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고통이 너무 크다…누구도 원망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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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 남기고 사저 뒷산서 투신
노무현 전대통령 유서
노무현(63)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서 투신해 서거했다. 검찰 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유의 사태에 온 나라는 큰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아침 6시40분께 봉하마을 자택 뒤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머리 등을 크게 다친 뒤 경남 양산시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의료진의 응급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못한 채 오전 9시30분 굴곡진 인생 역정을 마감했다.
경남경찰청은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5시45분께 이병춘 경호관과 함께 사저를 출발해 봉화산을 등산하던 중 높이 30m의 부엉이바위 인근에서 뛰어내렸다”며 “수행 경호관이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상태가 위중해 오전 8시13분께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동영상] “머리손상이 직접적인 사인으로 판단”
백승완 양산 부산대병원장은 “병원 도착 당시 의식과 호흡, 심박동이 없는 상태였으며, 머리 부분에 11㎝ 정도의 상처가 발견됐다”며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회복되지 않아 오전 9시30분 소생술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백 병원장은 “여러 곳의 골절이 확인됐으며 머리 부분 외상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집을 나서기 전 자신의 컴퓨터에 한글 파일로 열네 문장의 짧은 유서를 남겼다. 김경수 비서관이 공개한 이 유서에서, 노 전 대통령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가족과 지인들한테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는 또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검찰 수사에 따른 고통과 압박감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화장해라. 집 가까운 곳에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당부를 통해 삶을 스스로 접겠다는 뜻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봉하마을 사저에서 생활해왔다.
“5년뒤에도 웃겠다”던 꿈 끝내…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64·구속 기소)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60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지난달 30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며, 부인 권양숙씨도 검찰의 재소환을 앞둔 상태였다. 검찰과 경찰은 이날 경남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차리고 투신 장소와 수행 경호관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은 오후 6시30분께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에 안치됐으며, 장례 형식과 절차는 정부와 유족이 협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국민들과 재외동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으며, 봉하마을 빈소와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각계의 애도와 조문 행렬이 잇따랐다. 또 이날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는 수십만건의 추모 서명과 글이 이어졌다. 전세계 언론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그 파장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김회승 기자, 김해/최상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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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도, 측근도, 친구도 ….’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노 전 대통령 주변 인물은 대부분 수사망을 피해 가지 못했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 수사이기 때문에 다른 수사보다 더 철저하게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고 토로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 남긴 것처럼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고 느꼈음 직하다.
불행한 결과를 낳은 이번 수사는 지난해 11월 국세청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고발하고, 동시에 검찰이 세종증권을 압수수색하며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 전 회장이 수사 대상에 올랐고, 형 노건평씨도 세종증권 매각 비리 사건으로 구속됐다. 당시 “형이 그럴 리 없다”던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칼끝이 자신을 겨눌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듯하다.
노건평씨와 박 전 회장의 구속으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던 수사는, 올해 3월 중순부터 다시 무섭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검찰의 가장 큰 ‘무기’는 노 전 대통령의 가족과 친지, 측근, 친구 등 주변 인물들에 대해 속속들이 진술한 박 전 회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에 대한 ‘처리’는 지난 3월23일 1억원 수수 혐의로 체포된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신호탄이 됐다. 박 전 수석은 사법시험 공부를 함께한 노 전 대통령의 후배다. 3일 뒤에는 ‘오른팔’ 이광재 의원이 구속됐다. 이어 4월7일에 ‘집사’이자 ‘친구’인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체포됐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횡령 혐의로 지난 4월 대전지검에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강 회장이 나 때문에 모진 고초를 겪는다”며 안타까워했고, 강 회장은 지난 20일 공판에서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왼팔’인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도 대전지검과 대검 중수부에서 연거푸 조사를 받았다. 이번 수사의 ‘대미’에 해당하는 노 전 대통령 자신은 지난달 30일 봉하마을에서 대검으로 천릿길을 불려 올라와 조사를 받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가 무려 6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노 전 대통령이 느꼈을 중압감이 막대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내란과 반란죄 등 혐의가 더 무거웠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1995년 10월 국회에서 비자금이 폭로된 이후 두 달이 채 안 된 12월3일 구속됐다. 수사 초기 “사용처는 중요하지 않다”던 검찰은 이후 방향을 바꿔 사용처 조사에 집중했다. 이때부터 수사는 노 전 대통령 주변을 ‘풍비박산’ 내는 듯한 모양새로 흘러갔다.
검찰은 또 노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 여부 결정을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구속 이후로 미뤘는데, 이는 ‘정치적 균형’을 위한 전략적 고려 때문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기간 언론에 억대 명품시계 수수 의혹이나 자녀들의 미국 저택 문제,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의 대질조사 대화 내용 등이 흘러나오면서 노 전 대통령은 기소되기도 전에 ‘여론 재판’의 법정에서 뭇매를 맞았다. 석진환 기자*
봉화마을 빈소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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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관 앞 분향소…부엉이바위 바라보며 통곡도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23일 오후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봉하마을로 운구되자 딸 정연씨가 오열하고 있다. 연합
23일 오후 6시30분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도착한 봉하마을이 울음바다로 변했다.
봉하마을을 찾은 노사모 회원들과 추모객, 마을 주민들은 봉하마을 진입로 양쪽을 가득 메우고 있다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도착하자 ‘엉 엉’ 소리를 내며 큰소리로 울었다.
일부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사저 뒤 부엉이 바위가 바라보이는 도로변에서 “저 곳이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린 곳”이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또 이날 오후 봉하마을에 도착한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 20여명은 도로에서 기다리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눈물로 맞았다.
이들은 봉하마을에 도착하며 길 옆에 선 일부 주민과 추모객들로부터 “민주당이잘못해서 노 전 대통령을 죽였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을 살려내라”는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노사모 회원과 마을 주민 등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봉하마을 회관에 안치하고 회관 앞에 임시분향소를 설치했다.
또 봉하마을 다목적광장내 주차장에 30여개의 천막을 치고 조문객 맞을 준비를 마쳤다.
봉하마을 주민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던 마을내 봉하마을 전통 테마식당과봉하쉼터, 봉하빵가게, 포장마차 등을 모두 닫았다.
봉하마을을 방문한 일부 관광객은 노사모 자원봉사 지원센터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은 보통사람들을 존중하는 보통 대통령으로 만인의 존경을 맞아야 할 사람인데 허무하게 돌아가셔서 비통함을 금치 못한다”고 즉석 연설하기도 했다.
한편 일부 노사모 회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언론은 무관하지 않다”며 카메라 기자들의 취재를 막는가 하면 방송사 차량의 마을 진입을 막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앞서 오후 5시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검이 안치돼 있던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봉하마을로 운구가 시작됐다. 이병완 전 청와대비서실장,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이호철 전 청와대 수석 등이 운구를 맡아 관을 차량에 실었고, 딸 정현씨 부부가 오열하며 이 광경을 지켜봤다
5시35분께 경찰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양산 부산대병원을 떠난 노 전 대통령의 운구 차량은 오후 6시30분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 마을회관에 도착했고, 가족과 참여정부 인사들을 태운 승용차, 버스, 취재차량 등 30여대가 뒤를 따랐다.
유족과 참모진 등은 병원 측에서 제공한 2대의 버스와 그랜저 승용차 등에 분승, 운구차를 뒤따랐다.
한명숙 전 총리와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등은 침통한 표정으로 버스에 올랐고,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참여정부 시절 각료 또는 지인들은 승용차 등을 이용해 먼저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빈소로 향하는 운구 행렬이 지나는 연도에는 노사모 회원과 지지자, 주민 등 2천여명이 나와 노 전 대통령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고, 상당수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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