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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

1987년 여름..

by 싯딤 2015. 2. 2.

 1987년, 어수선했던 1학기가 지나고 하기방학을 하면서 인천 경인에너지 내, 야외수영장을 관리하는 알바를 했다. 

 이 시기, 알바가 그렇게 활발한 편은 아니었는데, 정부가 시위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알바 채용을 정책적으로 권장했다.  첫 날, 남학생 넷, 여학생 여섯명이 안내받은 장소에 모였다. 남학생 넷 중 한 명은 우리 학교 기계과였고, 둘은 고대, 체대.. 여학생들은 인천대, 인천교대, 성심여대생들이었다.

 여학생들은 사무보조, 남학생들은 회사 내 야외 수영장 관리일을 맡았다.

 남학생 네 명은 사내 수영장에서, 개장시각 전 물 교체, 약품 투여, 개장 후 안전관리 일을 했는데, 회사의 수영장을 여름방학동안, 직원 가족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이 때 인연이 되어 숙이를 알게 되었다. 숙이는 전남 나주 출신이라 첫날 간단한 소개 때부터 눈길이 갔는데 큰 키에 말 수가 적었다. 

숙이도 나에게 관심을 표했다.

첫 날 오전, 자기 소개시간이 끝나고 별 하는 일 없이 대기하다 점심시간이 되었다. 숙이가 식판을 들고 옆자리로 다가와 앉으며 말을 건넸다.

"오빠, 고창이에요? 난 나준데.. 몇 살? .. 다섯? 일곱?...아님.."

"..몰라.. 알면 낼부터 어색해질거야.. "

"그럼..낼 부턴 아저씨라 불러야겠네.."

 우리는 오전 첫 대면 때 나눠 준 설문지를 작성한 뒤  서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조금은 친해진 상태였다.

 다음 날도 식당에서 마주했다. 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는데 숙이가 저 쪽에서 손짓을 했다. 오라는 손짓이었다. 내가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이런저런 걸 물었다.

"할만 해요? 정말 덥겠다... 아침에 어떻게 왔어요?..난, 쫌 있다 퇴근이야, 2시에.. 몇 시까지야..?"

"5시..." 

식판을 반납하고 나오는데 물었다.

"수영장, 전화 있어요?"

"응.."

"불러 봐"

"모르는데..?"

숙이 메모지를 건네 주었다.

"심심하면 일로 전화 해, 오빠.. 받을 수 있어.."

 이후로도 식당에서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지만 전화하거나 따로 만나지는 않았다.

 어느날 말했다.

"오빠.. 왜 전화 안하냐?"

"이렇게 보잖아..."

"보는 거 하고 전화하는 거 하곤 다르지"  

 알바 2주째인 어느 토요일 오후, 일을 마친 여학생들이 수영장에 몰려 와 어린이들과 함께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점심 때마다 남학생들이 토요일에 수영오라고 재촉한 결과였는데, 남학생들도 수영복 차림으로 함께 즐거워 했다. 난, 준비해 간 수영복도 없고, 또, 한 사람은 관리를 해야 했기에 하얀 츄리닝에 반바지 차림으로 전망대에 올라 여기저기 내려다보고 있었다.

숙이도 함께 물놀이를 하며 즐거워 했다. 수영장에 있나 싶더니 저 쪽 나무 그늘 밑에서 나 쪽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내려와 아이스크림, 초코렛을 사들고 가 건넸다.

“덥지?..이거..”

"어쭈.. 오빠에게 이런 면이..." 

살갗이 까맣게 탄 내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많이 탔다.. 농사꾼 됐네.."

전라도 사투리, 억양의 말투가 친근했다.

"오빠도 수영 해.. 들어가 봐..생각보다 재밌어..”

“... 한 사람은 지켜야 돼..

 

 두달 간의 알바를 마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같이 알바했던 기계과 후배는 내 권유로 네비게이토 모임을 함께 하게 됐는데 어느 날 말했다.

"형, 이번 주 금요일 제물포 역에서 알바했던 우리 모두 만나기로 했어. 경이가 형 꼭 나와야 된다고 전해달라면서 꼭 함께 나오랬어.. 형 맘에 있나 봐"

 

 만나기로 한 날, 후배와 함께 제물포 역 커피숍에 가니 숙이도 안보이고 다른 몇도 안보이는 것 같았다. 인천대 경이가 올 애가 아직 있다며 나에게 계속 말을 시키고,  고대 남학생은 그동안 친해진 듯 짝과 농담하며 왁자지껄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할 말도 없고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그 즈음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신 때라, 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곤 경이에게 말을 건냈다.

"저기.. 경이..야"

"응..  오빠.."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말을 많이 이어갔다.

오빠, 쫌만 기다려.. 채연이 올거야.. 우리, 쫌 있다 어디 갈 건데.. 가야 되는거 아니지?..

?  응...”

다시 경이가 일어서며 오빠, 잠깐만..” 하며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연이도 따라 나왔다.

실은 숙이한테는 연락 안했어, 연이 언니가 오빠.. 생각했거든.. 집 전화 아느냐고 묻는데 알 수가 있어야지...”

따라나온 인천대 애가 연이었다.

나.. 숙이랑 아무 상관 없는데…?

 겸연쩍어 하며 옆의 연이를 봤다.

연이 너.. 걔가 좋아했었는데?”

아냐알바끝나고 오늘 다시 처음봤어, 오빠

 경이가 물었다.

오빠 뭔 일 있어?.. 오늘, 말 한마디도 안하네…? 그래서 그냥 나오라 했어

아냐.. 나, 원래..그러잖아..”

 그날 저녁 늦게까지 디스코텍에 있었는데 나는 맥주만 들이키다 취해 버렸다. 이후, 연이를 포함한 모두와의 만남은 더 이상 없었는데, 어느 날 숙이를 마주하게 되었다.

 

 2학기 어느 날, 같은 과 영주가 말했다.

"형, 과 사무실 가 봐.. 형한테 온 게 많던데..?"

숙이가 보낸 엽서, 학보들이 꽂혀 있었다. 알바 끝나고 2학기 개강한 후 계속 보낸 듯 했다. 나는, 날짜 지난 학보를 가져다가 답신으로 숙이에게 부쳤다.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교양 강의 끝나고 강의실을 나가는데 뒷 쪽 문 입구에서 손짓을 하는 숙이가 눈에 들어 왔다.

얼굴이 발개져서 일단 그 곳을 피하고 싶었다. 숙이가 팔을 끼었다.

왜 그리 무심하냐..? 내가 분명 연락한다 했잖아.. 

과 사무실 갈 일이 없어서.. 지난 주 알았어..”

"뭐 먹자"

그날따라 용돈이 별로여서 우리는 학생식당에 갔다. 그 해, 학교 잔디밭에서 숙이랑 얘기 나누던 시간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로 거의 매일 만났다. 어느 날, 부천가서 맥주 마시자고 했다.

“부천..? 부천은 왜? 그리고 무슨 맥주야.. 너, 못 마시잖아..

아냐, 나 잘 마셔.. 일부러 안 마신거야

그럼..내가 아는 생맥주 집 있어. 거기 가자

그래..

역시 한 모금 마시자마자 발개지더니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말이 많아졌다.

오빠.. 여기 언제 왔었어? 누구랑..?”

.. 군대가기 전 직장 다닐 때, 직장 친군데 이리(익산)가 고향이야

숙이 부천까지 온 건, 집이 역곡이고, 또 할 말이 있어서였다.

오빠, 나.. 아프다..”

.. ..?  어디가...? 어디 아픈데..?”

어릴 적부터 아픈 거였는데.. 오래 못 살 수도 있나 봐..”

항상 숨이 가쁘고 다리에 힘이 없고 어지럽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항상 핏기가 없고 입술이 유난히 거무스러웠었다. 나는 한참동안 말을 못하고, 혼란스러웠다. 나이만 들었지 아직 미성숙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또 이 순간은 뭔지 멍했다.

"무슨 말이야..?"

"참, 내 얼굴을 봐.. 아픈 거 같지 않냐..?"

"오래 못산다고 부모님이 그래?"

"병원에서..그랬대"

"그럼.. 지금 병원 다니고 있는 거야?"

"아니.. .."

"뭔 말이야?"

"아빠랑 병원 갔었어.."

"언제..?"

"계속..학교 입학 전에도.."

"그럼 아픈 것부터 고쳐야지.. "

 나주 시골에서 태어난 그녀는 딸 셋 중 둘째인데 집은 넉넉하지 못했다. 교대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있는데 피아노 전공이었다.

오빤 촌스럽지...멋있지도 않.. 근데 순수해..”

"그런 말이 뭐가 중요해.."

늦은 시각까지 있다가 역곡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직장 다니는 친언니랑 함께 자취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아빠친구가 아픈데 한약 오래 먹으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아버지는 안다는 의정부 한약방에 가서 한약 두 첩을 지어 왔다.  역곡 집 앞에서 어둠이 내린 뒤까지 기다려도 숙이가 오질 않았다. 할 수 없이 들어가 주인을 찾았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동생은 없고  언니가 퇴근해서 7시쯤 들어온다 했다. 3살 위인 언니께 아무 얘기도 못하고 한약만 건네고 돌아오는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 후 얼마 있다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숙이는 우리 집에서 꼬박 이틀 간, 일을 거들었다.

그 후 숙이의 학보도 끊어지고 소식도 끊어졌다. 초 겨울 어느 날, 역곡에 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언니를 만났다.

"동생 만나지 마세요"

"네? .."

"숙이가 싫대요"

"네..? 지금.. 있어요?"

"...지금 없어요"

"그럼 기다렸다 얘기 좀 하고 갈게요"

"그냥 가요.. 오늘 안와요... ...내일도 안와요..오면 한 번 연락하라고 할게요"

뭔가에 홀린 듯 했다. 돌아서려는데 언니가 말했다.

저기, 숙이.. 집에 갔어요..나주에요...”

휴학하고 고향 집으로 내려 간 것이었다.

어머니 상 이후 더 심해진 건 아닐까? 믿을 수 없어 곧장 교대를 찾아가니 휴학한 게 맞았다. 나주 주소를 알려고 했으나 알려주지 않았다. 다시 역곡을 찾았으나 언니도 못만났다. 다음 날도 가서 기다렸다.  토요일엔 오전부터 기다렸다. 이사가고 안계셨다

지금도 생각 날 때면 학교 졸업생 명부, 인터넷에 이름 석 자를 넣어 본다.

이 순간, 이 세상 어딘가에서 함께 숨을 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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