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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

1987년..

by 싯딤 2015. 2. 2.

1987년, 학교 정문에서..

 

 1987년은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 해이다. 나에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해이고, 군 제대 후 2학년에 복학한 뒤 여러 일이 있었던 잊을 수 없는 해이다. 

  2학년에 복학했는데, 학기 초부터 교내 시위가 계속되고 어수선했다.

 전국 대학들이 직선제 개헌 데모를 하면서 학교재단 투명성 요구, 부정 입학 등의 학내 민주화 요구의 회오리가 세차게 일었는데, 우리 학교도  교내 인경호에 있던 학교 설립자 이승만 동상이 학생들에 의해 철거되고,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회에 의해 부정입학자 명단이 공개되면서 총장, 재단 퇴진 요구 등 시위가 커져 갔다.

  우리 전기과도 교수들의 강의 수준, 보직교수 대신 시간강사에 의한 강의 등으로 불만이 쌓여 있던 중, 전기공학과 교수 가운데 모교 출신의  교수님 한 분을 제외한 모든 교수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과 서울대 출신 교수들의 은연 중 과시, 파벌조성, 부실강의 평판으로, 차라리 모교 출신의 실력있는 선배들을 교수로 초빙하여 배우자는 의견이 일었다.

  이런 주장의 구체적 근거는 이러했다. 전력공학 교수는 공대학장이 되면서 한전의 후배를 시간 강사로 하여 대신 강의를 맡겼는데 학생들이 이구동성 실력이 없다고 했다. 전기계측의 젊은 교수는 굳이 영어로 필기를 안해도 되는데 강의는 한글로 어렵게 해석하면서 필기는 온통 영문으로 했다. 정년퇴임을 앞둔 전기기기의 교수는 2시간의 강의 중, 앞 30분 가량을 앞 자리 학생에게 기기 구조의 그림을 칠판에 그리게 하고, 강의는 그림 중심으로 내용없이 대충 설명하다 일찍 끝냈다. 새로 임용돼 온 디지털공학 교수도 실력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질문을 해도 충분히 예습해 오라는 식으로 넘겼다. 학생들이 어이없어 하며 술렁이곤 했다. 

 어느 날 과대표가 연장자인 나에게 심각하게 의견을 물었다. 나도 그런 걸 많이 느꼈지만 자칫 모교 지상주의에 스스로 갇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까 3학년 선배와 잘 의논하자. 우선 박사학위 받은 모교 선배들 중 역량있는 분이 계시는 지 동문회를 통해 알아보자고 했다. 이렇게 해서 학내민주화 내용에 포함되었고, 마침내 학교 측은 1년 후부터 정년퇴임 교수 후임으로 모교 출신의 역량있는 분을 우선적으로 임용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엔 비중을, 모교:타교 출신 각각 50:50이 되도록 하자고 주장했으나 협의 과정에서 서울대 출신이 최대 50%를 넘지 않도록 융통성 있게 적용하며 후배들의 지속적인 교수평가를 감안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그러자 전자공학과 등  몇 개 학과에서도 동일한 주장을 들고 나왔다. 이에 우리 과는 상당히 고무됐고, 학보사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회오리가 지나간 어느 날 과대표가 다가왔다.

"형, 교수님이 찾습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획기적인 일을 해냈다고 독려해 주었다. 우리는 후문 골목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모교 출신 타 학과 교수님 등 몇 분도 함께 하셨다.

  모교 출신 교수님은 데모가 계속되고 휴강이 잦아도 강의는 빼먹지 않았다. 총학 결정의 휴강의 경우, 보강하거나 17시에 강의한 적도 있었다. 그리곤 한 단원이 끝나면 쪽지 시험을 봤다.

  이  시기, 교수들은 휴강으로 강의 진도가 시험 범위조차 안나올 정도가 되자 모두 B+를 준 분도 계셨고, 레포트만으로 평점을 주기도 했다.  어느 교수는 답안지에 학번, 이름만 써 제출해도 B+을 주겠다며, 시위 대신 시험 볼 것을 강요하기도 했다.

  학생들 중에는 난상토론 끝에 휴강, 시험 거부를 결정했는데도 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면서 시험보는 애들이 있었다. 그들은 양심의 거리낌보다 오히려 당당했다.

" 내 인생 네가 책임질 수 있어..?"

  시대의 씁쓸한 모습이지만, 이렇게 공부해서 그 성적으로 사회에서 지위에 오른 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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