로 들어가면 상영 시작까진 영사기 옆에서 신기한 듯 구경했다. 드르륵 돌아
가는 게 너무나 신기했다.
영화가 상영되면 중간중간 필름이 끊어져 중단되기 일쑤였다. 얼마나 반복 상영됐는지 필름은 크고 작은 긁힌 줄이 끊이
지 않고 이어졌다. 영화가 끝나면 내일, 모레 상영될 예고편을 보여 주었다. 내일의 영화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또 보고싶
어 졌지만 어머니를 졸라댈 수는 없었다.
다음날 밤에는 극장 주변을 돌아 다니며 서성거리다 으슥하고 깜깜한 곳에서 재빨리 천막을 들치고 들어가기를 시도해
보지만, 운이 있으면 성공하고 붙잡히기라도 하면 몇 대 얻어 맞고 밖으로 쫓겨 나곤 했는데 확률은 반반이었다.
사람들이 안에 많이 들어 차 있을수록 성공 확률은 높았고 망보는 사람도 흥행이 잘 돼서인지 다음엔 돈내고 보라며 모
른 척 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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