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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선비 글

과거시험 문답-이율곡

by 싯딤 2009. 11. 27.

<책문>

천도天道는 알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어렵다.

해와 달이 하늘에 달리어 하루 낮 하루 밤을 운행하는데 더디고 빠름이 있는 것은 누가 그렇게 시키는 것인가?

혹 해와 달이 한꺼번에 나와서 일식과 월식이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오성五星이 씨[緯]가 되고 중성衆星 날[經]이 되는 것을 상세히 말할 수 있는가?

경성景星은 어떤 때에 나타나며 혜패(혜성)는 또한 어떤 시대에 보이는가?

어떤 이는 만물의 정기가 올라가서 열성列星이 된다고 하니 이 말은 또한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바람이 일어나는 것은 어느 곳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들어가는 것인가?

혹은 나뭇가지가 울지 않을 정도로 불기도 하고 혹은 나무가 부러지고 지붕이 날아갈 정도로 불기도 하여 소녀풍(少女風)이 되기도 하며 구모풍(태풍)이 되기도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구름은 어디에서 일어나며 흩어져 오색이 되는 것은 어떤 감응인가. 혹 연기같으면서도 연기가 아니고 매우 아름다워 부산한 것은 어째서인가?

안개는 무슨 기운이 발한 것이며 적색이 되기도 하고 청색이 되기도 하는 것은 무슨 징조가 있어서인가?

혹 황무黃霧가 끼어 사방이 보이지 않고 혹 대무大霧가 끼어 낮에도 어두운 것은 또한 어째서인가?

천둥과 우뢰와 벼락은 누가 주관하는 것이며 그 섬광이 번득이고 소리가 두려운 것은 어째서인가?

혹 사람을 벼락치고 혹 물건을 벼락치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서리로써 풀을 죽이고 이슬로써 만물을 윤택하게 하는데 왜 서리가 되고 이슬이 되는지 그 까닭을 들을 수 있을까?

남월(지금의 광동 광서지방)은 땅이 따뜻한데도 6월에 서리가 내려 변괴가 혹심하였으니 그 당시의 일을 상세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비는 구름으로부터 내리는 것인데 혹은 짙은 구름이 끼고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신농神農때에는 비를 바라면 비가 왔으며 태평한 세상에는 열흘에 한 번씩 1년에 36번의 비가 온다하니 천도天道도 또한 선인善人에게만 사사로이 후하게 하는 것이 있는가?

혹 군사를 일으키자 비가 내리고 혹은 옥사를 결단하자 비가 내린 것은 어째서인가?

초목의 꽃은 다섯 잎이 대부분인데 설화雪花(눈꽃)만이 유독 6각인 것은 어째서인가?

와설臥雪과 입설立雪과 영빈迎賓과 방우訪友의 일을 또한 자세히 말할 수 있겠는가?

우박[雹]은 서리도 아니고 눈도 아니니 무슨 기운이 모인 것인가? 그 크기가 혹은 마두馬頭만하고 혹은 계란만 하여 사람이나 새나 짐승을 죽인 것은 어떤 시대에 있었던 일인가?

천지가 만상萬象에 대하여 각각 기氣가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일기一氣가 유행하여 흩어져서 만수萬殊가 되는 것인가?

혹 상도常道와 위반되는 것은 천기가 어그러져서인가? 인사人事가 잘못되어서인가?

어떻게 하면 일식·월식이 없고 성신星辰이 궤도를 잃지 않으며, 우뢰에서 벼락이 생기지 않고, 서리가 여름에 내리지 않으며, 눈과 우박이 재앙이 되지 않으며, 심한 바람과 음우淫雨(지루하게 내려 곡물을 해치는 비)가 없이 각각 그 순서를 따라 마침내 천지가 제 자리에 바로 서고 만물이 잘 자라나게 될까? 그러한 도리는 어디에서 말미암는 것인가?

제생은 널리 경사經史(경전과 사서)에 통달하였으니 반드시 이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 마음을 다하여 대답하라.

 

<대책>

상천上天의 일은 무성무취無聲無臭하여 그 이理는 지극히 은미하나 상象은 지극히 현저하니 이 설說을 아는 사람이라야 더불어 천도를 논할 수 있습니다.

이제 집사선생께서 지극히 은미하고 지극히 현저한 도로써 발책發策하여 문목問目을 삼아서 격물궁리格物窮理의 설을 듣고자 하니, 이는 진실로 학문이 천인의 도를 끝까지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이를 의논하는데 참여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평소 선각자들에게서 들은 것을 가지고 밝으신 물음에 만분의 일이나마 대답할까 합니다.

생각하건대 만화萬化(천지의 모든 조화)의 근본은 하나의 음양일 뿐입니다. 이 기氣가 동하면 양이 되고 정하면 음이 되니, 한번 동하고 한번 정하는 것은 기이고, 동하게 하고 정하게 하는 것은 이理입니다.

천지의 사이에 형상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더러는 오행의 정기가 모여된 것도 있고, 천지의 괴기乖氣(정도에 어그러진 기)를 받은 것도 있고, 음양의 서로 격돌하는 데서 생긴 것도 있고 음양 두 기운이 발산하는 데서 생긴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월성신이 하늘에 걸려 있는 것이나 비 · 눈 · 서리 · 이슬이 땅에 내리는 것이나 바람과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나 우뢰와 번개가 발작하는 것이 모두 기가 아닌 것이 없으나, 이것들이 하늘에 걸리고 땅에 내리고 바람과 구름이 일어나고 우뢰와 번개가 발작하는 까닭은 이가 이 아님이 없습니다.

이기二氣(음양)가 진실로 잘 조화되면 저 하늘에 걸려 있는 일월이 전도(운행하는 도수)를 잃지 않고 땅에 내리는 비나 눈이 반드시 제 철에 맞으며 바람 · 구름 · 우레 · 번개가 모두 화기 속에 둘려 있게 되는 것이니 이는 이의 정상입니다.

만일 이기가 조화되지 않으면 일월의 운행이 그 전도를 잃고 발휘함이 제 철을 잃으며 바람 · 구름 · 우레 · 번개가 모두 어그러진 기운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는 이)의 변괴(變)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니,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하면 천지의 기도 순해집니다.

그러니 이의 정상함과 변괴를 어찌 한결같이 천도의 탓으로만 돌려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이로 인하여 다음과 같이 아룁니다.

홍몽(자연의 원기)이 처음 개벽함으로부터 해와 달이 서로 갈마들며 우주를 밝혔는데, 해는 태양의 정기이고 달은 태음의 정기입니다.

양의 정기는 빨리 운행하기 때문에 하루에 하늘을 한바퀴 돌고, 음의 정기는 더디게 운행하기 때문에 하룻밤 사이에 하늘을 한바퀴 돌지 못합니다. 양이 빠르고 음이 더딘 것은 기이지만 음이 더디고 양의 빠른 소이는 이理입니다.

저는 누가 그것을 빠르고 더디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연히 그러한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해는 임금의 상이요 달은 신하의 상이니 운행하는 길이 같고 만나는 도수가 같기 때문에, 달이 해를 가리워 일식이 되고 해가 달을 가리워 월식이 됩니다.

해와 달이 같은 전도에서 만나되 달의 기운이 미약하면 일식의 변고가 생기지 않지만, 이 해가 미약하면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미약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고 윗사람은 점점 쇠퇴하게 되니, 이는 신하가 임금을 거역하는 상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두개의 해가 함께 나오고 두개의 달이 함께 나타나서 비상한 변괴가 되는 것이겠습니까? 이는 모두 어그러진 기운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님이 없습니다.

제가 일찌기 이러한 사실을 옛 전적에서 찾아보니, 재이災異가 일어난 경우는 덕이 닦여진 치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일식 월식의 변괴가 모두 말세의 난정亂政때 생겼으니 이에서 천의와 인도가 서로 통하는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저 하늘이 창창蒼蒼(파란빛)한 것은 기가 쌓인 것일 뿐, 본래의 빛깔이 아니니, 만약 별들이 찬란하게 기강이 되지 않았다면 천기天機의 운행은 아마도 구명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소소昭昭(아주 밝은 것)하고 경경耿耿(깜박이는 것)한 것이 각기 전차(별자리, 운행하는 길)가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모두 원기元氣의 운행이 아님이 없습니다.

중성衆聖은 하늘의 운행을 따라 운행하고 제 스스로 운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經(날)이라 하고 오성五星(금 · 목 · 수 · 화 · 토성)은 때에 따라 각각 나타나고 하늘의 운행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위緯(씨)라고 합니다.

하나는 일정한 전차가 있고 하나는 일정한 전도가 없으나 그 대체로 말하면 하늘이 날이 되고 오성이 씨가 되지만, 그 자세함을 말하고자 한다면 한 장의 종이로써 다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상서로운 별도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변괴의 별도 항상 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경성景星(덕성)은 반드시 소대昭代(태평성세를 이름)에 나타났고 요혜妖彗는 반드시 쇠세衰世(쇠퇴하는 세상, 망해가는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우순虞舜이 문명하였으매 경성이 나타났고 추 때는 혼란하였으매 혜패(혜성)가 생겨났습니다. 순舜같은 세대가 일대만이 아니고 춘추 때처럼 어지러운 시대도 일대 뿐이 아니었으니 어찌 일일이 들어 차례로 진술하겠습니까?

만약 이르되 만물의 정기가 올라가서 열성列星이 되었다고 한다면 저는 외람되오나 믿지 못하겠니다. 하늘에 있는 성신은 오행의 정精이며 자연의 기운이니 저는 어떤 물건의 정기가 바로 어떤 별이 되었다는 것으로는 알고 있지 않습니다.

팔준八駿이 방정房精이 되고 부열傅說이 열성이 되었다는 따위는 이른바 산하대지가 그림자를 하늘로 보낸다는 설과 무엇이 다르겠니까? 이것은 유자儒者의 믿을 바가 아닙니다.

별의 기운은 허虛가 응결된 것인데 혹 음기가 응결되지 않아 떨어져 운석이 되기도 하고 떨어져서 언덕이 되기도 한다는 말은 제가 소자邵子(소옹)에게서 들었습니다마는 물건의 정기가 별이 된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또 천지 사이에 가득한 것이 모두 기가 아님이 없으니 음기는 엉기었는데도 밖에 있는 양기가 들어가지 못하면 돌면서 바람이 됩니다.

만물의 기운이 비록 간艮(동북간)에서 나와 곤坤(서남간)으로 들어간다고 하지만, 음기가 엉기는 데에 정해진 곳이 없다면 양기가 흩어지는 것도 방소方所가 없습니다. 대괘大塊(천지)가 불어내는 기운이 어찌 한 곳에서만 나온다고 고집하겠습니까?

장양長養(자라게 하고 길러주는 것)의 바람이 동쪽에서 일어나지만 어찌 동방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으며, 숙살肅殺(죽이는 것)의 바람이 서쪽에서 일어나지만 어찌 서쪽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겠으며, 탱자나무 가지에 와서 둥우리를 짓고 빈 구멍에서 바람이 나온다 해서 어찌 빈구멍을 바람이 처음으로 생기는 곳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정자가 말하기를, '금년의 우뢰는 일어나는 곳에서 일어난다.' 하였는데 저도 조조調調는 기가 접촉하여 일어나고 기가 그치어 멈추는 것이고 애당초 출입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대하게 다스려진 세상에는 음양의 기운이 펴지고 울결鬱結되지 않기 때문에 기운의 흩어짐이 반드시 화평하여 불어도 나무가지를 울리지 않고, 세상의 도가 쇠퇴하면 음양의 기가 울결되고 펴지지 않기 때문에 기운의 흩어짐이 반드시 격렬하여 나무를 부러뜨리고 지붕을 날려 보냅니다.

소녀풍小女風은 화평하게 발산하는 것이고, 구모풍(태풍)은 격렬하게 발산하는 것입니다.

성왕이 한번 생각을 잘못하자 큰 바람이 전지에 곡식을 쓰러뜨렸고 주공이 수년동안 치화를 펴자 바다에 파도가 일지 않았으니, 그 기운을 그렇게 하는 것은 역시 인사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만약 산천의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구름이 되는 것이라면 경사와 재앙의 징험을 이로 인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왕이 영대靈臺를 설치하여 운물雲物(구름의 빛깔)을 관찰한 것은 여기에서 길흉의 조짐을 상고한 것입니다.

대개 경사와 재앙이 일어나는 것은 그것이 일어나는 날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반드시 조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름이 희면 반드시 유리하여 흩어지는 백성이 있고 구름이 푸르면 반드시 곡식을 해치는 벌레가 있니다. 그렇다면 검은 구름은 어찌 수재의 조짐이 아니겠으며 붉은 구름은 어찌 전쟁의 징조가 아니겠습니까? 황색 구름만이 풍년이 들 조짐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기운이 징조로써 먼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니면서 매우 아름다워 조용히 흩어져 홀로 지극히 화평한 기운을 얻어 성왕聖王의 상서가 되는 것은 오직 경운 뿐입니다.

진실로 부재阜財 · 해온의 덕이 없다면 경운이 생기게 하기 어려울 것인데 어찌 수토水土의 경청輕淸한 기운이 한갖 헌 옷도 같았다가 검은 강아지와도 같아지는 비유 뿐이겠습니까?

안개는 음기가 배설되지 못하여 증울蒸鬱(증기가 맺히는 것)된 것인데 음기가 모인 물건도 안개를 낼 수 있으니 이는 대개 산천의 여기(나쁜 기운)입니다. 안개가 붉어서 병상兵象이 되고 푸르러서 재앙이 되는 것이 모두 음기가 성한 징험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망적莽賊이 참위僭位하자 황무黃霧가 사방에 끼었고 천보天寶때 정사가 어지럽자 심한 안개로 낮이 어두웠으며 고황제高皇帝 유방劉邦이 백등白登에서 포위되었을 때와 문산文山이 시시柴市에서 죽을 때 모두 하늘이 흐리고 흙비가 내렸으니, 혹은 신하가 임금을 배반하거나 혹은 이적夷狄이 중국을 침범할 때 이러하였다는 것을 모두 유類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양기가 발산한 뒤에 음기가 양기를 싸서 양기가 나오지 못하면 분발 격동하여 뇌정雷霆(격렬한 천둥)이 됩니다. 그러므로 뇌정의 발작은 반드시 봄과 여름에 있으니 이것은 천지의 노기입니다. 번개의 섬광이 번쩍이는 것은 양기가 발하여 번개가 된 것이고, 천둥소리가 두려운 것은 음양의 두 기운이 서로 부딪쳐 우뢰가 된 것입니다.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뇌정은 음양의 정기로서, 혹 천둥으로 동면하는 벌레를 놀래어 깨우기도 하고 혹은 벼락으로 사악한 것을 치기도 한다.' 하였으니 사악한 기운이 모여서 이루어진 사람도 있고 사악한 기운이 붙여 이루어진 물건도 있으므로 정기가 사기邪氣에 벼락을 치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이치입니다.

공자께서 신(迅雷에 반드시 얼굴 빛을 변한 것은 진실로 이 때문이시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당연히 벼락을 쳐야 할 곳에 벼락을 친 것이겠습니까? 상商의 무을武乙이 벼락을 맞아 죽고, 노魯의 이백의 사묘祠廟에 벼락을 친 것은 이 이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반드시 어떤한 물건이 벼락을 치는 권한을 가지고서 주관한다고 하면 천착穿鑿에 가깝습니다.

또 양기가 펴지는 계절에 이슬로써 만물을 적시어 주는 것은 구름의 은택이고, 음기가 참담한 계절에 서리로써 초목을 죽이는 것은 이슬이 맺혀 서리가 되어서, 「시경」에 '갈대가 푸르거늘 흰 이슬이 서리가 된다.' 한 것이 바로 이것을 이른 것입니다.

간혹 음기가 너무 성하면 서리가 내리는 것이 제 철에 하지 않는 수가 있는데, 위주僞周가 임조臨朝하자 음양의 위치가 바뀌어 매우 따뜻한 남월南越에 6월에 서리를 내렸으니, 생각컨대 이는 필시 팔황八荒(온천하)이 온통 사나운 음기에 싸여 있어서인 듯합니다. 무씨武氏(무칙천)의 일은 이를 만하나, 말이 길어서 그만두겠습니다.

비와 이슬이 모두 구름에서 나오지만, 수분이 많은 것이 비가 되고, 수분이 적은 것이 이슬이 됩니다. 음양이 서로 교합하면 바로 비가 내리는 것인데 짙은 구름이 끼고서도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상하가 교통되지 않아서이니 홍범전洪範傳(서경」의 편명)에 '황皇이 ,극하지 않으면 그 벌은 상음常陰이다.' 한 것이 바로 이를 이름입니다. 또 양이 더할 수 없이 성하면 가물고 음이 성하면 장마가 지니, 반드시 음양이 조화된 뒤에야 비가 내리고 날이 개는 것이 시기에 맞습니다.

그러므로 저 신농神農같은 성인으로써 순박하고 밝은 세상에 처하시어 개이라 하면 개었고 비가 오라 하면 비가 온 것은 진실로 당연한 바이니, 성왕(聖王)이 백성을 다스리면 천지가 서로 통하여 5일에 한번 바람 불고 10일에 한번 비오는 것 또한 떳떳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와 같은 감응이 있는 것이니 천도가 어찌 사사로이 후히 대함이 있겠습니까?

원기怨氣는 가뭄을 부르는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한 여인이 품은 원한이 오히려 적지赤地(가뭄으로 걷을 곡식이 없게 된 토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왕이 은殷을 쳐서 이긴 것이 천하의 원기를 소멸시키기에 충분하고, 진경이 옥사獄事를 판결한 것이 한 지방의 원기를 해소하기에 충분하였으니, 단비가 때에 맞춰 내린 것이 괴이할 것 없습니다.

원기를 풀어준 데에도 이러하였는데 하물며 필부까지도 은택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는 태평세대이겠니까?

저 한창 추운 겨울에는 천지가 이미 폐색閉塞(천지가 막혀 서로 통하지 못함)되었지만, 음양의 두 기운이 교합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빗물이 엉기어 눈이 되는데 이는 대개 음기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초목의 꽃은 양의 기운을 받기 때문에 대부분 다섯잎이 나오는 것이니 다섯은 양의 수이고, 눈은 음의 기운을 받기 때문에 홀로 여섯잎이 나오는 것이니 여섯은 음의 수입니다. 이 역시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원안袁安이 눈 속에서 문을 닫고 읽었던 것과 귀산龜山이 눈 내리는 날에 뜰에 서 있었던 것과 난한暖寒의 모임과 산음山陰의 흥취 따위는 혹은 수정靜의 낙이 있어서이고 혹은 도 있는 사람을 심방하는 성의가 있어서이며 혹은 호사스러운 생각에서 나오고 혹은 방달放達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천도와 관계되지 않으니 어찌 오늘에 말할 만한 것이겠습니까?

그리고 우박은 여기戾氣(사나운 기운)에서 나오는 것인데, 음이 양을 위협하기 때문에 우박이 내려 물건을 해칩니다.

지난 옛날을 상고해 보면 크게는 말머리만 하고 작게는 계란만 하여 사람과 짐승을 살상한 것이 더러는 무력을 함부로 쓰던 세상에 있기도 하였고 더러는 화의 기초를 만드는 임금을 경계하기도 하였으니, 그 우박이 역대의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자세히 진술하지 않아도 이것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아! 일기一氣가 운행運行 변화하여 흩어져 만수萬殊가 되는 것이니, 나누어서 말하면 천지 만상이 각기 따로따로 하나의 기운이지만, 합하여 말하면 천지 만상이 동일한 기운입니다.

오행의 정기가 모인 것이 일 · 월 · 성 · 신이 되고, 천지의 여기戾氣를 받은 것이 흐림 · 흙비 · 안개 · 우박이 됩니다.

천둥 · 번개 · 벼락은 음양의 두 기운이 서로 격돌하는데서 나오고 바람 · 구름 · 비 · 이슬은 두 기운이 서로 합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니, 그 구분은 비록 다르나 그 이理는 같습니다.

집사께서 편말篇末에 또, 천지가 제 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이 육성되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이냐고 물으시니 저는 이 말씀에 깊이 감동되는 바가 있습니다.

제가 듣건대 '인군이 자기의 마음을 바로하여 조정을 바로 잡고, 조정을 바로하여 사방을 바로잡고, 사방이 바르면 천지의 기운도 바르게 된다.' 하였으며, 또 듣건대 '마음이 화평하면 형체도 화평하고, 형체가 화평하면 기운도 화평하며, 기운이 화평하면 천지의 화평이 호응한다.' 하였으니 천지의 기운이 이미 바르다면 어찌 일식 월식이 있으며 어찌 성신이 전도를 잃겠습니까?

천지의 기운이 이미 화평하면 우레 · 번개 · 벼락이 어찌 그 위엄을 부리며, 바람 · 구름 · 서리 · 눈이 어찌 그 제 때를 잃으며, 빛이 나지 않고 음침하거나 흙비가 내리는 여기戾氣가 어찌 재앙을 만들겠습니까?

하늘은 비와 햇볕과 따사로움과 추위와 바람으로써 만물을 생성하고, 인군仁君은 엄숙과 다스림과 슬기와 계획과 성스러움으로써 위로 천도를 호응하는 것이니, 하늘이 때맞춰 비를 내리는 것은 바로 임금의 엄숙과 같고, 때때로 햇볕을 쪼여 주는 것은 임금의 다스림과 같고, 때때로 따사롭게 하는 것은 임금의 슬기의 응험應驗고, 때때로 추워지는 것은 계획의 응험이고 때때로 바람이 부는 것은 성(聖의 응험입니다.

이것으로써 관찰하건대 천지가 제자리에 위치하고 만물이 육성되는 것이 어찌 임금 한사람의 수덕修德에 달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자사자子思子가 말하기를, '오직 천하의 지성至誠이라야만 화육化育할 수 있다.' 하였고, 또 '양양洋洋하여 만물을 발육하고 고대高大한 덕이 하늘 끝까지 닿았다.' 하였으며, 정자가 말하기를, ' 천덕天德과 왕도는 그 요체가 근독謹獨에 있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아! 이제 우리 동방의 동식물이 모두 임금의 덕화가 넘치는 속에서 고무鼓舞하는 것이 어찌 성주聖主의 근독에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바라건대 집사께서는 천루淺陋한 제 글을 상감께 주달奏達한다면 빈천한 서생이 거의 필문규두(필門圭竇: 싸릿대로 짠 삽짝과 담장을 뚫고 출입하는 문을 이름)에서 한을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대답을 마칩니다.

 

<해제>

대책문을 채점하던 정사룡이 율곡의 답안지를 읽다가 첫 장 한 구석에 다음과 같이 써 내렸다.

“一之本”

‘많은 문장 중에서 으뜸’이라는 뜻이었다.

원래는 모든 답안지를 다 채점하고 났을 때 채점관들이 합의하여 장원이나 차석이 결정되어 최종시험관인 정사룡이 낙점하여 답안지에 써넣는 최종 판결문이었다.

물론 아직 답안지는 많이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내용을 다 읽지도 않고 도중에 장원급제에 해당되는 ‘일지본’의 관별을 내리는 것은 상례에 맞지 않은 일이었으나 그 순간 정사룡은 더 이상 읽고 말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정사룡이 그렇게 낙점을 내리자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양응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정사룡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정사룡은 탄식을 하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 이상의 답안은 없네. 만약 이 이상의 답안이 나올 수 있다면 이는 인간의 글이 아니라 신필일 것이네.” 지금도 전해 내려오는 이율곡의 ‘천도책’ 답안지에는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정사룡이 감탄하여 적은 ‘일지본’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남아 있음이다.

그러나 정사룡이 더욱 크게 놀란 것은 그 다음 문장에서였다.

무릇 모든 출제관들은 시험문제 중에 자신들만의 난해한 걸림돌 하나를 장치해 놓는 습성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문장에 능하고 임기응변에 뛰어난 거자라 할지라도 총체적인 핵심을 꿰뚫지 못하면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는 함정을 마련해 놓는 것이다.

그것은 정사룡도 예외는 아니었다.

 방대한 독서량과 다방면에 걸친 풍부한 지식이 없고서는 절대로 독파할 수 없는 지뢰밭을 마련해 놓은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었다.

“…눈에 눕고(臥雪), 눈에 서고(立雪), 손님을 맞이하고(迎賓), 친구를 찾는(訪友) 이를 또한 소상히 말할 수 있겠는가.”

아주 단순하게 보이는 질문 중의 하나지만 실은 거자들의 발목을 잡는 그물이자 덫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눈에 눕다’라는 말에 얽힌 고사를 알지 못하거나 ‘눈에 선다’라는 문장의 유래를 알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이 질문에 명쾌한 답안을 작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눈에 눕다’라는 말은 원안(袁安)의 고사를 가리킨다.

원안은 후한(後漢)의 현신으로 자는 소공(邵公). 사람됨이 엄중하고 위엄됨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입신출세하지 않았을 때 낙양에 큰 눈이 내렸는데, 사람들은 모두 눈을 쓸고 나와 거리에서 걸식을 하였다. 그런데 한 집만은 눈이 한길 쌓여 있었고, 마침 순행을 나온 낙양령(洛陽令)이 얼어 죽었는가 하고 사람들을 시켜 눈을 치우고 집으로 들어가 보니 원안은 방안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낙양령이 이를 보고 원안을 어질게 여겨 그를 효렴(孝廉)으로 천거하였다는 내용이 ‘후한서(後漢書)’에 실려 있는 것이다.

 또한 ‘눈 위에 서다’의 이야기는 북송 때 유명(游酩)과 양시(楊時)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유명과 양시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유학자인 정이천(程伊川)을 처음 뵈올 때 정이천은 모른 체하고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그래도 두 사람은 모시고 서 있었더니, 얼마 뒤 정이천이 눈을 뜨고 ‘아직도 서 있었는가, 그만 물러가라.’고 하였으므로 문을 열고 나와 보니 문밖에 눈이 내려 깊이가 한 자가 되었다는,‘주자어류(朱子語類)’에 나오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또한 ‘손님을 맞이하다’의 이야기는, 당나라의 왕원빈(王元賓)이란 사람이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릴 적마다 종을 시켜 눈길을 뚫어두고 주효를 갖춰 손님을 맞아들였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난한지회(暖寒之會)’란 고사성어는 바로 이러한 왕원빈의 행동에서 비롯된 말.

그리고 ‘친구를 찾다’란 이야기는 진나라의 왕자유(王子猷)가 산음(山陰)에 살 때 큰 눈이 내리던 날 밤 흥에 겨워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친구 대안도(戴安道)를 찾아 그의 집까지 갔다가 막상 그의 집 앞에 다다르자 흥이 식어 친구를 만나지 않고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었던 것이다.

 며칠 동안 골머리를 썩이며 과거시험을 출제한 정사룡은 반드시 대부분의 거자들이 이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라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놀랍게도 거자는 정사룡이 쳐놓은 덫을 단숨에 타파하고 있음이 아닌가.

그뿐 아니라 그러한 시험문제를 출제한 시험관의 탐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책까지 하고 있음이 아닌가.

 “…원안이 문을 닫고 눈 속에 누워 있는 것과 양시가 눈 속에 서 있는 것과 난한지회(暖寒之會)와 산음의 흥(山陰之興)과 같은 것은 혹은 고요함을 지키는 즐거움이 있고, 혹은 도를 찾는 정성이 있으며, 혹은 호사(豪舍)에서 나오고, 혹은 방달(放達)에서 나온 것으로 이는 모두 하늘의 도와는 상관없는 것이니, 어찌 오늘날 말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정문일침(頂門一鍼)이다.

정사룡은 순간 정수리의 급소에 침을 한방 맞은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꼈다.

거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한 눈(雪)에 얽힌 고사들은 현학(衒學)적인 호사취미일 뿐 ‘하늘의 도와는 상관없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말할 가치가 없다.’는 거자의 질책은 지극히 당연한 지적이었던 것이다.

한 방망이 얻어맞은 정사룡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답안지의 내용을 읽어내렸다.

 “…또 우박이란 것은 거슬린 기운에서 나온 것입니다. 음기가 양기를 협박하기 때문에 그것이 나오면 자연 만물이 해쳐집니다.

지나간 옛일을 상고하건대, 큰 것은 말머리만 하고, 작은 것은 달걀만 하여 사람을 상하게 하고, 짐승을 죽인 일은 혹은 전란이 심한 세상에 나타나고, 혹은 화를 만드는 임금에게 경계가 되었으니, 우박이 족히 역대의 경계가 된 것은 반드시 일일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거자는 마침내 정사룡이 던졌던 ‘어떻게 하면 일식과 월식이 없을 것이며, 별들이 제자리를 잃지 않을 것이며, 우레가 벼락을 치지 않고 서리가 여름에 내리지 아니하며, 눈과 우박이 재앙이 되지 않고 모진 바람과 궂은비가 없이 각각 그 질서에 순응하여 마침내 천지가 제자리에 바로 서고 만물이 모두 잘 자라날 수 있겠는가.’하는 질문의 핵심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집사께서 편말(篇末)에 또 가르쳐 말씀하시기를 ‘천지를 제자리에 있게 하고, 만물을 기르는 것은 그 도가 어디서부터 오느냐.’하고 물으셨는데, 저는 이 말에 깊이 느낀 바가 있습니다.

제가 듣건대 ‘임금이 자기의 마음을 바로 하여 조정을 바로잡고, 조정을 바로 하여 사방을 바로잡고, 사방이 바르면 천지의 기운도 바르게 된다.’하였습니다.

또 듣건대,‘마음이 화평하면 형체가 고르고, 형체가 고르면 기운이 고르고, 기운이 고르면 천지가 고른 기운에 응한다.’고 하였습니다.

천지의 기운이 이미 바르면 해와 달이 어찌 엷어지고 먹히는 일이 없고, 별들이 어찌 길을 잃는 일이 있으며, 천지의 기운이 이미 고르면 우레와 번개와 벼락이 어찌 그 위험을 드러내고, 바람과 구름과 서리와 눈이 어찌 그때를 이루며, 흙비와 거슬린 기운이 어찌 재앙을 일으키겠습니까...삼가 대답합니다.”

 마침내 답안지는 끝이 났다.

숨죽여 답안지를 모두 읽어 내린 정사룡은 그러나 손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단 한 자의 오자도 탈자도 없는 이 완벽한 한갓 젊은 유생에 의해서 그것도 한식경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정사룡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더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한 획도 고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문장이 아닐 것인가.

“이것은…”

정사룡은 한숨을 쉬면서 홀로 중얼거렸다.

“사람이 쓴 문장이 아니다. 이것은 귀신이 쓴 문장이다. 귀신의 솜씨인 것이다.”

 조선왕조의 역사를 통틀어 율곡이 23세 때에 쓴 ‘천도책’의 내용은 최고의 명문장으로 손꼽힌다.

‘천도책’의 내용은 명나라의 조정 사이에서도 널리 회자되어 많은 중국의 선비들이 율곡을 ‘해동의 주자’라고 일컬을 정도였다.‘천도책’의 내용이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어져 있음인가는 출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양응정의 문집인 ‘송천유집(松川遺集)’에도 ‘천도책’의 내용이 전재되어 있음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또한 이 ‘천도책’의 중요한 점은 율곡이 평생 동안 추구하였던 이기론이 23세의 젊은 나이 때 이미 정립되었으며, 이러한 철학관은 평생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음인 것이다.

평생 동안 성리학연구에 몰두하였던 율곡의 이기론은 ‘이(理)가 아니면 기(氣)는 근거할 데가 없고 기가 아니면 이는 의착할 데가 없다.(非理則氣無所根 非氣則理無所依著)’라고 36세 때 절친한 친구 성혼에게 보낸 편지에서 주장함으로써 ‘이(理)’와 ‘기(氣)’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이미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율곡의 독특한 이기론은 이미 ‘천도책’의 내용에 그 단서를 보이고 있다.

이는 퇴계가 주장하였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 즉 ‘이(理)는 기(氣)의 주재(主宰)요, 기(氣)는 이(理)의 자료’로서 이와 기를 두 가지로 나누었던 사상과 정면으로 대비되는 것이었다.

퇴계의 ‘이기이원론’은 마치 ‘말을 타고 출입하는 사람의 경우에 비유(人馬之喩)’할 수 있다. 퇴계는 사람이 말 위에 타고 있을 때, 사람은 이(理)이고, 말은 기(氣)이므로 사람과 말이 함께 타고 있지만 말을 부리는 것은 사람이므로 사람과 말은 분별(分別)되어야 하듯 이와 기는 마땅히 분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율곡은 이에 정면으로 도전한다.<서울신문. 200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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