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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이야기31

가설극장 가설극장 우리 읍내에는 극장이 없어 명절 같은 때 용돈이 생기면 고창, 정읍으로 영화보러 가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귀했던 시절이라, 1년에 한 두번 읍내 장터에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조용하던 읍내 전체가 들썩거렸다. 장터 공터에 전나무 같은 장대를 높게 세우고 지저분한 광목천으로 휘장을 둘러 쳐 극장을 만들고는 가설극장이 들어왔 음을 알리는 유행가를 종일 틀어주었다. 남진, 나훈아, 이미자 레코드 판을 틀어 주면서 중간중간 한껏 멋을 낸 목소리로 오늘 상영될 영화를 선전하며 심금을 울 렸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흥덕면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합동영화사 **선전반입니다. 오늘 밤 흥덕면민 여러 분을 모시고 상영될 영화는 신영균, 남궁원, 문희 주연의 총천연색 시네.. 2010. 4. 21.
막걸리 막걸리 무더운 여름철, 논밭일을 하다가 한 대접 들이키는 텁텁한 막걸리는 전체가 살로 가는 느낌이다. 내 고향 흥덕읍내에도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이 있었다. 학교가는 길에 양조장을 지나노라면 술 배달하는 아저씨들이 짐 자전거에 술통을 몇 통씩 싣고 줄지어 배달을 나갔다. 70년대 초의 술통은 목재를 견고하게 깍아 맞춘 통이었는데, 점차 하얀 플라스틱 원통형으로 바뀌었다. 동네 가게들은 술독을 땅에 묻어두고 도매로 배달받은 술을 되로 팔았는데 아버지는 논밭에 나가는 날 아침이면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술 한 되 사서 밭으로 오라고 하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 앞 이발관 가게에서 술 한 되를 사들고 집에 들러 술잔과 젓가락, 고추, 김치 등 찬을 챙긴 다음, 홀짝홀짝 몇 모금 마신 뒤 줄어든 양보다 조금 .. 2010. 4. 21.
흥덕교회 흥덕교회 1973년,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성탄절이 다가올 무렵, 교회에서 인형극을 하고 사탕도 나눠준다 해서 소꿉친구들과 함께 교회에 갔다. ‘왕의 남자’ 공길이가 하던 인형극처럼 가리운 천 위로 자그마한 인형들이 움직이는데 무슨 내용인지 몰랐지만 생전 처음 보는 인형극이 신기했다. 이후로 교회에 자주 갔다. 주일학교도 생각나고 찬송가도 생각난다. 그 어린 시절 어느 순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했었을까? 고교시절에도 가끔 교회에 가 탁구를 치며 예배드린 기억이 있고, 직장, 군생활 때도 예배드리며 기독교인이 되었다. 하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 자아가 그대로이고 용납하지 못해 부끄럽다. 남은 생이나마 사랑하지는 못할망정 피해는 주지 말고 살아야겠다. 2010. 4. 21.
소개 0 2010. 3. 21.
외갓집 외갓집 둘째 형 결혼식 때(1977년) 1 큰누나, 2 안현 이모, 3 큰형수, 4 어머님 ,5 둘째형, 6 형수, 7 영등포 이모 아들, 8 나, 9 아버님,10 큰형, 11 여동생, 12 둘째누나 ,13 곰소 외삼촌, 14 막내 동생, 15 상포 막내외삼촌 어머님이 태어나신 우리 외갓집은 줄포 앞바다 건너편, 상포라는 어촌이다. 아버지 형제가 안계셨던 우리 가족은 어릴 적 외갓집에 자주 놀러 갔다. 외갓집은 줄포에서 뱃길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날씨, 물때에 따라 뱃길이 끊기는 일이 잦아, 흥덕 읍내에서 봉암까지 하루 한 번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타고 외갓집에 갔다. 황토색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낡은 삼남여객 버스는 중간중간 사람들을 내려주며 터덜터덜 달리다가 시동이 꺼져 멈춰 서기도 했다. .. 2010. 3. 19.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기억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 집에서 읍내 초등학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1,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이옥준 선생님이셨다. 어머니는 곰소 외삼촌이 보내 준 말린 조기를 보자기에 싸, 내 손에 들려 선생님께 갖다주시곤 했다. 3학년, 신혜경 선생님은 아름다운 도회지 여성이셨다. 추석이 다가올 무렵, 내 왼손가락에 굵은 핏줄이 밖으로 튀어 나오는 증상이 생겨 9일간 결석하고, 정읍 초승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치료를 마치고 어머니를 따라 선생님을 찾아 뵈었다. 선생님은 하얀 송편을 내 왔는데, 달콤한 설탕물이 톡 튀어나오는 송편이었다. 5학년 담임은 국민교육헌장을 가사로 동요를 작곡하여 전교 학생에게 보급시킨 선생님이었다. 6학년이 되어 반 편성하던 날, 5학년 담임선생님이 날 강당으.. 2010. 3. 18.
초등학교 시절(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졸업사진(1971) 앞줄 가운데가 6학년 허욱열 담임선생님, 왼쪽이 5학년 때 담임이었던 유영두 선생님 초등학교 3학년 때, 4교시 오전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면 순혁이와 나는 선생님이 나가기가 무섭게 집을 향해 달렸다. 집 대문에 들어서면 부모님은 논밭에 나가시고, 빈 집을 지키고 있던 멍멍이가 반가워 꼬리를 흔들며 핥아댄다. 부엌에서 고구 마 몇 개와 꽁보리 밥을 찬물에 말아 들고 나와, 마루에 대충 앉아 신 김치 한 조각을 얹어 먹고 있노라면 벌써 순혁이가 가자며 불러댔다. 대충 한 숟가락 먹고 다시 달렸다. 읍내 동구밖 도로 언덕배기 638 트럭 집 앞을 지나노라면 공터에서는 모래, 시멘트를 섞어 블럭을 찍어 냈는데, 라디오에서 최희준의 ‘광복 20년’ 드라마 주제곡 아니면.. 2010. 3. 18.
`국민교육헌장` "국민교육헌장" 유신헌법시대이던 1968년, 초등학교 4학년 때, 국민교육헌장이 반포됐다. 교과서 맨 앞장에 실리고, 학생들에게 모두 암기하도록 했다. 조회 때는 박대통령의 국민교육헌장 낭독소리가 스피커 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듬해,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은 이 헌장을 가사로 동요를 작곡하여 전교 학생에게 가르쳤다. 선생님과 학교에 표창장이 수여됐다. 국민교육헌장은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폐지되었다. 국민교육헌장 전문..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 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2010. 3. 17.
배풍산 배풍산培豊山 배풍산은 우리 동네를 아늑하게 품고 있는 나즈막한 산(110m)이다. 옛적 서해안을 항해하던 배가 풍랑을 만나 뒤집혀서 생긴 산이라 해서 '배풍산'이라 불려지게 됐다는 말이 전해오 기도 하지만 '培豊山'이란 한자어에서 보듯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배풍산에 올라 놀며 자랐다. 봄에는 딱지를 캐고, 여름에는 나무 그늘에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읽었고, 가을에는 밤, 산딸기를 따 먹고, 겨울에는 연을 날렸다. 산 꼭대기에 오르면 바위를 깎아 낸 듯한 절벽 두 개가 병풍처럼 나란히 펼쳐져 있고, 바닥은 평평하여 뛰어놀기 에 좋았다. 주변 군데군데 바위에는 총알 자국이 나 있었는데, 이로 보아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때 전투가 벌어 진 것 같은데 어릴 적엔 아무 것도 모른채 그.. 2010.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