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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영결식과 노제를 지켜보며 / 소설가 김애란

by 싯딤 2009. 7. 28.

[경향신문.2009.05.30] 기사입니다.

수많은 눈빛들… ‘시대정신’을 찾고 있는 걸까

ㆍ영결식과 노제를 지켜보며 - 소설가 김애란


경복궁 앞, 그늘 한 점 없는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주로 정계 인사들과 취재진이었다. 햇빛이 강했다. 지나치게 건강해 병적으로 보이는 사람의 안색처럼 환하고 적나라한 봄볕이었다. 사람들은 홧홧해진 목덜미를 만지며 영결식 식순이 적힌 종이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뜰 한쪽에 마련된 간이 식수대가 보였지만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악대의 연주가 흐르자 모두 기립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한 김애란 작가가 흰 국화꽃을 들고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박민규기자

백일하(白日下),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 대통령 부부가 보였다. 자리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돌담을 따라 겹겹이 띠를 두른 경찰부대에 번번이 제지당하고, 해명하며 어렵게 도착한 식장 안은 생각보다 휑하고 산만했다. 만석인데도 그런 느낌이 났다. 아마 거기 꼭 있어야 할 무언가가 빠져버린 까닭인 듯했다. 나는 그게 궐 밖에 있을 거라 생각했다. 누군가 자꾸 성을 쌓고, 막을 치는 건, 사실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고. 저렇게 어린 전경들 뒤에 숨을 정도라면, 권력이란 게 실은 허망할 만큼 나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겁이 많을수록 큰 집을 짓던 지도자들을 떠올렸다.

영결식은 한 시간 반 남짓 치러졌다. 약력보고가, 조사가, 종교의식이, 헌화와 조총발사가 있었다. 필요한 수순이었고 예의이며 도리였다. 식장 안엔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따금 흐느낌과 고함, 욕설이 들렸다. 주위 공기는 스크린에 비춰진 것과 미묘하게 달랐다. 나는 소설가란 이유로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을 나누고 고민해야 할 시간들을 가늠했다. 그런데도 가슴 한쪽에서는 줄곧 그곳에서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도덕적인 오만이나 허영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궁 밖에 있는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고 싶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이 순간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할 때의 그 사람. 상식과 합리를 바라고, 누군가 그걸 빼앗으려 하면 찾으려 하고, 슬퍼하며 성낼 줄 아는- 내 동시대인들의 평범한 얼굴이. 그건 아마 지난 며칠 간,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대한문 앞에서- 내가 어떤 얼굴들과 마주쳤는가를 기억하기 때문일 터였다.

그래서 장의 행렬이 경복궁 동문을 나와 세종로로 향했을 때, 나는 광장을 떠나기가 무척 어려웠다. 당장 몇 시간 안에 원고를 넘겨야 하는데 글을 쓸 수 없었다. 나는 그들과 같이 걷고 싶었다. 그리고 되도록 오래 머물고 싶었다. 담 밖에서 서성이며 노무현 대통령을 기다리던 시민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넘어 하나 둘 도로에 섞이기 시작했다. 긴 울음과 애도가 이어졌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거리에 주저앉았고, 휠체어를 타고 나온 노인과 아기를 업고 나온 여자도 보였다. 그들은 멀리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가 생중계 되는 대형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앞서 가는 행렬의 만장을 바라보는 이도 있었고, 어딘지 모를 먼 곳을 응시하는 자도 있었다. 그 눈빛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그곳이 노 대통령이 말한, 당장 이득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여기가 아니라 손해인 것 같지만 더 큰 결실이 있는 저기 그 어디 즈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29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서 크레인에 올라 탄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초혼의식을 치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멀리서나마 사람들 곁에 있고 싶어 광화문 길가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5월 햇빛이 너무 강한 탓인지, 검은 땅위에 펼쳐지는 노란 추모의 물결 때문인지, 모니터 위 활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상대의 얼굴에서 자기의 표정을 봤다. 그러고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무언의 이해와 공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흘렀다. 우리에게 광장이 필요한 이유가 다시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경복궁 안은 슬픔을 삼켜야 하는 곳이었지만, 밖에선 그것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다른 사람과 내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줬다. 궐 밖을 나와서야 비로소 고인을 마음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추모하게 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걸었다. 남대문을 지나 서울역으로, 삼각지로. 이념의 좌우를 떠나, 고위의 상하를 떠나, 인간이 인간에게 마땅히 취해야 할 애도의 마음이 바로 그 길 위에 있었다. 자판 앞의 손은 여전히 떨렸다. 상중(喪中)이라 말보다 마음을 보태고 싶은 바람도 컸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누군가의 말에 기댔고, 필요로 했으며, 위로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말’에 대해 다르게, 다시 생각해볼 때라는 걸 느낀다. 노제의 사전 추모 공연 사회를 본 김제동씨는 ‘심장이 뛸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을 잊지 않겠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 말을 들은 시민들은 땡볕 아래서 고개를 숙였다. 우리가 노 대통령을 떠나보내며 지난 시간 동안 미처 보지 못한 걸 눈물 속에서 찾아냈듯이, 우리는 정녕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슬픔 속에서 찾아낸 것이리라. 그리고 그 마음이 단지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눈물은 현실정치의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들이 ‘어떤 시대’를 통과하고 있는지는 깨닫게 해줄 것이다. 이것이 노 대통령이 우리에게 주고 간 시대정신이자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국민장 마지막 날. 이 다급하고 단정하지 못한 인사가 혹 고인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온한 안식을 얻으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소설가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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