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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국장]영결식에서 안장식까지

by 싯딤 2009. 8. 25.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화해·통합 들불 ‘후광’ 남기고 인동초 하늘에 피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엄수…거리 곳곳서도 추모 물결
박영숙 전 의원 “행동하는 양심으로 깨어 있겠다” 조사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구차가 23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과 유족 등 참석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회 국장 영결식장을 빠져 나가고 있다. 연합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남기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영결식장에서 동교동 사저와 서울시청 앞을 거쳐 동작동 국립묘지에 이르는 연도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다.

김 전 대통령 장례는 서거 엿새 만인 23일 국민의 애도 속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은 이날 오후 2시 국회 앞마당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 등 유가족과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 김영삼 전 대통령, 헌법기관장, 주한 외교사절, 각계 대표와 시민 등 2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10분동안 거행됐다.

영결식은 국민의례와 묵념, 고인 약력보고에 이어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국무총리의 조사와 박영숙 전 평민당 의원의 추도사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한 총리는 조사에서 "대통령님은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 오셨다"면서 "이러한 발자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특히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해온 해묵은 앙금을 모두 털어내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참뜻일 것"이라며 "이제야말로 지역과 계층, 이념과 세대의 차이를 떠나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영숙 전 의원은 추도사에서 "대통령님의 서거는 우리에게 이별의 슬픔만을 남기지 않으셨다"며 "우리 민족의 숙원과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풀어내는 화해와 통합의 바람이 지금 들불처럼 번지게 하는 것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은 또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마지막 말씀을 새기겠다"며 "우리가 깨어 있으면 당신이 곁에 계실 것을 믿는다"고 밝혔다.

영결식은 이어 천주교, 불교, 개신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된 뒤 생전영상 상영과 헌화.분향, 추모공연에 이어 3군 의장대의 조총 발사로 마무리됐다.

영결식을 마친 후 운구 행렬은 여의도 민주당사와 동교동 사저에 들른 뒤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와 서울광장, 서울역을 거쳐 동작대교로 한강을 넘어 오후 4시50분께 국립 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이희호 여사는 서울광장에서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남편이 평생 추구해 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밝혔다.

장의 행렬이 통과하는 길에는 주말에도 많은 시민들이 나와 고인의 생전 업적을 되새기며 명복을 빌었다.

김 전 대통령의 유해는 현충원내 264㎡(80여평) 규모로 조성된 묘역에서 종교의식과 하관, 허토 등의 순서를 거쳐 안장됐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30년 만이자 건국 후 첫 전직 대통령의 국장이 거행된 이날 전국 가정과 공공기관에는 조기가 게양됐다. (서울=연합) *

» 23일 국회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이희호씨와 유가족들이 식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

» 23일 국회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23일 국회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참석하고 있다. 연합

» 23일 국회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권양숙씨가 참석하고 있다. 연합

» 23일 국회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영정을 앞세운 영구차가 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

» 23일 국회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권양숙씨가 인사하고 있다. 연합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國葬)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국무총리는 23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조사(弔辭)를 낭독했다.

다음은 한 총리가 낭독한 조사의 전문이다.

『우리는 오늘 나라의 큰 정치지도자이신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영원히 이별하는 자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쾌차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우리들은 참으로 애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온 국민이 큰 슬픔 속에 대통령님을 추모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도 높이 평가하는 우리 현대사의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셨습니다.

지금 세계 각국이 대통령님의 서거를 애도하며 우리 국민과 슬픔을 함께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故 김대중 前 대통령님,

대통령님은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 오셨습니다. 대통령님의 이러한 발자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정치발전의 확고한 기틀을 닦으셨습니다.

분단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의 큰길을 열고, 2000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 일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의 높은 위업을 어찌 이런 몇 마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고인의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생전에 당신 스스로를 추운 겨울에도 온갖 풍상을 참고 이겨내는 ‘인동초’에 비유했던 것처럼 투옥과 연금, 사형선고와 망명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험난했던 삶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 번도 감내하기 어려웠을 수많은 시련을 대통령께서는 불굴의 의지와 집념으로 이겨내셨습니다.

그 사이 우리나라도 숱한 어려움을 딛고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습니다. 기적의 역사, 발전의 역사, 성공의 역사를 일구어낸 것입니다.

특히 민주화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님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강인한 신념과 불굴의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희생과 헌신 덕분에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할 수 있는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꽃을 활짝 피우고 있습니다.

김대중 前 대통령님,

대통령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적 통일 그리고 국민 통합에 대한 열망은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는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IMF 구제금융이라는 초유의 경제위기를 맞아 과감한 개혁으로 우리 경제를 탈바꿈시키면서도 사회안전망 구축에 힘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IT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고인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어려운 이웃과 소외된 계층을 위한 대통령님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도 오늘의 우리들이 한층 더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사회의 화해와 통합에 크나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대통령님은 생전에도 늘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모자라 동서로 갈라지고 계층간에 대립하고 세대간에 갈등해서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대통령님의 유지를 받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특히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반목해온 해묵은 앙금을 모두 털어내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참뜻일 것입니다.

이제야말로 지역과 계층, 이념과 세대의 차이를 떠나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바탕위에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하는 성공의 역사를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前 대통령님,

이제 대통령님은 생전의 그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편히 영면하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우리 겨레의 앞길을 밝혀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사랑하는 대통령님을 보내시는 이희호 여사님과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대통령님의 서거를 애도하며 조의를 표해주신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외교사절 여러분께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온 국민과 더불어 삼가 後廣 김대중 前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다음은 23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이 낭독한 추도사 전문이다.

『김대중 대통령님, 우리의 선생님! 이제는 더 이상 얼굴을 뵈올 수 없고, 말씀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우리와 정말 영영 이별하시는 것인가요?

대통령이 계셔서 든든했는데, 선생님이 계셔서 희망을 놓지 않았는데 우리 곁을 떠나신다니 승복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한두 번이 아닌 죽음의 고비를 기적적으로 극복해 내신 대통령님이시기에 병세에 대한 보도와는 상관없이 `대통령님을 한 번만 더 돌려주시라는' 이희호 여사님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아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날 줄을 의심치 않고 있던 우리에게 서거의 비보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부족했나요? 아니면 하늘의 뜻이 있어서인가요.

대통령님의 서거는 우리에게 이별의 슬픔만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민족의 숙원과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풀어내는 화해와 통합의 바람이 지금 들불처럼 번지게 하는 것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입니다.

오랜 고난의 세월이 있었기에 더욱 간절했던 둘이 종일 같이 있는 기쁨도 잠시, 그리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내 없이는 살기 힘들다고 하신 대통령님께서 어떻게 여사님을 혼자 두고 떠나실 수가 있습니까?

지금 지구촌이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세계인이 대통령님 영전에 꽃을 바치고 있습니다.

갈라진 남과 북의 산하가 흐느끼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꿈을 키웠던 저 남쪽 바다가 울고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그리고 선생님.

독재정권 아래에서 숨쉬기조차 힘들 때,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희망이었습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총과 칼이 가슴을 겨누어도 님께서는 의연하게 일어나셨습니다.

숱한 투옥, 망명, 연금을 당하시고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지만 뜻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준비하셨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역사와 국민을 믿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대통령님을 인동초라 불렀습니다.

가을에 익은 열매가 겨울 눈 속에서 더욱 붉었으니, 인동초는 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가장 험한 곳에 계셨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은 강철 같았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의 믿음대로, 예언대로 이 땅에 민주주의가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고난을 받으실 때 우리는 힘이 되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고도 당신이 고마운 줄 몰랐습니다.

이제 살펴보니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큽니다.

과연 누가 산보다 우람한 거목이 떠나간 자리를 채울 수 있겠습니까.

사회적 대 원로를 잃은 우리는 이제 나라의 큰일이 나면 어디로 달려가야 합니까.

국민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입니까.

당신께서 떠나니 이제 알겠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귀한 분인지, 당신의 삶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한 번도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았던 진정한 민주투사였습니다.

온갖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불굴의 정치인이었습니다.

사상 초유의 외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구해낸 준비된 대통령이었습니다. 햇볕정책으로 남과 북의 미움을 녹여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낸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자신을 그토록 핍박하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들을 모두 용서하셨습니다.

`용서와 화해'라는 귀한 유산을 남기셨습니다.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대통령님은 버마, 동티모르 등 세계의 인권을 신장시키고 남과 북의 화해를 이뤄내 노벨 평화상을 받으셨습니다.

용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시며 지구촌의 평화를 지키셨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당신의 피와 눈물 속에 피어났습니다.

당신께서는 민주주의의 상징이었습니다.

당신이 일구어낸 민주 사회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진정 국민이 주인인 세상을 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고, 국가지속가능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여성부를 신설하고, 정보고속도로를 완성하여 정보기술(IT)강국을 만들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주변을 맴돌던 한국 외교를 국제무대 한가운데로 끌고나가 나라의 격을 높이셨습니다.

국민의 기초생활보장제를 도입하여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셨습니다. 재임 시절에 한류가 지구촌 구석구석에 흘렀고, 월드컵 4강의 함성에 세계인이 놀라고, 문화를 개방하여 국민의 자긍심을 높인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님의 우리 문화에 대한 혜안과 인류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던 식견을 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그리고 선생님.

대통령님께서는 저 격동의 세월을 실로 쉬지 않고 달려오셨습니다.

퇴임 후에도 민족의 내일과 전 지구적 민주주의를 위해 정치와 세태를 꾸짖고 곳곳에 평화를 심었습니다.

저희가 이렇게 모여 대통령님의 업적을 헤아린다는 것이 어찌 보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 크기와 무게를 가늠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로 많은 것을 이루셨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 그리고 선생님.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마지막 말씀을 새기겠습니다.

말씀대로 깨어 있겠습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당신이 곁에 계실 것을 믿습니다.

당신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은 진정 위대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김대중이란 이름은 불멸할 것이니 이제 역사 속에서 쉬십시오.

대통령님, 당신의 국민들이 울고 있으니 하늘나라에서라도 저희를 인도해 주십시오.

김대중이 없는 시대가 실로 두렵지만 이제 놓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6월 25일 6ㆍ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매일 밤 이희호 여사와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신다고 하시면서 목이 메어 말씀을 한참 잇지 못했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님, 벌써 그립습니다.

늘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님, 이제 그 존경과 사랑을 당신께 드립니다.

지난날은 진정 고단했으니, 부디 편히 쉬십시오.』

***

한평생 불태운 삶처럼…떠나는 날 ‘뜨거운 햇살’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국회 영결식


“진정 국민이 주인인 세상을 열었다”
유족 등 국내외 인사 1만여명 애도
생전 영상·육성 흘러나오자 ‘술렁’

»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운구 행렬이, 23일 오후 서울 국회 앞마당에서 엄수된 영결식이 끝난 뒤 시민들의 애도 속에 국회 정문을 나서고 있다. 운구 행렬은 동교동 김대중도서관과 자택, 서울광장을 거쳐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사진공동취재단

23일 오후 2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국장 영결식이 열린 국회 본관 앞마당에는 민주와 통일을 위해 한평생을 불태운 그의 삶처럼 8월 늦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1시55분, 조악대의 유장한 조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영결식장에 도착했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과 생전에 받은 무궁화대훈장·노벨평화상을 든 의장대가 운구차에 앞서 들어섰다. 뒤이어 부인 이희호씨와 유족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영결식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늘어선 의장대는 ‘받들어총’으로 전직 대통령에게 예를 표했다. 김 전 대통령과 마지막 작별을 나누기 위해 모인 국내외 인사 1만여명은 운구차가 도착하자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영결식은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손숙 전 환경부 장관의 공동 사회로 시작됐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김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 김홍업 전 의원은 영결식장 뒤에 날리는 조기를 침통한 표정으로 올려봤다. 부인 이희호씨와 큰아들 김홍일 전 의원, 셋째아들 김홍걸씨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겹겹의 하트 모양 조화장식 속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이 모두를 지켜보고 있었다.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김 전 대통령 약력 보고가 이어졌다. ‘동교동계’의 좌장 권노갑 전 의원은 평생 동지와 함께한 풍상의 세월을 회고하는 듯 망연히 앉아 있었다.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는 조사에서 “헌정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어 정치발전의 확고한 기틀을 닦으셨다.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의 큰길을 열고, 2000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 일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김 전 대통령 부부와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박영숙 미래포럼 이사장이 추도사를 낭독할 때는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박 이사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독재정권 아래에서 숨쉬기조차 힘들 때, 김대중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희망이었다”며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지만 뜻을 꺾지 않으셨다. 이땅의 민주주의는 당신의 피와 눈물 속에서 피어났다. 당신이 일구어낸 민주사회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당신이 고마운 줄 몰랐다. 이제 살펴보니 당신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되라’는 마지막 말씀을 새기겠다”며 “말씀대로 깨어 있겠습니다. 우리들이 깨어 있으면 당신이 곁에 계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다짐했다. 그는 “늘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님, 이제 그 존경과 사랑을 당신께 드립니다. 지난날은 진정 고단했으니,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는 인사로 추도사를 마쳤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김 전 대통령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하는 천주교 제례 의식이 최창무 광주대교구장 집전으로 진행됐다. 이어 불교에서는 조계사 주지인 세민 스님, 개신교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삼환 회장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엄신형 대표회장이, 원불교에서는 김혜봉 대전충남교구장이 20분 남짓 제례를 집전했다.

종교 의식이 끝나자 영결식장 양옆에 마련된 대형 전광판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육성이 흘러나왔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과 더불어 위대한 한국인의 시대를 열어가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생생한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 전광판에 비치자 장내는 다시 한 번 술렁였다. 4분 동안 상영된 영상이 끝나자 부인 이희호씨와 유족들의 헌화 및 분향이 시작됐다. 주요 인사들의 헌화·분향이 끝나자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성악가 김영미씨와 평화방송 소년소녀합창단이 추모곡으로 ‘그대 있음에’와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운구 경로

땅 땅 땅. 3군 조총대의 조총 발사가 김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의 끝을 알렸다. “이제 고단한 삶 모두 편히 내려놓으시고 부디 편히 가십시오.” 사회를 맡았던 손숙 전 장관의 눈물 섞인 말을 끝으로 김 전 대통령의 운구차는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고 영결식 참석자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3시29분 김 전 대통령은 국회 영결식장을 나섰다. 국회가 기억할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김지은 이경미 기자

이희호 여사 고개 떨군채 마지막길 눈물 동행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영결식이 23일 오후 2시 국회 잔디마당에서 각계 인사 및 시의 애도 속에 엄수됐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국회 잔디마당과 그 주변은 영결식 준비로 분주한 모양새였지만, 영결식 시작이 임박하자 2만여명의 조문객 사이에는 침묵과 엄숙함이 짙게 깔렸다.

사회를 맡은 손 숙 전 환경부 장관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신 영구차가 입장하고 있습니다"는 안내에 따라 오후 1시55분 조악대의 조곡이 구슬프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운구차가 영결식장에 서서히 들어섰다.

운구차의 앞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영정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과 노벨평화상이 옮겨졌으며, 부인 이희호 여사가 흐느끼며 유족들과 함께 운구차를 뒤따랐다.

양옆에서 부축을 받아 식장에 들어선 이희호 여사는 영결식 내내 슬픔을 참지 못하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길가에 도열한 의장대는 `받들어 총'으로 영결식장으로 옮겨지는 전직 대통령에게 예를 표했고,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모든 참석자도 일제히 일어나 경건하게 고개를 숙였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국회 등원'을 지켜보는 조문객들 사이에서는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 23일 오후 국회에서 거행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분향할 때 한 조문객이 고함을 지르자 경호원들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연합

운구차가 영결식장에 입장하자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조순용 전 수석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연극배우 손 숙씨의 사회로 오후 2시 정각 사상 최대 규모의 영결식이 시작됐다.

장의위원회측은 이날 영결식에 장의위원을 비롯한 각계 주요 인사, 시민 등 2만4천명을 초청했다.

행사에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비롯해 김영삼, 전두환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를 포함한 3부 요인,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정당 대표, 주요국 조문사절단 등도 자리를 지켰다.

영결식은 조악대의 애국가와 묵념곡 연주, 이달곤 행안장관의 약력보고,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의 조사, 김 전 대통령 내외과 각별한 관계에 있는 박영숙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장의 추도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 23일 국회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이희호씨와 유가족들이 식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

이달곤 행안장관은 전남 하의도 섬마을 소년이 97년 15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기까지의 정치역정을 담은 김 전 대통령의 약력을 보고했다.

 한승수 총리와 박영숙 이사장은 각각 조사와 추도사를 통해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옆에 자리한 이희호 여사는 조사와 추도사가 낭독되는 내내김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지난 47년의 세월이 떠오르는 듯 시종 고개를 떨군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승수 총리는 조사를 통해 “대통령님은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민족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해 오셨다”며 “대통령님의 이러한 발자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영숙 이사장은 “국민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선생님, 이제 그 존경과 사랑을 당신께 드립니다”며 “지난날은 진정 고단했으니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며 목이 메인 채 추도사를 낭독했다.

 이어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순으로 종교의식이 진행됐다. 김 전 대통령이 천주교 신자였던만큼 최창무 광주대교구장이 집전하는 천주교의 제례가 가장 먼저 이뤄졌다.

 불교에서는 조계사 주지인 세민 스님이, 기독교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삼환 회장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엄신형 대표회장이, 원불교에서는 김혜봉 대전충남교구장이 각각 제례를 집전했다.

 약 20분간의 종교의식이 끝나자 제단 양옆에 마련된 대형 전광판과 스피커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과 육성이 흘러나왔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과 더불어 위대한 한국인의 시대를 열어가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는 김 전 대통령의 열띤 연설을 시작으로 한 영상물은 IMF 외환위기 극복, IT 강국 건설, 6.16 남북정상회담, 2002년 월드컵 개최 등 대통령 재임시 치적을 담아 4분간 상영됐다.

 침통한 표정의 이희호 여사는 영상물 상영 직후 양 옆의 부축을 받아 엷은 미소를 띤 남편 김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섰다. 이 여사는 홍일.홍업.홍걸씨 등 유족들의 헌화가 끝나자 고개를 90도 숙여 작별 인사를 했다.

 유족들의 분향이 끝난 뒤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가 제단에 올라 김 전 대통령의 넋을 기렸다. 이 과정에서 VIP석 뒤편에 있던 한 50대 남성이 “위선자”라고 소리쳐 경호원들이 급히 제지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 내외의 분향에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동지이자 경쟁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침통한 표정으로 헌화.분향하며 영면을기원했다.

 권양숙 여사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때 자신의 손을 잡은 채 오열을 터뜨렸던 김 전 대통령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주요 인사들의 헌화.분향이 끝나자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성악가 김영미씨, 평화방송 소년소녀합창단이 부른 추모곡 ‘그대 있음에’, ‘우리의 소원’이 울려퍼졌다.

 3군 조총대의 3발의 조총 발사가 이어졌고, “이제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했던 고김대중 대통령을 보내드려야 할 시간”이라는 손 숙 전 장관의 울먹임 속에 영결식 폐회를 알렸다.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운구차는 1시간10여분의 영결식이 끝나자 오후 3시12분 서서히 움직였고, 국회 본관 앞, 의원회관 앞을 지나 3시29분 영결식장인 국회를 떠났다.

 한편 영결식에는 2만4천명이 초청됐으나, 참석자들의 상당수는 한낮의 뙤약볕 때문에 자리를 지키기 보다 그늘진 공간을 찾아 영결식을 지켜봤다. 한 할머니는 탈수를 호소, 대기중인 응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다.

 상도동에서 온 홍사임(67.여)씨는 “대통령님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영결식에 참석했다”며 “대통령님의 화해와 평화의 뜻을 받들어 한국의 성숙된 모습을 만천하에 보여줬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김범현 강병철 김정은 기자 (서울=연합) ***

“화해와 용서,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달라”

이희호 여사, 서울광장 추모제에 들러 감사 인사

김대중 전 대통령 현충원 안장…시민들 “사랑합니다” 눈물 배웅

» 민주주의 꿈꾼 국회 뒤로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운구행렬이 23일 오후 서울 국회 앞마당에서 엄수된 영결식이 끝난 뒤 시민들의 애도 속에 국회 정문을 나서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동교동 김대중도서관과 사저, 서울광장을 거쳐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다리가 아파서, 발이 부어서 조금만 걸어도 힘들어했던 그가 저 먼 곳으로 갔다. 갈수록 손발이 차가워지는 남편을 위해 아내가 한올 한올 뜬 벙어리장갑과 밤색 양말이 그의 먼 길에 동행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 평화가 절룩거릴 때마다 그의 발이 되어 뚜벅뚜벅 걷게 했던 ‘지팡이’도 없이 어디로 그렇게 혼자 떠나가는가, 이날만은 ‘처서’도 서글퍼 슬픈 열기를 뿌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이 23일 국회에서 열렸다. 추도사는 그를 붙잡고 싶어 했다. “우리와 정말 영영 이별하시는 것인가요? 갈라진 남과 북의 산하가 흐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나라의 큰일이 나면 어디로 달려가야 합니까?”

물어도 대답 없으나, 거리에 나온 수많은 시민이 다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누구는 “김대중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가지 마세요”라며 흐느꼈고, 누구는 그가 숨이 멎는 순간까지 걱정하고 염원했던 ‘민주주의’와 ‘남북화해’를 종이에 적어 흔들었다.

영결식 뒤 국회를 빠져나온 그는 동교동 자택과 2층 서재, 신장을 치료하는 발명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끝까지 고통 속에 투석을 받았던 자택 치료실 등을 둘러봤다. 그는 평소 “이웃 사랑이 인생의 핵심”이라고 얘기해줬던 손자의 가슴에 파묻혀 아내와 함께 가꿨던 앞마당의 꽃향기도 맡았다.

시청 앞 서울광장엔 수만의 시민이 모였다. “그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행복했다”는 시민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같이 불렀다. 시민들 앞에 선 부인 이희호씨는 가녀렸으나 또렷한 목소리로 “용서와 화해가 대통령이 남긴 유지”라고 말했다. 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란 풍선들이 하늘로 띄워졌고, 시민들이 던진 나비가 그 풍선을 좇아 날았다.

독재에 맞선 야당 정치인으로, 민주주의를 앞당긴 대통령으로, 평화와 인권을 지킨 지도자로 살아오며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어섰던 그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인동초 같은 85년간의 생을 뉘었다.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은 우리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줄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 “사랑하고 존경했어요”라는 아내의 편지를 품에 안고 역사 속으로 걸어갔다. 송호진 기자***


“국민들이 넘치는 사랑 베풀어줘”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이 거행된 23일 오후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이희호씨가 국민과 분향소 운영자 등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망인 이희호 여사는 영결식이 열린 23일 내내 침통한 표정 속에서도 국민에게 남편의 유지(遺志)를 전달할 때만큼은 기운이 넘쳤다.

김 전 대통령의 85년 삶의 동반자이자 민주주의 완성과 남북화해를 향한 정치 인생에서 가장 가까운 동지였던 이 여사는 영결식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국회 빈소 앞에서 시작된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 옆 자리에 앉은 이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떨어뜨렸다.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한 지난달 13일부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병간호 때문에 쉬지 못했고, 서거일인 18일부터 엿새의 국장 기간에도 유족 대표로 자리를 지켰던 이 여사는 거의 탈진 상태로 보였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여의도 민주당사에 도착해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인사를 나눌 때도 주변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운구차 바로 뒤를 따르는 검은색 승용차에 몸을 싣고 서울광장에 도착해 역시 부축을 받으며 특별히 마련된 자리에 올랐을 때 이 여사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표정은 비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감사의 말과 자신이 평생 사랑하고 존경했던 남편의 유지를 전할 때는 달랐다.

이 여사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제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와 국장 기간에 여러분이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며 또박또박 대국민 메시지를 이어갔다.

이어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번도 굴한 일이 없습니다"라며 옆에서 지켜본 고인의 정치 역정을 회상했다.

마지막으로 "제가 바라옵기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 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라고 당부할 때는 목소리를 높였고 울먹임도 없었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에서 최고의 연설가이자 능변가였던 남편의 유지를 전할 때 남은 힘을 모았던 이 여사는 그러나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진행된 안장식에서는 슬픔에 겨워 다시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연방 훔쳤다. (연합)

»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이 거행된 23일 오후 이희호씨가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의 부축을 받으며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전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운구행렬이 23일 오후 서울광장을 떠나자 노란풍선이 날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이희호씨 감사 인사 전문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제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와 국장 기간때 여러분들이 넘치는 사랑 베푼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 남편은 일생을 동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 과정에서 권력에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번도 굴한 일이 없다. 제가 바라옵기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운구 행렬이 23일 오후 서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추모 속에 서울시청 앞을 지나 서울역을 향하고 있다. 국회 영결식장을 떠난 김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동교동 김대중도서관과 자택을 거쳐 서울광장을 들른 뒤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시청 앞 서울광장엔 수만의 시민이 모였다. “그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행복했다”는 시민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같이 부르며 그를 맞이했다. 시민들 앞에 선 부인 이희호씨는 남편을 대신해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 이희호씨는 가녀렸으나 또렷한 목소리로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고, 권력의 회유와 압박이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하지 않았다”며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 남편이 남긴 유지”라고 말했다. 생의 끝자락에서도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보고 싶다는 국민들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는 그를 기리며 노란 풍선들이 하늘로 올랐고, 시민들이 띄운 나비가 그 풍선을 좇아 나풀거리며 날았다.

독재에 맞선 야당 정치인으로, 민주화를 앞당긴 대통령으로, 평화와 인권을 지킨 큰 지도자로 살아오며 숱한 죽음의 고비를 넘어섰던 그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인동초’ 같은 85년간의 생을 뉘었다.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은 우리에게 ‘행동하는 양심’으로 깨어 있어 줄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했어요”라는 아내의 편지를 품에 안고 역사 속으로 걸어갔다.

송호진 기자***

39년간 55차례 연금 ‘동교동과 이별’

사저 떠난 김 전대통령

5평 서재엔 실행되지 못한 일정표 빼곡
이웃들 “사랑합니다” “여사님 힘내세요”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자 종대씨가 23일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을 들고 동교동 자택 서재를 돌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린 23일 오후 3시47분. 운구차가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의 김 전 대통령 자택이 있는 골목길 앞에 멈춰 섰다. 주민 등 1000여명의 시민들이 길 건너편과 자택 맞은편 빌딩 등에 올라가 고인을 맞았다. 둘째 홍업씨의 장남인 손자 종대(23)씨가 영정을 들고 집으로 들어서자 시민들은 “여사님 힘내세요”라고 외쳤다. 자택 들머리에서 기다리던 서교동 성당 성가대가 ‘고통도 없으리라’ 등 15곡의 성가를 불렀다.

동교동 자택은 김 전 대통령이 55차례나 가택연금을 당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김 전 대통령은 1963년 입주한 뒤, 지난 7월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대통령 재직 기간과 영국 유학 기간 등을 빼고 37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걸린 대문을 지나 그가 즐겨 앉던 1층 거실의 주홍빛 소파에서 2~3초간 쉬었다. 생전에 정원의 참새들이 노니는 모습을 즐겨 봤다는 곳이다.

영정은 이어 2층의 침실과 서재로 올라갔다. 그동안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는 공간이다. 3~4평 크기의 침실은 침대와 옷장, 각종 선반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침대 앞 선반에는 북한에서 보내 준 것으로 보이는 엽서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

5평 남짓한 서재는 생전에 김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책상에는 병원에 입원하느라 고인이 미처 실행하지 못한 7월11~25일치 일정표와, 입원 전 읽은 것으로 보이는 <조선왕조실록> <제국의 미래> <오바마 2.0> 등의 책이 놓여 있었다. 책상 뒤 벽면에는 그가 ‘양심적 신앙인’으로 가까이했던 고 김재준 목사가 보내준 ‘생명 평화 정의’라는 글씨가 적힌 액자가 걸렸다.

서재의 책꽂이 뒤편은 작은 침대 등이 놓인 투석 치료 공간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한 번에 5시간씩 매주 3회 치료를 받던 곳이다. 벽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휘호인 ‘윤집궐중’(允執厥中)이라고 적힌 족자가 걸려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중용>에 나오는 글귀로 ‘진실로 그 가운데, 중도를 꽉 잡아라’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10여분 동안 집안을 둘러본 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자택 바로 옆의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으로 향했다. 부인 이희호씨가 김 전 대통령이 감옥에 있던 시절 떠준 털장갑 등 고인의 손때가 묻은 자료 1만6000점이 전시된 1층 전시실, 마지막까지 자서을 집필하며 시간을 보냈던 5층 집무실을 둘러본 뒤 김 전 대통령은 동교동을 영원히 떠났다.
명창 안숙선씨가 이희호씨의 ‘마지막 편지’를 창으로 불렀다.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구슬픈 판소리 가락을 뒤로하고 김 전 대통령은 시민들이 기다리는 서울광장 분향소로 향했다. 박수진 김지은 기자

“우리의 소원은~” 합창…나비·노란풍선 ‘배웅’

서울광장 메운 2만여명 ‘마지막 길’ 함께하며 눈물
“고난만 겪으셨는데…” “가고 나니 아쉬움 크다”
자정까지 분향소 운영…시민들 추모발길 이어져

» ‘김대중 전 대통령 국민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23일 오후 김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하자 노란 풍선을 날리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현대사의 거목이 영면한 날, 시민들은 그를 떠나보내며 저마다의 가슴에 ‘유지를 잇겠다’는 어린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23일 오후, 2만여명의 시민들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국민추모문화제’에 참여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낮 최고 기온이 31도까지 오르는 무더위 속에서도 시민들은 광장을 메우고, 건너편 대한문 앞마당까지 채웠다.

‘민주주의여! 통일이여! 김대중 대통령이여!’라는 이름으로 열린 추모문화제는 국회 영결식 생중계가 끝난 오후 3시30분께부터 김유정 민주당 의원과 정봉주 전 의원의 사회로 진행됐다.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배우 오정해의 추모 공연 등이 진행된 추모제의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했다.

행사 사이사이 동영상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1987년 대선 연설과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 등이 흘러나올 때는 시민들이 흐느끼기도 했다.

주부 박선자(59)씨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다 고난만 겪으셨는데….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강성운(73)씨는 “생전에 계실 때도 좋은 분이란 거 알았지만 가고 나니 아쉬움이 크다”며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오후 4시30분께 김 전 대통령의 영구차와 부인 이희호씨가 서울광장에 도착하자 시민들은 차가 멈춘 대한문 광장 쪽으로 몰려가기도 했다.

이희호씨가 차에서 내려 “평화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말하자, 행사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의 연설이 끝나자 노래 ‘우리의 소원’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비와 노란 풍선이 푸른 하늘을 수놓았다.

고인이 일생의 화두로 삼았던 민주주의는 이날 그를 보내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끈이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을 담은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를 함께 불렀다.

회사원 백익현(49)씨는 “서거 소식과 ‘행동하는 양심’ 이야기를 듣고 죄책감이 들었다”며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뿌린 평화와 통일의 씨앗도 싹을 틔우고 있었다. 광장 한편에는 부모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어린이들이 그린 160여점의 ‘통일 그림’들이 전시됐다. 노란 종이학을 접어 한반도 모양의 지도를 만드는 행사도 진행됐다. 학을 접던 김귀경(39)씨는 “김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통일 대통령으로 기억한다”며 “내가 어렸을 땐 김일성 그림 그리면 항상 뿔 2개가 달려 있었는데, 통일을 주제로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가 가져온 변화”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광장은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아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다는 약속의 장소이기도 했다.

서울광장을 찾은 시민들은 영정 앞에 헌화한 뒤, 추모글을 써 붙이는 ‘추모의 벽’ 옆에서 진행되는 ‘스티커 설문’에 참여했다. 설문이 벌어지는 곳에는 김 전 대통령이 지난 6월 한 오찬장에서 했던 말이 크게 적혀 있다.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않고,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집회에 나가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할 수 있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이 글 옆에는 ‘김대중 대통령님의 유언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약속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글귀와 함께 △나쁜 정당에 투표 않겠다 △나쁜 신문을 보지 않겠다 등의 5가지 항목이 선택지로 제시돼 있다.

스티커를 붙인 공유지(28)씨는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선 투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쁜 정당에 투표하지 않겠다’는 항목을 골라 나 자신과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이 떠난 뒤에도 서울광장 분향소는 자정까지 운영돼 시민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권오성 김민경 기자

유족 오열속 “편히 쉬세요” 영원한 이별
현충원 안장

» 23일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와 가족,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안장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 파란만장한 85년 삶을 헤쳐온 육신을 의탁한 채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동작대교로 한강을 건너 현충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50분. 여의도 국회에서 거행된 영결식을 마친 뒤 여의도 민주당사~동교동 자택~서울광장~서울역을 거쳐 약 3시간 만이었다.

운구행렬이 현충원에 도착하자, 국방부 의장대 11명이 영정을 앞세우고 묘역 하단에 마련된 식장으로 김 전 대통령의 유해를 옮겼고, 의연했던 부인 이희호씨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흐느꼈다.

이날 안장식은 이희호씨 등 유가족과 동교동계 측근 등 평소 고인을 따르던 인사와 정부 쪽 장의위원 등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안장에 앞서 열린 종교행사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순으로 진행됐고, 천주교와 기독교 의식은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함세웅 신부와 이해동 목사가 각각 집전했다. 함 신부는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고인의 뜻을 이어 정의와 통일을 실천하는 평화의 사도가 될 것”을 다짐했다.

종교행사가 끝나자 이희호씨와 홍일, 홍업, 홍걸 세 아들 등 유가족과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등 동교동계 측근의 헌화와 분향이 이어졌고, 아들 홍걸씨는 흐느끼는 어머니 이씨의 어깨를 만지며 “울지 마세요”라고 위로했다.

6시5분 국방부 의장대는 김 전 대통령의 영면관을 묘소로 봉송해 관을 내렸고, 관 위로는 금박으로 대통령 문양인 봉황무늬와 무궁화가 그려진 7개의 상판이 덮였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에서 가져온 흙으로 봉분에 앞서 관을 덮은 허토의식이 진행됐다. 이희호씨와 세 아들 등 유가족들은 김 전 대통령과 영원한 이별의 순간을 절감한 듯 관을 덮은 상판 위로 하얀 카네이션과 함께 흙을 정성스럽게 뿌리면서 연신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이날 영결식은 6시57분 조총과 진혼곡이 울려퍼지고 참석자들의 묵념, 그리고 “서거했지만 온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한 지도자로 살아 계실 것입니다. 영면하십시오”라는 사회자의 발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안장식장 주변에는 시민 700여명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고, 몇몇 시민은 “이희호 여사님 힘내세요”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다. 신승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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