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부. 종말론
종말론(Eschatology)은 개인과 세계의 종말에 관한 진리들을 정리한다. 종말론의 주요 성경 구절들은 마태복음 24장(재림과 그 징조들), 마가복음 9장(최종 상태의 지옥), 누가복음 16장(중간 상태의 지옥), 데살로니가전, 후서(재림, 부활, 휴거), 요한계시록(종말 사건들, 대환난, 재림, 천년 왕국, 천국과 지옥) 등이다.
종말론의 주요 주제들
1. 육체적 죽음과 영혼불멸
2. 사람의 죽은 후 상태
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4. 죽은 자들의 부활과 휴거
5. 천년왕국
6. 마지막 심판
7. 천국과 지옥
1. 육체적 죽음과 영혼불멸
육체적 죽음은 개인에게는 하나의 종말이다.
(1) 육체적 죽음
육체적 죽음의 의미
육체적 죽음은, 의학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는 심장의 박동 혹은 맥박이 멈추는 것 혹은 코의 호흡이 그치는 것을 의미하지만, 성경적으로는 영혼이 몸을 떠나는 현상, 즉 몸과 영혼의 분리를 가리킨다. 전도서 3:20-21,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육체적 죽음의 원인
인간에게 육체적 죽음은 어떻게 왔는가? 그것은 자연적 현상인가? 이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인간에게 죽음이 죄 때문에 왔다고 증거한다.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로마서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여기에서 말하는 죽음은 포괄적인 깊은 의미가 있는데, 육체적 죽음을 포함한다. 창세기 3:19, (범죄에 대한 형벌 선언)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세기 5장, “죽었더라. ...죽었더라...죽었더라.” 고린도전서 15:21-22,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성도들의 죽음의 이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씻음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데 왜 죽는가? 성도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도가 죽는 이유는, 주의 재림의 때가 아직 안 되었기 때문이다. 주의 재림의 때가 되면, 죽은 성도들은 영광스런 몸으로 부활하며 살아 있던 성도들은 죽지 않고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어떤 이들은, 성도들이 영은 구원받았으나 몸이 아직 구원받지 못하였고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그 몸이 죄값으로 죽는다고 말한다. 성도들의 몸의 구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로마서 8:23,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그러나 성도들의 몸이 그 죄값으로 죽는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와 칭는 성도의 영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영육 전체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육의 모든 죄를, 또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다. 우리의 영뿐 아니라, 영육의 연합체인 ‘우리’라는 인격체가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의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도들의 죽음은 죄의 형벌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죽음은 결코 슬프고 두려운 사건이 아니다. 성도는 죽은 후 그 영혼이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성도의 죽음은 오히려 기쁨과 기대와 소망의 사건이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도 이 땅에서 여러 가지 고난들을 경험하지만, 그러한 고난들은 슬픈 일들만 아니고 또한 많은 유익이 있는 일들이다. 고난은 성도들의 인격을 단련시킨다. 성도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주시는 마지막 고난이며 마지막 훈련의 과정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더욱 깨어 있고 더욱 하나님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될 수 있다. 육체적 죽음은 성도에게 큰 유익을 주는 사건이다.
육체적 죽음의 중요성
육체적 죽음은 몇 가지 점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다.
첫째로, 육체적 죽음은 각 사람의 생애의 마침이며, 죽음으로 마감된 그의 일생은 하나님 앞에서 평가될 것이다.
둘째로, 육체적 죽음은 각 사람의 영혼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는 죽을 때 그 영혼이 천국으로 들어가고, 불신자는 죽을 때 그 영혼이 지옥으로 들어간다.
셋째로, 육체적 죽음은 각 사람의 영원한 상태를 고정시키며, 그 후에는 그 상태를 변경시킬 수 없다. 육체적 죽음 후에는 사람의 구원이 가능하지 않다. 누가복음 16:26,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고정된 큰 간격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육체적 죽음의 이러한 중요성을 생각할 때, 각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해야 한다. 성도는 자신의 생애를 아름답게 마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매장인가, 화장인가?
세상에는 죽은 자를 장례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다. 그러나 성도에게 가장 합당한 장례 방식은 무엇인가? 오늘날 유행하는 화장은 허용될 수 있는 방식인가? 성경이 증거하는 가장 오래된 장례 방식은 매장이다(창 23:4, 19). 또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부활 소망에 가장 합당한 방식이다. 화장은 이방 풍습에 기원한다. 우리는 부득이한 경우 화장을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매장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합당한 장례 방식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2) 영혼 불멸
사람의 영혼은 육체적 죽음 후에도 없어지지 않는다. 영혼 불멸(immortality)이란, 사람의 몸이 죽은 후 그의 영혼이 계속 지정의의 의식을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죽은 후에 후손들에 의해 혈통이 이어지거나 그에 대한 기억이나 그의 영향력이 후손들이나 다른 이들에게 남는 정도가 아니고, 그 영혼이 계속 의식을 가지고 존재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1, “사람들의 몸들은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가며 썩는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들은 죽거나 잠자지 않는 불멸의 실존으로서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간다.”
영혼 불멸은 보편적 신념
인간 영혼의 불멸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보편적 신념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대체로 영혼의 불멸을 긍정하였다. 세계의 각종 종교들은 인간 영혼의 불멸을 인정한다. 고대의 헬라 철학자들도 인간의 영혼은 육체의 죽음으로 분해될 수 없는 불멸적 실체라고 보았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영원을 갈망하는 것은 그것을 충족할 어떤 것 즉 영혼의 불멸을 암시하며, 또 봄에 만물이 소생하는 자연 현상도 영혼의 불멸을 암시한다고 생각하였다. 또 다른 이들은 우주의 도덕 질서가 내세의 심판을 요구하며 이에 근거하여 영혼이 불멸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의 부정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영혼 불멸을 부정한다. 예를 들면, 라인홀드 니이버는,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이 몸의 부활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선입견은 단지 교회 안에 있는 헬라 사상의 유산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또 폴 틸리히는, “인간의 자연적 특질로서의 불멸성은, 비록 그것이 플라톤의 교리일 가능성은 있을지라도, 기독교 교리는 아니다,” “불멸성의 상징이 이 유행하는 미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곳에서, 그것은 기독교에 의해 근본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원에의 참여는 ‘죽음 너머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의 자연적 특질도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오스카 쿨만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개념[영혼의 불멸]은 기독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들 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하였다.
성경적 증거
인간 영혼의 불멸은 성경에 밝히 계시되어 있는 진리이다. 성경은 다음 네 가지 사실들에서 인간 영혼의 불멸을 분명히 증거한다.
첫째로, 성경은 인간의 죽음의 묘사를 통해 영혼의 불멸을 증거한다. 성경은 사람의 죽음을 영혼이 몸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는 것으로 묘사한다. 전도서 3:20-21,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자를] 기억하라.” 성경은 또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고 묘사한다. 창세기 15:15,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창세기 25:8,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모이매].” 이것은 분명히 영혼이 무(無)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열조들의 영혼들의 집결지가 있음을 암시한다. 분명히, 이러한 묘사들은 사람의 몸이 죽은 후 그 영혼이 계속 존재함을 증거한다.
둘째로, 성경은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 영혼불멸을 증거한다. 성도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해, 시편 73:24은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라고 증거한다. 영광 속으로 영접되는 영혼은 의식을 가진 존재임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영광이 그에게 영광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예수께서도 함께 처형되던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눅 23:43). 낙원의 즐거움도 영혼이 계속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한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5:8에서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증거하였다.
악인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해서도, 시편 9:17은 “악인이 음부[지옥]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라고 증거한다. 또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고 증거한다(눅 16:23). 악인의 죽은 후 형벌과 고통은 영혼불멸을 전제한다. 그렇지 않다면 형벌과 고통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셋째로, 성경은 부활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서도 영혼불멸을 증거한다. 다니엘 12:2은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겠고 어떤 이들은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것”이라고 증거한다. 사도 바울도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증거하기를,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라고 하였다(행 24:15). 의인과 악인의 부활은 영혼의 불멸을 전제한다.
넷째로, 성경은 심판에 관한 말씀들을 통해서도 영혼불멸을 증거한다.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런 말씀은 영혼불멸을 전제한다.
사람은 육신이 죽어도 그 영혼은 불멸한다. 육체적 죽음 후에 그 영혼은 선악 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내세를 생각하며 지금 세상에서 바르게 살아야 한다.
2. 사람의 죽은 후 상태
사람의 몸이 죽은 후부터 부활 때까지의 영혼은 사람의 최종적 상태인 부활에 비추어 볼 때 아직 과도기적 상태에 있다. 그 때 영혼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사람의 육체적 죽음 후의 영혼의 상태에 관한 성경적 견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1에 잘 진술되어 있다:
의인의 영혼들은 그 때에 완전히 거룩해져서 가장 높은 하늘로 영접되어, 거기서 빛과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들의 몸들의 충만한 구속을 기다리고, 악인들의 영혼들은 지옥에 던지워서, 거기서 고통과 전적인 어두움 속에 머물며 큰 날의 심판 때까지 보존되어 있다. 몸들과 분리된 영혼들을 위해 이 두 장소 외에 성경은 다른 아무 곳도 인정치 않는다.
의인의 죽은 후 상태
의인은 죽을 때 그 영혼이 완전히 거룩해져서 천국에 들어가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거기서 몸의 구속의 날을 기다린다. 그 때 의인이 누리는 영광은 그 정도에 있어서 최종적 천국의 영광과 다를지라도, 동일한 성질의 영광이다. 의인의 죽은 후 상태는 참으로 복되다.
구약성경의 증거
구약성경은 구약 성도들이 죽은 후 영광과 안식의 세계에 들어감을 증거한다. 시편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죽은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성도가 몸이 죽은 후 영광 가운데 영접될 처소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다. 시편 16:10-11, “이는 내 영혼을 음부[지옥]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다윗은 죽음 후의 생명의 길을 전망하였다. 시편 49:15,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음부[지옥 혹은 무덤]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 이사야 57:2, “그는[그 의인은 죽어]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였다. 신명기 33:3,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시편 73: 23-24,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 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시편 119:103, 127,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 . .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이러한 교제를 통해 확실히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들어갔다. 칼빈은 적절히 말하기를, “확실히 그들은 하나님의 영생의 나라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 안에 연합되었고, 그 연합은 영생의 복 없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기독교 강요, 2. 10. 7).
구약성경이 증거하는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은 구약 시대의 성도들도 천국 영광에 참여하였다는 예들이다. 창세기 5:24,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열왕기하 2:11,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그들은 모두 하나님이 계신 천국으로 갔다
신약성경의 증거
신약성경도 동일한 진리를 증거한다. 누가복음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아브라함의 품은 음부[지옥]와 대조되었으므로 어떤 이들이 생각하듯이 음부의 일부가 아니다. 고린도후서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빌립보서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히브리서 12: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그들은 다 하늘 곧 천국에 있다!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낙원은 확실히 천국과 동의어이다. 고린도후서 12:2, 4, “셋째 하늘 . . . 낙원.” 요한계시록 2:7,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히브리서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악인들의 상태
악인은 죽은 후 그 영혼이 지옥에 던지워 고통의 형벌 가운데 거하며 거기서 마지막 심판의 날을 기다린다. 악인이 죽은 후에 그 영혼이 들어갈 지옥(쉐올, 혹은 하데스)은 마지막 부활 후 영육의 결합체가 들어갈 지옥(게헨나 gέεννα, 불못)과 같은 성질의 형벌의 장소이다. 악인의 죽은 후 상태는 참으로 불행하고 비참하다.
구약성경의 증거
구약성경은 많은 구절에서 악인이 죽은 후 ‘음부’(陰府, 쉐올)에 들어간다고 표현하는데, 그 말은 지옥을 가리킨다. 즉 악인은 지옥에 던지운다.
성경에서 죽음이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듯이, 쉐올이라는 말은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죽은 자들의 몸이 묻힐 무덤을 가리키기도 하나, 또한 악한 자들의 영혼이 들어갈 지옥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것은 어떤 구절에서 무덤을 가리키지만, 다른 구절에서 명백히 악인의 미래의 형벌의 장소 즉 지옥을 가리킨다. 구약성경에서 쉐올이라는 말 외에 악인을 위한 미래의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는 다른 말이 없다. 그러므로 옛날 영어성경(KJV)은 쉐올을 grave(무덤)로 31회, hell(지옥)로 31회, pit(구덩이)로 3회 번역하였다.
쉐올이 지옥을 가리키는 구절은, 악인에 대한 형벌의 선언에 사용되었거나 형벌의 장소로 언급되거나 영적인 죽음과 관계되거나 천국과 대조되는 경우 등이다. 대표적 예는 다음과 같다.
시편 9:17, “악인이 음부[지옥]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 이사야 14:15, (바벨론왕에 대해)“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지옥]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욥기 26:6, “하나님 앞에는 음부[지옥]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도다.” 잠언 7:27, “그 집은 음부[지옥]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욥기 11: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외에, 이사야 24:22,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같이 모음을 입고 옥에 갇혔다가 여러 날 후에 형벌을 받을 것이라.” 이 말씀은 신약성경의 증거와 일치한다.
신약성경의 증거
신약성경은 악인이 죽은 후 어두운 지옥에 감금되어 고통을 당한다고 증거한다. 악인의 죽은 후 상태를 증거하는 신약성경의 대표적인 구절은 누가복음 16:19-31이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친히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대해 증거하신 가장 중요한 말씀이다. 만일 이 구절이 비유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증거하는 바는 너무 구체적이고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해석을 할 수 없다.
누가복음 16:19-31은 분명히 다음 네 가지 진리를 증거한다.
첫째로, 사람의 영혼은 불멸하다는 것이다. 부자도 거지도 죽었으나(22-23절) 그들의 죽음 후에 두 세계가 있었다. 죽은 그들의 영혼들은 의식을 가진 채 안식과 고통의 두 대조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둘째로, 세상에서의 삶과 죽은 후의 상태가 다르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부자는 좋은 옷을 입고 호화로이 즐기며 살았고(19절) 좋은 것을 누렸고(25절),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었고 헌데로 고생했고(20-21절) 고통 속에 살았다(25절). 그러나 죽은 후에, 부자는 음부(하데스)에서 뜨거운 불 가운데서 고통을 당했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안식과 위로를 얻었다(22, 25절). 여기의 ‘음부’(하데스)는 분명히 지옥이다.
셋째로, 사람의 죽은 후의 상태는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6절,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카스마 메가 에스테릭타이, 고정된 큰 간격이 있어서]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죽은 후에 제2의 기회는 없다. 오직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 전도의 절박한 필요성이 있다.
넷째로, 하나님이 뜻하신 구원의 방법은 죽은 자가 살아서 전하는 것, 즉 기적을 통한 방법이 아니고, ‘모세와 선지자들’(29, 31절) 즉 그들의 글인 성경을 통해서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누가복음 16:19 -31은 악인이 죽은 후 지옥에 던지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증거한다.
이처럼 신약성경에 하데스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쉐올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주로 지옥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옛날 영어성경(KJV)은 하데스를 hell(지옥)로 10회, grave(무덤)로 1회 번역하였다.
이 외에, 베드로후서 2: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이 구절은 베드로후서 2:4과 더불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후서 2:4은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말한다. 악한 천사들은 지옥, 어두운 구덩이 즉 어두움의 사슬에 묶여서(전통사본) 심판때까지 있다. 지옥은 어둡고 속박되어 있는 곳이다. 이와 같이 또한 불의한 자도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보존되는 것이다. 그들이 있는 곳은 확실히 악한 천사들이 감금된 곳과 동일한 지옥이다.
유다서 6, “또 자기 지위[혹은 위치]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역시 악한 천사들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 중에 큰 날의 심판때까지 감금되어 있다.
악인의 죽은 후 상태에 대한 성경 진리는 참으로 두렵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를 회개하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 각 사람은 자신의 구원을 확보하고 확신해야 한다. 또 우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힘써 전도해야 한다.<![endif]>
잘못된 견해들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해 역사상 여러 가지 잘못된 견해들이 있었다.
초대 교회에 유행하던 ‘제3의 장소설’
초대 교회에 어떤 교부들(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어거스틴)은 음부를 ‘제3의 장소‘로 이해하였다. 그들은 의인과 악인이 다 지하 음부에 내려가며 단지 각각 구역이 다를 뿐이며 거기에서 의인은 어느 정도 상을 받고 악인은 어느 정도 벌을 받으며 거기에서 그들이 다 마지막 심판날을 기다린다고 보았다. 즉 그들은 지하 음부를 의인과 악인에 대한 최종적 보응의 축소판으로 본 것이다. 어떤 이(터툴리안)는 순교자들은 즉시 영광 가운데로 영접된다고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제3의 장소설은 주께서 누가복음 16:19-31에 증거하신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확실히 배치된다. 이 말씀에 증거된 음부는 아브라함의 품과 분명히 구별되며 의인과 악인이 함께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천주교회의 연옥설
천주교회는 연옥(煉獄, Purgatory)에 대해 주장한다. 연옥은 완전히 성화되지 못한 신자들은 죽은 후 들어가 얼마 동안 불의 시련을 통해 정화(淨化)된다는 곳이다. 그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보속補贖이다. 천주교회 교리서는, “고백의 성사로 지옥의 벌은 언제나 사함을 받으나, 세상과 연옥의 벌까지 다 사함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 유한한 벌의 사함을 받기 위해서 신부는 보속을 정해준다. 고해 성사를 받은 사람은, 우리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죽으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자기 죄에서 오는 벌을 보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그 책은, “대죄는 없으나 소죄가 있거나 속죄를 다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천국으로 직접 가지 못하고 연옥에서 단련을 받는다”고 말한다.
초대의 어떤 교부들은 정화의 불을 언급했으나, 대 그레고리 교황이 최초로 연옥 교리를 명확하게 언급하였다. 연옥은 지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라고 추측되었다. 이 교리는 외경 마카비 2서 12:42-45에 의존한다. 거기에는 이렇게 말했다. “유다(마카비)는 각 사람에게서 모금을 하여 은 이천 드라크마를 모아 그것을 속죄의 제사를 위한 비용으로 써 달라고 예루살렘으로 보냈다. . . . 그가 경건하게 죽은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갸륵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연옥 교리는 ①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인간의 헛된 고안물이다. ② 그것은 특히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복음의 진리들에 배치된다. ③ 그것은 또 그리스도인의 공로적 선행이나 교회의 독자적 권세라는 비성경적인 교리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세 말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인 위클리프와 후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인 루터와 칼빈은 연옥 교리를 단호히 반대하였다. 루터가 작성한 1537년의 슈말칼드 신조는, 교황을 “적그리스도,” 미사를 “가장 크게 가증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연옥을 “용의 꼬리에서 나온 해로운 새끼 우상”이요 “사탄의 미혹”이라고 선언하였다. 칼빈은 연옥을 ‘사탄의 치명적 고안물’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로 만드는’ 오류라고 강하게 비평하였다(기독교 강요, 3. 5. 6)
천주교회의 선조 림보, 유아 림보설
림보(limbus)는 ‘변두리’라는 뜻으로 지옥과 연옥의 변두리를 가리킨다. 천주교회에 의하면, 선조 림보(limbus patrum)는 구약의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속(救贖)을 완수하시고 거기 내려오시기까지 기다렸던 곳이며 ‘아브라함의 품’ 혹은 ‘낙원’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또 유아 림보(limbus infantum)는 그리스도인의 자녀나 이교도의 자녀나 유아시에 죽은 모든 세례 받지 않은 자녀들의 영혼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거기는 하나님을 뵈옵는 복도 없지만, 또한 지옥이나 연옥의 고통 같은 적극적 고통도 없다고 보았다. 그들의 영혼은 영원히 거기에 거주한다고 한다.
그러나 천주교회의 림보 교리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인간적 고안물에 불과하다. 선조 림보의 근거로 제시되는 베드로전서 3:18-20은 난해 구절로서 교리적 근거가 되기에는 너무 불확실하다. 그 구절의 가장 적절한 해석은 그리스도께서, 홍수 전에 살았던, 그리고 베드로의 당시에 옥중에 있었던, 그 불순종자들에게 성령으로 노아를 통해 전파하셨다는 것이다.
영혼 수면설(psychopannychy)
영혼 수면설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부활 때까지 무의식적인 수면 상태에 있다는 견해이다. 이 설은 성경이 죽음을 잠잔다는 말로 표현한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마태복음 9:24,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요한복음 11:11,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데살로니가전서 5:13,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어떤 재세례파들, 소시너스파,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 등이 이 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견해는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대한 성경 말씀들, 특히 누가복음 16:23-24에 충돌한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신구약성경은 의인이 안식과 영광에 들어가며, 악인이 흑암과 고통의 형벌 아래 감금을 당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성경에 죽음을 잔다는 말로 표현한 것은 비유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과연, 죽음은 외형상 잠자는 것과 비슷하고, 또 죽은 자들은 부활의 날에 잠을 깨듯이 일어날 것이다.
멸절설과 조건적 불멸설
멸절설(annihilationism)은 악인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벌로 불멸성을 빼앗기고 없어져 버린다는 견해이다. 이 설은 성경에 악인이 멸망하리라는 말씀에 근거한다. 시편 52:5,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그러나 이 견해는 멸망을 멸절(滅絶)이라는 뜻으로 오해한 것으로서 성경에 계시된 지옥의 교리와 충돌한다(막 9장).
조건적 불멸설(conditional immortality)은 하나님께서 영혼 불멸을 신자들에게만 은사로 주신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영혼 불멸의 성경적 증거들에 반대되고, 지옥 교리에도 배치된다.
제2 기회설
제2 기회설은 구원을 위해 내세에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견해이다. 오리겐, 어떤 재세례파들, 슐라이엘마허, 고데 등이 주장하였다. 그러나 ① 이 견해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또 ② 이 설은 죽음이 사람의 최종적 상태를 고정시킨다는 말씀에 반대된다. 누가복음 16: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또 ③ 이 설은 심판의 근거가 사람의 지상 생활이라는 성경 말씀에도 반대된다.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endif]>
강령설降靈說(spiritism)
강령설은 무당을 통해 죽은 자들의 영들과 교제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28장에도 신접한 자가 사무엘의 영을 불러낸다는 사건이 있다. 그 때 불러내어진 영은 사무엘의 영이 아니라고 본다. 성경은 죽은 자들의 영을 불러내어 교제할 수 있다는 생각과 행위를 정죄한다. 그런 행위는 하나님께서 명백히 금하시는 바이다. 신명기 18:10-11,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주문으로 마법을 거는 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죽은 자를 불러내는 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잘못된 신비주의는 다 사탄과 악령들의 활동이다.
귀신설
어떤 이들(김기동, 이초석 등)은 악인이 죽으면 어느 기간 동안 그 영혼이 귀신이 되어 사탄과 악령들과 더불어 활동하고 다른 사람 속에 들어가 질병 등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의 근거는 그들이 귀신을 쫓아낼 때 귀신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성경에 근거가 없는 말이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모든 주장은 이단적이다. 귀신은 타락한 천사일 뿐이다.
사람의 죽은 후 상태에 관한 성경적 견해는, 의인의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 안식과 위로를 받고, 악인의 영혼은 어두운 지옥에 던지우고 감금되어 불의 고통을 당하며 마지막 심판날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세계적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과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마지막 심판이다. 어떤 의미에서 세상의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베드로전서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요한일서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야고보서 5:9,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그러나 현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마지막 심판으로 끝나고 그 후에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에게는 복된 소망이지만, 악인에게는 심히 두려운 사건이다. 디도서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데살로니가후서 1:7-9,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재림의 확실성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정한다. 바르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부활이나 그의 재림은--그것은 동일한 것인데--역사적 사건이 아니다"라고 했다. 라이홀드 니이버는 말하기를, ”기독교의 교리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보다 더 속임과 착각으로 인도한 교리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순전한 불신앙이요 이단적 사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경에 밝히 증거된 진리이다. 주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의 재림을 약속하셨다. 마태복음 24-25장은 그의 재림에 관한 말씀들이다. 마태복음 24:29-30,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25: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요한복음 14:2-3,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부활하신 주께서 승천하시던 때 천사들은 이렇게 증거하였다. 사도행전 1:11,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많이 증거하였다. 바울의 데살로니가전,후서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후서 1:7-8,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베드로와 야고보도 그의 서신들에서 각각 주의 재림에 대해 증거하였다. 베드로전서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5:7-8,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 . .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요한이 기록한 계시록의 대주제는 주의 재림이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재림의 모습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눈으로 볼 수 있게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에 ‘은밀한 재림’이라는 관념은 없다. 마태복음 24: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사도행전 1:11,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 . . 그러하리라. 아멘.”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영광스러울 것이다. 초림(初臨)의 주님은 낮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의 주님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는 영광의 왕으로, 능력과 위엄의 심판자로 오실 것이다. 마태복음 24:30,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친히 외치는 소리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며”(원문직역).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갑작스러울 것이다. 물론, 깨어 있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겠지만(살전 5:4), 악인들과 형식적 교인들에게는 그것이 뜻밖의 일처럼 갑작스럽게 닥칠 것이다. 주의 재림의 갑작스러움을 묘사하기 위해 성경에는 ‘도적같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예기치 못한 때에 도적이 침입하듯이, 주께서는 갑자기 다시 오실 것이다.
마태복음 24:36, 42-4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 . .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정확히] 앎이라.”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대주의자들은 주의 재림의 갑작스러움을 그가 어느 때든지, 어느 순간에든지 오실 수 있다는 ‘임박함’(imminency)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한 개념이 아니라고 본다. 주의 재림은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그가 어느 때든지, 어느 순간에든지 오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의 재림 직전의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재림의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마태복음 24:36,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가복음 13:32, “아들도 모르고.” 사도행전 1:6-7,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그 시간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주의 재림은 갑작스러운 것이다. 그는 도적같이 다시 오실 것이다.
마가복음 13:32, “아들도 모르고.”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재림의 시간이 아들이 전달하라고 받은 내용들 중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본다(루터, 랑게 등). 그러나 전달하라고 받지 못했다는 말과 모른다는 말은 다르다. 오히려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계된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크리소스톰, 칼빈 등).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으로는 전지(全知)하시지만, 인성으로는 지식에 제한성을 가지신다. 그가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알지 못하신다는 것은 그의 인성의 지식의 제한성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주의 재림의 시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감추기를 원하시는 것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행전 1:7,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만일 하나님께서 2천년 전에 주의 재림의 시간이 2천년 후라고 알려주셨더라면, 많은 성도들은 해이해졌거나 낙망하였을지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간에 대한 하나님의 이 비밀은 성도들에게 유익하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주의 재림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성경대로 주의 재림을 믿고 소망한다
재림의 징조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자신의 재림 직전에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보면, 사도 바울도 재림의 징조에 대해 말하였다. 요한계시록 6-19장에 보면, 사도 요한도 주의 재림의 징조로 대환난 시대를 증거하였다. 종합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는 다음과 같은 징조들이 있다고 본다.
거짓된 목사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많은 거짓된 목사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마태복음 24:5, 11, 24,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시키리라.” 요한계시록 13:11, 13, 15-16,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의) . . . 오른손에나 이마에 [짐승의] 표[666]를 받게 하고.”
사실, 사도 시대 말기에 벌써 많은 거짓 목사들 즉 이단들이 나타났다(요일 2:18; 4:1-3; 요이 7, 9). 또 교회 역사상 종종 이런 징조들이 나타난 때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주의 재림 직전에도 그러할 것이다. 종교적 속임과 미혹은 그 어떠한 시험보다도 악하고 치명적이며 세상을 혼란시킬 것이다.
이단은 기독교의 바른 교리들, 특히 근본 교리들로부터 탈선된 견해를 가리킨다. 역사상 대표적이고 뿌리 깊은 이단은 천주교회이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단번 속죄의 복음을 바로 붙들지 않고 사람의 선행(善行)과 세례 및 고해 성사를 구원에 본질적이라고 봄에 있어서 이단적이고(갈 1:8-9), 마리아를 기도의 대상, 중보자, 보혜사, 세상의 여왕 등으로 높임에 있어서 우상숭배적이다.
또 19세기 이후 나타난 각종 이단종파들은 마지막 시대의 미혹들이다. 세계적 이단종파들로는 여호와의 증인[왕국회관], 몰몬교[말일성도 그리스도의 교회], 안식교[제7일 안식일 재림교회=SDA], 크리스챤 싸이언스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박태선의 전도관[천부교], 문선명의 통일교, 이유성의 새일 교회, 유재열의 장막 성전, 정명석의 애천 교회, 조희성의 영생교, 김기동의 베뢰아, 이초석의 한국 예루살렘교회, 박명호의 엘리야 복음선교원, 이장림의 다미 선교회, 이명범의 레마 선교회, 이선아의 밤빌리아 추수군, 박윤식의 대성교회 등 수많은 이단종파들이 있다.
이단종파들의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 그들의 교주들은 대체로 10대에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하나님과의 특별한 직접 교통을 주장한다. ② 그들은 자기 집단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배타적 주장을 한다. ③ 그들은 절박한 종말 의식을 강조한다. ④ 그들은 외부와의 교제를 단절하며 현실도피적 경향이 있다. ⑤ 그들 속에는 빈번히 교주들의 부도덕한 사건들이 감추어져 있다.
이러한 이단종파들보다 더욱 파괴적인 이단이 있다. 그것은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천주교회나 이단종파들보다 더 이단적이다. 그것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어왔던 성경의 근본적 교리들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그것은 성경의 신적 권위와 무오성,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처녀 탄생, 그의 기적들, 속죄의 죽음, 육체적 부활, 승천, 재림 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회가 역사상 경험하지 못했던 가장 파괴적인 이단이다.
배교背敎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배교(背敎, apostasy)가 있을 것이다. 배교는 교회들의 신앙적 변절을 가리킨다. 많은 교인들이 이단들의 미혹을 받아 신앙이 변절될 것이다. 마태복음 24:4-5, 10, 11,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 .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데살로니가후서 2:3, “먼저 배도(背道)하는 일이 있고.”
현대교회의 상황은 배교적이다. 수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역사적 개신교회들인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루터교회 등 거의 모든 대교단들의 신학교들 안에 들어와서 목사후보생들의 사상을 부패시키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 때와 같이, 20세기 이후 기독교회는 배교를 경험하고 있다.
세계의 대교단들은 자유주의 신학을 포용하고 있거나 자유주의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 미국 연합 감리교회(UMC), 미합중국 장로교회(PCUSA), 미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LCA), 미국침례교회(ABC), 남침례교회(SBC) 등이 그러하며, 우리나라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측),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등이 자유주의적이다. 물론 그런 교단들 안에도 소수 혹은 다수의 보수적 목사들과 교회들이 있겠지만 그 교단들의 신학교들이 자유주의적이므로 그 교단들은 자유주의적이라고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또 세계의 대교단들의 대부분은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속해 있는데, 그 단체는 배교적이다.
전쟁들
셋째로, 주의 재림 전에 세계적인 전쟁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요한계시록 6:3-4의 둘째 인과 붉은 말은 전쟁을 상징하였다. 요한계시록 9:13-16의 여섯째 나팔은 유브라데강 부근에서 2억의 군사가 동원될 전쟁에 대한 예언이다. 또 요한계시록 16:12-16의 여섯째 대접은 유브라데강이 말라 동방의 왕들이 들어옴으로 세계적 연합군이 형성되고 마침내 아마겟돈(므깃도 언덕)에서 마지막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한 예언이다.
역사상 세계에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이 있었으나 20세기의 두 차례의 세계적 전쟁은 처참한 ‘대전’(Great War)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자들은 군인들만 거의 1,000만명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자들은 군인들만 약 1,700만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대립되었고 그 갈등은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세계 공산화의 꿈을 버리기 전까지는 그러할 것이다. 한편,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종교적 갈등이 남아 있다. 만일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중동에서부터일 것이며, 그것은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들을 동원한 인류 역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처참한 전쟁이 될 것이다.
기근들
넷째로, 주의 재림 직전에 심각한 기근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처처에 기근들(리모이 λιμοί)과.” 요한계시록 6:5-6의 셋째 인의 검은 말은 흉년을 상징하였다.
기근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근대에 들어와 더욱더 심해졌다. 1870년대에 남부 인도에서 약 5백만명이 기근으로 죽었고, 중국에서는 9백만명 이상이 죽었다. 1929년과 30년에는 중국의 황허강의 홍수로 인한 기근으로 약 2백만명이 죽었다. 1943년 동부 인도 벵갈에 대기근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50만명 이상이 기근으로 죽었다.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남부 사헬 지역과 남부 아프리카, 특히 이디오피아 등에 기근이 심각하여 수백만명이 죽었다.
물질 문명이 발달하고 먹을 것이 풍성한 세상 같아도, 지금도 지구 상에는 굶주리는 자들이 많이 있다. 1998년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에 8억 2,800만명이 기아 상태에 있으며 해마다 1,800만명이 굶주림과 이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전염병들
다섯째로, 주의 재림 직전에 무서운 전염병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기근들(리모이)과 온역들(로이모이 λοιμοί-전통본문)과.” 요한계시록 16:2에 보면, 첫째 대접을 쏟을 때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난다고 예언한다. 요한계시록 16:10-11에는 다섯째 대접을 쏟을 때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헌데’와 ‘종기’는 원문에서 같은 말이다.
인류 역사상 몇 가지 무서운 전염병들이 있었다. 1300년대에 ‘흑사병(Balck Death)’으로 불리운 림프선종의 역병으로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하였다. 1603년과 1665년 사이에 같은 병으로 영국 런던에서 15만명이 죽었고 1894년 후 약 20년 동안 인도에서는 천만명 이상이 죽었다.
오늘날 고혈압과 당뇨와 암 등의 무서운 현대적 질병들뿐 아니라, 특히 매독과 임질 등의 성병과, 아직 치료약이 없는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의 확산은 매우 위협적이다. 에이즈는 ‘20세기의 흑사병’이라고 불리는데, 1981년 처음 보고된 이후 2001년까지 약 20년간 에이즈로 인한 사망자 총수는 약 2,100만명에 이른다. 2001년 12월 현재, 전 세계에 에이즈 감염자수는 약 4천만명으로 추정된다고 하며 유엔 에이즈 계획(UNAIDS)은 향후 20년간 약 7천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918-1919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flu)으로 사망한 자는 약 2천만명이었다. 오늘날 아시아 조류독감은 스페인 독감과 비슷한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고 있어서 사람 간에 전염되는 살인 바이러스로 돌변할 위험이 크며, 그럴 경우 엄청난 사망자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지진들
여섯째로, 주의 재림 직전에 지진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7, “지진들과.” 요한계시록 6:12은 여섯째 인을 떼실 때 큰 지진이 나며 천체에 큰 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11:13은 두 증인의 승천 후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7천명이라고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16:17-20은 일곱째 대접을 쏟을 때 큰 지진이 있어 큰 성 바벨론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또 큰 우박이 있을 것이라고 증거한다. 큰 지진의 힘은 약 1억 8천만 톤의 티엔티(TNT) 폭탄과 같은데,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자폭탄의 약 만 배의 힘이라 한다.
역사상 대지진들과 사망자수는 다음과 같다: 주후 526년 시리아 안디옥(터어키) 25만명, 1268년 소아시아 실레시아 6만명, 1290년 중국 북동부 10만명, 1556년 중국 중앙부 솨안키(산시성) 83만명, 1667년 코카시아(소련 남서부) 8만명, 1693년 이태리 카타니아 6만명, 1730년 일본 혹가이도 13만 7천명, 1737년 인도 칼커타 30만명, 1755년 포르투갈 리스본 6만명, 1783년 남부 이태리 5만명.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대지진들이 더욱 빈번해졌다. 20세기에 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지진들은 24개 이상이 되며, 그 중 2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것은 14개나 된다. 최근 50년간 전 세계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7 이상의 강진은 500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과 1980년대 연간 지진 발생 건수가 20-25건이었다가 2000년 40-45건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20세기에 5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지진을 꼽아본다면, 1908년 이태리 멧시나 7만 5천명, 1920년 중국 중앙부 간서 20만명, 1923년 일본 도오꾜-요코하마 14만 2,802명, 1932년 중국 중앙부 7만명, 1935년 인도 쿠에타(지금은 파키스탄 지역) 6만명, 1970년 페루 침보테 6만 6,794명, 1976년 중국 북동부 헤베이 24만명 등이다.
최근에 일어난 지진들의 장소와 사망자 수를 보면, 1988년 아르메니아 2만 5천명 이상, 1990년 이란 서북부 카스피해 인접지역 2만 5천 내지 4만명, 1993년 인도 7,601명, 1995년 일본 고오베 6,424명, 러시아 사할린도 네프트골스크 2천명 이상, 1998년 아르메니아 2만 5천명, 아프가니스탄 3,500명, 아프가니스탄 5천명, 1999년 터키 1만 5천명, 대만 2천명 이상, 2003년 12월 이란 남동부 밤(Bam)시 부근 4만여명, 2005년 10월 파키스탄 약 8만여명 등이다.
천재지변
일곱째로, 주의 재림 직전에 천재지변들이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또 요한계시록 8장의 일곱 나팔들은 주의 재림 직전에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을 보인다. 첫째 나팔은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는 것을 예언한다. 그 불로 인해 땅의 3분의 1과 나무들의 3분의 1과 모든 풀이 태워질 것이다. 그것은 지구 전체에 대화재 사건이 될 것이다. 둘째 나팔은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는 것을 예언한다. 그 일로 인해, 바다의 3분의 1이 피가 되고 바다 생물들의 3분의 1이 죽고 배들의 3분의 1이 파괴될 것이다. 셋째 나팔은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강들과 물샘에 떨어지는 것을 예언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큰 별은 강들과 물샘들의 3분의 1을 쑥과 같이 쓰게 만들 것이며 그 쓴 물을 마시는 자들은 죽게 될 것이다. 넷째 나팔은 해와 달과 별들의 3분의 1이 어두워지는 재앙을 예언한다. 빛의 양이 줄고 어두움이 늘어남으로써 지구 전체의 온도는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천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소행성이란 화성과 목성 사이에서 태양 둘레를 공전하는 수십만개의 작은 별들을 가리키며 지구에 근접하는 것들로 지구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은 240개 가량이라고 한다. 2002 NT7이라고 명명된 소행성은 직경이 2km로 추정되며 초속 약 28km(시속 약 100,800km)로 달리고 있는데 2019년 2월 1일에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의 충돌 충격은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폭탄 2천만개의 위력이라고 하며 그 때 엄청난 먼지 구름이 대기권을 덮으므로 태양이 가리워 1년 이상 겨울이 지속될 것이며 충돌 지점의 국가들이 초토화 되는 것은 물론 대규모 해일이 일어나고 오존층이 파괴되므로 2년간 자외선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생물체들에 돌연변이와 암과 백내장 등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적그리스도의 나타남과 핍박
여덟째로, 주의 재림 직전에 적그리스도의 나타남과 핍박이 있을 것이다. 성경은 주의 재림 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였다.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정치적 인물일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3-4, “먼저 배도(背道)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하나님처럼)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요한계시록 13:1-2,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 . .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초대교회 때의 로마 황제, 중세시대의 로마 교황은 적그리스도의 예비적 단계이었다. 그 때 성도들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였었다. 20세기 초 우리나라의 선조들은 일본 통치시대의 신사참배 강요와 공산당의 핍박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주의 재림 직전에 세계적인 전제국가, 아마 공산주의 국가의 출현으로 이 예언은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이 때 진실한 성도들, 즉 짐승의 표(666)를 받지 않는 자들은 큰 미움과 큰 핍박과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세계복음화
마지막으로, 주의 재림 직전의 징조는 세계복음화이다. 주의 재림 전에 세계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복음화란 온 세계에 복음이 널리 증거되어 택한 백성이 다 구원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참된 교회는 교회의 배교적 상황으로 인해 낙망치 말고 세계복음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세계복음화는 교회의 최대의 과제이다.
온 세상에 복음이 충만히 전파되어 충만한 수의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을 때,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국가적 대회심이 있을 것이다. 로마서 11:25-26, 30-31,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국가적 대회심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사는 현 시대는 이상의 징조들이 상당히 이루어진 시대이다. 확실히 주의 재림은 가깝다. 우리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자.
재림 날짜를 안다고 주장하는 광신자들
어떤 이들은 주의 재림의 날짜를 예측하거나 단정하여 말하였다. 예를 들어, 이장림 씨와 다미 선교회는 1992년 10월 28일 예수께서 공중에 재림하시고 신자들은 휴거된다고 말했었다.
그들은 인류 역사의 제7,000년은 안식의 시대이라고 해석하였다. 6일 간의 창조 후 제7일에 안식이 있었듯이, 하루가 1,000년 같으므로(벧후 3:8) 6,000년 인류 역사가 끝난 후 제7,000년에는 안식 시대가 올 것이며, 1,000년 왕국과 7년 대환난 기간이 있으므로, 1999년-7년=1992년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 곧 휴거의 해가 된다고 하였다. 또 그들은 제70회 희년이 인류 역사의 완성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율법을 받고 성막을 세운 때를 주전 1450년으로 잡고 그 때로부터 계산하여 주후 2000년은 70회 희년이므로 1999년-7년= 1992년이 휴거의 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인류 역사 제7,000년의 안식이나 제70회 희년 등의 생각은 추측에 불과하며 성경의 근거는 없다. 또 7년 환난 기간이라는 생각은,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에 관한 예언에서 69이레와 마지막 한 이레 사이에 신약시대라는 긴 간격을 두는 세대주의적 해석인데, 신약성경에 확실한 근거가 없다.
또 그들은 마태복음 24:32-34에 근거하여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는 것이 1948년 이스라엘 국가의 독립을 가리키며, 그 후 한 세대는 1948년+1년+50년(한 세대)=1999년이며, 따라서 1999년-7년=1992년은 휴거의 해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마태복음 24:32-34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상징한다는 해석은 적절하지 않다. 그 본문에서 병행구절은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는 것과 여름이 가깝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징조들이 이루어지는 것과 재림이 가깝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주의 재림의 날짜를 하나님과 천사들이 직접 계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1992년 10월 28일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과 천사들의 직접적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외의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들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진술대로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이전 방식들은 신약성경이 완성된 이후에 끝났다고 믿는다. 더욱이, 그 계시가 성경의 명확한 말씀과 충돌될 때에야 두말할 것도 없다. 주께서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 24:36). 그러므로 주의 재림의 날짜를 안다고 주장한 자들은 다 잘못된 광신자들이다.
재림의 목적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함이다. 재림하시는 주께서는 악인들에게는 벌을, 의인들에게는 상을 주실 것이다.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태복음 25:31-32,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데살로니가후서 1:7-8,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데살로니가후서 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요한계시록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러므로 세계 교회들이 인정하는 사도신경은 “[승천하신 예수께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고백한다.
재림의 실제적 교훈들
예수께서는 자신의 재림을 약속하시면서 깨어 있으라고 교훈하셨다. 마태복음 24:42, 4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깨어 있는 것은 정상적 신앙생활, 즉 성경대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대로 바르게 사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의 정상적 신앙 생활의 주요한 요소는 거룩과 사랑의 삶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우리가 거룩과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데살로니가전서 3:12-13,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너희 마음을 거룩함에 흠이 없게 세우시기를 원하노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성도의 복된 소망이며 세상의 모든 문제의 해답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환경과 처지 속에서도, 특히 고난과 핍박 중에서 참고 견디며 다시 오실 주 예수를 기다려야 한다. 히브리서 10:36-37,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이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요한계시록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4. 죽은 자들의 부활과 휴거
죽은 자들의 부활
죽은 자의 부활은 기독교의 근본적 진리이다. 히브리서 6:2,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라.”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몸이 다시 사는 것[을]...믿사옵나이다”고 고백하였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진술하기를, “마지막 날에, 살아있는 자들은 죽지 않고 변화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죽은 자들은 본래의 몸과 같은 몸들을 가지고 일으킴을 받을 것인데, 그것들은 비록 다른 특질들을 가질지라도 결코 다른 몸들이 아니며 그들의 영혼들과 영원히 다시 결합될 것이다”라고 하였다(32:2).
부활의 확실성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한다. 예를 들어, 칼 바르트는 죽은 자들의 몸의 부활을 스캔들이요 부조리요 종교적 물질주의요 거침돌이라고 말하였다. 라인홀드 니이버는 죽은 자들의 부활이 문자적으로 참될 수 없다고 말하였다. 판네베르크는 죽은 자들의 부활을 비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친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라고 말씀하신 후 출애굽기 3:6을 인용하시고 해석하심으로 죽은 자의 부활을 증명하시기를,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셨다(마 22:31-32). 또 주께서는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다(요 5:28-29).
사도 바울은 벨릭스 총독 앞에서 증거하기를,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고 하였다(행 24:15). 또 그는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리라“고 증거하였다(살전 4:16).
그는 특히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 강하게 증거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2-20).
또 그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말하였다(고전 15:51-52). 부활은 확실한 진리이다.
부활의 대상
부활의 대상은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이다. 모든 의인들뿐 아니라 모든 악인들도 포함된다.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의 복된 부활을 할 것이요 악인들은 영원한 형벌의 부끄러운 부활을 할 것이다. 다니엘 12: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사도행전 24: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요한계시록 20:12-15에는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그 행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활의 때
부활의 때는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에 따라 달라진다. 천년왕국을 교회 시대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견해(이것을 무천년설이라고 함)나 천년왕국 후에 주의 재림이 있다고 보는 견해(이것을 후천년설이라고 함)에 의하면, 주의 재림 때에 의인들과 악인들이 동시에 모두 부활한다. 이것을 ‘일반 부활’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천년왕국 전에 주의 재림이 있다고 믿는 견해(이것을 전천년설이라고 함)에 의하면, 주의 재림 때 의인들이 부활하고 천년왕국이 있고 그 후에 악인들이 부활한다. 즉 의인들의 부활과 악인들의 부활은 천년의 간격이 있다. 이 견해에 의하면, 두 번의 부활 사건이 있는 것이다.
부활체의 성격
부활체는 본래의 몸과 동일성을 가진다. 즉 부활은 죽은 자들의 몸이 다시 사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2, “모든 죽은 자들은 본래와 같은 몸들을 가지고 일으킴을 받을 것인데, 그것들은 비록 다른 특질들을 가질지라도 결코 다른 몸들이 아니며 그들의 영혼들과 영원히 다시 결합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체와 본래의 몸의 동일성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부활을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다.
부활체는 물론 본래의 몸과 다른, 변화된 특질을 가질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2:3, “불의한 자들의 몸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치욕을 위해 일으키심을 받을 것이지만, 의인들의 몸들은 그의 영으로 영예를 위해 일으키심을 받고 그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을 닮게 될 것이다.”
의인의 부활체는 강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몸일 것이다. 고린도전서 15:42-44,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고린도전서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의인의 부활체는 썩지 않을 몸이며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몸이며 강한 몸이며 신령한 몸이다. ‘신령한 몸’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단순히 영은 아니다. 의인의 영은 죽은 적이 없고 그 영이 부활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활은 죽은 몸의 부활이다.
또 의인의 부활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의 형체를 닮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몸일 것이다. 빌립보서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요한복음 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누가복음 24: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친히 외치는 소리와 천사장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 . . 공중에서 주를 만나기 위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갈 것이며”(원문 직역).
그러나 악인들의 부활체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부끄러운 몸일 것이다. 다니엘 12:2, “자는 자 중 많이 깨어 영생을 얻을 자도 있고 영원한 수욕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우리는 성경에 가르친 대로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는다. 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구약성경의 많은 말씀들에 의해 확실하게 증거되었다. 의인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고 악인들은 부끄러운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부활은 의인에게는 복된 소망이지만, 악인에게는 심히 두려운 진리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히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의인들로만 살자.
휴거携去(Rapture)
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은 변화되어 공중에 끌어 올려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주의 재림 때에 ‘공중에 끌어 올림을 받는 것’을 휴거(携去, rapture)라고 말한다. 과연 휴거가 있을 것인가? 있다면, 그것은 대환난 전인가, 후인가? 이 주제는 특히 세대주의자들로 인해 오늘날 교리적 토론의 문제가 되었다.
환난 전 휴거설
환난 전 휴거설이란, 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공중에의 은밀한 재림과 지상에의 영광의 재림의 두 단계로 이루어지며, ② 그 두 사이에 7년간의 대환난 기간이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후, ③ 그리스도인들은 대환난에 참여하지 않고 대환난 전 주께서 공중에 은밀하게 재림하실 때 죽은 자들은 부활하고 산 자들은 변화되어 하늘로 들리는 것이다.
이 견해를 가지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① 재림의 돌연성. 그들은 예수께서 어느 때든지 오실 수 있기 때문에 대환난 후가 아니고 대환난 전에 오셔야 한다고 주장한다. ② 대환난 시대의 성격. 그들은 요한계시록 6-19장에 묘사된 대환난 시대가 하나님의 진노의 시대이며(계 8:13, “땅에 있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면한 자들이므로(롬 5:9) 그 대환난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③ 교회라는 말이 안 나옴. 그들은 요한계시록 4-19장에서 교회라는 말이 안 나오고 성도라는 말만 나오는데, 이것은 대환난 기간 전에 교회가 휴거되고 이스라엘 백성만 남기 때문이라고 추론한다. 요한계시록 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요한계시록 13:7,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그러나 우리는 이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평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갑작스러운 것이지, 반드시 어느 때든지 오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도적같이’(마 24:43)라는 비유을 사용하셨으나 그것은 자신의 재림 전의 징조들과 대환난에 대해 말씀하시고 그 후에 있을 자신의 재림을 말씀하시면서 하신 비유이다. 그러므로 재림의 갑작스러움 혹은 돌연성의 개념에 근거하여, 재림이란 대환난 후일 수 없고 대환난 전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문맥상 논리적 비약이며 잘못이다.
둘째로, 대환난 시대가 하나님의 진노의 시대로 묘사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말은 악인들을 향한 표현이지 신자들을 향한 표현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대환난 시대에 성도들이 있고 더욱이 그 환난 중에도 성도들에게 피할 길이 있다고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9:4, (황충 재앙)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자들만 해하라.” 요한계시록 16:2, (첫째 대접)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그러므로 환난 시대를 묘사하는 ‘진노’라는 말은 악인들을 향한 표현이지 성도들을 향한 표현이 아니다.
셋째로, 신약시대에는 성도와 교회가 같은 무리를 가리킨다. 신약시대에는 성도가 곧 교회요 교회가 곧 성도이다. 로마서 1:7,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그러므로 대환난 시대에 남아 있는 성도들이 신약 교회의 한 지체가 아닐 것이라는 추론은 잘못이다. 더욱이, 요한계시록은 교회에 주신 책이므로 이 책의 내용이 교회와 상관 없다고 보는 것은 적절한 생각이 아니다.
넷째로, 무엇보다 주님의 재림을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의 두 단계로 구별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성경에 밝히 계시된 주 예수의 재림은 두 단계적 사건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단일한 사건이다. ‘공중에의 은밀한 재림’이라는 개념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성경에 밝히 계시되고 예언된 그리스도의 재림은 볼 수 있게, 영광스럽게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실상, 휴거에 대해 말한 데살로니가전서 4:16은 휴거가 은밀한 재림의 때가 아니라 ‘시끄러운’ 재림의 때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증거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이중적 혹은 두 단계적 재림설은 교회 역사상 19세기초 처음 나타난 견해이다. 최초의 주장자는 1812년 스페인어로 영광과 위엄 중에 오실 메시야라는 책을 쓴 칠레 출신 예수회 신부 임마누엘 라쿤자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1826년 영광과 위엄 중에 오실 메시야라는 제목으로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 에드워드 어빙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 후 1830년 4월 스코틀랜드 포트 글라스고우에서 마가릿 맥도날드라는 한 젊은 여자는 예언과 환상을 통하여 은밀한 공중 재림과 부분적 휴거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세대주의의 본산지 영국 플리머스 형제단 운동의 핵심적 지도자인 죤 다비는 에드워드 어빙과 잘 아는 사이이었고, 마가릿 맥도날드와도 교제가 있었다. 다비는 1879년에 쓴 그의 편지에서 주께서 성도들을 위해 오시는 은밀한 공중 재림의 진리가 1827년에 그를 자유케 한 진리라고 기록하였다. 다비가 채택한 이 견해는 스코필드와 그의 관주 성경을 통해 미국과 세계에 널리 퍼졌다.
부분적 휴거설
부분적 휴거설이란, 환난전 휴거설의 한 변형된 형태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은밀히 재림하실 때 오직 승리적 신앙 생활을 한 신자들만 휴거되며 지상에는 대환난이 있어 승리적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한 자들이 그 환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주장자들은 그들의 견해의 근거로 몇 개의 성경 구절들을 제시하였다. 누가복음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관계 없이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요한일서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고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부분적 휴거설은 마치 개신교적 연옥설과 같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 사람에게는 구원과 멸망 중 하나가 있을 뿐이지 그 중간지대는 없다. 이 견해는 또한 성경의 다른 여러 구절들과 조화되지 않는다. 로마서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51, “우리가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환난 중간 휴거설
환난 중간 휴거설이란, 역시 환난전 휴거설의 또 하나의 변형된 형태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은밀히 재림하시고 7년 대환난이 시작된 후, 그리스도인들은 환난 기간 중간, 즉 전 3년 반 직후에 휴거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의 주장자들은 그 근거로 요한계시록 11:3-12을 제시하고 거기에 나오는 두 증인이 신약 교회를 상징하고 그들의 승천이 교회의 휴거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1장의 두 증인에 대한 환상은 상징적 내용이다. 요한계시록의 다른 여러 부분들과 같이 그것에 대한 해석도 독단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본다. 이 두 증인은 여섯째 나팔 재앙 후 환난시대 동안에 사역하는 두 인물을 가리킬 것이다. 여하튼, 환난 중간 휴거설은 요한계시록의 한 상징적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에 근거하므로 확실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환난 후 휴거설
환난 후 휴거설이란, 대환난 시대가 지난 후, 주 예수께서 단회적으로 영광스럽게, 눈으로 볼 수 있게 다시 오실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죽은 자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되어--공중으로 들려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견해이다. 이것이 성경적, 역사적 견해이다. 전통적 종말론은 어느 파의 것이든지 주의 재림의 단일성과 재림 때의 휴거를 믿었다. 그러나 세대주의 휴거론의 등장으로 휴거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나뉜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적, 성경적 개혁신학에서 휴거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대환난을 피하기 위한’ 사건이거나 그런 의미에서의 복된 소망이 아니다. 휴거는 주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거나 변화된 성도들이 그를 영접하는 사건일 뿐이다. 마태복음 24:30-31,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5. 천년왕국
천년왕국(millennium)의 문제는 요한계시록 20:1-10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요한계시록 20:1-10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요한계시록 20장에 언급된 천년왕국은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인가, 아니면 단지 어떤 상징인가? 또 천년왕국은 시간적으로 요한계시록 19장에 이어지는 사건인가, 아니면 시간적 전후 관계가 없는 독립적 사건이나 사실인가? 요한계시록의 말씀과 신약성경의 다른 부분들, 특히 복음서들와 바울 서신들의 말씀들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
천년왕국에 대해, 무천년설, 후천년설, 세대주의 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등 네 가지 견해가 있다. 개혁교회의 성경학자들은 무천년설 내지 후천년설을 선호하였으나, 우리나라에 온 초기 선교사들 중에는 역사적 전천년설을 가진 자들이 있었고 그것은 한국의 보수적 장로교회의 전통처럼 되었다. 그러면 각 견해를 살펴보자.
무천년설(Amillennialism)
무천년설이란, 요한계시록 20장에 언급된 천년왕국이 문자적으로 ‘천년’ 동안의 지상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단지 신약 교회 시대에 대한 상징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것은 초대교회 때에 어거스틴, 종교개혁시대에 루터와 칼빈, 그리고 근대에 와서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루이스 벌코프 등이 가졌던 견해이다.
무천년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두 가지인데, 첫째로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는 천년왕국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둘째로 성경이 전체적으로 의인들과 악인들의 부활과 심판을 동시에 일어날 사건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니엘 12: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마태복음 13:41-43,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요한복음 5:28-29,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처녀의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도 그러하다. 데살로니가후서 1:7-9,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베드로후서 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모든 것이 불타버리리라]. . . .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나 무천년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평할 수 있다. 첫째로, 요한계시록이 종말 예언에 있어서 독특한 성격과 권위를 가지기 때문에, 비록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 천년왕국에 대한 언급이 없다 할지라도 천년왕국은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더욱이, 요한계시록 22:18-19에서 주께서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들을 가감(加減)하는 자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셨다.
둘째로, 요한계시록 20장에 6번이나 언급된 ‘천년’을 단순히 신약 교회 시대의 상징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태도인가?
셋째로, 무천년설은 ‘사탄의 결박’에 대해 적절하게 해석하기 어려워 보인다. 요한계시록 20:2-3,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과연 신약 교회 시대가 여기 묘사된 대로 사탄이 결박된 시대인가? 신약 교회 시대는 요한계시록 6-19장에 묘사된 환난 시대 곧 사탄의 활동과 미혹이 존재하는 시대가 아닌가? 사도들은 이미 종말의 징조가 시작되었다고 느끼지 않았던가?(요일 4:3). 신약 교회 시대가 그러하였다면, 어떻게 그것이 동시에 천년왕국으로 묘사될 수 있겠는가?
후천년설(Postmillennialism)
후천년설이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이 신약 교회 시대 후기에 있을 기독교 황금시대를 가리키며 그 후에 주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이것은 찰스 핫지, 윌리암 쉐드, 로버트 댑니, 벤자민 워필드 등 유력한 장로교 신학자들이 가졌던 견해이었다.
후천년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무천년설에서와 같이,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 천년왕국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성경이 전체적으로 의인과 악인의 부활과 심판을 동시에 일어날 사건으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후천년설은 천년왕국에서의 ‘사탄의 결박’이 신약 교회 시대 전체에 해당되지 않고 그 시대 후기에 기독교 복음이 꽃피어 그 영향력이 온 세계에 미치는 때에 해당된다고 본다.
그러나 후천년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평할 수 있다. 첫째로, 이 견해는 말세의 징조들에 대한 성경의 교훈과 조화되지 않는다. 성경은 말세에 고통하는 시대, 배교의 시대가 올 것을 예언한다. 마태복음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디모데후서 3:1-2,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이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디모데후서 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요한일서 4:3, “[거짓 선지자가]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둘째로, 후천년설은 요한계시록 19-20장의 사건들의 순서에 조화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의 순서는 ① 대환난시대(6-18장), ② 그리스도의 재림(19:11-16), ③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멸하심(19:19-21), ④ 천년 동안의 사탄의 결박(20:2), ⑤ 첫째 부활(20:4-5), ⑥ 천년 동안의 왕노릇(20:4, 6), ⑦ 천년 후 사탄이 놓여 땅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전쟁케 함(20:7-9), ⑧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함(20:9), ⑨ 사탄이 불못에 던지움(20:10), ⑩ 마지막 심판(20:11-15) 등이다. 그러나 후천년설은 천년간 사탄의 결박과 첫째 부활과 천년 동안 왕노릇함을 대환난시대보다 앞에 두어야 하며 (후천년설에서도 대환난을 재림 직전의 징조로 보기 때문에), 천년 후 사탄이 놓여 땅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전쟁케 함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함을 대환난시대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보아야 할 것이지만, 그것들은 본문 해석상 매우 부자연스럽다.
셋째로, 후천년설은 특히 제1, 2차 세계대전 후 현시대의 불안한 상황과 조화되지 않는다. 21세기는 밝은 전망보다는 어두운 전망을 가지고 있다. 어느 시대나 그러했겠지만, 현시대는 이단, 배교, 기근, 질병, 전쟁, 낙태, 동성애 등 여러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신약 교회 시대 후기의 복음의 황금시대라는 관념은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세대주의 전천년설(Dispensational Premillennialism)
전천년설이란, 천년왕국을 주의 재림 후에 있을 문자적 천년왕국으로 보는 견해인데,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있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이란 천년왕국을 유대인들의 천년왕국, 즉 구약적 성격의 천년왕국으로 본다. 이 견해는 이사야(사 65:20, 25)와 에스겔(겔 40-48장; 45:17; 46:3, 13) 등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들이 천년왕국에서 문자적으로 성취되며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 짐승 제사들과 절기들이 회복된다고 본다.
세대주의 전천년설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첫째로 요한계시록 19, 20장을 시간 순서로 보아서 19장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재림 후 20장에 예언된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는 것과, 둘째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이라는 것이다. 세대주의의 특징은 성경 해석에 있어서의 문자주의이다. 따라서 장차 이루어질 천년왕국의 성격은 구약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다음과 같이 비평할 수 있다. 첫째로,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에 대한 문자적 해석은 좋으나, 신약성경에 그 외의 부분들은 천년왕국에 대해 침묵하고 있고 또 예수께서 재림하심으로 의인들과 악인들이 동시에 부활하고 동시에 마지막 심판을 받을 것으로 묘사한다는 점을 쉽게 무시할 수 없다.
둘째로, 특히 구약 예언들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은 정당치 못하다. 성경의 문자적 해석은 일반적으로 건전한 해석 원리이지만, 성경의 예언들과 상징들에 대해서는 문자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다. 신약성경 자체가 때때로 구약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갈라디아서 3:29에서 예수 믿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렀다.
셋째로, 가장 중요한 점은, 신약성경이 구약시대의 성전 제도, 제사들, 절기들 등 소위 의식법儀式法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폐지되었다고 선언한다는 것이다. 골로새서 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히브리서 8:13,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재림하신 후 천년왕국시대에 구약의 성전 제도와 제사들, 절기들이 다시 있을 것이라는 구약 예언들의 문자적 해석은 신약 계시의 빛 아래서 용납되기 어렵다. 구약의 의식법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폐지되었는데, 어떻게 그림자와 같은 법들에 규정된 의식들이 그 실체가 오신 이후에도 행해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세대주의적 견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역사적 전천년설(Historical Premillinnialism)
역사적 전천년설은, 주의 재림 후 천년왕국이 있다고 보는 점에서는 세대주의 전천년설과 같으나, 천년왕국을 신약적 성격의 나라로 보는 점에서 세대주의적 견해와 다르다. 이것은 초대교회에 저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등의 교부들이 가졌던 견해이었으므로 ‘역사적 전천년설‘이라고 부른다. 근대에 벵겔, 고데, 랑게, 알포드, 엘리콧, 잔 등 성경주석가들이 이 견해를 취하였다. 한국 장로교회는 초기 평양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이눌서(레이놀드) 선교사를 통해 전천년설을 전수받았고 그 후 장로교 총회신학교에서 오랫동안 조직신학을 가르쳤던 박형룡 박사에 의해 이 견해가 전수되었다.
역사적 전천년설의 근거는 그것이 요한계시록의 본문에 가장 적합하다는 점이다.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의 순서는 ① 대환난시대(6-18장), ② 그리스도의 재림(19:11-16), ③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멸하심(19:19-21), ④ 천년 동안의 사탄의 결박(20:2), ⑤ 첫째 부활(20:4-5), ⑥ 천년 동안의 왕노릇(20:4, 6), ⑦ 천년 후 사탄이 놓여 땅의 백성들을 미혹하여 전쟁하게 함(20:7-9), ⑧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함(20:9), ⑨ 사탄이 불못에 던지움(20:10), ⑩ 마지막 심판(20:11-15). 이 사건들을 문자적 순서로 보면, 사탄이 결박되는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 즉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지옥 불못에 던지운 직후이다. 재림의 주께서 사탄으로 하여금 세계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심으로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천년왕국에서 심판 권세를 받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할 자들(4절)은 누구인가? 그들은 순교자들과,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지 않고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참된 성도들이다. 첫째 부활(5절)은 예수 믿는 성도들의 부활이다. 그러면 둘째 부활은 악인들의 부활이다. 또 부활한 성도들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그 때에 세상에 남아 있는 믿지 않는 자들이다. 그들이 8절에 나오는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이며 마지막으로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둘러 전쟁을 일으킬 자들이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설에도 어려운 점이 없지 않다. 신약성경은 요한계시록 외에서 천년왕국에 대해 침묵한다. 또 신약의 종말론에서 천년왕국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매우 약해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과연 천년 동안의 긴, 그러나 임시적인 왕국이 필요하며 의미가 있는 것인가? 또 신약성경이 주의 재림 때에 의인들과 악인들이 다 부활하고 마지막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는 점은 천년왕국에 대한 문자적 신념을 약화시킨다.
천년왕국은 성경의 교리들 중에서 매우 난해한 문제이다. 세계적으로 장로교회의 전통적 견해는 무천년설 내지 후천년설이었고, 한국 장로교회의 전통적 견해는 역사적 전천년설이었다. 한국 장로교회의 보수신학의 틀을 세웠던 고 박형룡 박사는 이런 어려움을 인식하면서 천년왕국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온건한 결론을 내렸다:
천년기를 중심으로 하여 갈라진 재림 삼론은 교파의 구별 없이 정립(鼎立)하여 개인들의 자유 취사를 기다리게 된다. 그것은 대교파들의 신경(信經)들이 이 삼론에 대하여 취사를 행하지 않은 고로 아무라도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이것들의 시비(是非)를 결정하기 곤란한 때문이다. 다른 여러 가지 근본적인 신념들에서 서로 동의하는 같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도 재림과 천년기 문제에 대해서는 삼론의 정립함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지도자들과 신도들은 이 삼론의 하나를 자유로 취하되 다른 이론을 취하는 자들에게 이해와 동정으로 대하여야 할 것이다.
6. 마지막 심판
주 예수께서는 심판주로 다시 오신다. 그가 다시 오셔서 하시는 일은 마지막 심판이다.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마지막 대사건이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신 것은 마지막 심판의 한 예표이었다(벧후 3:6-7).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장차오는 심판을 강론하였다(행 24:25). 히브리서 6:2은 마지막 심판이 기독교의 근본 교리에 속한다고 증거한다. 요한계시록 끝에는 흰 보좌에 앉으신 이의 심판의 광경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 큰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계 20:11-15).
심판주
마지막 심판 때에 심판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신약성경은 이 사실을 밝히 증거한다.
세례 요한은 증거하기를, 자신의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장차 “손에 키를 들고 자기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였다(마 3:12).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하셨고(요 5:22), 또 그가 다시 오실 때, 목자가 양과 염소를 나누듯, 영생할 자들과 영벌永罰을 받을 자들을 나누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25:31-48).
사도 베드로는 주 예수께서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심판자이심을 증거하였다(행 10:42). 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셨다고 증거하였고(행 17:31), 또 고린도후서 5:10에서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의 심판대’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마지막 심판 때에 심판자가 되심을 나타낸다.
천사들은 마지막 심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돕는 자들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13:41-42,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또 성도들도 심판의 협력자가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 6:2-3, “성도들이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우리가 천사들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심판의 대상
마지막 심판의 대상들은 우선 사탄과 악령들이다. 그들은 타락하고 변절한 천사들이다. 마태복음 8:29, “[귀신 들린 자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 마태복음 25:41,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고린도전서 6:3, “우리가 천사들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베드로후서 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유다서 6,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요한계시록 20:10,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그러나 선한 천사들은 심판에서 제외된 듯하다.
심판의 대상은 또한 모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지막 심판 때 살아 있는 자들과 이미 죽은 자들 모두를 다 포함한다. 사도행전 10:42,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디모데후서 4:1,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베드로전서 4: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진술할 것이니라.” 요한계시록 20:12-13,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모든 사람들 속에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도 포함된다. 마태복음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로마서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전통본문).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요한복음 5:24에 예수께서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은 심판대에 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고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앞에 말한 바, 성도들이 심판의 협력자가 된다는 말씀(고전 6:2-3)은 이것과 조화시켜 시간적 순서를 두어 이해해야 할 것이다.
심판의 때
마지막 심판의 때는 죽은 자들이 부활한 후의 어느 때일 것이다. 요한복음 5:28-29,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계시록 20: 12-13,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마지막 심판은 단일한 사건일 것이다. 신약성경에서 마지막 심판의 날은 복수명사 ‘날들’이 아니고 단수명사 ‘날’로 언급되어 있다. 사도행전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로마서 2:5, 16,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베드로후서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유다서 6, “큰 날의 심판까지.”
세대주의자들은 ‘세 차례의 마지막 심판’을 주장한다. 첫째 심판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심판으로 대환난 전 휴거 후에 있고, 둘째 심판은 이방 민족들을 위한 심판으로 대환난 후 그리스도의 지상 강림 때에 있고, 셋째 심판은 악인들을 위한 심판으로 천년왕국 후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 심판을 세 종류나 세 차례로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
심판의 근거
마지막 심판의 근거는 사람의 행위들이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전도서 12:14,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로마서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고린도후서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요한계시록 20:12-13,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람의 행위에는 이 세상에서 사람이 품는 모든 생각과, 하는 모든 말이 포함된다.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까닭없이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빈 머리]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태복음 5:28-2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요한계시록 2:23,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마지막 심판은 사람들이 가진 진리의 지식의 정도에 따라 이루어질 것이다. 누가복음 12:47-48,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마지막 심판의 근거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지는 태도이다. 요한복음 3:18, 36, “저[독생자]를 믿는 자는 심판[정죄]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정죄]을 받은 것이니라,”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복음 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마태복음 25:35-36, 48,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 비유[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그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그가 세우신 작은 한 일꾼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서 증거되며 그것이 영생과 영벌을 나누는 증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심판의 성격
하나님의 심판은 지극히 공의로운 심판이다. 로마서 2:5,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의 심판은 또한 철저한 심판이다. 사람의 은밀한 말과 행위들은 다 철저히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전도서 12: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로마서 2:16,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들에게 참으로 두려운 사건이다. 그 심판의 결과, 악인들은 영원한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 교리의 유익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모든 사람이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할 확실한 이유이다. 로마서 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마지막 심판은 또한 성도들이 세상에서 부당하게 고난과 핍박을 당할지라도 낙심치 않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로마서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데살로니가후서 1:6-9,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마지막 심판의 교리는 사람에게 매우 유익하다.
7. 천국과 지옥
마지막 심판의 결과,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마지막 단계이며 인류의 최종적 상태다. 그것은 영원한 세계이다.
천국
의인들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성경에서 천국(天國) 혹은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 단계와 미래적 단계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천국의 이 두 단계를 ‘은혜의 나라’와 ‘영광의 나라’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천국의 현재적 단계
천국의 현재적 단계는 교회와 거의 동일시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씨앗과 같이 뿌려졌고 이미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중생(重生)함으로 그 나라에 들어간다. 따라서 교회와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불린다. 다니엘 2:44, “이 왕들의 때[로마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마태복음 11:12, “세례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마태복음 12:28,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3:24,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태복음 13:31,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태복음 13:45,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태복음 13:47,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누가복음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골로새서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요한계시록 1:6,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천국의 미래적 단계
그러나 천국의 영광은 아직 미래에 있다. 영광의 천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성도들은 지금 그 나라의 영광을 바라며 기다리고 있다. 마태복음 25:34,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누가복음 21: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강제로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빌립보서 3:20, “우리의 시민권(폴리튜마 πολίτευμα 나라)은 하늘에 있는지라.” 디모데후서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베드로후서 1:11,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요한계시록 11:15,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시리로다.” 요한계시록 22:5, “저희[하나님의 종들]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천국의 영광
성경은 미래의 영광의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 혹은 만물의 회복이라고 표현한다.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마태복음 19:28,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사도행전 3:21,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 베드로후서 3:12-13,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體質, 원소들)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義)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요한계시록 21:1,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께서 다시 창조하신 세계이든지, 아니면 현재의 세계를 새롭게 하신 세계일 것이다.
미래의 천국 곧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다. 로마서 8:18, “장차 . . . 나타날 영광.” 고린도후서 4:17,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베드로전서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베드로전서 5:10, “영원한 영광.” 베드로후서 3:13,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 요한계시록 21:1-22:5은 천국을 죄와 눈물과 죽음과 병과 저주가 없고 생명과 기쁨과 영광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곳으로 묘사한다. 요한계시록 21:2, 10-21,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수정같이 맑은 벽옥 같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 그 성을 측량하니 12,000스다디온(약 2,200km)이요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144규빗(약 65m)이니 . . .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순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열두 보석)...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천국은 단순히 영적 세계가 아니다. 그곳은 변화된 몸이 영원히 살 처소이다. 마태복음 26:29,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새 포도주]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22장은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의 열두 가지 열매를 증거한다. 성도들의 부활체는 완전하고 영광스러울 것이다. 영화된 성도들이 천국에서 영생하는 것은 충만한 영광의 삶일 것이다.
천국에서의 상급
성경은 하나님의 상에 대해 많이 말한다. 히브리서 11:6,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마태복음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누가복음 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빌려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누가복음 14:13-14, “잔치를 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불구자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고린도전서 9: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 . .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빌립보서 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히브리서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히브리서 11:26,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특히, 하나님께서는 복음 사역자들에게 상을 약속하셨다. 고린도전서 3:8, 14,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 . .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일)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요한이서 8,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않고 온전한 상을 얻게 하라”(전통본문). 마태복음 25:21,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누가복음 19:17,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마태복음 5:11-12,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누가복음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 즉 의인의 부활의 때이다.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요한계시록 22: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네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누가복음 14:13-14, “잔치를 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불구자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누가복음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천국]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우리는 영광의 천국을 바라며 또 상 주심을 기대하며 믿음 안에서 충성하자.
지옥
마지막 심판의 결과, 악인들은 지옥(게엔나 gέεννα), 영원한 불못에 들어갈 것이다.
성경적 증거
마태복음 3:12, “[그리스도께서 장차]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태복음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까닭 없이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태복음 5:29-30,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5:41, 46,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마가복음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전통사본]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불의--전통사본]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전통사본에는 44, 46절에도). 마가복음 9:49, “[이는]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치듯함[뿌리듯함]을 받으리라.”
누가복음 12:4-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겁내는 자들, 비겁한 자들]와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
지옥에서의 고통의 성격
지옥은 영원한 불못이다. 마태복음 25:41, “영영한 불.” 마가복음 9:43, “지옥 꺼지지 않는 불.” 요한계시록 21:8,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 진노로 자주 표현된다(창 19:24-25; 레 10:2; 신 30:22; 나 1:6; 눅 16:24; 벧후 3:7, 10, 12 등). 또 거기에는 후회, 자책, 실망, 기갈, 불만족, 허탈, 악한 감정들, 무질서, 난폭 등의 고통도 있을 것이다.
지옥의 영원성
지옥의 고통은 영원한 고통이다. 마태복음 25:41, 46, “영영한 불,” “영벌[영원한 형벌].” 데살로니가후서 1:9,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지옥의 영원성은 다음 몇 가지 점들에서 확증된다.
첫째로, ‘영원한’(아이오니오스)이라는 말의 본래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 ‘영원한’이다. ①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로마서 16:26,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디모데전서 1:17, “만세의[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죽지 않으시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시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② 영생과 천국도 영원하다. 요한복음 3:16, “영생.” 베드로후서 1: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이와 같이, 지옥도 영원하다.
둘째로, 영원한 멸망은 영생과 나란히 사용된다. 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영원한 형벌]에, 의인들은 영생[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천국과 영생이 영원한 것처럼, 지옥도 영원하다.
셋째로, 지옥의 묘사가 그것의 영원성을 증거한다. 마가복음 9:43, “지옥 꺼지지 않는 불.” 마가복음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요한계시록 20:10,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이러한 묘사들은 확실히 지옥의 영원성을 증거하는 표현들이다. 박형룡 박사는 말하기를, “설혹 무리하게 한 걸음을 사양하여 아이오니오스를 ‘유구한 시대’라고 해석한 들, 그것이 영벌을 반대하는 자에게 유리한 무엇이 될 이유는 없다”고 하였다.
지옥 교리의 중요성
지옥의 교리는 중요하다. 첫째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언하신 진리이다(마 10:28; 막 9:43, 48-49; 눅 12:4-5). 윌리암 쉐드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멸망의 교리에 대해 책임을 지셔야 할 분이시다”라고 하였다.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이 진리를 그 누구도 부정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둘째로, 지옥의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과 의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가지게 해준다. 지옥의 형벌을 통해, 우리는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악을 미워하시는 지를 깨닫게 된다. 이사야 26:9, “주께서 땅에서 심판하시는 때에 세계의 거민이 의를 배움이니이다.” 예레미야 30:24,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셋째로, 지옥의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가치를 알게 한다. 구주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구해 내셨다.
넷째로, 지옥의 교리는 죄인들에게 회개와 믿음의 정당한 동기가 된다. 로버트 맥케인의 지옥에 대한 눈물어린 설교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다고 한다. 지옥의 진리는 죄인들에게 회개할 정당한 동기를 준다.
복음의 요점
조직신학은 성경에 계시되고 증거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자세한 해설이며 구원의 진리요 우리의 믿음의 내용이다. 하나님의 복음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창조(創造)하셨다(창 1:1). 천지를 창조하지 않은 신(神)은 다 헛되고 거짓되다(시 96:5; 렘 10:10-11).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하나님이시다. 그는 전지(全知) 전능(全能)하시며 또 지극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시고 진실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천지 만물을 돌보시며 다스리시는 섭리자이시다. 사람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는 특히 사람들의 선행들과 악행들을 공의롭게 심판하신다(시 93:1; 7:11; 계 20:11-15).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 당할 모든 사람들 중에서 자기 백성을 은혜로 택하시고 구원하시기를 뜻하셨고(엡 1:4-5) 또 실제로 구원하신다. 유일하신 참하나님을 아는 것이 인간의 참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다(잠 1:7)<![endif]>
사람은, 진화론이 추측하는 대로, 원숭이가 진화하여 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들과 달리,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의 형상을 따라’ 존귀하게 창조하신 피조물이다(창 1:26-28). 하나님의 형상의 내용의 핵심은 지식과 도덕성이다(골 3:10; 엡 4:22-24). 그런데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첫 명령을 어기고 범죄하였고(창 2:16-17; 3장), 이 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 되었다(롬 3:23; 5:15-19). 또한 실제적으로도 모든 사람 속에는 도덕적으로 매우 악하고 부패된 성질들이 많이 있다(렘 17:9). 또한 중요한 사실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악한 생각과 습관과 행위들 때문에 하나님의 두렵고 영원하신 진노와 지옥 불의 형벌 아래 있다는 사실이다(롬 1:18; 계 21:8). 이와 같이, 인간은 본래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창조하셨으나, 범죄한 이후 실로 악하고 추하고 허무하고 불쌍한 존재가 되었다
예수님은 한 유대인 청년이셨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실 뿐만 아니라, 실상 본래부터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가진 참하나님이시다(믹 5:2; 마 16:16). 그는 이 세상에 계실 때 약 3년 동안 많은 기적들을 행하셨고 그 기적들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 증거하셨다. 이 증거들은 신약성경의 처음 네 권의 책들에 잘 기록되어 있다(요 20:30-31). 그는 범죄한 일이 없으셨으나 유대의 지도자들의 미움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그러나 그는 무덤에 묻히신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동안 자신을 제자들에게 확실하게 나타내셨다(행 1:1-3). 그는 자신이 죄인들을 대속한 구주임을 자신의 부활을 통해 확증하셨다(마 20:28; 행 2:36). 예수님, 그는 과연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세상에 보내신 유일한 구주이시다(행 4:12; 딤전 2:5)!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받기 위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말씀하셨다(행 17:30). 사도행전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자신이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며 돌이키고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의지하는 자는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행 13:38-39). 로마서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또 그는 장차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영생이다(빌 3:21; 계 21:1-7).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만 짓고 살다가 죽고 만다면 참으로 허무하고 두렵고 불쌍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귀하고 큰 복이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귀하고 큰 복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 앞에 이 귀한 소식을 선포하셨다. 이 귀하고 놀라운 구원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돌리자! 하나님의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이 구원의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 안에 굳게 서야 한다. 또 아직 이 복음을 깨닫지 못한 자들은 속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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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김효성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졸업 (B.A.).
총신대학 신학연구원[신학대학원] 졸업 (B.D. equiv.).
미국, Faith Theological Seminary 졸업 (Th.M. in N.T.).
미국, Bob Jones University 대학원 졸업 (Ph.D. in Theology).
계약신학대학원 교수, 합정동교회 담임목사.
[역서] J. 그레셤 메이천, 신약개론, 신앙이란 무엇인가? 등 다수.
[저서] 신약성경강해(옛신앙, 2005), 기독교 윤리(옛신앙, 2007), 현대교회
문제(제3판)(옛신앙, 2007), 자유주의 신학의 이단성(옛신앙, 2008), 현대
교회문제 자료집(옛신앙, 2004), 구약성경강해: 창세기, 여호수아, 사사
기-룻기, 시편(상)(하), 아가서, 에스겔, 다니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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