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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39

마지막까지 `민주주의` 화두 마지막까지 화두는 ‘민주주의’ 입원 직전에도 “민주주의 후퇴”…MB정부에 경고“가만히 있으면 존경받겠지만 그냥 넘길 수 없어” 병중에도 범민주진영 연대 촉구 등 격정적 발언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헌화를 마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악수하며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김 전 대통령도 통곡하고 있다. 김종수 기자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문제를 끝까지 자신의 화두로 붙들고자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후퇴와 역주행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자 찾아온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9개월’을 “10년 전의 시대로 전체 흐름이 역전되는 과정”, “역.. 2009. 8. 24.
김 전 대통령의 면모-깨알같은 글씨, 유머 김대중의 면모수첩엔 깨알글씨 빼곡…입담·유머 ‘타고난 연설가’비서진에 하대하는 법 없어 소탈하고 정 많은 카리스마 완벽주의 성격의 논리적 “정치 안했다면 교육자 됐을 것” » 김대중 전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인권위 설립 5주년 기념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 2006.11.24김대중 전 대통령은 란 책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교육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지식을 잘 정리해서 알아듣기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고, 스스로 천성이 매우 논리적이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모는 종종 다른 대통령들과 비교된다. 1980년대 중반 .. 2009. 8. 24.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김 전대통령 마지막 일기민주주의 후퇴 분노속 “역사는 발전”강경 치달은 정부에 경고, 고통받는 사람엔 연민 햇볕정책 자부심…북 핵실험엔 “절대 용납안돼” » 21일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일기장.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공식누리집김대중 전 대통령이 생애 마지막 해 입원 직전까지 쓴 일기가 21일 일부 공개됐다.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인 6월4일까지 육필로 쓴 일기라는 점에서 사실상 대국민 유언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기엔 이명박 정부의 일방주의적 행태에 대한 분노와 경고, 그리고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와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와 안타까움이 절절히 담겨 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감한 듯 인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과 부인 이희호씨에 대한 애틋함이 들어 있다.. 2009. 8. 24.
김대중과 박정희, 김영삼, 노무현 박정희와 김대중-탄압맞선 저항 ‘18년 악연’ 박, 71년 대선 이긴뒤 납치·고문 등 탄압 DJ, 비난 삼가…재임땐 박 기념관 지원 »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개헌 움직임에 맞서 시위를 벌이다 사복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 사진). 5·16쿠데타 당시 박정희 소장의 모습. 보도사진연감그를 인권과 민주의 기수로 키운 건 역설적이게도 박정희의 모진 탄압이었다. 그가 탁월한 정치인으로 우뚝선 데는 김영삼과의 40년 애증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민주정권 10년의 새역사를 함께 만든 노무현은 그에게 ‘몸의 절반’이었다. 김대중과 박정희, 김영삼, 노무현의 얼키고설킨 인연은 그대로 우리의 현대사다. 김대중과 박정희, 두 사람은 단둘이 만나 눈빛을 나눠본 적이 없다. 말을 길게 섞어본 적도 .. 2009. 8. 24.
`김대중과 나` 미래 그려낸 지식인이었다 » 한상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에 불멸의 공적을 남기고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내가 처음 대면한 것은 1988년 총선에서 당시 평민당이 제1야당으로 부상한 직후였다. 나는 국립대 교수로서 야당을 돕는 것이 나라를 돕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992년 대선 때는 초빙교수로 가르치던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시 귀국하여 텔레비전 찬조연설을 했다. 그러나 내가 김 전 대통령과 떨리는 울림으로 대화하고 공감했던 것은 93년 2월이었다. 그는 정계은퇴 선언을 한 후 영국으로 떠나 캠브리지 대학 근처에 칩거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베를린 사회연구원(WZB)에 있게 되어 2월6일 예고 없이 그를 찾아갔다. 이것이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나를 진심으로.. 2009. 8. 24.
`김대중 선생을 떠올리며`/ 기고문들 환희 웃으며 돌아오세요 » 한홍구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이니 장수하셨다. 그런데 슬프다. 너무 슬프다. 더 오래 사실 수 있었는데 … 더 오래 사셔야 하는 건데 …. 지난 5월 몸의 반쪽이 무너지는 일을 당하시고, 남은 반쪽으로 무리를 하시다가 … 몇 년 일찍 보내드린 아픔은 그래도 견딜 수 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게,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좋은 꿈이 아니었다. 편안하게 가셨다는 병원 당국의 설명과는 달리, 그분은 악몽을 꾸고 울면서 가셨다.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서거’라는 두 글자를 본 것은 마침 그날 저녁 한겨레신문사 특강에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의 역사를 다루기로 하여 강의안을 작성하던 .. 2009. 8. 24.
`명복을 빕니다` 나라가 어지러운데 어찌 먼저 가십니까한승헌 변호사 추도사죽을 고비 수도 없이 넘기며 민주 평화 이끈당신은 우리 대통령을 넘어 세계의 지도자한승헌 변호사. 전 감사원장김대중 대통령님께 제가 이런 애도의 글을 드리게 되오니, 아픈 마음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이제 대통령님께서는 고난과 영광으로 점철된 이승의 삶을 거두시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그토록 간절한 기도와 소원을 뒤로하시고 어떻게 눈을 감으셨습니까. 생각하건대 대통령님께서 남기신 발자취는 이 나라의 빛과 어둠, 그리고 이 겨레의 염원과 맞닿은 궤적이었습니다. 비단 남한의 대통령에 그치지 아니하고, 조국의 남과 북을 아우르는 지도자였고, 세계가 존경하는 지도자였습니다. 한반도 남쪽 바다 하의도에서 열린 대통령님의 삶은 해방 후의.. 2009. 8. 22.
국내, 해외 지도자 `애도` 김영삼 전 대통령 "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졌다" 전직 대통령들은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일제히 안타까움과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아쉽고도 안타깝다"면서 "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김기수 비서실장이 전했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한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해 쾌유를 빌기도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상도동 자택에서 김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보고를 받고 무거운 표정을 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측근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침통한 표정으로 "14일 문병을 갔었지만, 이렇게 빨리 세상을 떠나실 줄 몰랐다"면서 "지난 수십년간 파란 많은 정치역정을 걸어왔는데, 이제 천주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안타까움을 나타.. 2009. 8. 22.
입원부터 서거까지 37일 입원부터 서거까지 투병 37일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국민장 영결식에서 헌화 후 권양숙 여사에게 다가가 위로하면서 오열하고 있다.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37일 동안 위험한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쾌유를 기원하는 가족과 지지자 등에게 희망을 줬지만 18일 끝내 병환을 이기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의 병세가 세인에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달 13일. 가벼운 열이 나는 등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입원했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것. 85세의 고령임에도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직접 찾아 조문하는 등 최근까지 비교적 정정한 모습을 보였기에 김 전 대통령이 입원했다는 소식에도 많은 사람은 곧 회복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건강상태는 병원 바깥의 기대와 .. 2009.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