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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삶

망태거지 이야기

by 싯딤 2009. 11. 27.

     망태거지 이야기      / 김려의 <삭낭자전> 에서

 

 

 

망태 거지는 성이 홍이고 전주全州에서 살던 거지다. 자기가 망태 거지라고 했는데 사람들도 그렇게 불렀다.

그는 키가  7척이다. 차가운 옥처럼 깨끗하며 결이 곱고 아름다운 수염을 기른다. 누가 나이를 물으면 스무 살이라고 하고 다음 해에 물어도 똑같이 대답한다. 10년 뒤에 물어도 마찬가지다. 망태 거지의 모습은 늙지도 빛을 잃지도 않는다.

그는 언제나 낡은 옷 한 벌을 입고 나막신을 끌고서 서울로 다니며 구걸한다. 얻은 것이 많으면 다른 거지들에게 나누어 준다. 평생토록 사람들과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집 안에서 잔 적도 없다.

망태 거지는 많이 먹는다. 쌀 여덟 말로 밥을 지어 다 먹어도 배부르다 하지 않고, 술을 여러 동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또 몇 달 동안 먹지 않아도 배고프다 하지 않는다.

망태 거지는 바둑을 잘 둔다. 하지만 겨루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서울 사대부들이 그를 불러 에워싼 가운데 그중 가장 잘 두는 사람과 겨루게 하면 언제나 한 수 차이로 이긴다. 가장 못하는 사람과 겨루어도 한 수 차이로 이긴다. 당시 바둑에서 한 수 차이의 승부를 '망태 거지의 바둑 두기' 라고 했다.

망태 거지는 추위에 강하다. 눈 내리는 한겨울, 바람이 몰아쳐 새들이 얼어 죽어도 망태 거지는 끄떡없다. 맨몸으로 서 있기도 하고 꽁꽁 언 시내에 눕기도 한다. 사흘이고 닷새고 자다가 일어나면 땀이 흘러 발꿈치까지 축축하다. 사람들이 옷을 주어도 받지 않는데 그래도 억지로 주면 겨우 입었다가 시장에 가서 다른 거지에게 준다.

충익공忠翼公 원두표元斗杓(조선 중기 때 문신, 호조판서, 좌,우의정을 지냄)가 전주 부윤이 되었을 때 그를 불러서 후하게 예우해 준 일이 있다. 망태 거지는 밥은 같이 먹었지만 말을 걸면 사양했다. 그런데 얼마 후 어디론가 가 버렸다.

수십 년 뒤, 어떤 사람이 관서關西(평안도, 황해도 지역)로 가다가 그를 만났는데 예전과 똑같았다고 한다.

나는(김려) 야사를 읽다가 망태 거지의 일을 보고 확연히 놀랐다. 그런 사란이니 사람들이 몰라 보는 게 당연하다. 도를 지닌 사람이 있다는 데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누군가는 망태 거지가 명문가의 후손으로,  문장이 뛰어난데 집안이 화를 당해 세상을 피하는 것이라 한다. 왠지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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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1960년대) 우리 동네에도 '오상'이라는 거지가 있었다. 때 묻은 천조각으로 얼굴을 가리고 벙거지를 깊이 눌러 쓰고 밥을 얻으러 다녔는데, 오상이 오면 이집저집 할 것 없이 밥을 퍼 주었다. 우리는 뒤따라 다니며 ‘오상.. 오상..’ 놀려댔다. 오상은 외국어를 잘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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