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 봉하마을의 침묵도 끝 |
이명박 정부와 검찰 책임론에 입 닫은 친노그룹 “장례 이후 원통한 죽음 책임을 꼭 묻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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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은 실제로 나왔다. 방문객이 “대통령님 나와주세요”를 함께 외치자, 밀짚모자에 눌린 자국이 있는 머리 모양 그대로 그가 나타났다. 그때 그는 “피곤해 죽겠습니다. 올라가시거든 ‘가보니 아무것도 볼 거 없더라. 가지 마라’ 좀 해주십시오”라며 방문객에게 ‘투정’을 부렸다. 퇴임 이후 새롭게 붙은 별명 ‘노간지’가 마음에 드냐는 질문에는 “간지, 어감이 좀 이상해요”라며 멋쩍게 웃기도 했다. 물론 그 뒤에도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방문객을 외면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고달픈 봉하마을 가는 길
봉하마을로 가는 길이 고달픈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열차를 타든 버스를 타든, 꼬박 한나절이 걸린다. 중간에 갈아타는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봉하마을 진입 2km 지점부터는 교통통제 탓에 꼼짝없이 30분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이 5월23일 이후 7일간 100만 명이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열기로 봉하마을의 5월은 뜨거웠다.
“저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면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 그리고 참다운 민주주의를 이뤄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는데, 노 전 대통령이 그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많이 안타까워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최근 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부의) 최근 행태에 대한 분노도 조문 행렬이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리틀 노무현’ 김두관. 마을 이장으로 시작해 경남 남해군수와 참여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일주일 내내 빈소를 지킨 그는 여권의 태도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마침 이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추모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잘못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어 이를 변질시켜 소요사태가 일어나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소요사태’ 발언이었다. 5월27일 봉하마을에서 만난 김두관 전 장관은 “대통령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세상이 다 아는데, (소요사태 발언은)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며 “집권 여당 원내대표의 상황 인식이 정말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인지 서글프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도 “저질스런 정치 공세로 고인에게 돌을 던진 것”이라며 분노를 나타낸 바 있다.
사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친노그룹은 이명박 정부와 검찰 책임론에 대해 입을 닫았다. 다만 딱 한 번,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나선 적은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을 찾은 그는 “검찰과 현 정권이 원한 것이 이런 것인가”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안 최고위원은 그때 “검찰의 의심을 사실인 양 언론이 매일 대서특필해 보도하고, 그것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언론과 검찰은 서로 핑퐁게임하듯 주고받으면서 전직 대통령을 시정잡배로 만들어버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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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6일 뒤 보수언론에 대한 항의도 줄어들어
영결식 이틀 전 봉하마을에서 만난 안 최고위원은 검은색 양복에 삼베 완장을 차고 있었다. 1993년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그는 ‘좌희정’이라 불릴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이 아꼈던 측근이지만 참여정부 5년간 단 한 번도 공직을 맡지 못했다. 오히려 참여정부 출범 직후 불법 대선자금 및 나라종금 사건으로 1년간 구속 수감됐다. 이런 안 최고위원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5월27일 마을회관에 마련된 빈소를 잠시 빠져나온 안 최고위원은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한 죄인이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조문객들의 분위기도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서거 당일과 이튿날, 조문을 위해 봉하마을을 찾은 여권의 정치인은 잇따라 발걸음을 돌렸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조문객의 분노가 이들에게 집중된 탓이었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김형오 국회의장,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이 이렇게 헛걸음을 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시절 국정홍보비서관을 지낸 노혜경 전 노사모 대표는 “(그분들이) 봉하마을의 분노가 한층 가라앉은 뒤에 찾아왔다면 ‘무슨 면목으로 왔느냐’ 정도의 야유는 받았을지 모르지만 조문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언론에 대한 봉하마을의 분노도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와는 달라졌다. 실제로 한국방송과 조·중·동에 대한 봉하마을의 항의도 5월26일 이후 눈에 띄게 사라졌다.
국민장을 치르면서 봉하마을에서 이명박 정부와 검찰, 언론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이 사라진 이유는 ‘일단 장례부터 치르자’는 암묵적 동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김경수 비서관은 참여정부 시절부터 서거 직전까지 노 전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보좌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다들 일단 대통령께서 편히 가실 수 있도록 모시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지금은 장례 이외에 다른 어떤 문제를 고민하거나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시민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패 걸린 일”
하지만 침묵이 곧 용서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친노그룹과 봉하마을의 긴 침묵은 5월29일 노 전 대통령 영결식과 함께 끝날 것으로 보인다. 봉하마을에서 만난 김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장례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낼 것”이라며 입술을 깨물었다. 참여정부 시절 사상 첫 여성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김 부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황망히 봉하마을로 내려왔다.
침묵 속에 담긴 분노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메시지에 응축돼 있다. 그는 영결식 전날 자신의 팬카페 ‘시민광장’에 올린 글을 통해 말했다. “가슴속에 억제하기 어려운 분노가 들끓는 것은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원통한 죽음, 그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원망 때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패가 걸린 중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례식이 끝난 후에 그 일을 반드시 해낼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 하루만큼은 분노를 절제 없이 표출하지 말고 견뎌냅시다.” 김해=최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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