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졸업사진(1971)
앞줄 가운데가 6학년 허욱열 담임선생님, 왼쪽이 5학년 때 담임이었던 유영두 선생님
초등학교 3학년 때, 4교시 오전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순혁이와 나는 선생님이 나가기가 무섭게 집을 향해 달렸다.
집 대문에 들어서면 부모님은 논밭에 나가시고, 빈 집을 지키고 있던 멍멍이가 반가워 꼬리를 흔들며 핥아댄다. 부엌에서 고구
마 몇 개와 꽁보리 밥을 찬물에 말아 들고 나와, 마루에 대충 앉아 신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먹고 있노라면 벌써 순혁이가 가자며 불러댔다.
대충 한 숟가락 먹고 다시 달렸다.
읍내 동구밖 도로 언덕배기 638 트럭 집 앞을 지나노라면 공터에서는 모래, 시멘트를 섞어 블럭을 찍어 냈는데, 라디오에서 최희준의 ‘광복 20년’ 드라마 주제곡 아니면 성우 구민의 ‘김삿갓 북한 방랑기’가 흘러 나왔다.
4학년이 되자 점심시간에 노란 옥수수 죽이 나왔다.
당번이 양동이에 옥수수 죽을 타 와, 번호 순서대로 도시락 뚜껑에 퍼 주었다. 양이 많지 않아 훌훌 몇 번 마시면 끝이었다.
아쉬워 뚜껑에 묻어 있는 죽을 핥다 보면 콧잔등에 노랗게 묻었다. 늦게 먹으면 다 먹은 애들이 치근대기 일쑤여서 급히 훌훌 마시다 입천장을 데기도 했다. 내 차례까지 오지 않고 앞 번호에서 끊기면 오후시간 내내 풀이 죽었다.
얼마 지나면서 얼굴만한 커다란 빵이 배급되기 시작했다. 종례시간에 나눠 준 빵을 먹지 않고 책보자기에 싸 집에 가져와 어머니, 동생들에게 주기도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읍내 5일장이 서는 날엔 장터 구경이 즐거웠다. 짚으로 엮은 달걀 꾸러미.. 닭, 마른 고추, 마늘, 생선, 빨래비누, 좀약, 머리빗, 옷가게 등을 구경하다가 대장간에 이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숯가마 속에 쇠를 묻고 계속 풀무질을 해 대는 모습, 벌겋게 달궈진 쇠를 이리저리 돌리고 세워가며 쇠망치로 두들겨 괭이, 도끼 등의 농기구를 만들어 내는 솜씨가 신기했다.
아버지는 닳은 괭이를 대장간에 맡겨 다시 모양을 만들어 오시면서, 들른 김에 새것도 하나 사오곤 했다.
그 시절 최고의 간식은 풀빵이었다.
초등학교 가는 길, 허리가 직각으로 굽고 얼굴에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풀빵 굽는 솜씨와 장사 수완은 뛰어났다.
거의 물인 반죽을 주전자에 담아 틀에 부어 구워 꺼내놓으면 식으면서 금새 안팎이 달라붙고 쪼그라졌다.
연신 뒤집어 가며 풀빵을 구워대는 할머니 앞엔 우리들로 빙 둘러 쌓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풀빵 굽는 광경만 구경하다가 길 가의 자갈을 이리저리 발로 차대며 집으로 향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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