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상복보다 더 시키먼 조중동의 속내 |
[분노의 기억] |
<조선일보> 제호 아래, 5월의 폭우를 맨몸으로 맞고 선 봉하마을 추모객들의 먹물 같은 표정 사진은 당신 심장 안으로 삼투압되던가? <동아일보> 호외판 1면 가득 실린 망자의 얼굴 사진을 보며, 30m 바위 아래로 자유낙하해 ‘쿵’ 하고 마침표를 타자(打字)한 어느 굴곡진 삶의 중력가속도가 당신 가슴에도 와서 울리던가? “그분이 다 안고 가셨는데 이젠 싸움 그만해야”라고, 자갈치 아줌마의 회한을 생선 토막 치듯 집자(集字)해 ‘화합과 단결’의 메시지로 재구성한 베를리너판 <중앙일보> 1면 고딕 제목을 볼 때, 당신도 자살 너머 망자의 유훈을 서늘하게 대면할 수 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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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함에 영민함 더한 지면의 흔적
당신이 이들 신문을 보면서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면 그건 당신 탓이 아니다. 최근 ‘노간지’ 사진들을 보거나 블로거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던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원인은 그들 신문 안에 있는 게 확실하다. 조·중·동의 애도에는 당신의 공감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게 무얼까?
‘애도’(哀悼)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라고 나온다. 동사의 품성을 지닌 이 명사는 ‘감정’과 ‘행동’ 사이를 아득하게 열어놓는다. 사람의 죽음을 대하니 저절로 슬퍼지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슬퍼하는 격식을 애써 갖추는 것일 수도 있다. 조·중·동에 슬픔의 진정성이 조금이라도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슬픔에 관한 한 ‘행동’이 ‘감정’에 선행했고, 그보다도 먼저 셈 빠른 계가(計家)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이라는 난감한 사태를 접하고 숙달된 본능으로 영민하게 계산부터 했을 것이다. 지면에는 그 ‘난감함’을 ‘영민함’이 서둘러 뒤좇아간 자국들이 선명하다. 그들의 숙달된 본능은 하나의 계보도에서 유래한다.
언론이 자살을 다루는 방식은 대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름 없는 과객이 지하철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는 일단 앞에서 사건 발생 개요를 정리한 뒤, 한 문장으로 된 자살 동기 분석과, 역시 한 문장으로 된 열차 운행 지연 사실을 병렬 배치하는 방식이 정형화돼 있다. 자살한 사람에게는 제가끔의 동기와 심리상태가 있기 마련이지만, 언론은 그 동기를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몇 가지 제한된 범주 가운데 하나에 기계적으로 배치한다. 생활고 비관, 성적 비관, 신병 비관, 실연 비관…. 자살 동기는 철저히 ‘개인화’하고, 사회적 맥락을 짚는 일은 거의 없다. ‘사회화’되는 것은 오직 ‘열차 운행 지연’이라는 공중에게 분산된 피해뿐이다. 이런 보도 방식은 최근 택배 노동자 고 박종태씨의 자살을 다루는 데도 그대로 연장된다.
천금 같은 사람 목숨과 길어야 몇십 분인 열차 운행 지연이 하나의 천칭저울 위에 올려지는 이런 유사 공리주의적 시각은, 그러나 유명 연예인의 자살을 만나면서 180도 뒤집어진다. 조문 오는 동료 연예인들 모습 사진 한장 한장까지 뉴스로 다루는 방식으로, 언론은 한 개인의 죽음에 과도하게 몰입한다. 이름하여 ‘조문 저널리즘’이다. 이 과정에서 자살 동기와 관련해 온갖 추론이 쏟아지고, 추론들은 다시 대중의 ‘쑥덕공론’과 괴소문으로 확산되며, 언론은 그걸 받아 다시 보도하는 확대재생산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살한 개인의 존재감은 지하철 투신 자살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살아서 상품으로 유통됐던 연예인은 죽어서도 여전히 소비 대상일 뿐이다. 드물게 나오는 애도 표현조차 마케팅 용도를 넘어서는 법은 없다.
자살 동기는 일단 개인화하고 본다
연예인의 자살이 상품화를 넘어 첨예한 정치·사회적 이슈가 되는 경우도 있긴 하다. 고 최진실씨가 자살하자 정부·여당은 일명 ‘최진실법’을 도입하겠다고 나섰다. 이 법의 핵심은 고소·고발이 없어도 수사기관이 사이버상의 글의 모욕성 여부를 수사해 기소할 수 있도록 하는 사이버 모욕죄다. 일부 언론은 두 손 들어 환영했다. 그러나 최진실씨의 상장례(喪葬禮) 전 과정을 샅샅이 생중계했던 것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듯이, 최진실법도 그녀의 넋을 달래기 위한 제도는 아니다. 공권력이 사이버 여론을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손에 쥠으로써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을 것은 자명하다. 최진실씨의 죽음은 상업적 목적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도 ‘활용’됐다. 그녀의 자살을 악성 댓글 탓으로만 돌린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에게 ‘자살 동기 규정’은 그 자체로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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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연예인이면서도 고 장자연씨 자살 사건은 거꾸로 언론의 보도 행위가 매우 자제(?)된 경우다. 특정 언론이 사건에 연관된 것이 이런 이례적 상황이 연출된 직접적 배경이었다는 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우화만큼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살한 연예인의 사생활을 저인망 쌍끌이로 바닥까지 훑어 상품화하는 것도, 정반대로 유통 자체를 틀어막는 것도 모두 언론 자신이다. 특히 장자연씨 자살 보도(또는 보도 통제) 행태는 한 개인의 자살 동기를 철저히 개인화하는 보도가 그저 저널리즘의 기법 문제를 넘어선 것임을 암시한다. 개인의 자살은 외부와 연관된 ‘사회적 타살’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언론도 거기에 얼마든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거나 개입될 수 있다. 따라서 자살 동기를 한사코 개인화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는 정치적 맥락에서 읽어내야 한다.
언론이 자살을 다루는 방식은 대상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 같지만,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첫째, 자살 동기를 개인화한다는 것, 둘째 특정한 목적에 따라 담론을 주조한다는 것인데, 둘 다 언론이 그 자살과 맺고 있는 관계(연관·개입)의 결과물들이다. (최진실씨 자살 보도의 경우 그녀의 죽음을 특정한 목적 아래 복무시켜 사회적 의제로 전치한 예외적 사례처럼 보이지만, 개인화가 개인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배제’의 논리와 ‘소외’의 양태라는 점에서 숨진 최진실씨 자신에게는 같은 결과로 나타난다.) 언론의 자살 보도는 이들의 함수관계에 ‘자살자가 누구냐’라는 변수를 대입해 이뤄지는 변주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보도도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노 전 대통령 자살의 가장 큰 특징은 ‘서거’로 규정된 사건의 ‘사이즈’다. 언론도 자주 접하기 힘든 초대형 사건이다. (사건의 크기가 커질수록 언론의 ‘선택권’은 제한되고, 일단 보도부터 해야 한다.) 그 압도적 크기가 모든 언론에 당혹감 속에서도 애도부터 표명할 수밖에 없게 한 요인이다. 방송들은 서거 당일 곧바로 특집을 편성해 사건 초반 고만고만한 팩트들을 돌려가며 종일 방송을 쥐어짰다. 많은 신문들이 방송과 인터넷보다 훨씬 느리면서도 제작 공정은 번잡하고 도달 범위마저 좁은 호외를 발행한 것도 적극적으로 애도를 나타내기 위한 ‘미장센’이라고 볼 수 있다.
호외 발행은 애도 드러내려는 미장센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단순히 초대형 사건이 아니라 전형적인 ‘정치 사건’이다. 언론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은 정치적 맥락이 있고, 앞에서 말한 대로 자살 사건은 크든 작든 그 맥락성이 도드라지지만, 노 전 대통령 자살 사건은 맥락적인 정치성을 뛰어넘어 ‘정치’ 자체를 직접 지시한다. 그리고 언론들은 예외 없이 그의 자살에 어떤 식으로든 정치적으로 깊이 연관돼 있다. 개중 조·중·동은 그의 정치인생 전반에 걸쳐 가장 적대적 관계에 있었으며, 그의 자살과 직접적인 인과관계에 있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정황을 피의 사실로 확정해 대서특필하는 데 앞장서왔다. (이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한국 언론은 거의 없다. 특히 지난해 사장이 강제 교체된 뒤 빠르게 관제방송화하고 있는 한국방송은 조·중·동과 함께 추모 시민들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이 글 안에서 ‘조·중·동’의 현재적 의미는 ‘조·중·동·K’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노 전 대통령이 자살 전 가장 가슴 아파했다는 ‘명품시계’ 사건 보도는 검찰과 언론이 합작해낸 의제 가운데 단연 걸작이었다.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수사기관의 발표와 언론 보도에 확정판결 전 무죄 추정의 원칙과 피의 사실 공표죄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지는 심각한 논쟁거리이지만, 검찰이 공식 발표 대신 특정 언론에 추문 성격의 의혹을 슬쩍 흘리고, 언론은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이를 대서특필하는 ‘짬짜미’ 관행은 논쟁 대상에서도 예외다. 명품시계 보도도 검찰 발표가 아닌 검찰 내부 ‘빨대’(취재원을 가리키는 언론계 은어)가 한국방송 기자에게 얘기를 흘려 나온 것이다. 검찰 수사 책임자도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빨대”라며 ‘색출’을 다짐했듯이, 이같은 검찰과 언론의 ‘부창부수’는 도덕성과 청렴의 이미지를 가진 노 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을 절단하려는 정치적 공격이었다.
그 뒤 언론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정 보도를 이어갔다. 그 백미는 지난 4월24일 <조선일보>가 장식했다. 그동안 ‘P’라고만 보도됐던 시계가 ‘피아제’였다며, 1억원대 피아제 시계 사진과 함께 국내에 5~6개밖에 없는 모델이라고 밝혔다. 기사 하나만 놓고 보면 <조선일보>의 표현은 절제돼 있다. 그러나 다른 관련 기사들과의 맥락에서 보면, 모델의 희소성을 강조함으로써 기호학적 함의는 빵빵한 풍선처럼 잔뜩 부풀어 있었다. 이를테면 이 기사는 컷과 컷을 이어붙여 서사적 이미지를 창조하는 ‘몽타주’라는 영상편집 기법이 발휘된 기사다(<조선일보>는 지난해 촛불정국 때 문화방송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편에 대해 ‘몽타주 기법을 악용한 거짓 선동’이라고 공격한 바 있다).
검증 불가능하게 된 희화화한 가십들
‘공소권 없음’으로 검찰이 수사를 종결해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600만달러에 대해 알았는지, 대가성이 있었는지는 물론 명품시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가려줄 사법적 절차도 모두 중단됐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부부를 희화화한 가십들도 영영 진실 검증이 불가능하게 됐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망인이 되고 난 뒤, 그가 생전 동창생들에게 “억대 시계는 본 적도 없다. 박연차 회장이 자신의 비서실장을 형님(노건평씨) 집으로 보내 회갑 기념으로 대신 전달해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뿐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건평씨 부인의 전화를 받은 권양숙씨가 “되돌려주든지 형님이 가지시라”며 거절했다고 한다.(<한국일보> 5월27일치 “동창생들 ‘억대 시계 본 적도 없다고 억울해해’”)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이 ‘정치적 타살’로 읽힐수록 언론은 난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난처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언론 자신에게서 나왔다. 그것이 바로 ‘애도 저널리즘’이다. 모든 언론이 일시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고 나섰다. 조·중·동도 뒤질세라 의관을 갖추고 지면을 통한 조문 행렬의 맨 앞에 섰다. 그러나 언론의 애도는 그 대상이 누구든 자신을 위한 정치적 계산을 자락에 깔고 있다. 특히 자살자의 죽음에 연관된 흔적을 가리는 데 애도 저널리즘은 교묘하게 활용된다. 그들의 조사(弔詞)는 고인의 몫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한 어지러운 방언이자 주술이다.
<조선일보>는 “노 전 대통령이 편히 잠들 수 있게 하자”면서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다. 그런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죽음이 또 다른 정치적 혼란이나 사회적 갈등을 부르고 국민 사이에 대립과 분열이 격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5월25일치 사설)라고 주장했다. 청자가 특정되지 않은 유서이니 해석의 여지가 큰 게 사실이지만, 죽음을 앞둔 고인의 심경을 이처럼 ‘초현실적’으로 번안하는 짜깁기 재주가 놀랍다. 세상 민심이 뜻대로 가지 않으니 공포 섞인 신경질도 부른다. “고인이 편히 쉬도록 국민장을 화합과 통합의 장(場)으로 만들어야 한다. …‘검찰과 정권 그리고 일부 언론의 합작 살인’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한 망발이다. …정부가 주눅이 들어 일부 과격세력에 휘둘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큰일이다.”(<동아일보> 5월28일치 사설)
조·중·동은 한사코 고인의 죽음에서 정치적 맥락을 지우라고 요구한다. ‘탈정치화’의 기획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펼칠수록 그 자체가 고도의 정치 행위일 수밖에 없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일생에 걸쳐 축적한 메시지를 온전히 지워버리고 저승에서 그저 1인분으로 편히 살도록 하자는 개인화 전략이다. 남은 사람들은 기억을 모두 지우고 오로지 생로병사와 윤회의 헛헛함에 대해 슬퍼해야 한다고 겁박한다. 고 장자연씨의 자살에 대해 그러했듯이 죽음과 관련된 어떤 사회화도 용납할 수 없단다. 당신들의 애도는 ‘배설’일 뿐 ‘표출’이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강요 또는 공포 섞인 신경질
이들에 비하면, 고인의 죽음에 대해 입에 담기 힘든 망발을 서슴지 않는 극우 논객들은 구순기 발달 단계도 거치지 못한 자의 인정 투쟁이거나 그저 튀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처세술의 달인이려니 싶어 그나마 측은함이라도 든다. 누가 그들의 얘기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이겠는가. 그저 자기들끼리 학예회 수준의 죽음의 굿판을 벌이라고 놔둬도 된다. 그러나 조·중·동의 애도 저널리즘은 고인에 대한 죽임의 공범 관계를 덮으려는 교묘한 현장부재증명(알리바이)이자, 앞으로도 정치적·사회적 타살을 끝없이 양산하려는 현란한 언어의 권력투쟁이다. 그들의 애도를 보고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건 문제가 아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게 진짜 위험한 문제다. 안영춘 <미디어스>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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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민주세력의 총결집 필요 |
[기억의 미래] |
“슬퍼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오늘은 저희가 가슴속까지 슬퍼해야겠습니다. 우리 가슴속, 심장 속에 한 조각 퍼즐처럼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운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임의 뜻을 저희들이 운명처럼 받들고 가겠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 가슴속에도 조그만 비석 하나씩 세우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5월29일 한 줌 재로 떠났다. 서울시청 앞 추모문화제 무대에서 방송인 김제동씨는 자주 말을 흐렸다. “임은 떠난 것이 아니라, 이제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들어왔다”고 울먹였다. 운구차가 들어오던 순간이었다.
시민들은 흐느꼈다. 입술을 깨물었다. 한때 다들 외면했던 ‘바보 노무현’. 그 ‘바보’는 이제 지키고 간직해야 할 가치가 됐다. 모두가 지켜주겠다고 맹세하는 상징이 됐다. 죽어서도 구도를 바꾸고, 판을 흔드는 존재로 부활했다. 현직 이명박 대통령과 맞서는 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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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들 전면적 파상공세 별러
그가 남긴 뜻의 ‘살고 죽음’은 49재인 7월11일까지가 첫 마당이다. 국회에서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개혁·진보 야당들이 6월1일부터 나선다. 민주당에서는 정세균 대표가 책임론을 정면으로 제기하게 된다. 정 대표는 이날 경기 수원시 연화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꼭 책임질 사람이 책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주장을 피하면서 문제를 제기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1단계는 국민들이 공분하는 ‘노무현 죽이기 수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간 입을 다물고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 측근들도 입을 열 예정이다. 당 공식 회의부터 각종 집회, 그리고 텔레비전 토론까지 핵심은 이 주제다.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당한 수모와 모욕, 그리고 검찰이 적용한 혐의 구성의 문제점. 윤호중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검찰의 편파·보복 수사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처벌을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정책 궤도 수정, 그리고 대대적인 개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 카드도 준비 중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진상 규명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중심으로 한 2007년 대선자금 의혹이 대상이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 정당들도 방향이 일치한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영결식 당일 “이 땅의 민주주의는 고인께 갚아야 할 빚이 있다. 이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내각 문책, 정치 보복 규명을 위한 특검 실시와 책임자 처벌, 국정 운영 기조의 근본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민노당·진보신당 3당은 이를 6월 임시국회 개원의 전제조건으로 내걸 예정이다. ‘반이명박 전선’의 1단계다.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국회를 열 수는 없다”며 “민주당 의원들은 형식적인 투쟁이 아니라 요구 조건을 관철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 최 의원은 “민주당은 좀더 야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도 강성 기조로 맞설 예정이다. 6월8일부터는 개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삼우제(6월1일)까지는 추모 기간으로 보고 그 이후에는 개원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현충일(6월6일)까지는 아무래도 애도 기간으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6월8일부터 개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내 지도부 구성도 ‘강성’이다. ‘뉴라이트’ 출신의 신지호 의원이 원내 대변인을 맡았다. 신지호 의원은 독설로 유명하다. 강경파 ‘친이’(이명박 계열) 김정훈 의원이 원내 수석부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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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는 임시국회 ‘MB악법’ 싸움
치열한 공방 끝에 임시국회가 열리면 둘째 마당이다. 언론관계법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MB악법’(한나라당 표현으로는 개혁법안)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이명박 전선’도 자연스럽게 2단계를 맞게 될 것이다. 물론 국회 내에서는 쉽지 않다.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김형오 국회의장이 미디어악법들은 사실상 (본회의에) 직권상정한 상태라 국회만 열리면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며 “민주당은 모든 세력들의 힘을 모아 몸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이런 ‘모든 세력’의 힘을 모으고 있다.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5월28일 서울역 분향소에서 참배한 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주의가 엄청나게 후퇴하고 있고 서민들은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며 “남북관계도 초긴장 상태에 있어 국민은 속수무책인데 국민은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의지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며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반드시 이 나라 민주주의를 확실히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심이 없는, 대안이 없는 야당의 위기 순간에 잠시라도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던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노 핵심 인사들도 정치적으로 ‘복권’됐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유시민 전 장관과 이해찬 전 총리 등 열린우리당 해체 과정에서 탈당했던 이들도 곧 민주당으로 복당할 것으로 본다”며 “한명숙 전 총리도 정치적 비중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시민 전 장관의 한 측근은 “(정치적 복귀를) 일종의 운명이라고 본다”며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는 시대의 결정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적 복권’ 친노세력 행보 주목
10월 재보선 직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이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복귀도 빨라질 전망이다. 손 전 대표는 5월28일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고인을 떠나 보내는 국민들의 좌절과 슬픔을 존중해달라. 그동안 무엇이 잘못됐는지,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달라”고 강조했다.
진보·개혁 정당 사이에 유난히 강조되던 ‘차이’도 압착되고 있다. 정책에서의 연대를 정치로 이어가야 한다는 필요성이다. 10월 재보선과 내년 6월 지방선거가 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호중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내년 지방선거까지는 모르겠지만, 미디어악법 등 MB악법 저지를 위한 제야당·시민사회의 공조와 협력 체제는 10월 재보선을 거쳐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시민사회와 대화를 나눠보면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지안 진보신당 부대변인은 “반이명박 전선을 위한 선거연대는 내년 지방선거 직전에야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10월 재보선부터 논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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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6·10 항쟁 기념 대회’ 집중
시민사회에서도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5월25일 만들어진 ‘시민사회단체 및 각계 인사 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가 대표적이다. 이날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는 시민단체와 학계 단체 등 25개 단체 50여 명이 참여했다. ‘시국회의’의 실체와 주장은 아직 물밑에 있다. 시민단체, 학계, 종교계가 모여 ‘노무현 서거 이후’를 논의하는 협의체 수준이다. 더 많은 단체가 모이는 6월2일 2차 모임에서 성격이 더 구체화될 예정이다. 오광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정책팀장은 “첫 번째 모임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강압적·일방적 국정 운영이 분열과 갈등을 불러일으켰으니, 이의 전면적·근본적 쇄신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시민 진영은 일단 ‘6·10 항쟁 22주년 기념 대회’에 집중할 예정이다. 이후의 상황은 일단 지켜본다는 태도다. 개입하거나 지도하려 하면 오히려 일을 그르친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난해 촛불 이후 이번 조문 정국에 이르기까지 우리(시민운동 진영)의 실력을 깨닫고 있다. 시쳇말로 ‘한 줌도 안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는 시민단체들이 아닌 ‘촛불시민연석회의’가 설치했다. 지난해 촛불 정국 이후 지역별로 형성된 ‘풀뿌리 촛불시민 모임’이 그 토대다. 온라인에서 연결된 평범한 시민들이 주력을 이룬다. 이들은 참여연대·민주노총·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전통적인’ 시민·사회·종교단체와 별다른 연결 고리가 없다. 촛불 모임은 2002년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 추모부터 시작해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 반대를 거쳐 지난해 촛불 정국을 통해 형성됐다.
촛불 진영의 한 축에는 친노그룹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친노그룹과 전통적 진보 진영은 많은 갈등을 겪었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양쪽 모두 정교한 행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사모’ 그룹과 시민사회 진영의 거리를 좁히고 여기에 제도권 정당의 힘까지 보태려면 서로 양해하고 배려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런 연대가 내년 상반기에 결실을 맺으려면 ‘반이명박 전선’을 일궈낼 구심이 중요하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 1990년대 시민운동을 이끌었던 지도급 인사들의 ‘역할론’이 떠오르는 이유다. 박 상임이사는 2006년 희망제작소 창립 이후 “지역에 희망이 있다”는 모토를 내세워 풀뿌리 운동에 집중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박 이사 개인의 행동에 큰 비중을 두진 않지만, 시민운동 진영 전체가 새로운 활력과 긴장으로 스스로를 재구성해 내년 지방선거까지 내다보는 큰 틀의 ‘민주연대’를 구성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핵심 당직자도 “박원순 상임이사가 민주당과 진보 정당 그리고 시민사회를 두루 묶어 대화의 장으로 이끌 수 있는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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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균형추 언제든 바뀔 수 있어
대한문을 지키는 ‘촛불’들은 대한문의 분향소 지키기에 집중할 예정이다. 이들은 일단 49재까지 이곳이 시민들의 추도 공간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본다. 대한문 분향소 일대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2km 가까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추도 공간으로 거듭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추모글을 적은 광목 매듭부터 그를 기리는 그림과 글, 대형 걸개그림들이 가득하다. 그 자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장소다.
현 정부에 대한 반감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르면 6월1일부터, 늦어도 6월6일부터는 분향소 철거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영결식이 끝난 만큼 더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울 것이다. 철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 20만 명 이상의 손길이 모여 만들어진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장을 주관한 한명숙 전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 기념사업이 어떤 형태로든 추진될 텐데 정부, 시민사회, 종교계 등이 추모한 모든 것들이 하나로 훼손되지 않게 그대로 수거해 기념으로 삼고 싶다”며 “(매듭과 리본에) 적힌 내용 자체가 조사다. 하나도 분실 없이 모아질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도 경찰이 분향소 철거를 강행한다면, 분향소가 훼손된다면 국민들의 분노와 반감을 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반대로, 촛불들이 경찰과의 마찰을 거듭하다 결국 폭력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경우는 국민들의 외면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촛불도 마지막의 폭력적 상황으로 대중적인 참여 동력을 잃었다. 여론의 균형추는 어디로든 바뀔 수 있다.
여기에 ‘북한 변수’가 있다. 노무현 서거가 진보·개혁 세력이 집중할 의제라면, 북한 핵실험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의 안보 상황은 보수 세력이 집중적으로 내세울 의제다.
이중의 분단 상황 대처능력 중요
현재 상황을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내우외환’으로 표현하고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5월27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 표현을 썼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같은 날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국민장을)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어 이를 변절시키고, 소요사태가 일어나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배경이다. 한나라당은 6월1일 이후 안보 이슈에 집중할 예정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5월28일 의총에서 “지금의 한반도와 주변의 안보 환경은 6·25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선언한 바 있다.
민주당의 취약한 고리도 이 부분이다. 민주당의 핵심 당직자는 “북핵 이슈는 정부 당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이 풀어야 할 문제로, 야당으로서는 별다른 레버리지(수단)가 없지 않느냐”며 “민주당의 기본 정책인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민주당도 조만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당 차원의 태스크포스를 발족할 예정이지만, 현역 의원 중 박지원 의원을 제외하고는 대북 문제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 아프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북한이 또다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서해교전과 같은 국지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5월29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관련해 대북 제재책을 논의하는 것에 대해 “안전보장이사회가 더 이상의 도발을 해오는 경우 그에 대처한 우리의 더 이상의 자위적 조치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남한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가입에 대해서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 한 대북전문가는 “북한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경제적 안정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협조도 한몫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경제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정도의 국지적인 충돌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서해교전 수준 또는 그 이상의 국지전이 발생하면 보수 세력들은 안보 이슈를 중심으로 단결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보훈·현충의 달인 6월에 이런 충돌이 발생할 경우 조문 정국과 안보 정국이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남남과 남북 갈등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최재천 법무법인 한강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물론, 민주당과 진보 세력도 이런 ‘이중의 분단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며 “국민들은 이 중요한 상황에서 현명한 답을 줄 수 있는 세력에 힘을 모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개혁 진영은 큰 인물 하나를 잃었다. 당장 인물이 없으면 먼저 세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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