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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선비 글

`검은 것을 검다 하고`

by 싯딤 2008. 12. 9.

*** 이 글의 원제는 <상촌집>에 실린 <핵위편>이다.

 

 

 

검은 것을 검다 하고

 

신흠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참이요, 흰 것을 검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그것이 참인가 거짓인가 하는 것은 아녀자도 금방 알 수 있지만 소경은 보아 알지 못한다.

 

을 종이라 하는 것은 참이요, 종을 경쇠라 하는 것은 거짓이다. 그것이 참인가 거짓인가 하는 것은 천인 마부도 바로 분별할 수 있지만 귀머거리는 무슨 소리인지 들어 알지 못한다. 이는 그 소리가 가리워져 그를 미혹케 하였기 때문이다. 작게 가리워지면 작게 미혹되고, 크게 가리워지면 크게 미혹된다. 작게 가리워진 것은 흑,백,종,경을 혼동하는 따위이고, 크게 가리워진 것은 천하 국가의 기틀이다.

 

어진 것을 사악하다 하고 사악한 것을 어질다고 하는 것은 허위이다. 이것은 흰 것을 검다고 하고, 종을 경쇠라고 하는 것은 그 차원이 다르다.

 

임금이 혹시 이런 차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왕망(전한 말기 반란을 일으켜 전한을 멸망시킨 인물)을 주공(문왕의 아들) 이라고 하여 왕망의 거짓 덕을 칭송하는 자가 날로 늘어날 것이요, 조조를 문왕이라고 하여 조조의 거짓 공렬을 추대하는 자가 날로 늘어날 것이다. 또한 환온(진나라 때 찬탈을 음모하다 병사함) 을 이곽(은나라 어진 재상)이라 하고 유유(송나라 무제), 소연(송나라 충신)을 탕무라고 할 것이니 거짓의 해독을 어찌 다 말하겠는가.

 

거짓으로써 스스로 극악하는 자는 또한 남을 거짓으로써 모함한다.

 

임금이 그 거짓을 규명하려고 마음 먹었다면 마땅히 그 거짓이 대단하지 아니한 때에 해야 할 것이다. 거짓이 심하면 반드시 이윤, 주공이 되고 곽광, 문왕이 되며, 거짓이 극하면 반드시 탕왕이 되고 무왕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이라도 장차 진실이 없어질 터이니 어떻게 남의 거짓을 규명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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