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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아이들 100년전 아이들 2009. 4. 22.
과거시험 문답 - 성삼문 이 글은 에 실린 성삼문의 과거시험 답안입니다. 1447년(세종 29년)에 실시된 문과 중시에서 성삼문은 29세 나이로 장원급제하였으며, 이로부터 9년 후 단종복위를 꾀하다가 38세의 나이로 처형당하였습니다. 성삼문의 영정, 서체 왕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법을 만들면 폐단이 생기는 것은 고금의 일반적인 근심거리다. 후한後漢에서는 도시하는 날에 군사를 일으키는 폐단 때문에 군국의 도위를 줄이고 거기의 재관을 혁파하였으며, 송 태조(960∼976)는 당 말기에 번진이 강했던 것을 보고 병사하나, 재물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정이 관리하였다. 그러나 후한은 병력이 중앙에 집중되어 외방이 약한 실수가 있었고, 송나라는 적국과 전혀 다투지 못할 정도로 전력이 허약한 걱정이 있었다. 한 문제(B.C. .. 2009. 4. 22.
`비평을 대하는 두가지 태도` 비평을 대하는 두가지 태도 유몽인 에서 글을 짓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글이 잘못된 곳을 지적해 주면 기뻐하고, 비평을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글을 고치는 것 또한 전혀 꺼리지 않는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벌컥 화를 내고 스스로 잘못 된 곳을 알면서도 절대 고치지 않는 사람이다. 고봉 기대승은 자기가 지은 문장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가 지제교 로서 임금에게 시문을 지어 바쳤는데 승정원의 한 승지가 시문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표시해 놓았다. 그러자 기대승은 매우 화를 내며 단 한글자도 고치지 않았다. 이호민이 임금의 명을 받고 시문을 지어 바친 적이 있었다. 도승지였던 유근이 시문에 많은 표시를 붙여 이호민에게 고치도록 권하였다. 그런데 이호민은 어떤 부분은 고쳤지만 어떤.. 2008. 12. 21.
`올바른 다스림` *** 이 글의 원제는 에 실려있는 이다. *** 올바른 다스림 안정복 (1712~1791) 안정복 국가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백성이 잘 살고 못사는 데 달려 있으며, 백성이 잘살고 못사는 것은 다스리는 자들이 어질고 어질지 못한 데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정치하는 자들이 어찌 습속만을 따르고 순량循良의 정치를 생각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순’이란 법도를 따를 뿐 기이함을 숭상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양’이란 어질고 정직하며, 번거롭고 까다로운 것을 일삼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를 함에 있어서 이 두 글자의 뜻을 안다면 이미 얻은 바가 많을 것이다. 물을 다스리는 자는 이를 끌어들여 평평하게 하고, 사람을 잘 교화하는 자는 이를 어루만져서 안정되도록 한다. 물이 평평하니 제방이 무너질 염려가 없으며.. 2008. 12. 10.
`검은 것을 검다 하고` *** 이 글의 원제는 에 실린 이다. 검은 것을 검다 하고 신흠 흰 것을 희다고 하는 것은 참이요, 흰 것을 검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그것이 참인가 거짓인가 하는 것은 아녀자도 금방 알 수 있지만 소경은 보아 알지 못한다. 종種을 종이라 하는 것은 참이요, 종을 경쇠磬라 하는 것은 거짓이다. 그것이 참인가 거짓인가 하는 것은 천인 마부도 바로 분별할 수 있지만 귀머거리는 무슨 소리인지 들어 알지 못한다. 이는 그 소리가 가리워져 그를 미혹케 하였기 때문이다. 작게 가리워지면 작게 미혹되고, 크게 가리워지면 크게 미혹된다. 작게 가리워진 것은 흑,백,종,경을 혼동하는 따위이고, 크게 가리워진 것은 천하 국가의 기틀이다. 어진 것을 사악하다 하고 사악한 것을 어질다고 하는 것은 허위이다. 이것은 흰 것.. 2008. 12. 9.
누가 왕을 죽였는가(최종)- 제 26대 고종 8장 식민지 조선 백성들의 군주제26대 고종 1852-1919년, 재위 1863-1907년 12년 1월20일종척宗戚과 귀족 등을 불러들여 만났다. 태왕 전하의(고종) 병세가 깊기 때문에 병문안 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자작子爵 이기용과 이완용에게 별도로 들어와 숙직하도록 명하였다. 12년 1월20일태왕 전하의 병이 깊어 동경에 있는 왕세자에게 전볼 알렸다. 12년 1월21일묘시卯時에 태왕전하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였다. 다음날 죽은 사람의 혼령을 부르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해외 망명계획과 식혜서기 1863년 12월, 조선의 25대 임금 철종이 창덕궁에서 사망했다. 철종은 14년간 재위에 있었지만 강화도령이라는 그의 별명처럼 재위기간 동안 사실상의 임금은 그가 아니라 '도령'을 '임금'으로 만들어 준.. 2008. 10. 21.
누가 왕을 죽였는가(7)- 제 22대 정조 7장개혁군주의 좌절제22대 정조 1752-1800년. 재위 1776-1800년(24년간) 24년6월27일 (사망 전날)약원藥院 도제조 이시수가 “탕약을 즉시 의논해 정해야겠는데 잠시 물러가 의논해 들여올까요?” 라고 물으니, “바깥마루로 나가 앉아 의논하여 들여오도록 하라”고 하였다. 이시수가 여러 의관과 함께 탕약을 의논해 정한 다음 가감팔물탕을 방문해 드리니, 임금이 어의 강명길에게 “이 약이 속에서 막히면 어찌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강명길이 “원방元方 가운데 건지황을 감하였으니 반드시 그럴 염려는 없습니다.”고 아뢰자, 임금이 “오늘은 두 번을 복용해야 할 것이니 인삼 두 돈을 한 돈으로 고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24년6월28일 (사망 당일)왕대비(정순왕후)가 “내가 직접 받들어 올려드리.. 2008. 10. 20.
누가 왕을 죽였는가(6)- 제 20대 경종 6장이복형제의 비극제20대 경종 1588-1724년. 재위 1720-1724(4년간) 4년8월21일(사망 3일 전)여러 의원이 임금에게 어제 게장을 진어하고 이어서 생감을 진어한 것은 의가醫家에서는 매우 꺼려하는 것이었다. 4년8월24일(사망 당일)세제世弟(영조)가 “인삼과 부자附子를 급히 쓰도록 하라”고 말하자 어의 이공윤이 “인삼차를 쓰면 안됩니다. 제가 처방한 약을 진어하고 여기에 인삼차를 올리면 능히 기氣를 돌리지 못할 것입니다.”고 반대했는데, 세제가 “사람이란 본 시 자기의 의견을 네세울 데가 있기는 하나 지금이 어떤 때라고 자기 의견을 세우고 인삼을 못 쓰게 하는가” 라고 하였다. 31년5월21일역적 신치운이 복주伏誅되었다. 사신史臣(실록 기록자)은 말한다. "갑진년 8월에 경묘(경종)께서 .. 2008. 10. 20.
누가 왕을 죽였는가(5)- 제 18대 현종 5장 예송 시대에 가려진 죽음 제18대 현종 1641-1674년. 재위 1659-1674 15년8월16일 임금의 증세가 여전히 위급하여 오직 가끔씩 인삼차만 복용하였는데 종일토록 혼미하고 지쳐서 잠자는 것 같기도 하고 잠들지 않은 것 같기도 하였다. 15년8월17일 영의정으로 제수받은 허적이 충주에서 올라왔다. 승정원에서 “영상이 방금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영상의 직책은 감히 받을 수 없으므로 사은숙배는 못하고 임금의 환후가 이렇게 편찮으시므로 바로 약방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고 아뢰니, 임금이 “부른다고 즉시 전하라” 명했다. 15년8월18일 임금의 병이 크게 위중해지더니, 이날 밤 해시에 창덕궁에서 승하하였다. 복통과 뜸 치료 현종은 그다지 많이 알려진 임금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재위 15년간.. 2008.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