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화해·통합 들불 ‘후광’ 남기고 인동초 하늘에 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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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장에서 동교동 사저와 서울시청 앞을 거쳐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르는 연도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김 전 대통령 장례는 서거 엿새 만인 23일 국민의 애도 속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은 이날 오후 2시 국회 앞마당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 등 유가족과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 김영삼 전 대통령, 헌법기관장,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10분동안 거행됐다.
영결식은 국민의례와 묵념, 고인 약력보고에 이어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국무총리의 조사와 박영숙 전 평민당 의원의 추도사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한 총리는 조사에서 "대통령님은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 오셨다"면서 "이러한 발자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특히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해온 해묵은 앙금을 모두 털어내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참뜻일 것"이라며 "이제야말로 지역과 계층, 이념과 세대의 차이를 떠나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영숙 전 의원은 추도사에서 "대통령님의 서거는 우리에게 이별의 슬픔만을 남기지 않으셨다"며 "우리 민족의 숙원과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풀어내는 화해와 통합의 바람이 지금 들불처럼 번지게 하는 것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은 또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마지막 말씀을 새기겠다"며 "우리가 깨어 있으면 당신이 곁에 계실 것을 믿는다"고 밝혔다.
영결식은 이어 천주교, 불교, 개신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된 뒤 생전영상 상영과 헌화.분향, 추모공연에 이어 3군 의장대의 조총 발사로 마무리됐다.
영결식을 마친 후 운구 행렬은 여의도 민주당사와 동교동 사저에 들른 뒤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와 서울광장, 서울역을 거쳐 동작대교로 한강을 넘어 오후 4시50분께 국립 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이희호 여사는 서울광장에서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남편이 평생 추구해 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밝혔다.
장의 행렬이 통과하는 길에는 주말에도 많은 시민들이 나와 고인의 생전 업적을 되새기며 명복을 빌었다.
김 전 대통령의 유해는 현충원내 264㎡(80여평) 규모로 조성된 묘역에서 종교의식과 하관, 허토 등의 순서를 거쳐 안장됐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30년 만이자 건국 후 첫 전직 대통령의 국장이 거행된 이날 전국 가정과 공공기관에는 조기가 게양됐다. (서울=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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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2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국장 영결식이 열린 국회 본관 앞마당에는 민주와 통일을 위해 한평생을 불태운 그의 삶처럼 8월 늦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1시55분, 조악대의 유장한 조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영결식장에 도착했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과 생전에 받은 무궁화대훈장·노벨평화상을 든 의장대가 운구차에 앞서 들어섰다. 뒤이어 부인 이희호씨와 유족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영결식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늘어선 의장대는 ‘받들어총’으로 전직 대통령에게 예를 표했다. 김 전 대통령과 마지막 작별을 나누기 위해 모인 국내외 인사 1만여명은 운구차가 도착하자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김 전 대통령 약력 보고가 이어졌다. ‘동교동계’의 좌장 권노갑 전 의원은 평생 동지와 함께한 풍상의 세월을 회고하는 듯 망연히 앉아 있었다.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는 조사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정치발전의 확고한 기틀을 닦으셨다.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의 큰길을 열고, 2000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 일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김 전 대통령 부부와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이 추도사를 낭독할 때는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박 이사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독재정권 아래에서 숨쉬기조차 힘들 때,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희망이었다”며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지만 뜻을 꺾지 않으셨다. 이땅의 민주주의는 당신의 피와 눈물 속에서 피어났다. 당신이 일구어낸 민주사회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당신이 고마운 줄 몰랐다. 이제 살펴보니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마지막 말씀을 새기겠다”며 “말씀대로 깨어 있겠습니다. 우리들이 깨어 있으면 당신이 곁에 계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그는 “늘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님, 이제 그 존경과 사랑을 당신께 드립니다. 지난날은 진정 고단했으니,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는 인사로 추도사를 마쳤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김 전 대통령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하는 천주교 제례 의식이 최창무 광주대교구장 집전으로 진행됐다. 이어 불교에서는 조계사 주지인 세민 스님, 개신교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삼환 회장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엄신형 대표회장이, 원불교에서는 김혜봉 대전충남교구장이 20분 남짓 제례를 집전했다. 종교 의식이 끝나자 영결식장 양옆에 마련된 대형 전광판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육성이 흘러나왔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과 더불어 위대한 한국인의 시대를 열어가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생생한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 전광판에 비치자 장내는 다시 한 번 술렁였다. 4분 동안 상영된 영상이 끝나자 부인 이희호씨와 유족들의 헌화 및 분향이 시작됐다. 주요 인사들의 헌화·분향이 끝나자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성악가 김영미씨와 평화방송 소년소녀합창단이 추모곡으로 ‘그대 있음에’와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땅 땅 땅. 3군 조총대의 조총 발사가 김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의 끝을 알렸다. “이제 고단한 삶 모두 편히 내려놓으시고 부디 편히 가십시오.” 사회를 맡았던 손숙 전 장관의 눈물 섞인 말을 끝으로 김 전 대통령의 운구차는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영결식 참석자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3시29분 김 전 대통령은 국회 영결식장을 나섰다. 국회가 기억할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김지은 이경미 기자 | ||||||||||||||||||||||||||||||||||||||||||||||||||||||||||||||||||||||||||||||||||||||||||||||||||||||||||||||||||
이희호 여사 고개 떨군채 마지막길 눈물 동행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영결식이 23일 오후 2시 국회 잔디마당에서 각계 인사 및 시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국회 잔디마당과 그 주변은 영결식 준비로 분주한 모양새였지만, 영결식 시작이 임박하자 2만여명의 조문객 사이에는 침묵과 엄숙함이 짙게 깔렸다. 사회를 맡은 손 숙 전 환경부 장관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신 영구차가 입장하고 있습니다"는 안내에 따라 오후 1시55분 조악대의 조곡이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운구차가 영결식장에 서서히 들어섰다. 운구차의 앞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영정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과 노벨평화상이 옮겨졌으며, 부인 이희호 여사가 흐느끼며 유족들과 함께 운구차를 뒤따랐다. 양옆에서 부축을 받아 식장에 들어선 이희호 여사는 영결식 내내 슬픔을 참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길가에 도열한 의장대는 `받들어 총'으로 영결식장으로 옮겨지는 전직 대통령에게 예를 표했고,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모든 참석자도 일제히 일어나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국회 등원'을 지켜보는 조문객들 사이에서는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운구차가 영결식장에 입장하자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조순용 전 수석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연극배우 손 숙씨의 사회로 오후 2시 정각 사상 최대 규모의 영결식이 시작됐다. 장의위원회측은 이날 영결식에 장의위원을 비롯한 각계 주요 인사, 시민 등 2만4천명을 초청했다. 행사에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를 포함한 3부 요인,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정당 대표, 주요국 조문사절단 등도 자리를 지켰다. 영결식은 조악대의 애국가와 묵념곡 연주, 이달곤 행안장관의 약력보고,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의 조사, 김 전 대통령 내외과 각별한 관계에 있는 박영숙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장의 추도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달곤 행안장관은 전남 하의도 섬마을 소년이 97년 15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까지의 정치역정을 담은 김 전 대통령의 약력을 보고했다. 한승수 총리와 박영숙 이사장은 각각 조사와 추도사를 통해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옆에 자리한 이희호 여사는 조사와 추도사가 낭독되는 내내김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지난 47년의 세월이 떠오르는 듯 시종 고개를 떨군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승수 총리는 조사를 통해 “대통령님은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 오셨다”며 “대통령님의 이러한 발자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영숙 이사장은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님, 이제 그 존경과 사랑을 당신께 드립니다”며 “지난날은 진정 고단했으니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며 목이 메인 채 추도사를 낭독했다. 이어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됐다. 김 전 대통령이 천주교 신자였던만큼 최창무 광주대교구장이 집전하는 천주교의 제례가 가장 먼저 이뤄졌다. 불교에서는 조계사 주지인 세민 스님이, 기독교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삼환 회장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엄신형 대표회장이, 원불교에서는 김혜봉 대전충남교구장이 각각 제례를 집전했다. 약 20분간의 종교의식이 끝나자 제단 양옆에 마련된 대형 전광판과 스피커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육성이 흘러나왔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과 더불어 위대한 한국인의 시대를 열어가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는 김 전 대통령의 열띤 연설을 시작으로 한 영상물은 IMF 외환위기 극복, IT 강국 건설, 6.16 남북정상회담, 2002년 월드컵 개최 등 대통령 재임시 치적을 담아 4분간 상영됐다. 침통한 표정의 이희호 여사는 영상물 상영 직후 양 옆의 부축을 받아 엷은 미소를 띤 남편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섰다. 이 여사는 홍일.홍업.홍걸씨 등 유족들의 헌화가 끝나자 고개를 90도 숙여 작별 인사를 했다. 유족들의 분향이 끝난 뒤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제단에 올라 김 전 대통령의 넋을 기렸다. 이 과정에서 VIP석 뒤편에 있던 한 50대 남성이 “위선자”라고 소리쳐 경호원들이 급히 제지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 내외의 분향에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침통한 표정으로 헌화.분향하며 영면을기원했다. 권양숙 여사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때 자신의 손을 잡은 채 오열을 터뜨렸던 김 전 대통령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주요 인사들의 헌화.분향이 끝나자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성악가 김영미씨, 평화방송 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른 추모곡 ‘그대 있음에’, ‘우리의 소원’이 울려퍼졌다. 3군 조총대의 3발의 조총 발사가 이어졌고, “이제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고김대중 대통령을 보내드려야 할 시간”이라는 손 숙 전 장관의 울먹임 속에 영결식 폐회를 알렸다.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운구차는 1시간10여분의 영결식이 끝나자 오후 3시12분 서서히 움직였고, 국회 본관 앞, 의원회관 앞을 지나 3시29분 영결식장인 국회를 떠났다. 한편 영결식에는 2만4천명이 초청됐으나, 참석자들의 상당수는 한낮의 뙤약볕 때문에 자리를 지키기 보다 그늘진 공간을 찾아 영결식을 지켜봤다. 한 할머니는 탈수를 호소, 대기중인 응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상도동에서 온 홍사임(67.여)씨는 “대통령님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영결식에 참석했다”며 “대통령님의 화해와 평화의 뜻을 받들어 한국의 성숙된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줬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김범현 강병철 김정은 기자 (서울=연합)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3일 오후 3시47분. 운구차가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의 김 전 대통령 자택이 있는 골목길 앞에 멈춰 섰다. 주민 등 1000여명의 시민들이 길 건너편과 자택 맞은편 빌딩 등에 올라가 고인을 맞았다. 둘째 홍업씨의 장남인 손자 종대(23)씨가 영정을 들고 집으로 들어서자 시민들은 “여사님 힘내세요”라고 외쳤다. 자택 들머리에서 기다리던 서교동 성당 성가대가 ‘고통도 없으리라’ 등 15곡의 성가를 불렀다. 동교동 자택은 김 전 대통령이 55차례나 가택연금을 당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은 1963년 입주한 뒤, 지난 7월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대통령 재직 기간과 영국 유학 기간 등을 빼고 37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걸린 대문을 지나 그가 즐겨 앉던 1층 거실의 주홍빛 소파에서 2~3초간 쉬었다. 생전에 정원의 참새들이 노니는 모습을 즐겨 봤다는 곳이다. 영정은 이어 2층의 침실과 서재로 올라갔다. 그동안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는 공간이다. 3~4평 크기의 침실은 침대와 옷장, 각종 선반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침대 앞 선반에는 북한에서 보내 준 것으로 보이는 엽서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 5평 남짓한 서재는 생전에 김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책상에는 병원에 입원하느라 고인이 미처 실행하지 못한 7월11~25일치 일정표와, 입원 전 읽은 것으로 보이는 <조선왕조실록> <제국의 미래> <오바마 2.0> 등의 책이 놓여 있었다. 책상 뒤 벽면에는 그가 ‘양심적 신앙인’으로 가까이했던 고 김재준 목사가 보내준 ‘생명 평화 정의’라는 글씨가 적힌 액자가 걸렸다. 서재의 책꽂이 뒤편은 작은 침대 등이 놓인 투석 치료 공간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한 번에 5시간씩 매주 3회 치료를 받던 곳이다. 벽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휘호인 ‘윤집궐중’(允執厥中)이라고 적힌 족자가 걸려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중용>에 나오는 글귀로 ‘진실로 그 가운데, 중도를 꽉 잡아라’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10여분 동안 집안을 둘러본 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자택 바로 옆의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으로 향했다. 부인 이희호씨가 김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던 시절 떠준 털장갑 등 고인의 손때가 묻은 자료 1만6000점이 전시된 1층 전시실, 마지막까지 자서을 집필하며 시간을 보냈던 5층 집무실을 둘러본 뒤 김 전 대통령은 동교동을 영원히 떠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파란만장한 85년 삶을 헤쳐온 육신을 의탁한 채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동작대교로 한강을 건너 현충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50분. 여의도 국회에서 거행된 영결식을 마친 뒤 여의도 민주당사~동교동 자택~서울광장~서울역을 거쳐 약 3시간 만이었다. 운구행렬이 현충원에 도착하자, 국방부 의장대 11명이 영정을 앞세우고 묘역 하단에 마련된 식장으로 김 전 대통령의 유해를 옮겼고, 의연했던 부인 이희호씨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흐느꼈다. 이날 안장식은 이희호씨 등 유가족과 동교동계 측근 등 평소 고인을 따르던 인사와 정부 쪽 장의위원 등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안장에 앞서 열린 종교행사는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순으로 진행됐고, 천주교와 기독교 의식은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함세웅 신부와 이해동 목사가 각각 집전했다. 함 신부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고인의 뜻을 이어 정의와 통일을 실천하는 평화의 사도가 될 것”을 다짐했다. 종교행사가 끝나자 이희호씨와 홍일, 홍업, 홍걸 세 아들 등 유가족과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등 동교동계 측근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졌고, 아들 홍걸씨는 흐느끼는 어머니 이씨의 어깨를 만지며 “울지 마세요”라고 위로했다. 6시5분 국방부 의장대는 김 전 대통령의 영면관을 묘소로 봉송해 관을 내렸고, 관 위로는 금박으로 대통령 문양인 봉황무늬와 무궁화가 그려진 7개의 상판이 덮였다.
이날 영결식은 6시57분 조총과 진혼곡이 울려퍼지고 참석자들의 묵념, 그리고 “서거했지만 온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한 지도자로 살아 계실 것입니다. 영면하십시오”라는 사회자의 발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안장식장 주변에는 시민 700여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고, 몇몇 시민은 “이희호 여사님 힘내세요”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다. 신승근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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