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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마지막` 지킨 40년 동지들

by 싯딤 2009. 8. 24.

'마지막'지킨 40년 동지들

"침통함 이루 말 할 수 없다" 눈물 흘리며 장례 논의

정세균 대표 "민주당엔 어버이 같은 존재"

» 한광옥(왼쪽부터), 권노갑, 김옥두, 한화갑, 윤철상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이 18일 저녁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시 빈소에서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8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시 빈소가 차려진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영안실 특1호실에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 각계각층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권노갑, 한화갑, 한광옥, 김옥두 전 민주당 의원과 박지원 의원 등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 격랑을 함께 헤쳐온 동교동계 인사들이 임시 빈소에서 조문객들을 맞았다. 김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통하는 박지원 의원은 서거 소식을 가장 먼저 발표했다. 박 의원은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 채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동교동계의 양대 축을 이루던 권노갑, 한화갑 전 의원은 오후 3시께 임시 빈소를 찾은 행정안전부 의전국장으로부터 장례 절차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장례위원회 구성과 장례 진행 방식 등을 논의했다. 김 전 대통령의 차량 운전을 맡아 했던 김종선씨는 “침통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두들 눈물을 흘리는 가운데 장례 절차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참모들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바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정치 발전, 세계 인권,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며 “나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평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추구한 사회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치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 등 김대중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인사들이 줄이어 조문했다. 포항에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급히 상경한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 30여명은 오후 5시께 긴급지도부회의를 마치고 빈소를 찾았다. 이에 앞서 원혜영, 이종걸, 송영길, 추미애, 천정배 민주당 의원과 정동영 의원, 박진·이한성 한나라당 의원,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김근태·김희선 전 민주당 의원 등도 조문했다. 시민사회에서는 함세웅 신부와 임기란 의장 등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회원들도 일찌감치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빈소를 들어서기 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번영을 위해 평생을 바치시고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신 김 전 대통령께서 떠났다. 믿기지 않는 상황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과 땅이 꺼지는 아픔을 피할 길이 없다”라고 말했다. 천정배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입에 발린 추모사를 할 자격이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것을 약속해라”고 말했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문을 위한 방문을 할 수 있도록 정중히 요청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김지은 이경미 기자 ***

서울광장 분향소서 동교동계-상도동계 공동상주

DJ쪽 “옛 민주화 동지들 왔다” 반겨

»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가 함께 주축을 이뤘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출신 인사들이 21일 낮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공동 상주 구실을 하며 조문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박찬종 전 의원, 한 사람 건너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 강재훈 선임기자

1970~90년대 우리나라 정치계의 ‘영원한 경쟁자’인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화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디제이와 와이에스의 반목만큼이나 질긴 경쟁 관계였다.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 등 상도동계 인사들은 21일 오전 11시30분께 김 전 대통령의 서울광장 분향소를 찾아 단체로 조문한 뒤, 한화갑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과 함께 공동 상주로 조문객들을 맞았다.

이날 서울광장 분향소 조문은 김무성 의원 외에도 안경률 한나라당 의원, 박찬종 전 의원, 김상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공동이사장과 민추협 회원 60여명 등이 함께 했다.

조문이 끝난 뒤 김무성 의원과 안 의원, 김상현 이사장 등은 분향소가 세워진 뒤 서울광장 분향소를 지켜온 한화갑 전 의원 등과 낮 12시30분까지 1시간 동안 공동상주로 조문객을 맞았다.

상도동계인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특보도 공동 상주단에 합류했다. 한화갑 전 의원은 “옛날 민주화 투쟁을 함께 한 동지들이 왔다”며 반겼다.

김무성 의원은 “김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화해와 통합의 분위기로 가야 한다”며 “상도동과 동교동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원치 않게 파생된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앞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는 1984년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위해 민추협을 함께 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1987년 대선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면서,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이가 멀어지자 교류도 단절됐다. 김민경 기자***

DJ를 26년간 지킨 한 남자 이야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곁에 문재인 변호사가 있다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곁에는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의 곁을 26년간 지킨 한 남자의 이야기를 제가 아는 대로 남기려 합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습니다.”
 8월 4일 박지원 의원이 클린턴 방북 소식을 전하자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꼬일 대로 꼬인 남북문제를 해결할 물꼬를 클린턴 전 대통령이 텄다는 반가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폐색전증으로 기력이 없는 데도 김 전 대통령은 클린턴 방북과 관련한 신문기사를 다 읽어달라고 청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 여성 언론인 석방 협상을 위해 4일 전격적으로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박 의원은 신문을 읽어 갔고, 그 목소리를 들으며 김 전 대통령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후 상태가 나빠져 김 전 대통령은 안정과 위험을 오가다결국 안정제를 투여받고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눈빛으로 이희호 여사와 가끔 대화를 나눴지만 더는 글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이 접한 생애 마지막 글이 ‘클린턴 방북 기사’가 됐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걱정하는 김 전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려 임종하는 순간까지, 현정은 현대아산 회장의 방북과 다섯 가지 합의 등을 박 의원은 보고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7월 13일 폐렴증상으로 서울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후 박 의원은 그날그날 일들을 보고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위독할 때면 밤을 지새며 그의 곁을 머물렀습니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있던 13일에도 밤 11시가 넘어 병원에 들렀습니다. 피곤할 만도 한데,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9시쯤이면 잠을 청하는 김 전 대통령도 박 의원을 기다리고 계셨지요. 청문회 이야기를 다정히 나누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측근은 ‘아버지와 아들 같았다.’고 전했습니다.
 
 박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을 만난 것은 1983년 5월24일이라고 합니다. 당시 박 의원은 41세, 김 전 대통령은 59세였습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배후·조정했다는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고 청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이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입니다. 박 의원은 당시 뉴욕 한인회장이었지요.
 
 박 의원은 첫 만남 때 ‘DJ 사람’이 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런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걸 보면 김 전 대통령이 참 매력적인 분이셨나 봅니다. 박 의원은 92년 대선 때부터 김 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습니다. 청와대 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고, 동교동계가 받아들인 유일한 외부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퇴임한 후에는 김대중 평화센터의 비서실장을 맡아 그의 곁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위기도 있었습니다. 대북송금 특검수사와 재판이 한창이던 2004년입니다. 제가 박 의원을 처음 만났던 때이기도 하지요. 당시 박 의원은 현대비자금 150억 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1심 재판부에서 징역 14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박 의원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여론은 나빴고 그는 녹내장·우울증·협심증까지 얻어 신촌 연세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맙니다.
 
 2004년 6월 2일 김 전 대통령은 예고 없이 불쑥 박 의원을 면회하러 병원를 찾습니다. 박 의원이 구속된 후 첫 만남이었습니다. 당시 박 의원은 “제가 이런 처지가 돼서 대통령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대통령님께 맹세코 150억 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오열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모함을 당하고 고초를 당하는 것을 억울해하지 말고 몸 관리 잘하면서 잘 이겨내라.”고 위로했습니다. 다행히 박 의원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납니다.
 
 오늘도 박 의원은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남자가 있어 김 전 대통령의 ‘하늘길’이 덜 외로울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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