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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노 대통령 서거- 한겨레 칼럼

by 싯딤 2009. 7. 28.

[홍세화 칼럼] 한겨레신문.09.05.23

성찰 없는 권력의 가학성

살아 있는 권력의 가학성앞에 죽은 권력이 죽음으로 응답했다. 성찰할 줄 모르는 권력이 성찰과 비판을 죽이는 시대를 반영하는가. 온건한 나라, 정상적인 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참담한 일이다. 실상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말뿐이었다. ‘잃어버린 10년’을 내세우며 앞선 정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새 정권과, 새 정권의 충견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검찰에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애초 기대할 수 없었다. 검찰은 가학성에서 하이에나 같은 족벌언론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인가, 그들은 직접 추궁하는 대신 언론에 연일 수사기록을 흘리는 행위를 예우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모든 권력이 위험하지만, 견제되지 않는 권력은 그만큼 더 위험하다. 자성할 줄 모르고 견제되지 않는 권력이 휘두르는 칼날은 갈수록 무자비해지고 그 칼날에 당하는 상처의 아픔은 스스로 성찰하는 만큼, 또 자책하는 만큼 더 깊어진다. 이를 알 리 없는 ‘29만원 재산’의 전두환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꿋꿋하게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말한다. 수많은 국민이 아쉬움보다 비통함에 젖는 것은 그런 차이에서 온 것이리라.

촛불의 힘이 잦아들자 언제 머리 숙여 사과했더냐 하는 식으로 진정한 자기반성을 보여주지 않는 이명박 정권은 수구족벌언론에 힘입어 언론권력으로부터도 별로 견제되지 않는다. 국민으로부터의 견제와 비판이 남아 있지만 이는 검·경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막으면 된다. 촛불집회와 언론소비자운동에 대한 집요한 수사, 미네르바 구속, 피디수첩 관련자 체포, 정연주 <한국방송>(KBS) 사장 사건 등에서 이 나라 검찰은 정치 검찰의 성격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막가자는 거지요!”는 과거 한때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벌어지는 현실이다.

검찰에 기소독점과 기소편의의 막강한 권한을 준 것은 국민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라는 소명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고유의 무기를 주로 이명박 정권의 경비견이 되거나 자기 보호를 위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검찰은 임채진 검찰총장이 포함된, 삼성 떡값 검찰 명단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를 기소하지 않는다. 물론 김용철 변호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더 이상 훼손될 것도 없기 때문인지 ‘떡검’의 명예를 ‘떡검’ 수준에서 지키기 위해서다. 천신일 수사를 세무조사 로비에 제한하는 등 사회적 사건을 검찰 편의로 한정 짓고,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언론소비자운동을 편 시민들은 끝까지 추적하여 형사처분하지만 경찰 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고소·고발에 대해선 피고소·피고발인들에 대한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 죽봉 대신 ‘죽창’이라고 부르며 “한국 이미지에 큰 손상”이라고 주장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미네르바를 체포·구속한 검찰이 하나 되어 그리는 한국의 이미지는 실명제와 관련하여 구글에게 망신당한 인터넷 강국 한국의 이미지와 만난다.

남을 닦달하고 단죄하는 데 익숙할 뿐 자기성찰이 없는 검찰의 자화상은 용산참사 수사기록 3천쪽 분량을 공개하지 않는 데서 도드라진다. <문화방송> ‘피디수첩’에는 방영되지 않은 녹화기록까지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으면서, 재판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용산참사 관련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모순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성찰 없는 권력이 활개 치는 반역의 시대를 죽음으로 맞선 고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빈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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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겨레신문.09.05.24

한시대의 종말을 애도함

그가 마을 뒷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 시대가 끝났음을 알았다. 그는 바로 우리 시대였다. 누구도 그처럼 치열하게 자기를 시대 속에 던져 시대와 하나 된 삶을 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가 보여준 숭고, 그가 넘지 못한 한계 그리고 비극적 종말이 모두 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숭고였으며, 우리 자신의 한계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의 이 비극적인 종말은 시대가 길을 잃고 낭떠러지에서 추락한 것이 아닌가?

1979년 부마항쟁으로 장전되고, 80년 광주항쟁을 통해 발사된 시대, 모든 불의한 것들에 대한 광기 어린 분노가 총알처럼 아스팔트 위를 질주하던 시대가 불러낸 사나이가 바로 노무현이었다. 그는 광주항쟁 이듬해 이른바 부림 사건으로 체포되고 고문당해 만신창이가 된 부산의 대학생들을 변호사로서 만나면서 처음 역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불의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 타인의 고통에 대한 순수한 공감이 아무 걱정 없던 세무 전문 변호사를 역사의 가시밭길로 불러내었던 것이다.

그 뒤 그는 역사의 부름에 언제나 자기의 전 존재를 걸고 치열하게 응답했던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치열함이 우리를 감동시켰고, 그 감동이 그를 끝내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까지 밀어올렸다. 그것은 그의 명예이기 이전에 한 시대가 보여줄 수 있는 치솟은 숭고였으니, 그는 우리의 자랑이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역사가 이렇게 한 걸음 더 진보한다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5년 뒤 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짐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청와대를 떠날 때, 내겐 더 이상 그에게 실망하고 분노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그가 고향마을에 큰 집을 지어 이사하는 것을 보고, 잠깐 그 많은 공사비가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했을 뿐.

그런데 그가 고향 뒷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왜 이렇게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부끄러워지는가. 그는 자기를 던졌는데 나는 왜 구차하게 살아 있는가? 그의 시대는 나의 시대이기도 했으며, 그의 실패는 나의 실패이기도 했는데, 왜 그만 가고, 나는 여기 남아 있는가.

내가 그에게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는 치열했다. 이를테면 그가 권력이 청와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을 때, 나는 깊이 좌절하고 실망했으나, 생각하면 그것은 그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한계였다. 자본이 절대 권력이 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한계 앞에서 변절하거나, 세치 혀로 한계를 넘어갈 때, 그는 자기 방식으로 시대의 한계와 끊임없이 부딪혔고, 결국 좌절했다. 그가 곧 한 시대였으니 시대의 좌절이 그에게 치명적 타격으로 돌아온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보라, 한때 우리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가가 다른 것도 아니고 광주를 팔아 노벨상을 구걸하고 있을 때, 노무현은 모욕과 멸시 속에서 구차하고 더럽게 살기보다 깨끗이 파멸을 선택함으로써, 우리 시대가 비록 실패한 시대이기는 했으나, 적어도 비겁한 시대가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우리 시대가 오월 광주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듯이, 모든 새로운 시대는 죽음 위에서 잉태된다.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이 죽었으니 머지않아 운명의 여신은 그 핏값을 받기 위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자들이 그에게 적용했던 그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그들을 그리고 우리를 심판할 것이다. 그 심판을 피하려면 우리 자신이 정화되어야 할 것이니, 역사는 그렇게 쇄신되는 것이다.

뜨겁게 사랑했으므로 내가 미워했던 마음의 벗이여, 잘 가오. 그대 영전에 오래 참았던 울음 우노니, 그대 나 대신 죽어,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으리.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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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09.05.24

노 전대통령을 보내며/박범신<작가>

우리가 왜 이렇게 잔인해졌을까. 당신께서 그랬듯이...종일 책조차 읽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대통령을 해본 적도 없고 더구나 검찰에 불려가본 적도 없어 당신께서 당했을 고통과 번뇌와 굴욕감에 대해 충분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체 이게 뭡니까. 아무리 고쳐 생각해봐도 당신의 선택에 손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내가 아는 바,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곧은 분이셨고 가장 정직한 분이셨으며 가장 가장 깨끗한 분이셨습니다. 당신께서 이러저러한 비리에 연루되어 검찰에 불려나갈 때에도 나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어찌 나만 그랬겠습니까. 당신을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고 지금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아직껏 당신의 죽음에 대해, 깊고 고요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당신에게 이렇게 이퉁을 부리는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을 토끼몰이하듯 몰았던 정략적인 전선(戰線)에서조차 애절한 슬픔과 통절한 아픔의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는데, 정작 당신을 믿고 사랑했던 저는 깊은 슬픔에 잠기기에 앞서 당신께 자꾸 화가 납니다. ‘이러면 막 가자는 거지요?’ 대통령이 되시고 얼마 안돼 검사들과 대면한 토론에서 무례한 검사들에게 당신이 했던 말입니다. 솔직히, 너무 화가 나서 지금 이 말을 당신 앞에 들이대고싶은 심정입니다.

그렇다고 명예롭게 살고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기 바랐던 당신의 사람다운 꿈과 그것이 무너졌을 때 받았던 수모와 고통을 아주 모르는 건 아닙니다. 부끄러운 고백이거니와, 오래 전 젊을 때 저도 몇 번의 자살미수를 경험했습니다. 그 시절의 저는 세계로 가는 길을 찾지못해 고통스러웠습니다. 제 자의식으로 본 세계는 ‘광기’에 가득 싸여 있었고, 혼자였던 저는 그것과 맞서 제 자유를 지키는 길이 스스로 선택해 결행함으로 얻어지는 죽음밖에 없다고 감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사람’으로서의 삶이란 것은 ‘관계’를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고, 어둠이 깊을수록 불꽃이 더 뜨겁고 밝다는 인간의 위대한 향일성(向日性)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있으며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직껏 그 일을 죄스럽게 여기며 사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소소한 한 개인이 이럴진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아직도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당신은 하물며 어떻겠습니까.

물론 압니다. 한 인간으로의 당신에게 이런 말조차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야만성과 미친 욕망에 따른 수많은 가름과 이데올로기의 깃발을 높이 든, 그러나 알고보면 거의 ‘맹목적’인 증오심을 당신 혼자 지고 가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어찌하여 우리가 이렇게 잔인해졌을까요. 죽은 고기를 향해 달려들어 뼈만 남기는 하이에나적 문화는 도대체 언제 어디로 와서 우리들 가슴 속을 숙주로 삼았을까요.

‘대통령이 자살하는 이런 나라 정말 싫어!’
간밤의 어느 술집에서 한 젊은이가 내뱉은 말이 아직 귓가를 후벼팝니다. 당신께서 그랬듯이 저 또한 이 말 한마디가 폐부를 찌르고 덤벼들어 사실은 종일 ‘책’조차 읽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에의 결단은 완전한 패배, 혹은 완전한 승리를 위한 통절한 반역입니다. 매일매일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말을 떠올리면서 고통에 찬 인생의 대장정을 감행하고 있는 ‘우리’와 ‘이웃’들이 당신의 결단을 완전히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입니다. 또 이해하고나서 그것을 실행하여 완성할 때까지는 더 많은 역사적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살아남은 우리는 우리들의 미친 욕망에 대해 사람다운 고삐를 걸어야 하고, 우리들을 숙주로 삼은 정신병리적인 앙갚음과 증오심의 뿌리를 뽑아내야 하며, 아직도 가난과 편견 때문에 비인간적으로 살고 있는 우리의 이웃과 더불어 살아남아 ‘통일조국’을 만들어야 하는 수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직 편히 잠들라는 의례적인 애도의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의 죽음을 하루 빨리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애도의 말을 대신할까 합니다.

박범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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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군주 노대통령을 기리며/이정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한 지 며칠이 지났건만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다. 금방이라도 저쪽 모퉁이를 돌아 웃으며 불쑥 나타나실 것만 같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일지 모르지만 그분이 이 세상에서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는 건 정말 믿기지 않는다.

노 대통령은 많은 지지자와 많은 거부자를 동시에 가진 분이었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이유는 ‘바보 노무현’ 때문이다. 뻔히 지는 줄 알면서 출마를 고집했고, 고생길이 뻔한데도 옳은 길만을 걸어갔다. 그는 이익보다 정의를 추구했다.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찾아가자 혜왕이 묻기를, “선생께서 불원천리 찾아오셨으니 우리나라에 큰 이익을 주시겠지요?” 맹자의 답은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 노무현은 평생 이익 대신 약자에 대한 배려와 정의를 앞세웠다. 스스로 늘 손해 보고 패배했다.

노무현을 거부하는 이유 중에는 말실수와 학벌이 반드시 들어간다. 대통령은 자신을 학벌사회, 연고사회의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돛단배로 비유한 적이 있다. 그러나 학벌과 학식은 다르다. 노 대통령은 가난 탓에 학벌은 낮았지만 학식은 높았다. 아니 오히려 학자 군주에 비견할 만했다. 조선 왕조 500년 27명의 왕 중에 성군이 누구인가. 세종과 정조다. 세종과 정조는 엄청난 독서광이었고, 집현전·규장각을 설치해서 학자들과 대화했다. 그리고 백성을 진정 사랑했다. 노 대통령은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위원회를 설치해서 학자들과 대화했다. 정책을 만들 때도 인기보다는 논리적 타당성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정책인지를 먼저 생각했다. 특히 서민과 약자들을 생각했다.

나날이 긴장의 연속인 청와대 안에도 밥 먹고, 농담하고, 영화 이야기 하는 시간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 정도 여유 없이는 살 수가 없다. 이럴 때 노 대통령의 주요 화제는 역사였다. 동서양 여러 나라 역사에 대해 많은 질문과 이야기를 했다. 중국 최고의 현군으로 불리는 당 태종은 자신이 세 개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얼굴 보는 거울, 바른말 하는 신하 위징, 그리고 역사였다. 위징이 죽었을 때 태종은 오늘 거울을 하나 잃었다며 슬피 울었다. 노 대통령은 끊임없이 역사를 되돌아보려고 노력한 점에서 당 태종과 비슷했다. 직언을 잘 수용한 점에서도 비슷하다. “요즘 청와대에 위징이 너무 많아 일하기가 힘들어”라고 농담하던 노 대통령이었다.

봉하에 내려간 학자 노무현은 더 열심히 공부했다. 주경야독, 그야말로 평생학습의의 실천자였다. 그는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인가란 주제를 놓고 책을 쓰고 있었다. 올해 초 몇 달은 오로지 독서와 집필 말고는 다른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지난번 찾아뵈었을 때, “이 교수, 차비 대 드릴 테니 자주 오세요”라고 웃으며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노 대통령이 남긴 유서에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는 말이 너무 가슴 아프다.

아, 이런 훌륭한 대통령이 일찍이 있었던가? 퇴임 후 고향에 돌아가 농사짓고 책 읽는 대통령이 일찍이 있었던가? 부엉이바위에서 내려다본 내 집과 고향 마을은 과연 어땠을까?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는데… 후회가 가슴을 저민다. 좀더 자주 찾아뵐 것을. 이익보다 인의를 앞세웠던 그분이 그립다. 평생을 양심 하나로 살아온 그분이 그립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설운 님 보내옵나니 가시난닷 도셔오소서!

차비 대 드릴 테니 부디 돌아오소서!

이정우 경북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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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참말/유용주<시인>

비가 그치고 써레질 끝낸 논바닥에 찰람찰람 물이 들어찼습니다. 찔레꽃 피고 오동꽃 떨어지자 곧 모내기가 시작되었어요. 오와 열을 맞춘 어린 모들이 흔들리며 뿌리를 내립니다. 그 층층 다랭이 호수 속에는 나무와 풀 그림자가 들어 있고 해와 달과 산과 구름이 한껏 돛폭 부풀려 서쪽 바다를 향해 항해를 하고 있군요. 해오라기 한 쌍 노을에 되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묵언정진에 들어갔으며 바람은 삽을 씻고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주름살 계곡으로 쉼 없이 불어갑니다. 흙 묻은 장화를 털고 담배를 빼어 문 황토빛 얼굴에는 땅을 탓하지 않고 평생 삶을 경작해온 흥그런한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많이 굶고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밥그릇에 대한 경건한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럽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려 했던 당신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한 그릇 밥 앞에 눈물 흘려본 사람이기에, 밥이야말로 얼마나 치사하고 위대한 참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어둠 속에서도 거짓말할 줄 몰랐던, 진실한 말은 오히려 서툴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당신이기에, 어떤 바닥이든 가리지 않고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려는 물의 평등한 말씀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당신은 참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지요. 왜냐하면 참말만 골라 했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학교 나온 별 볼 일 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바보라는 별명, 그거 ‘바로 보다’에서 나온 말 아닌가요. 바로 보는 사람은 늘 손해 보기 마련입니다. 이익이나 대차대조표를 그렸다면 진즉에 때려치우고 떠났을 것입니다. 농부만큼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손해나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질 줄 알면서도 싸우는 선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삶에서 이기려고 기를 쓰고 덤벼든 우리가 당신을 떠밀었습니다. 더 편안한 삶을 위해 당신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하니뉴스]아주 떠나지는 말아요

바야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타박하는 시대입니다. 제 눈의 들보는 걷어내지 못하고 남 눈의 티를 의심하는 세월입니다. 저 하늘에 계신 하눌님과 땅속이 천국인 양 헤집고 노는 땅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삼천대천세계에서 헛된 죽음은 없는 거지요. 당신이 흘린 피는 물이 되고 불이 되고 공기가 되어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의 몸속으로 스며들 것이니, 여름 비바람, 가을 무서리, 겨울 폭설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흐르고, 세상 이야기가 다 쓰여지고 난 뒤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지금 다시 쓰여지고 있듯, 세상 사람들 다 죽어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해도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꿈틀 일어서듯, 당신의 참말은, 당신의 참행동과 실천은 끝내 다시 시작하는 후세들에게 뿌리내려 울울창창할 것입니다.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린 고드름처럼, 삶이란 올가미 앞에 절대 고독을 견디며 매달려왔던 당신의 손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거친 삶을 살아왔지만 뜻밖에 부드럽군요. 당신이 흘린 눈물, 세상 골목을 빠져나와 아픈 틈을 메우고 강물을 휘돌아 지금 마악 바다와 만나 뜨겁게 끌어안는 모습이 보입니다. 눈물은 말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모국어라는 것을 믿습니다.

유용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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