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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고통이 너무 크다…누구도 원망마라”

by 싯딤 2009. 7. 27.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고통이 너무 크다…누구도 원망마라

 

유서 남기고 사저 뒷산서 투신
국민들 ‘충격’…봉하마을에 빈소

 

노무현 전대통령 유서

 

노무현(63) 전 대통령이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 뒷산에서 투신해 서거했다. 검찰 수사를 받던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유의 사태에 온 나라는 큰 슬픔과 충격에 휩싸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아침 6시40분께 봉하마을 자택 뒤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머리 등을 크게 다친 뒤 경남 양산시 부산대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의료진의 응급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못한 채 오전 9시30분 굴곡진 인생 역정을 마감했다.

 

경남경찰청은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5시45분께 이병춘 경호관과 함께 사저를 출발해 봉화산을 등산하던 중 높이 30m의 부엉이바위 인근에서 뛰어내렸다”며 “수행 경호관이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상태가 위중해 오전 8시13분께 양산 부산대병원으로 옮겼다”고 밝혔다.

 

[동영상] “머리손상이 직접적인 사인으로 판단”


» 굴곡진 삶 뒤로 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부탁을 남기고….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치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퇴임 뒤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세상을 등졌다. 사진은 노 전 대통령이 2006년 국외순방을 떠나려고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에 오르는 모습. 글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사진 연합뉴스

 

백승완 양산 부산대병원장은 “병원 도착 당시 의식과 호흡, 심박동이 없는 상태였으며, 머리 부분에 11㎝ 정도의 상처가 발견됐다”며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회복되지 않아 오전 9시30분 소생술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백 병원장은 “여러 곳의 골절이 확인됐으며 머리 부분 외상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새벽 집을 나서기 전 자신의 컴퓨터에 한글 파일로 열네 문장의 짧은 유서를 남겼다. 김경수 비서관이 공개한 이 유서에서, 노 전 대통령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가족과 지인들한테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는 또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검찰 수사에 따른 고통과 압박감을 드러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화장해라. 집 가까운 곳에 비석 하나만 남겨라”라는 당부를 통해 삶을 스스로 접겠다는 뜻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봉하마을 사저에서 생활해왔다.

 

“5년뒤에도 웃겠다”던 꿈 끝내…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64·구속 기소)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60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지난달 30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으며, 부인 권양숙씨도 검찰의 재소환을 앞둔 상태였다. 검찰과 경찰은 이날 경남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차리고 투신 장소와 수행 경호관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은 오후 6시30분께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에 안치됐으며, 장례 형식과 절차는 정부와 유족이 협의해 결정할 예정이다.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에 국민들과 재외동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으며, 봉하마을 빈소와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각계의 애도와 조문 행렬이 잇따랐다. 또 이날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는 수십만건의 추모 서명과 글이 이어졌다. 전세계 언론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그 파장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김회승 기자, 김해/최상원 기자 *

 

 

마지막 행적 재구성

 

새벽 5시10분께 컴퓨터에 유서 남기고 봉화산으로
부엉이바위 오른뒤 “담배 있느냐” 경호과장과 대화
6시40분 투신…의식잃은채 병원 이송…9시30분 숨져

 

» 2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앞에 지지자들이 매달아 놓은 노란 리본이 줄지어 걸려 있다. 사저 뒤편으로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봉화산 ‘부엉이바위’가 보인다. 김해/연합뉴스

 

마지막 행적 재구성

 

노무현 전 대통령은 23일 새벽, 유서를 작성한 뒤 산에 올랐다. 이미 목숨을 끊기로 결심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봉하마을의 길을 걷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누구지? 기자인가?”였다고 한다. 경찰 발표와 봉하마을 비서진, 병원 관계자 등의 말을 종합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날을 재구성했다.

 

비가 곧 내릴 것처럼 잔뜩 흐린 23일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 사저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지난해 2월 임기를 마치고 낙향한 뒤 세상을 향해 이야기할 때 사용하던 컴퓨터였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노 전 대통령은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마지막 부탁이 담긴 열네 문장짜리 유서의 마침표가 찍힌 시각은 5시21분.

 

노 전 대통령은 컴퓨터를 끄지 않았다. 누군가 볼 수 있도록, 화면에 마지막 글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산화를 신고 5시45분께 집을 나와, 봉화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해 12월 형 노건평씨가 구속된 뒤부터 그는 낮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관광객이나 취재진의 눈에 띄지 않는 새벽에 가끔 봉화산을 올랐을 뿐이다.

 

근접 경호를 맡은 이병춘 경호관만 뒤를 따랐다. 부인 권양숙씨나 비서진한테도 알리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등산로를 따라 ‘부엉이바위’ 쪽으로 길을 잡았다. 부엉이바위는 봉수대로 쓰였다는 사자바위와 사찰인 정토원의 가운데쯤에 서 있다. 부엉이가 자주 앉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해발 100m가량에 있고, 바위벽의 높이는 30m 남짓이다. 새벽에는 인적이 드물다. 부엉이바위에 올라서면 봉하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 전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 올라 20분 가까이 머물렀다. “여기가 부엉이바위인데 요즘도 부엉이가 사는가?”라고 이 경호관한테 말을 건네기도 했다. 마을을 내려다보던 그는 이 경호관에게 “담배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다. 이 경호관이 “없습니다. 가져올까요?”라고 답하자, 노 전 대통령은 “됐다”고 짧게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마을 쪽에서 한 사람이 걸어가는 것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누구지? 기자인가?”라고 말했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 순간, 바위에 앉아 있던 노 전 대통령은 몸을 일으켜 아래로 몸을 던졌다. 6시40분께였다. 불과 1~2m 떨어져 있던 이 경호관조차 손쓸 틈이 없었다. 이 경호관이 쫓아 내려갔을 때, 노 전 대통령은 머리 등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이 경호관은 노 전 대통령을 업고 산을 뛰어 내려왔다.

 

경호원들은 경호차량을 이용해 7시께 봉하마을에서 5㎞쯤 떨어진 진영읍의 세영병원으로 노 전 대통령을 옮겼다. 손창배 세영병원 내과과장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의식을 잃고 위독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30분 남짓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7시35분께 노 전 대통령을 태운 응급차량은 50㎞가량 떨어진 양산시 부산대병원으로 향했다. 8시13분 부산대병원 응급센터에 도착했다. 미리 대기하던 의료진은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은 깨어나지 못했다. 백승완 양산 부산대병원장은 “인공호흡을 하면서 응급센터로 이송돼 왔으며, 도착 당시 의식은 없었고 자발적 호흡 역시 없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오전 9시30분이었다.

 

» 노 전대통령 투신 위치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은 부산대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가, 이날 오후 6시30분께 다시 봉하마을로 옮겨졌다. 창원/최상원 기자, 황상철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여러 사람들 고통…여생도 남에게 짐
누구도 원망 마라…오래된 생각이다”

 

22일 오후 2시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 전문이 공개됐다. 유서는 모두 13문장(3문단)의 간략한 내용으로, 노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컴퓨터에 한글 파일로 저장돼 있었다.

 

유서 전문이 공개되면서,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큰 고통을 느꼈으며 이때문에 건강까지 해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유서 마지막에 “오래된 생각이다”라고 밝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뜻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음도 확인됐다.

 

한편, 노 전 대통령 유서의 컴퓨터 파일 제목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였다고 유족 쪽은 전했다. 유서 문서는 컴퓨터가 켜진 상태에서 화면 위에 떠있었다고 경찰 쪽은 전했다.

 

유서 문서 파일의 최종 저장시간은 오늘 새벽 5시21분으로, 노 전 대통령은 5시45분 사저를 나섰고, 6시40분 봉하산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졌다.

 

다음은 유서 전문이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연합]

노무현 전 대통령이 23일 남긴 유서에는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지를 택한 노 전 대통령의 심리상태가 투영돼 있다.

 

여러 요인이 거론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검찰의 수사로 인한 심리적 압박이 투신의 가장 큰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4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미지 실추와 낙담, 억울함이 복합적으로 겹친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퇴임 이후 노 전 대통령 가족이나 측근 등 주변인사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는 것에 대한 책임감과 현 정권 하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상황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도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고,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며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고,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밝혔다.

 

측근들이 사법적 고초를 당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시이자 퇴임 이후 줄곧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던 현 정권과 검찰에 대한 강한 항의의 뜻을 담은 것으로도 받아들여진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무척 지쳤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검찰과 언론이 봉하마을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몰아간 것 아니냐. 검찰이 정치적으로 매장시킨 타살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다 자신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덕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것이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줬다는 분석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 도덕성을 최대 무기로 대통령의 권좌에까지 올랐지만 수뢰 혐의자로 내몰리면서 도덕성이 부정되고 비난과 조롱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더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지지자)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낙담한 심경을 드러냈다.

 

자존심 강한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회장의 돈을 받지 않았다며 적어도 법적으로는 거리낄게 없다고 누차 해명했음에도 오히려 의혹이 증폭되자 결백의 표시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노 전 대통령은 부인 권양숙 여사가 자신 몰래 박 전 회장의 돈을 받아썼다고 해명했지만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포괄적 뇌물의 수수 주체라는 혐의를 거두지 않았고, 급기야 지난달 30일에는 검찰청사에 출두해 소환조사를 받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까지 떠안았다.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부인, 아들 건호, 딸 정연씨까지 진행되면서 일가족 모두가 `부패가족' 이미지로 비친 것도 노 전 대통령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준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 시기가 임박한 상황에서 본인이 모든 것을 안고 삶을 마감하는 것만이 사태를 풀 해법이라고 인식했다고도 볼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를 감안한 듯 유서에서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썼다.

대상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부인과 자녀 등 가족, 주변인사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로 여겨진다.

 

노 전 대통령은 며칠 전부터 주로 사저 집무실에 머물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정신적 압박감이 극에 달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 측근은 "며칠 전부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류지복 기자 (서울=연합) *

 

서거, 시간대별 상황

▲오전 5시 10분= 사저내 평소 사용하던 컴퓨터 화면에 유서를 남김

▲오전 5시 45분 = 경호원 1명과 함께 사저를 나와 마을 뒷산인 봉화산을 오르기 시작.

▲오전 6시 40분 = 봉화산 7부 능선에서 갑자기 뛰어내림. 경찰은 사저에서 직선거리로 500m 떨어진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

▲오전 7시 = 김해 세영병원에 도착. 의식이 없고 머리에 심한 손상을 입은 상태라고 담당의사 설명.

▲오전 7시 35분 =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호전되지 않아 부산대 양산병원으로 이송.

▲오전 8시 13분 = 인공호흡에 의지해 부산대 양산병원 도착. 도착 당시 자발적 호흡이 없는 상태.

▲오전 9시 30분 = 의료진 도착 이후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나 회복이 안돼 소생술 중단.

▲오전 9시 30분 = 중단과 동시에 서거.
▲오전 10시 50분 = 부산대 양산병원 장례식장에 시신 안치.

▲오전 11시 =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부산대병원장 사망 공식 발표. 부산대병원장은 머릿부분의 손상이 직접 사인이라고 브리핑.

▲12시 20분 = 허기영 법의학 교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 검찰.경찰 관계자 등 입회하에 검시. (창원=연합뉴스)

***

자책감이 컸던걸까, 억울함이 컸던걸까

극단적 선택 이유는


검찰의 정치보복·망신주기식 수사에 분노
‘도덕적 파산’ 지지세력에 상처 부담도
정신적 고통으로 최근 잠못자고 식사못해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회관에서 문재인(왼쪽), 이병완 전 비서실장이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빈소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을 둘러싼 해석은 분분하다. 검찰이 자신의 측근과 가족을 상대로 ‘표적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억울함과 인간적 모멸감, 지지 세력에 대한 미안함, ‘도덕적 파산’에 대한 낙담 등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죽은 이는 말이 없다’. 다만, 최근까지 노 전 대통령의 언행과 측근들의 전언을 종합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한 반감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노 전 대통령은 친형인 노건평씨가 지난해 말 각종 이권 청탁에 연루돼 구속될 때까지만 해도 짤막한 사과만 남긴 채 침묵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박연차 태광실업 당시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의 ‘뇌물 수수’ 의혹 수사로 방향을 틀고, 측근들이 잇따라 구속되자 크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자신의 오랜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횡령·탈세 등의 혐의로 구속한 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가 ‘정치 보복’이라는 의혹을 일부 제기했다. 지난달 17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은 강 회장과의 순수한 후원 관계를 강조하며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았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밝힌 것이다. 오랜 친구인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된 뒤에는 “이젠 무슨 말을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비웃음을 살 뿐”이라며 “말을 더 할 면목도 없다”고 애통해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검찰이 확인도 되지 않은 시시콜콜한 사건 뒷얘기를 언론에 흘리며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것에 분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언론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고 모멸감을 주는 행태를 보인 데 대해 치를 떨었다”고 말했다. 이 측근 인사는 특히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서 박연차 회장에게서 받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진술했다는 언론 보도 뒤 검찰의 행태에 심한 분노를 느꼈다”고 덧붙였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수사 초반 “언론들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놓아서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소재는 주로 검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과 언론을 향한 강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지난달 30일 자신을 조사한 뒤 검찰이 사법 처리 여부를 결론내지 않은 채 40만달러 추가 수수설과 관련한 딸 노정연씨 부부 수사 등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씨에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이미지를 덧씌우는 데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고 한다. 참여정부 한 수석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 당일에도 측근들에게 ‘미안하다. 그런데 나는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며 “사실을 떠나 권양숙 여사 뒤에 숨는 치졸한 인간으로 몰아가는 것을 가장 괴로워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건강 상태까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대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 지난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매우 힘들어 하신다”며 병실을 알아봤다고 한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측근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권양숙씨의 재소환이 가까워오면서 수일 전부터 잠도 못자고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자택 집무실에도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덕성과 청렴이라는 정치적 자산이 무너지면서 ‘도덕적 파산’ 선고를 받은 현실과 이로 인해 자신을 지지했던 ‘민주화 세력’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자책감도 커 보인다. 그는 지난달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마지막으로 올린 글에서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지지자)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고,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며 참담한 심경을 내비쳤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 일상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검찰 소환을 앞두고선 집 안에서의 소소한 일상이 날마다 언론에 보도돼 사실상의 ‘가택 연금’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생활은 소중한 것”이라며 “창문을 열고, 마당을 걸을 수 있는 자유 정도는 누리고 싶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먼 산을 바라보고 싶어도 카메라가 지키고 있어 그 산봉우리를 바라볼 수 없다”고 호소하던 그는 결국 그 ‘먼 산’의 한 봉우리에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아니겠냐”고 적은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 결백을 증거할 ‘최후의 승부수’로 죽음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최혜정 기자

 

 

검찰수사 어땠기에...

 

가족·측근에 친구까지 옥죄며 ‘저인망 수사’

 

 

‘가족도, 측근도, 친구도 ….’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노 전 대통령 주변 인물은 대부분 수사망을 피해 가지 못했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 수사이기 때문에 다른 수사보다 더 철저하게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고 토로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유서에 남긴 것처럼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고 느꼈음 직하다.

 

불행한 결과를 낳은 이번 수사는 지난해 11월 국세청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고발하고, 동시에 검찰이 세종증권을 압수수색하며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 전 회장이 수사 대상에 올랐고, 형 노건평씨도 세종증권 매각 비리 사건으로 구속됐다. 당시 “형이 그럴 리 없다”던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칼끝이 자신을 겨눌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듯하다.

 

노건평씨와 박 전 회장의 구속으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던 수사는, 올해 3월 중순부터 다시 무섭게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검찰의 가장 큰 ‘무기’는 노 전 대통령의 가족과 친지, 측근, 친구 등 주변 인물들에 대해 속속들이 진술한 박 전 회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에 대한 ‘처리’는 지난 3월23일 1억원 수수 혐의로 체포된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신호탄이 됐다. 박 전 수석은 사법시험 공부를 함께한 노 전 대통령의 후배다. 3일 뒤에는 ‘오른팔’ 이광재 의원이 구속됐다. 이어 4월7일에 ‘집사’이자 ‘친구’인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체포됐다.

 


600만달러 수수 의혹 수사를 공식화한 검찰은 4월10일 조카사위 연철호씨를 체포하며 가족과 친·인척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했다. 이튿날 부인 권양숙씨를 부산지검으로 불러 조사했고, 12일에는 아들 노건호씨를 소환했다. 이후 처남 권기문씨는 물론, 딸 노정연씨마저 40만달러 송금 사실이 불거지며 지난 11일 검찰에 불려나와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도 횡령 혐의로 지난 4월 대전지검에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강 회장이 나 때문에 모진 고초를 겪는다”며 안타까워했고, 강 회장은 지난 20일 공판에서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의 ‘왼팔’인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도 대전지검과 대검 중수부에서 연거푸 조사를 받았다. 이번 수사의 ‘대미’에 해당하는 노 전 대통령 자신은 지난달 30일 봉하마을에서 대검으로 천릿길을 불려 올라와 조사를 받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수사가 무려 6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노 전 대통령이 느꼈을 중압감이 막대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내란과 반란죄 등 혐의가 더 무거웠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1995년 10월 국회에서 비자금이 폭로된 이후 두 달이 채 안 된 12월3일 구속됐다. 수사 초기 “사용처는 중요하지 않다”던 검찰은 이후 방향을 바꿔 사용처 조사에 집중했다. 이때부터 수사는 노 전 대통령 주변을 ‘풍비박산’ 내는 듯한 모양새로 흘러갔다.

 

 

검찰은 또 노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 여부 결정을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구속 이후로 미뤘는데, 이는 ‘정치적 균형’을 위한 전략적 고려 때문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기간 언론에 억대 명품시계 수수 의혹이나 자녀들의 미국 저택 문제,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의 대질조사 대화 내용 등이 흘러나오면서 노 전 대통령은 기소되기도 전에 ‘여론 재판’의 법정에서 뭇매를 맞았다. 석진환 기자*

 

봉화마을 빈소표정

 

회관 앞 분향소…부엉이바위 바라보며 통곡도
추모객 갈수록 늘어 …일부, 언론에 불만 표출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23일 오후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봉하마을로 운구되자 딸 정연씨가 오열하고 있다. 연합

 

23일 오후 6시30분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도착한 봉하마을이 울음바다로 변했다.

 

 봉하마을을 찾은 노사모 회원들과 추모객, 마을 주민들은 봉하마을 진입로 양쪽을 가득 메우고 있다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도착하자 ‘엉 엉’ 소리를 내며 큰소리로 울었다.

 

 일부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한 사저 뒤 부엉이 바위가 바라보이는 도로변에서 “저 곳이 노 전 대통령이 뛰어내린 곳”이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또 이날 오후 봉하마을에 도착한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 20여명은 도로에서 기다리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눈물로 맞았다.

 

 이들은 봉하마을에 도착하며 길 옆에 선 일부 주민과 추모객들로부터 “민주당이잘못해서 노 전 대통령을 죽였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을 살려내라”는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노사모 회원과 마을 주민 등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을 봉하마을 회관에 안치하고 회관 앞에 임시분향소를 설치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 앞에서 사람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또 봉하마을 다목적광장내 주차장에 30여개의 천막을 치고 조문객 맞을 준비를 마쳤다.

 


 주차장에는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을 조문하려는 추모객 수천여명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시간이 갈수록 추모객의 발길이 늘어가고 있다.

 

 봉하마을 주민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던 마을내 봉하마을 전통 테마식당과봉하쉼터, 봉하빵가게, 포장마차 등을 모두 닫았다.

 

 봉하마을을 방문한 일부 관광객은 노사모 자원봉사 지원센터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은 보통사람들을 존중하는 보통 대통령으로 만인의 존경을 맞아야 할 사람인데 허무하게 돌아가셔서 비통함을 금치 못한다”고 즉석 연설하기도 했다.

 

 한편 일부 노사모 회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언론은 무관하지 않다”며 카메라 기자들의 취재를 막는가 하면 방송사 차량의 마을 진입을 막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 23일 경남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이병완 전 청와대비서실장,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이호철 전 청와대 수석 등 노정권 인사들에 의해 운구차로 옮겨지자 운구차량 운전사가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있다. 운구차는 빈소가 차려질 봉하마을로 향했다. 연합뉴스

 

이에 앞서 오후 5시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검이 안치돼 있던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봉하마을로 운구가 시작됐다. 이병완 전 청와대비서실장,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이호철 전 청와대 수석 등이 운구를 맡아 관을 차량에 실었고, 딸 정현씨 부부가 오열하며 이 광경을 지켜봤다

 

5시35분께 경찰의 삼엄한 호위를 받으며 양산 부산대병원을 떠난 노 전 대통령의 운구 차량은 오후 6시30분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 마을회관에 도착했고, 가족과 참여정부 인사들을 태운 승용차, 버스, 취재차량 등 30여대가 뒤를 따랐다.

 

유족과 참모진 등은 병원 측에서 제공한 2대의 버스와 그랜저 승용차 등에 분승, 운구차를 뒤따랐다.

 

한명숙 전 총리와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등은 침통한 표정으로 버스에 올랐고,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참여정부 시절 각료 또는 지인들은 승용차 등을 이용해 먼저 봉하마을로 내려갔다.

 

빈소로 향하는 운구 행렬이 지나는 연도에는 노사모 회원과 지지자, 주민 등 2천여명이 나와 노 전 대통령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고, 상당수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연합) *

 

권양숙씨, 주검 확인 뒤 실신…비통한 분위기

친인척·측근·민주당의원 등 조문 줄이어
노사모 회원들 촛불 들고 빈소 지키기도

»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한 뒤 옮겨져 숨을 거둔 경남 양산시 부산대병원에서 23일 오후 환자와 방문객들이 영안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다. 양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임시 빈소가 차려졌던 양산 부산대병원은 23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확인하러 온 부인 권양숙씨가 실신하는 등 유족과 민주당 의원,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이 잇따라 방문해 비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부인 권씨는 이날 오전 9시25분께 양산 부산대병원에 도착해 노 전 대통령의 주검을 확인한 뒤 실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는 곧바로 병원 쪽이 제공한 휠체어를 타고 11층 브이아이피(VIP) 병실로 옮겨져 안정을 취했다. 이 병실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부산대병원 감사를 지낸 부산 남구 대연동 그랜드자연병원 정주호 총괄조정국장이 권씨의 건강상태를 챙겼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시신이 23일 오후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도착해 마을회관으로 운구되는 동안 관광객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병원을 찾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권씨가 입원한 병실에 모여 장례 절차를 논의한 끝에, 빈소를 김해 봉하마을 사저로 결정했다. 노 전 대통령의 친·인척들도 이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잇따라 병원 장례식장으로 모여들었다.

 

권씨와 유족 및 측근들은 빈소가 최종적으로 봉하마을로 결정된 뒤, 오후 4시15분께 봉하마을로 이동했다.

 

정치권 및 참여정부 인사들도 잇따라 병원을 찾았다.

 

이날 오후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 이강래 원내대표, 송민순·송영길 의원 등이 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함께 조문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격앙된 목소리로 이명박 대통령, 보수 언론, 검찰 등을 열거한 뒤 “당신들이 원한 게 이거였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안 최고위원은 “검찰이 자신의 의심을 사실인 양 스포츠 중계를 하듯 유포했고, 대통령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이날 일부 노사모 회원들은 낮부터 촛불을 들고 장례식장 앞에 서 있었으며, 일부 시민들은 병동 앞에 진을 치고 있던 몇몇 언론사 취재진에게 “언론이 너무 심하게 보도해 노 전 대통령을 죽게 만들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의 운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

 

» 23일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 마련된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입장을 경찰이 통제해 시민들과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연합

양산 부산대병원 쪽은 빈소가 봉하마을로 정해진 뒤 설근석 병원 사무국장의 지휘 아래 노 전 대통령 주검을 옮길 준비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봉하마을로 갈 가족들이 탈 장의버스 1대는 병원 건물 뒤에, 다른 관계자들이 탈 장의버스 1대는 장례식장 뒤쪽에 대기시켜 놓았다. 양산/신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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