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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39

김대중 전 대통령을 되돌아 본다(1) [출처]한겨레21. 김대중 전대통령 서거 특집호1. 1924~1943 ,세상에 나오다 압제에 저항해온 ‘하의도 정신’ 이어받은 아이‘소년 김대중’을 키운 고향 하의도… 조선시대 세도가·일본인 악덕 지주에 맞서 부당한 세금 거부 운동 일던 곳1924~1943 세상에 나오다 전남 무안군 하의면(현 신안군) 후광리에서 아버지 김운식과 어머니 장수금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하의공립보통학교 4학년 때 목포로 이주한 뒤 목포공립상업학교(현 목포 전남제일고)에 입학했다. 수줍고 겁 많던 소년이 어떤 파란만장한 운명으로 다가갈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압제에 저항해온 ‘하의도 정신’ 이어받은 아이1945년 초가을, 야구장 두 개는 너끈히 들어갈 만한 목포공립상업학교(현 목포 전남제일고) 운동장에서 패싸움이 벌어졌다... 2009. 8. 29.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록 출처: http://bopstory.tistory.com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기록 김대중 대통령(이후, 인동초 표기 병행)은 한국 해방 전후사(근현대사)를 살아오면서, 숱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 기록들은 한 개인의 삶의 궤적이자, 역사가 되었습니다. 삶의 고비마다 그가 기록하고, 기록을 세웠던 자료들을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격동의 기록이자 행동하는 양심의 기록. 정적으로 쫓겨 외국 망명 생활을 할 때, 감옥에서도 그는 기록했습니다. 불멸의 사나이.과찬으로 끝내기에는 그의 삶이 너무 파란만장했습니다.인동초가 남긴 기록들은 기록을 위한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기록을 만들려고 기록을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와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지지했던 사람들의 있었기에 가능했던 기록들을 살펴본다는 것은.. 2009. 8. 27.
11 지금부터 보시는것들은 전부 영화같은역사적 실화이며 진실입니다.대한민국은 건국이래 항상 보수라는 가면을 쓴 독재가 지배해 왔었다그 불편한 진실, 금기를 깨고 도전한한남자의 이야기다 이야기를 하기전에 재미있는 사실은이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국인 한국보다는 외국에서자신의 업보를 인정받는인물이라는 사실이다더 놀라운 사실은 넬슨만델라와 비슷한 동점에서 본다는것 한국안에서는 이사람을 비교할 인물이 없다는게 외국의 시각이다이 남자는 인생에서 4번의 죽을고비를 넘긴다살아있는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불리울 정도다어느언론에서 했던 설문조사 "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이룩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모든사람들의 답변...인동초 " 김 대 중 "이 사람은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다.꿈은 만족하지 못하는데서부터 태어난다. 만.. 2009. 8. 26.
사진으로 본 생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金大中.85)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 42분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돼 22일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1925년 전남 신안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의 4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목포 북교초등학교와 5년제인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목포일보 사장을 지냈으며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8,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 2009. 8. 26.
진정한 화해를 원한다면 화해를 원한다면 /박광희 문화전문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면서 고단했던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정치적 공과는 별개로 치더라도, DJ는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정치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한 정치인, 그것도 우리 정치사에서 드물게 일관된 주장과 신념을 가졌던 인물의 죽음은 그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누구보다도 고난을 많이 받은 정치 지도자였다.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고 세상과 단절돼 지내야 했으며 한동안 원하는 곳에서 살지 못했다. 그것이 힘 있는 권력이 정치적 라이벌에게 가하는 물리적 폭력이었다면, DJ는 그것 말고도 다른 성격의 폭력을 경험했다. 지역감정, 색깔론 그리고 근거 없는 소문 등이었다. 그런 종류의 폭력은 눈에 보이지 .. 2009. 8. 25.
김·노 두 전직 대통령의 현실 인식 김대중·노무현의 현실인식역사후퇴 개탄…‘시민의 힘이 현실 바꾼다’ 믿음생전에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현재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서거 직전 두 사람의 현실인식 속엔 곱씹어보아야 할 중요한 열쇳말이 담겨 있다. » 김대중·노무현의 현실인식 노 전 대통령은 벼랑 끝에 몸을 던져 생을 끝낼 때까지, 현 정권을 직접 겨냥한 비판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가 인터넷 등에 남긴 몇가지 유고들은 주로 현실 정치에서 한발 떨어져 ‘진보주의의 미래’를 고민하는 담론들이다. 그의 정세분석은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과 나눈 이야기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노 전 대통령 추모·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로부터 가 받은 ‘방문객과의 대화록’을 보면, 그는 권력기관 사유화와 비판 봉쇄, 복지의 후퇴를 이 정부의 가장 .. 2009. 8. 25.
국장 추모시, 글 눈부시게 푸르른 날은 떠나보내기엔 적당한 날이 아니다소설가 손홍규 ‘작별 고하던 날’ 날이 궂었다면 나았을까 맑은 하늘 그것마저 서러워라 » 소설가 손홍규씨가 23일 오후 국회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하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눈이 부셨다. 하늘은 방금 세수하고 나온 아이처럼 해맑았다. 국회의사당이 바라다 보이는 임시분향소 위로 하염없이 햇살이 쏟아졌고 가로수마다 확성기라도 매달린 듯 저무는 여름을 맹렬하게 살아내는 매미들의 울음이 요란했다.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손바닥만한 그늘이라도 좋았다. 늦여름의 기세가 이리도 등등할 줄이야. 날이 궂었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아무 일 없다는 듯, 외려 여름날의 절정이 바로 오늘이라는 듯, 티 없이.. 2009. 8. 25.
세계 각국 조문, 조전 미·중·일 등 11개국 사절 참석…42개국 조전[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세계 각국 조문 물결 러·영·캐·오스트레일리아쪽도 분향 미 셀던 교수, 영정에 큰절 올려 ‘눈길’ »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앞줄 맨 오른쪽),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왼쪽 셋째), 탕자쉬안 전 중국 국무위원(고노 전 의장 뒤) 등 세계 각국의 조문사절단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에서 헌화·분향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김진수 기자 23일 국회에서 엄수된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영결식엔 각국의 조문사절단들도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11개국 사절단이 참석했고, 42개 국가의 정상이나 외교장관이 조전을 보내왔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 2009. 8. 25.
되돌아 본 DJ 치적 대결서 협력으로…남북관계 새 역사를 쓰다[되돌아본 DJ] ① 통일·외교 ‘6·15공동선언’ 통일방향 큰틀·경협 토대 마련 김정일 “DJ는 북남관계 돌파구 연 투사”평가거목의 잎새는 무성했고 가지는 굵었으며 뿌리는 깊었다. 민주화·인권의 상징으로 우뚝 섰지만 3김정치, 지역주의의 굴레도 둘러썼다. 노벨상의 영광을 안긴 햇볕정책엔 퍼주기 비판도 뒤따랐다. 구제금융을 극복하고 복지의 터전을 닦았다는 칭송과 양극화의 그늘을 짙게 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두루 남긴 족적의 명암과 과제를 분야별로 네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 대결·반목에서 화해·협력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월14일 평양 목란관에서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한 뒤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며 밝.. 2009.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