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5
[특별기고] 죽음으로 지켜야만 했던 양심
불과 1년3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보통사람으로 살려던 사람이, 가족과 함께 검찰의 조사에 시달리다가 높은 바위벼랑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사실을 두고, 지금 온 국민은 그저 경악할 뿐이다. 한동안 온 세상이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검찰의 처분을 앞둔 전직 대통령의 자살을 두고 지금의 국민들은 그저 할 말을 잊고 있을 뿐이지만, 그런 총망 중에서도 이 참혹한 사실이 외국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직업 탓인지 모르지만 후세의 역사는 또 이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의 처분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을 추모하고 진혼하는 말을 찾기가 정말 어렵지만, 아무도 원망하지 말라고 한 유언을 생각하면서 그의 5년 치세가 가진 역사성을 미리 말해보는 것도 추모와 진혼의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60년을 넘어선 우리 공화주의시대를 담당했던 각 정권들에 대해 그 역사적 업적을 평가하는 기준을 생각해 보면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각 정권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민주주의를 얼마나 신장시켰는가 하는 점이며, 또 하나는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민족으로서 각 정권들이 민족의 평화통일 문제에 얼마만큼의 진전을 이루었는가 하는 점이다.
참여정부이고자 했던 노무현 정부는 김영삼·김대중 정부에 이어서 국민의 정치적 권리를 신장시킨 점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 그리고 ‘좌파정권’이란 평을 받으면서까지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루고자 노력했으며, 사회적 평등을 확대하는 정책과 사상 및 문화면의 자유를 확대하는 일에도 인권변호사 출신 정치인으로서의 구실을 다하려 했다고 평가될 것이다.
타민족의 식민지배나 제민족의 군사독재를 겪은 민족사회는 반드시 그 불행했던 시기에 저질러진 부끄러운 과거사를 청산함으로써만 문화민족사회의 반열에 들게 마련이다. 군사독재정권의 독소를 제거하기에 바빴던 김영삼·김대중 정부가 미처 손대지 못했던 과거사청산사업을 노무현 정부가 시작함으로써 민주정권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한편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가 개척한 평화통일정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임기 말기이긴 했지만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개성공단 이외에 몇 곳의 공단건설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분단민족사회의 경우 민주정권이면 반드시 추진해야 하는 평화통일정책면에서도 노무현 정부는 제 할 일을 다한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 공화주의시대 정권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 기준이 정치·경제·사회·문화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통일사업의 진전임을 후속 정권이 알게 되면,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이 실천될 것이고 민주주의도 지금보다 훨씬 진전됨으로써 노무현 정권의 업적이 되살아나게 될 것이다.
무난한 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한 업적을 남긴 대통령중심제 정권의 최고담당자가 자살한 사실을 두고 지금 사람들은 모두 할 말을 못 찾지만, 후세 역사의 정당한 평가를 기대함으로써 고인을 추모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민주주의 신봉자로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주의자로서, 검찰의 처분을 기다리게 된 전직 대통령으로서 귀중한 양심을 지키는 길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길밖에 없다는 처절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현실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자신의 말처럼 “결코 굽히지 않고 살아 있는 양심”,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었던 그 양심을 죽음으로 지켜야만 했던 고인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 유족에게도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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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6
[특별기고]사지로 내몬 ‘빨대 검찰’과 언론
2007년 12월28일, 당시 이명박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전임자를 잘 모시는 전통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지켜졌다. 노 전 대통령이 몸을 던진 지난 23일, 이 대통령은 비서관들에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긴급 지시했다. 드디어 전임자를 잘 모셔도 될 때가 왔다고 판단한 걸까? 이 사건을 보며 머릿속으로 고대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남긴 기록이 떠올랐다.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가 이집트의 왕 사메트니우스를 붙잡았을 때, 그는 이 포로에게 모욕을 주고자 했다. 캄비세스는 페르시아의 개선행렬이 지나는 거리에 사메트니우스를 세워두라고 명령했다. 사메트니우스는 자신의 딸이 물동이를 인 하녀의 모습으로 제 앞을 지나는 것을 봐야 했다. 모든 이집트인이 이를 보고 슬퍼했지만 사메트니우스만은 눈을 땅에 떨어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 아들이 처형당하기 위해 행렬 속에 함께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로행렬에서 자신의 하인 가운데 하나를 보는 순간, 그는 손으로 머리를 치면서 가장 깊은 슬픔을 표했다.”
세세한 차이만 있을 뿐, 우리가 본 것은 수천년 묵은 이 고대의 관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마치 전쟁을 치르듯 정치하는 나라라서 그럴까?
임기를 마친 것은 패전이 되었고, 퇴임한 대통령은 포로 취급을 받았다. 포로가 된 대통령은 먼저 측근들이 줄줄이 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봐야 했다. 승자들은 그의 눈앞에 포박한 아내를 데려다 놓고 실실 웃으며 ‘자기를 구하려고 아내를 버리느냐’고 모욕을 퍼부었다. 법적으로 싸워보겠다던 그의 가냘픈 의지도 행렬 속에서 마침내 자기의 아들과 딸을 보는 순간 꺾이고 말았다.
촛불정국으로 현직 대통령의 인기는 바닥을 헤매고 전직 대통령의 인기가 날로 높아만 가고, 친노가 재결집한다는 소문이 떠돌던 지난해 여름. 수사는 연임을 앞둔 전 국세청장이 특별세무조사로 4개월 동안 태광실업을 털어 얻어낸 정보를 대통령에게 직보함으로써 시작됐다. 세무조사 앞에 붙은 ‘특별’이라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특별’한 뜻을 갖는다. 검찰은 인원을 두 배로 늘려 전직 대통령 주변을 몇 달에 걸쳐 먼지 털듯이 털었다. 국정원에서는 때맞춰 억대의 시계 얘기를 흘렸다. 금속탐지기를 갖고 봉하마을로 쳐들어가자는 얘기까지 나왔다.
포로를 처형할 것이라면 단숨에 할 일. 하지만 검찰은 그동안 이른바 ‘빨대’를 동원한 교묘한 언론 플레이만 해왔다. 검찰은 고슴도치인가? 온몸에 빨대를 꽂은 모양으로 내용물을 줄줄 흘리고 다녔다. 이를 보다 못한 누군가가 검찰청에 빨대 한 상자를 택배로 보내는 퍼포먼스를 했다. 고양이가 참새를 잡아놓고 이리저리 장난을 치듯이, 수사를 끝내놓고 구속 카드와 불구속 카드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리기를 무려 한 달. 마침내 참혹한 사태가 벌어어자 이제 와서 낯 두껍게 “원래 불구속 기소하려고 했다”고 인간미를 자랑한다.
검찰-빨대-언론은 혐의를 사실로 확정했다.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이미 판결은 법정 밖에서 내려졌다. 보도를 보니 “확실한 물증을 수사팀에서 확보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서 주변을 괴롭히며 압박하고 들어가 강제로 자백을 유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검찰은 무리한 수사라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백번 양보를 해 검찰에서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자. 그 경우 더 큰 문제가 남는다. 증거는 언론이 아니라 법정을 위한 것인데, 왜 언론 플레이로 전직 대통령을 망신주는 정치적 기동을 해야 했는가?
“미안해하지 말라.” 권양숙 여사를 향해 한 말인 것 같다. 가족이 돈을 받았어도, 어차피 도덕적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돌아간다. 물론 도덕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엄연히 다르나, 평소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던 자신이 이제 와서 법과 도덕은 다르다며 변명을 하는 것 자체가 구차한 일. 그렇다고 변호를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그 일에 당신 개인만이 아니라 개혁세력 전체의 명예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변호하면 검찰의 올가미가 주변과 가족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옥죄여 들어온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고향에서조차 유배생활을 해야 했던 그 분은 몸을 날려 정치 없는 세상으로 날아가셨다. 이것을 ‘서거’가 아니라 ‘자살’이라 불러야 한단다. 그래, 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라 불러야 한다.
커다란 슬픔과 뜨거운 분노로 그 분을 보낸다. “원망하지 말라.” 그래, 우리는 저들을 용서하자. 그러나 결코 잊지는 말자.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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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7
[특별기고]한 이상주의자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하일지/소설가
지금 우리는 이 민족 반만년 역사를 두고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 서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스스로 몸을 던져 서거한 것이다. 오늘 이 끔찍한 역사적 참사를 목도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누가 그분을 그 참혹한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하는 데 대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증언할 것인가?
일찍이 데카르트는, 비록 지성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판단의 면에 있어서는 저마다 자기가 훨씬 우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비록 지적으로는 남들보다 떨어진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변별력에 있어서는 각자가 모두 완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양식(良識)이라는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인류역사는 양식을 가장한 범죄를 끊임없이 저질러왔다. 수많은 유대인들을 독가스실로 몰아넣으면서도 히틀러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었을 것이고, 수많은 광주 양민을 학살하고 집권했던 사람도 죽는 날까지 자신은 도덕적으로 옳다고 믿을지 모른다. 수많은 전과 기록을 가진 대통령마저도 말끝마다 ‘법과 원칙’을 내세우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질 때까지 지난 수개월을 돌이켜보면, 사람들은 어지러울 만큼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근엄한 검찰은 정의감에 찬 표정과 목소리로 ‘빨대’짓을 했고, 굶주린 하이에나 같은 언론은 빨대 소리를 확대 재생산했고, 말 잘하는 정치인들은 고인을 향하여 악의에 찬 독설을 퍼부어댔다. 신바람이 난 보수 논객들은 온갖 말로 그를 모욕했다. 그런데 그들이 뱉어내는 그 많은 말들을 가만히 듣다보면, 그들 자신이야말로 완벽한 도덕적 변별력을 가지고 있다고 경쟁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양식을 가장한 그들의 언어 폭력은 한 고독한 이상주의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상주의자였다. 그는 이 민족이 나아갈 길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지역주의를 타파하려 했고, 권력을 만인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려 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려 했고, 남과 북으로 갈린 이 민족이 나아갈 길은 호혜(互惠)의 원칙밖에는 없다고 판단하고 그것을 실천하려 했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당당한 자세로 대미관계를 재정립하려 했다. 그의 이런 이상은 우리의 아이들을 위하여,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반드시 실현해야만 하는 가치였지만, 사사건건 기득권자들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도는 오래 전에 부동산 투기꾼들이 사놓은 황무지에다 매화를 심고 있는 것만큼이나 무모했던 것이다.
기득권자들의 눈으로 본 그의 이상주의는 확실히 위험했을지 모른다. 그가 기도하는 이상 하나하나는 곧 기득권자들의 권리를 밑바닥부터 허물고 있다는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을 테니까 말이다. 고향으로 돌아가 평범한 농부로 여생을 마치려 했던 그의 그 소박한 ‘낭만적 이상주의’마저도 이 땅의 기득권자들은 허락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고독한 이상주의자의 죽음 앞에서 나는 문득 이런 시를 떠올린다.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는 오랩 동생을/ 죽어서도 못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소월의 ‘접동새’)
누나를 죽음으로 내몬 의붓어미마저도 자신은 손톱만큼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니, 이산 저산 옮겨가며 섧게 울고 있을 한 불쌍한 이상주의자의 울음 소리가 귓전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만 같아서 이 글을 쓰면서 나 또한 서럽게 울고 있다.
죽음으로 증명해보인 그의 결백을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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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9
[특별기고]미워하고 사랑했습니다…안녕히, 안녕히 가세요
신경숙/소설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추도사를 써 달라는 청에 나는 못 쓰겠다 했다가 다시 쓰겠다 했습니다. 충격이 너무 커서 못 쓰겠고, 그래도 고이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에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신 날 아침에 나는 제주도의 우도로 들어가기 위해 천진항에 있었습니다. 배를 타기 위해 표를 끊고 잠시 틈이 나 대합실에 켜놓은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소식을 알리는 자막이 떴습니다. 눈이 나빠 흐릿한 글씨를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먹먹한 마음으로 TV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내가 잘못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읽은 글씨가 분명 당신의 죽음을 알리는 문장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머리가 펑 소리를 내며 터져버리는 듯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오가는 이른 아침의 분주한 낯선 항구 대합실의 모든 움직임이 정지해버리고 세상이 하얗게 보였습니다. 배를 놓쳤고 그 다음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그 공동상태는 계속 되었습니다. 우도에 도착해 네 시간쯤 섬을 걸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섬에서 보는 바다는 아름다웠고 섬사람들은 마늘밭에서 땅콩밭에서 그리고 해안에서 생업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늦은 오후 섬에서 다시 나오는 배 안에서 눈이 시렸습니다. 다 알겠는데…그럴 수밖에 없었던 당신의 마음은 넘치도록 다 알겠는데…그래도 그래도 그러시면 안 되지요…혼자 웅얼거렸습니다. 충격을 헤치고 그제서야 비통한 마음, 그제서야 원망스러운 마음, 그제서야 자책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개인적으로는 정치인에게 처음으로 은행까지 찾아가 후원금을 내게 했던 존재입니다. 그게 어디 나뿐이겠습니까. 당신은 권위와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를 느끼게 해주었던 정치인입니다. 당신이 아슬아슬하고 위험해 보여 근심스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내는 당신이 한 인간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지닌 꿈을 이루어 나가기를 바랐습니다. 그게 어디 나뿐이겠습니까.
당신 곁엔 어린아이들, 젊은 친구들, 사회적 약자들, 서민들이 울타리처럼 서 있었습니다. 아직은 힘이 없는 그들이 미래를 걸고 지지하는 분이라 당신이 희망으로 보였습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당신이 지닌 올바름을 지지하는 이들이 숱하게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의지할 순 없었는지요. 오류가 있다고 해도 그 오류마저도 껴안고 딛고 일어설 수는 없었는지요. 그 일까지 해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어려운 일이었을 테지요. 그래도 힘든 길만을 자처해서 갔던 당신이었으니 그런 힘도 있었으리라, 끝끝내 남는 이 미련 때문에 지난 며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어디 나뿐이었겠습니까.
언젠가 혹, 당신을 조우하게 되면 내가 내 독자들에게 써주는 말, 꿈을 이루라는 그 말을 당신에게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모욕과 오류의 시간마저도 견디고 그 위에서 또 다시 당신이 품었던 꿈을 하나씩 이루어 나가시라고.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과도 닿아 있을 거라고. 그런 말을 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군요.
이제 미워했던 마음도 사랑했던 마음도 내려놓습니다. 오로지 당신의 마지막 마음만을 생각합니다. 그 벼랑 끝의 고독과 번민만을 생각합니다. 당신이 그리 될 때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만 생각합니다. 당신이 없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자라나고 청년들은 늙겠지요. 꽃은 피어나고 나비는 날아다니겠지요. 당신은 참으로 가여운 분이십니다. 당신의 일생을 격렬하게 뒤흔들었던 이루지 못한 꿈들을 내려놓고 이제 편히 쉬시기를. 당신을 보내는 저 눈물의 마음들도 잊으시고 가벼워지시기를.
그리고 부디 안녕히 또 안녕히 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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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9
[특별기고]한 사람만이 울 수 있다
방현석/소설가
노무현 대통령이 떠났다. 더불어,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지난 한 주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100만명이 봉하마을을 찾았다. 수백만명이 전국 곳곳의 분향소를 조문했다.
그를 떠나보낸 다음에야 우리가 느끼는 이 슬픔과 충격의 실체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덕수궁 앞에 마련된 시민 분향소를 찾아 네댓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는 시민들은 말이 없었다. 빈 시청 광장을 경호하기 위해 삼엄하게 포진한 경찰 버스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입술을 깨물었다. 덕수궁 귀퉁이 노상에서 조문객을 맞이하는 그의 영정 앞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는 그가 선, 그가 섰던 자리를 확실히 보았다.
사람들은 그를 승부사라고 말했으며, 그의 죽음을 그가 던진 마지막 승부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만든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르지 않고 자기 자신의 길을 간 비주류였을 뿐이다. 주류 사회의 내비게이션은 그럴 때마다 경로를 이탈했다고 반복하며 유턴을 요구했다. 승부를 청한 것은 죽어서도 광장을 차지하지 못하고 주변부로 밀려나야 한 그가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 아무도 모르지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목숨을 던져서 증명하려고 했던 것은 자신의 진정과 결백이 아니라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던’ 한 시대의 진정성이었다. 1980년대에 장전된 더 나은 가치를 위한 용기와 희생의 에너지는 마지막 열정으로 노무현의 시대를 만들었지만 더 이상 그것을 밀고 나갈 여력이 없었다.
노무현 시대에 출현한 새롭고도 성숙한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은 강금원 회장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난 시대에 지불한 채권을 회수해갔지만 여전히 역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그 아주 드문 사람이 강금원이었다.
전라도에서 태어나 공고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사업을 했던 그는 지역 차별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정치인 노무현이 편승하기만 하면 되는 국회의원 자리를 버리고 지역주의와 정면대결을 선언했을 때 그는 노무현을 찾아가 후원 의사를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에게 눈곱만큼도 신세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날 이후 그는 노무현을 변함없이 후원했다. 노무현으로부터 사랑이 아닌 존경을 받았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단 한 치의 사업도 확장하지 않았다. 그가 권력을 업고 하려들면 재벌 기업으로 발돋움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권을 챙기는 대신 자기 재산으로, 노무현을 위해 뛰다가 백수가 된 사람들의 생계비를 일일이 지원해주었다. 잘못된 돈을 받고 사고 칠까봐.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에 강금원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퇴임 후 대통령 옆에 누가 남아있는지 두고 봐라. 지금은 모두가 다 인간적 의리를 지킬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강금원 같은 이가 열명만 있어도 노무현 정부가 능멸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이가 백명만 있어도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정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며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이들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어제, 강금원 회장 외에 아무도 울지 않았기를 바랐다.
이 참극에 대해 책임이 있는 이는 자책감에 빠진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더 나은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이 이제 우리 앞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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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29
[특별기고]‘우리의 대통령’을 떠나보냅니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운동가들을 돕고 그들과 더불어 스스로 운동가가 되었던 당신이었습니다. 또한 그 선두에 서서 독재의 탄압에 저항하고 그들의 잘못과 비겁함을 질타했던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감동케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거듭되던 낙선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지역 주민들에게 한결같은 의리를 보여주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 당당함으로 수많은 서민들과 사람들의 마음을 결집시키고 그 의지를 대표했던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불편하게 했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재임 당시 당신이 선택했던 정책에 우리는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의 비판에도 멈추지 않았던 당신의 언행은 우리를 화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너무나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임을 압니다. 언제나 약자들과 서민 편에 서고자 했고, 기득권과 특권에 저항했고 그것을 거부했던 당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완전함도, 그 불완전함도 다 드러냈던 당신이었습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은 끝났습니다. 퇴임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던 정치적 음해와 보복 속에서도, 그리고 부패의 논란 속에서도 당신은 자신의 목숨으로 그것마저 다 감싸 안았기 때문입니다.
김구 선생님의 죽음이 이루지 못한 통일조국의 비원을 보여주었듯이, 전태일 열사의 죽음이 노동자도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인간임을 깨우쳐주었듯이, 당신의 죽음은 약자와 서민들도 당당하게 대우받는 참된 민주주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려주었습니다.
평화와 무념의 저세상에서 이제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남겨놓은 짐은 저희들이 떠맡겠습니다.
<정해구|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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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안녕, 우리들의 노짱
흐린 눈으로 당신의 서거 소식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믿을 수 없었습니다. 황혼녘에야 날기 시작한다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도,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에트나 화산에 몸을 던진 엠페도클레스도 아니건만, ‘바보 노무현’이 그토록 허망하게 우리의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우리세대의 청춘
그렇습니다. 당신은 삶을 종결짓는 그 순간조차 바보다운 엄격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서 치욕을 견디며 노회하게 와신상담하는 정치가의 모습을 요구하는 일은 어쩌면 모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바보 노무현’은 국회의원답지 않게 비열한 증인에게 명패를 집어던지고, 품위를 고려하지 않는 구어체의 직설화법을 즐기며, 아내를 버리느니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반문하는 그런 정열이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당신의 그런 비정치적 면모를 사랑하고 열광하기까지 했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흔해 빠진 정치인다운 경륜과 품위와 때로는 정략적 사고도 요구하는 이중구속에 가까운 요구를 당신에게 해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보 노무현’에 대해서는 열광했지만, ‘정치인 노무현’에 대해서는 싸늘했으며, 당신이 막다른 고민의 장막 안에서 괴로워할 때에도, 세속적인 우리들은 ‘어떤 반전의 카드가 있을 거야’ 하는 식의 정략적 사고에 도리어 익숙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를 떠나가는 것과 동시에 우리 세대의 청춘도 종언을 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회고해 보니, 우리의 삼십대는 당신과 함께 시작했고 저물었습니다. 당신의 대통령 선거 전날, 우리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한나라당에 가 있는 한 정치인의 배신 앞에서 우리는 절망했으며, 그래서 밤을 새워 가족을 이끌고 투표장에 가는 오기를 부리기도 했지요.
그렇게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지만,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은 도처에 가득했습니다. 촛불을 들고 우리는 다시 광장에서 응원했고, 당신은 다시 대통령의 자리로 귀환했지만, 대체로 당신은 무기력해 보였습니다. 애초에 당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기득권 세력들의 조롱의 언어는 더욱 우악스러워졌고, 당신이 ‘바보정신’을 저버렸다고 비판하면서 지지에서 냉소로 전향하는 사람들도 늘어만 갔습니다.
당신이 한나라당에 통째로 권력을 내놓을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저도 분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노무현은 한 개인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열망이었고, 그 열망에 부응하는 일은 정치 민주화와 경제 민주화 모두를 실질적으로 완성시키는 데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직에서 은퇴한 당신이 다시 ‘바보’의 자리로 돌아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다는 사실은 분명한 희망이었습니다. 저는 당신의 그 소탈한 귀향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민했다는 ‘진보’에 대한 암중모색이 열매 맺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러나 이 괴상한 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정치적 기후는 암담하고 또 절망적이었습니다. 봉하로 몰려가고 있던 시민들은 당신에게서 희망의 근거를 찾고 싶어 했고, 이 정부는 그것이 소름끼치게 두려웠을 것입니다.
못다이룬 그 열망 완성하렵니다
고백하건대, 당신의 정치인생 시작과 우리 청춘의 시작은 죽음으로 충만했습니다. 20대가 시작되자마자 강경대가 죽었고 김귀정이 죽었으며 박승희가 죽는 식으로, 우리의 청춘은 비만한 죽음으로 시작되었죠. 30대의 끝에서 당신의 죽음에 다시금 직면했으니, 저와 같은 세대는 청춘의 시작과 종언이 온통 죽음으로 가득차 있는 셈입니다.
우리의 청춘기는 사실상 죽어간 친구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존재는 그런 납덩어리 같은 부채의식과 시대에 대한 책임감이 찾아낸 열망의 형식이었습니다. 이제 30대의 끝에서 당신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부채감은 우리 삶의 본질이 된 셈이지만, 희망은 더욱 단단해져야겠습니다. 당신이 그곳에서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안녕, 노짱.
<이명원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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