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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고인을 애도하는 추모 행렬이 전국 각지에서 이어졌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비롯해 서울·광주·부산·수원 등 전국의 주요 도심과 사찰 등엔 전날 밤부터 추모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조문객들은 고인의 생전 모습을 회고하며, 황망한 죽음을 한없이 슬퍼하고 미안해했다. [동영상]보통사람들의 ‘바보 노무현’ 연가 봉하마을에는 이른 아침부터 조문객들이 밀려들었다. 오후 한때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에도, 추모 행렬은 마을 진입로까지 2㎞가량 겹겹이 이어졌다. 손에 손에 국화꽃을 든 조문객들은 환한 미소를 머금은 고인의 영정 앞에서, 눈가를 훔치고 입술을 깨물다 널브러져 통곡했다. 한 장애인은 ‘조금만 더 참으시지, 이렇게 허무하게 가면 어떡합니까’라고 적힌 손팻말을 휠체어에 매단 채 한동안 분향소를 떠나지 못했다. 밤새 빈소를 지킨 봉하마을 주민들과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은 비통함과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이들은 “무슨 염치로 문상을 오느냐”며 빈소를 찾은 여권 인사들의 조문을 격렬하게 제지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 분향소’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경버스가 분향소 주변을 겹겹이 둘러쌌지만 추모 발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불어났다. 이날 오후 조문 행렬은 시청역 지하보도를 거쳐 청계광장을 돌아 프레스센터까지 1㎞가량 이어져, 분향까지 세 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 초등학생 딸과 분향소를 찾은 손광은(44)씨는 절을 한 뒤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영정 앞에 내려놓았다. 고인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담배를 찾았다는 얘기가 마음에 걸렸다며 눈이 벌게졌다. 그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만 돼도 좋은데, 좌절감이 너무 커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로 나선 이강수(46)씨는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길인데 예우는커녕 분향소 설치까지 방해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전시청 앞 거리 분향소에는 노란 풍선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두 자녀와 아내를 데리고 나온 조철민(37)씨는 “첫애가 뱃속에 있을 때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때 너무 기뻐서 잠도 못 잤다. 내가 30대 때 꿈을 실었던 분이 돌아가셨다기에 인사하러 왔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님, 기억 속에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박세화) ‘고통받는 모습이 저에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습니다’(여고 2학년 이주영) ‘억울합니다. 원통합니다. 편안히 쉬십시오’(정복희) …. 조문객들은 고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 회한의 감정을 방명록에 빼곡히 남겼다. 봉하마을 빈소에만 이날까지 모두 20여만명이 조문을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 아고라 등에는 이날 오후까지 30만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추모 서명과 글을 남겼다. 김회승 안관옥 기자, 전국종합 [24일 오후] “추모도 못하게 막나” 줄 선 시민들 분통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 분향소’를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24일 오후 들어 더 늘고 있다. 경찰의 통제로 자유로운 분향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길어져 시청역 2,3,4번 출구를 휘감아 돌아 길 건너 윗편 프레스센터까지 이어졌다.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분향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행렬은 이날 오후 3시께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이어져 시청역 2, 3번 출구를 지나, 서울성공회성당 골목 앞에서 경찰에 막혀 다시 돌아 내려와 3번 출구(코리아나 호텔 방향) 아래로 내려갔다. 이 줄은 지하철 매표소도 빙빙 돌아 반대편 위쪽 4번 출구 프레스센터 앞까지 올라간 상태다. 줄을 서 기다리고 있던 대학생 이아무개(24)씨는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래도 괜찮다. 보고 가야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 것 같다. 상류층만이 아닌 서민을 위한 정치, 나라를 만들려고 했던 분이라서 많이 지지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경찰이 막는 건 부당한 정도가 아니다”라며 “최근 집회 금지 마구 내리던데 촛불시위로 크게 번질까 봐 그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실제 경찰은 시청역 4번 출구(프레스센터 방향)는 막지는 않으나, 나와서 시청 광장으로 가는 길은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시청역 5번출구(시청광장 방향)는 아예 나가지 못하게 통제해, 시청 광장으로 시민들이 진출하려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렇게 기형적인 추모행렬이 생긴 것은 경찰이 전경버스를 이용해 분향소 공간을 찌그러뜨렸기 때문이다. 대한문 앞 분향소는 50평 정도로 이중 차벽을 만들어 고립시켰으며, 넓디넓은 시청 앞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은 출입을 완전히 차단했다. 특히, 경찰은 휴일을 맞아 청계천을 찾은 시민들이 동아일보 앞 소라광장으로 올라오는 것까지 차단했다. 이 때문에 소라광장은 무교동 사거리까지 지나다니는 시민이 전혀 없어 썰렁했다. [동영상] “전직 대통령의 마지막 길…왜 조문조차 못하게 하나” 오래 기다린 끝에 조문하던 손광은(44)씨는 절을 한 뒤에 담배 한 개비에 불 붙여서 향에 꽂기도 했다. 부인, 초등학교 3학년 딸과 함께 조문한 손씨는 “명계남씨가 ‘조중동, 이명박이 아니라 국민들이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며 “상식이 통하는 사회만 되도 좋은데, 이 사회는 너무 상식이 통하질 않는다”고 말했다. 손씨는 “마지막에 담배 있냐고 한 말이 계속 걸린다. 담배라도 피고 가셨으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대한문 앞 분향소는 가족 단위 조문객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7살 난 딸과 5살 아들과 부인과 함께 나온 조철민(37)씨는 “딸이 뱃속에 있을 때 노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때 너무 기뻐 3일 동안 잠도 못 자고 신이 났다. 내 30대 열정, 꿈을 실었던 분이 돌아가셨다기에 인사하러 왔다. 우리 애들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이걸 보여주고 싶고, 기억에 남겨줘 나중에 커서 물어볼 땐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1학년, 4학년 딸과 함께 나온 최아무개(43)씨는 “역사의 현장 보여주고 싶어서 나왔다. 너무 좋아한 진정한 정치인, 국민을 위한 대통령인데 안타깝다. 정치적 탄압을 하려면 정치적 탄압에서 그쳐야 하는데, 아예 매장하겠다고 비도덕적으로 몰아가서 안타깝다. 검찰 수사 도를 넘었다. 여기 와 있는 모든 사람들, 말보단 행동으로, 침묵으로서 항의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또 분향소를 둘러싸고 있는 경찰을 가리키며 “일제 시기 순종 돌아가셨을 때 기분이 이런가 싶다. 일본군이 조문객들 포위했듯이. 말로는 전직 대통령 예우한다면서 행동으로는 이게 뭐냐?”고 말했다. 19개월 난 딸을 데리고 나온 주아무개(35)씨는 “돌아가신 것도 슬픈데 장소가 너무 초라해서 더 슬프다. 이제 한국사회 민주주의, 정의, 인권 말하고 살 수 있는지 너무 암울하다. 괴롭고 슬퍼서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다. 명예, 가치, 이상을 가장 중시하던 분인데 그분의 상징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려 절망했을 것이다. 경찰, 정부의 지나친 정치보복이다. 시국이 하도 안 좋으니 이런 말 하는 것도 겁난다. 익명으로 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분향하고 나오면서 펑펑 울었다. 대학생 김병호(21)씨는 “어제 오후 6시부터 계속 나왔다. 그냥 가만있는 게 힘들어서 나왔다. 존경 참 많이 한다. 인권 변호사 활동이나, 늘 어려운 사람 위해 일 많이 했던 분이라 왠지 자리 계속 지키고 싶다. 경찰이 막고 있는 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국가에서 차려준 것도 아니고 시민들이 차린 건 데 그걸 통제하는 걸 보니 갑갑하다. 초상집 조문객을 막는 게 말이 되나”고 말했다. 김민경 이완 기자 [24일 오전] 경찰 포위 속에 뜨거워지는 추모 열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하루가 지난 24일,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에 추모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특히,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이 또 다른 ‘추모 행사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촛불 집회’의 중심지인 청계광장과 시청앞 광장이 경찰의 원천봉쇄로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한문 앞 분향소는 유일하게 서울 시민들의 접근이 허락된 장소인 탓이다. 대한문 앞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1시 조문객 500여 명(경찰 추산)이 분향할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있었다. 시청역 3번 출구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으며, 실제 분향을 하기 위해선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할 정도다. 추모 행렬은 지난밤에도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날 오전에도 대한문 주위에 9개 중대 약 700여명의 경찰을 배치해 시민들의 조문행렬을 둘러싸고 있다. 전날인 23일 간혹 조문행렬을 가로막아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이날은 오후 1시까지 충돌이 벌어지진 않았다. 서울 전역에는 104개 중대 8천여명의 경찰이 배치돼 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인 23일 저녁 여러 곳에 세워졌던 분향소는 새벽에 대한문 앞으로 통합됐다. 노란색 천막 세우면서 공식적인 분향소를 하나로 합치자는 논의 나와서 통합된 것으로 전해졌다. 분향소 뒤에는 큰 노란색 펼침막이 2개 걸려있다. 손을 흔드는 노 전 대통령 사진 위로 “행복했습니다. 노무현 때문입니다”라고 적혀있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은 2개가 내걸려 있다. 하나는 노 전 대통령이 뒤돌아보며 웃는 얼굴이며, 다른 하나는 밀짚모자 쓰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겼다. 분향소에는 오전에 한 스님이 와서 목탁을 두들기고 있고, 그 옆에 도포 입은 할아버지가 대금을 불기도 했다. 이들 뒤에는 불교 신자 3명이 눈 감고 합장하면서 서있었다. 분향소 뒤에 있는 전경 버스에는 국화꽃이 여러 송이 매달려 있고, 전경버스에는 “부디 하늘나라 가서 행복하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시민들이 펜으로 써놓기도 했다. 분향소 주변은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상주 역할도 하고 추모 안내도 하고 있다. 상주로 나선 이강수(46)씨는 “어제 저녁 4시20분부터 와서 3시간 자고 다시 나왔다. 대통령 마지막 가는 길 지키러 나섰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한 나라의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도 경찰이 이렇게 막고 있다니, 공안탄압이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는 반증”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국민을 무서워하고 있어 전경 버스로 막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으로 자원봉사 나선 회사원 이세희(21)씨는 “노 대통령 당선 때 중학생이었는데 다른 후보에 비해 서민적인 공약 내세운 데 감명 받아 계속 좋아했다”며 “서거 소식 듣고 믿기지 않아서 나왔는데, 전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도 경찰이 분향행렬을 통제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씨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섰던 참여정부 시절이 그립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민경기자 [23일] “얼마나 수모를 당했으면…” 대한문 앞 탄식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임시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광화문 대한문 일대에는 밤이 깊어 지면서 추모 행렬이 점점 늘고 있다. 이날 밤 10시30분이 지나면서 추모객은 경찰추산 3000여명에 이르렀다. 밤이 깊어지는 데도 추모인파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분향소 주변에는 노 전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사진에 ‘행복했습니다. 노무현 때문입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펼침막이 걸렸다. 이곳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은 노인, 어린이, 주부와 교복을 입은 학생 등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었다. 이들 가운데는 검은 상복에 ‘근조’라고 쓰인 검은 리본을 달거나, 국화를 든 경우가 많았다.
“5년뒤에도 웃겠다”던 꿈 끝내…
■ 시민들 추모 물결 이날 대한문 앞으로 삼삼오오 몰려든 시민들은 오후 4시30분께부터 테이블, 영정사진, 조화 등으로 ‘임시 분향소’를 마련했다. 영정사진 속 노 전 대통령은 밀짚모자를 쓴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분향소 앞에는 추모객 3000여명이 모여, 갑자기 떠난 노 전 대통령을 애도했다. 일부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기도 했다. 분향소 설치가 끝나자 시민들은 네다섯 명씩 국화를 들고 분향소 앞에 나와 절을 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환히 웃는 영정 속 노 전 대통령의 얼굴 아래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추모 문구가 적혀 있었다. 분향소를 찾은 시민 박인홍(50)씨는 “뉴스를 보고 놀란 마음에 아내와 함께 나왔다”며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검찰에서 얼마나 수모를 당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분향소 주변에서는 일부 누리꾼들이 ‘이명박 대통령 탄핵소추를 바라는 국민운동’ 서명을 진행하기도 했다.
추모 인파가 늘면서 분향소도 애초 1군데에서 2곳으로 늘었다. 시민들은 조문 뒤, 불켜진 초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냈고, 주변을 가로막고 있는 전경 버스에 국화 송이를 꽂아놓기도 했다. 또, 시민들은 지하철역 주변 가로수에 가판 신문에 나온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붙여 ‘간이 분향소’를 설치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간이 분향소 앞 맨바닥에 향과 초, 사과, 배 등을 놓고 애도했다. 바닥에는 ‘사랑하는 우리의 노짱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이 쓰인 A4용지도 붙었다. 간이분향소가 된 가로수에는 사진 외에도 ‘더 믿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할아버지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세요’라는 쪽지들이 달렸다. 20대 중반의 한 시민이 “당신을 싫어했지만 존경했다. 그런데 이렇게 가면 안돼잖아”라며 울부짖자, 주위의 100여명이 함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추모 행렬 일부는 시민 악단과 함께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등의 노래를 부르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분향소를 찾지 못한 시민들도 안타까움을 전했다. 회사원 최장순(30)씨는 “아침에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훌쩍이시더라”라며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노 대통령이 상징하던 도덕성·진보·민주주의와 같은 가치들이 무너진 게 아닌가 생각하니 너무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송현수(45·회사원)씨는 “우리가 힘들었을 때 그를 보고 희망이 있다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이런 식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 경찰, 분향도 방해 경찰은 이날 시민들의 분향소 설치를 막지는 않았으나 분향 진행을 여러 차례 방해해 시민들과 충돌을 빚었다.
대한문 앞에 배치된 경찰 16개 중대 2000여명은 차벽으로 분향소 주변을 둘러싼 채 시민들의 조문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분향소 주변에 설치하려던 천막을 “불법의 소지가 있다”며 압수해 조문객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경찰이 분향소 접근을 막자 조문객들은 경찰 차벽 밖에 분향소 두 개를 추가로 설치하고 조문을 진행했다. 흥분한 일부 조문객들이 경찰에게 “차벽을 빼라”고 거세게 항의하는 등 곳곳에서 충돌이 이어졌다. 경찰은 “민주노총, 전교조 등 시위대들이 몰려들 수 있어 출입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추모제를 강제로 해산할 경우 국민적인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규정상 ‘추모제’는 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추모 모임을 해산할 법적 근거는 없다. 이날 경찰은 서울에만 92개 중대 1만여명을 배치하고 시민들의 추모 물결을 주시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부터 서울광장·청계광장 등 도심에서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주요 광장을 모두 차벽으로 막았다. 길윤형 박수진 송채경화 김민경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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