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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고통의 나날`

by 싯딤 2009. 7. 27.

투신하기 전 ‘고통의 나날’
“내가 괜히 정치하고 대통령 했다”

‘나 때문에…’ 자책에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워
서거 3~4일 전 수차례 “너무 힘들다, 죽고싶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김해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노전대통령 분향소에서 합천 해인사 스님350여명과 참배하던 아들 건호씨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끝 모를 고통’을 토로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했다. “퇴임 이후 성공한 농부가 되고 싶다”던 약속대로, 평범한 ‘시골 촌부’로 지내던 그를 이토록 큰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노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보좌했던 이들은 “노 전 대통령께서 끊었던 담배를 최근에 다시 피우기 시작했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노 전 대통령의 고뇌가 컸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 퇴임 뒤 줄곧 봉하마을에서 그를 보좌했던 김경수 비서관은 24일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가 불거진 지난달 7일 이후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못했다”며 “사실상의 연금 상태로 육체적·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어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검찰 소환 뒤에는 사건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며 “봉화산 등산을 대단히 좋아하셨는데 지난해 말 형님(노건평씨) 사건 이후로는 거의 산에 오르지 못하셨으니 얼마나 답답하셨겠냐”고 말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지난해 말 건강검진에서 금연을 강력히 권고받고, 권양숙 여사도 금연을 권고해 결국 담배를 끊었는데 이번 사건이 불거지면서 다시 줄담배를 피우셨다”며 “최근에 ‘내가 괜히 정치를 하고 대통령을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들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며 괴로워하고 자책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한 23일 분향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에서 딸 정연씨가 눈물을 흘리며 헌화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검찰 조사 직후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 만났다는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대통령께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그런 진술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이 아닌 게 많다. 그들은 재판 과정에서 나를 망신 주려 할 것이다. 어쨌든 재판 과정에서 따져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며 “대통령께서는 특히 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에 대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이 나를 돕다가 그런 꼴을 당한 것’이라며 가장 괴로워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최근에 자녀들까지 검찰 조사를 받게 되자 더욱 힘들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27일 양산 부산대병원 건강증진센터에서 1박2일 일정으로 건강검진을 받은 노 전 대통령은 수시로 이 병원의 주치의인 조몽 교수에게 건강상태를 점검받았다. 서거 일주일 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근무하는 박은아 비서관으로부터 “노 전 대통령이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을 하셔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 쪽에서 병실을 준비하기도 했으나, “대통령께서 입원을 원하시지 않는다”고 해 예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서거 3~4일 전에는 노 전 대통령이 고향 친구 이아무개씨 등을 만난 자리에서 “요즘 너무 힘들다. 죽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의 초등학교 1년 후배이자 부인 권양숙씨의 1년 선배인 이재우(63) 진영농협 조합장은 “대통령께서 너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 지난 20일 저녁에 통닭 두마리와 소주를 사들고 사저에 찾아가, 아들 건호씨까지 함께 음식을 나눠 먹고 왔다”며 “특별한 말씀은 없었지만 대통령께서 가끔씩 웃으셨고, 권양숙 여사도 비교적 밝은 표정이어서 조금은 마음을 놓고 왔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고 했다. 김해/이수윤 박창식 최상원 기자*

전·현직 특수통 검사들 “수사방식 문제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표적 사정 논란
준비없이 지지부진한 망신주기 수사 지적

세워놓고 하는 게 아니라 하면서 나오는대로 하는것 같아”
수수설 공개뒤 한달지나 소환…소환해놓고 3주나 시간 끌어
혐의입증 관련없는 사용처 캐…대검 간부 “비겁한 일이라 봤다”

‘박연차 로비’ 수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인과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검찰은 여론의 뭇매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검찰 안팎에선 “정치적 수사”라는 일반적 비평에 더해, 수사 절차와 방식의 부적절함에 대한 지적과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번 수사처럼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의 수사 경험이 풍부한 전·현직 검사들은 대체로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 비리에 대한 수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도 “예민하고 중대한 사안인데도 치밀한 준비 없이 단순 비리사범 다루듯 밀어붙인 게 문제”라고 말한다.

» 임채진 검찰총장이 24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도착해 승용차에서 내리고 있다. 임 총장의 출근길 표정이 어둡다. 이정아 기자

특별수사 경력이 많은 검찰 출신의 한 인사는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인사를 소환하려면 사전에 혐의를 대부분 입증해놓고 처리 방침도 정해놓는 게 기본”이라며 “하물며 직전 대통령을 불러놓고도 (신병처리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3주나 시간을 끄는 건 대단히 잘못한 수사”라고 말했다. 현직 검찰 간부도 “이번 수사를 보니, 구도를 짜놓고 하는 게 아니라 (수사를) 하면서 나오는대로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500만달러 수수설이 언론에 공개된 시점은 3월 말이었지만,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한 것은 4월30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은 이 시차 동안 언론의 추적과 여론의 비판에 노출됐고, 형사처벌보다 더 가혹할 수 있는 사회적 비난이라는 징벌을 감당해야 했다. 검찰 출신의 한 정치권 인사는 “애초 수사의 시작에는 정권의 의중이 반영됐다 하더라도, 검찰은 (정권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손에 피를 묻혔다”고 했다.

수사가 ‘망신 주기’ 형태로 진행됐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검찰이 뇌물수수 혐의 입증에 별 상관이 없는 돈의 사용처 규명에 팔을 걷어부치면서 일이 꼬였다는 게 대체적 평가다. 회갑기념 명품시계 선물 논란이나 미국의 고급 아파트 구입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검찰 조사 때 노 전 대통령이 한 진술이 여과없이 그대로 언론에 흘러나왔고, 노 전 대통령 쪽에서는 그런 진술조차 불리한 방향으로 윤색됐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질을 거부했는데도 박 전 회장을 조사실로 들여보내 대면하게 만들고, 검찰이 그 과정을 상세히 브리핑한 것도 논란의 소재가 됐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적장의 목을 치더라도 명예는 지켜줘야 한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박 전 회장 한 사람에게만 의지해 과도한 수사를 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전직 검찰 간부는 “한 사람한테 나온 진술을 토대로 수사를 그렇게 광범위하게 확대하면 국민들이 편파수사로 오해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한 검찰 간부도 “검찰 내부에서도 박 전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 관계 때문에 일반적 뇌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그런데 일반 잡범 다루듯 그렇게 낱낱이 혐의를 드러내니 노 전 대통령의 자존심이 크게 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수사는 특별수사의 요체라는, 환부만 신속하고 정확하게 도려내는 ‘외과수술적 수사’와 동떨어져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검찰 안팎에서는 정권교체 뒤 경쟁하듯 전 정권의 비리를 뒤지는 과정에서 무리수가 남발됐으며,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은 그 부작용이 극단적으로 터져나온 사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석진환 기자

촛불에 덴 권력, 반전카드로 세무조사, 의혹

노 전대통령과 20년지기 박연차 회장 업체 표적삼아
유임 노린 국세청장, 세무조사 과정 대통령에 직보
경남 김해소재 기업체 서울청서 원정조사 ‘입방아’도

» 구속집행정지로 잠시 풀려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가 24일 오전 동생의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마을회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해/연합뉴스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의 첫 단추는 태광실업 등 박연차 회장이 거느린 사업체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때 채워졌다. 국세청과 검찰로 이어지는 권력의 2대 사정기관이 차례로 주연 노릇을 맡은 셈이다. 무엇보다 국세청이 노 전 대통령 진영을 압박하는 첫번째 주자로 나선 데는 정권 실세와 국세청 수뇌부간의 이해관계가 교묘히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촛불을 꺼라’-‘충성 맹세’ 국세청이 노 전 대통령 쪽을 향해 본격적으로 칼을 겨눈 것은 지난해 7월30일 국세청이 태광실업 등 박연차 회장 계열사에 대해 특별세무조사에 나선 때부터다. 이 때는 미국산 쇠고기 파문으로 촉발된 이른바 ‘촛불사태’로 이명박 정부가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무렵이다. 겨우 집권 몇달째를 맞는 정권의 입장에선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되찾을 강력한 ‘반전 카드’가 필요했을 법하다. 국세청이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와 태광실업의 휴켐스 주식 매입 등을 둘러싸고 2005~2006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박 회장의 비리 혐의에 뒤늦게 적극적으로 매달린 것도 이런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이와 관련해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한상률 국세청장을 불러 촛불시위에 대한 문제, 그리고 한나라당 친박 의원들의 정치자금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박연차 회장의 관계 회사를 세무조사하라고 했다”며, 세무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음을 주장하기도 했다.

» 태광실업 관련 세무조사 주요 일지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의 행보도 새삼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임명돼 새 정부에서 유임을 노리던 한상률 당시 청장으로선 정권의 입맛에 맞는 회심의 카드가 절실했던 탓이다. 한 청장은 지난해 8월 노 전 대통령 쪽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태광실업 세무조사 진행상황을 이 대통령에게 직보해 후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꼽히는 한 관계자는 “한번은 한 청장이 김앤장 세무조사에 들어가면 이회창의 대선자금을 파악할 수도 있다고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에게 얘기를 하고 돌아다닌 적이 있다”며, 한 청장을 일러 자리를 굳히는 데 도움이될만한 일은 서슴치 않는 ‘모사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 전 청장은 그 뒤 지난해 연말 경북 경주시에서 한나라당 의원 및 포항지역 기업인 등과 골프를 치고 대구에서 전·현직 포항지역 향우회장 등 권력 실세 주변 인사들에 줄을 대려 애쓴 사실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 정치논리 타는 국세청 국세청의 세무조사 ‘진행과정’에서도 정치적 배경의 의혹은 가시지 않는다. 실제로 경남 김해에 위치한 태광실업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맡은 조직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다. 관할 기관인 부산지방국세청을 놔두고 일종의 ‘원정’ 조사에 나선 것이다. 서울청 조사4국은 심층·기획 세무조사만을 담당하는 특수조직으로, 사실상 국세청장의 하명수사를 전담하는 직할부대로 꼽힌다. 기업들한테‘저승사자’로 통하는 서울청 조사4국이, 매출 3천억원대 기업을 그것도 무려 4개월동안 먼지털이식 조사를 한 것을 두고, 국세청 내부에서 ‘표적 조사’ 의혹을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있다.

국세청 출신의 한 인사는 “그간 서울청 조사 4국이 처리한 대표적인 사건이 2007년 3월의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 지난해 9월의 공군 차세대 전투기 사업 등 굵직굵직한 대상을 상대로 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김해 소재의 중견기업을 상대로 국세청이 특별 세무조사까지 벌여야했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적 배경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최우성 기자*

서청원 “노 전대통령, 정치수사 희생양”

`공천헌금'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는 31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확인되지도 않은 사전 정보를 흘려 의혹을 부풀린 이나라 사법부의 표적수사, 정치수사의 희생양"이라고 주장했다.

서 대표는 이날 친박연대 측이 공개한 `옥중서신'에서 "감옥에서 노 전 대통령의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미어진다고 할 수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검찰이 일찌감치 노 전 대통령을 여론 재판하고 정치적으로 매도해 법의 심판을 받기도 전에 사망선고를 내렸다"며 "뒤늦게 불구속 수사 등의 말을 흘리며 시간 끌기 게임을 했는데 이는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 자신도 권력에 밉보여 검찰의 표적 수사를 당하고 심지어 사법부도 정의를 외면하는 절박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하루에도 몇번씩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기에 더욱 그렇다"고 밝혔다.

그는 "조금이라도 권력의 눈에 벗어나는 사람은 가차없이 사정의 칼날을 맞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치보복 편파사정은 이제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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