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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

외갓집

by 싯딤 2010. 3. 19.

 외갓집

 

 

 

둘째 형 결혼식 때(1977년)

1 큰누나, 2 안현 이모, 3 큰형수, 4 어머님 ,5 둘째형, 6 형수, 7 영등포 이모 아들, 8 나, 9 아버님,10 큰형, 11 여동생, 12 둘째누나 ,13 곰소 외삼촌, 14 막내 동생, 15 상포 막내외삼촌

 

 

 어머님이 태어나신 우리 외갓집은 줄포 앞바다 건너편, 상포라는 어촌이다.

 

 아버지 형제가 안계셨던 우리 가족은 어릴 적 외갓집에 자주 놀러 갔다.

 외갓집은 줄포에서 뱃길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날씨, 물때에 따라 뱃길이 끊기는 일이 잦아, 흥덕 읍내에서 봉암까지 하루 한 번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고 외갓집에 갔다.    

황토색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낡은 삼남여객 버스는 중간중간 사람들을 내려주며 터덜터덜 달리다가 시동이 꺼져 멈춰 서기도 했다.  비라도 내려 길이 질퍽거리는 날엔 바퀴가 진흙탕에 빠져 헛바퀴 돌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승객들이 모두 내려 뒤에서 밀어 댔다가까스로 빠져나와 시동이 걸린 상태로 저만치에서 부릉거리고 있으면 다시 올라 타 외갓집으로 향했다.

이런 버스였지만 아예 운행되지 않은 날이 많았으니 차를 타고 외갓집 가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차는 봉암초등학교가 종점이어서 어머니랑 다시 2~3km를 더 걸어야 외갓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외갓집이 가까워지면 서해바다가 환하게 펼쳐진다

 외할머니는 동네 어귀 커다란 팽나무 아래 평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이고 내 새끼들 왔는가..으찌 이리 늦읐다냐’

 하얀 조개껍질이 깔린 좁은 마을 어귀 길은, 걷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외숙모는 구덕을 들고 앞바다 갯벌에 나가, 소라, 개우렁 등을 주워다 삶아 주었다.

 마을 전체가 일가 친척이라 나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작은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등을 뵙고 인사를 드렸다.

 큰 외삼촌은 마당 가운데 석류나무에서 석류를 따다 손에 쥐어 주었다외삼촌은 어촌사람 특유의 거칠고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속엔 정이 듬뿍 배어 있는 분이었다.

 

 곰소, 둘째 외삼촌은 어판장에서 생선 중매를 하여 생활이 넉넉했다.

 한번은 외삼촌이, 짐자전거에 가지가지 생선을 싣고 먼 마을까지 팔러 다니는 생선장사 아저씨를 통해 우리집에 건어물를 보내왔다. 그리곤 ‘이번 줄포 장날 꼭 좀 줄포로 나오시라’는 전갈을 보내왔다.

 

 어머니는 동생들(외삼촌) 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동생들 집에 잘 가지 않았다.

 명절 때나 무슨 일로 한번 곰소에 가게 되면 외삼촌은 이름도 모르는 생선, 건어물들을 들고오지 못할 정도로 듬뿍 챙겨 주셨다외삼촌은 하나라도 더 손에 들려 보내고 싶어 어머니 몰래 나를 어판장으로 데려가 미리 챙겨 놓은 건어물 꾸러미를 주며 ‘이거 어깨 메봐라..들어봐라.’ 하셨다.

 

 한번은 곰소 어판장에서 흥덕 방향으로 가는 트럭 편에 싱싱한 생선과 여러가지 건어물, 갈치젓갈 등을 듬뿍 실어 보내 왔다. 생선과 젓갈류는 냄새와 무게 때문에 그동안 우리 손에 들려주고 싶어도 못들려 주시다가 이번 기회에 작정하고 보내신 거였다.

 

 외삼촌은 가난하게 사는 누님 걱정을 속으로 많이 했다.

 외할머니 계시는 상포 큰외삼촌집에 가면 둘째 외삼촌은 곰소에 들러 하룻밤 묵고 내려가시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어머니는 그냥 줄포나 봉암 쪽으로 돌아오곤 했다.

 

 평소 말씀도 별로 없고 인정 많은 곰소 외삼촌은 술을 좋아하셨다.

 한번은 곰소 외삼촌 댁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줄포가는 차를 기다리는 시간, 외삼촌은 정류장 근처 작은 식당 안에서 누님 앞에서 말없이 잔만 기울이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어머니는 ‘동상, 고만 묵소. 나 갠찮헝게 걱정말소. 동상 몸 챙기야제.’ 하셨다.

 

 그런 외삼촌은 결국 술로 병을 얻어 어머니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제일 아끼던 둘째 동생이 세상을 뜨자, 어머니는 가슴 속 응어리가 더 커졌는지 지 불과 몇 년 차를 두고 떠나셨다.

 상포 큰 외삼촌도 어머님 가신 지 두 해 후, 이어 세상을 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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