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37

[국민장] 영결식, 노제 상보 불꽃 같은 삶, 불꽃 타고 하늘길 올라 영면[국민장 10보] 권양숙씨 눈물작별 끝 탈진…경찰·시민 서울광장 대치홍석재. 김성환 기자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에 참석했던 시민 등이 29일 오후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연합)시민 1만여명 서울광장 남아 다시 ‘촛불’ 들어 30일 오후 ‘5·30 범국민대회’ 참여 독려도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고픈 시민들은 밤늦게까지 서울광장에 남아 그를 기렸다. 29일 밤 12시께 서울광장 일대의 시민들 수는 1만여명(경찰 추산 6700여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서울광장에 다시 촛불을 켰다. 시민들은 생전 노 전 대통령을 지켰던 촛불로 광장을 가득 메운 채, 그에 대한 추억을 되새겼다. 덕수궁 대한문부터 서울시청이 끝나는 세종로 길에도 시민.. 2009. 7. 28.
[국민장] 영결식~정토원 안치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영결식 엄수서울광장 노제·화장 이어 봉하마을 안치 »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릴 서울 경복궁 흥례문 앞 식장에 조기가 게양돼 있다. 연합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國民葬) 영결식이 서거 이레만인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시민들의 애도 속에 시작돼 엄숙하게 거행됐다. 영결식에는 이명박 대통령 내외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 민주당 정세균 대표, 문희상 국회 부의장 등 정·관계 주요 인사, 주한 외교사절,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ㆍ정연씨를 포함한 유족 등 2천50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5시께 봉하마을에서 발인식을 치른 운구차량 행렬이 식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군악대의 조악 연주로 시작을 알렸다. 운구 행렬은 오.. 2009. 7. 28.
[국민장]봉하마을 발인 노 전대통령 국민장 일정 국민 가슴속으로 800㎞ ‘마지막 여행’05:00 봉하마을 발인→11:00 경복궁 앞뜰 영결식 →13:00 서울광장 노제→화장뒤 고향땅 임시안치 » 미리보는 노 전 대통령 국민장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영결식장 예상 배치도■ 발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은 29일 새벽 5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발인으로 시작된다. 빈소가 마련된 마을회관에서 유가족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권오규 전 부총리 등이 참석한 가운데 30분 동안 진행된다. 발인이 끝나면 국화꽃으로 장식한 운구차와 이를 따르는 운구 행렬이 봉하마을을 출발해 서울로 향한다. 운구차는 평균 80~90㎞의 속도로 서울까지 약 400㎞를 고속도로로 이동한다. 순찰차 5대와 선도차 그리고.. 2009. 7. 27.
노무현의 죽음 -검찰, 언론 [시사in]누가 노무현을 죽였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해 말부터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라며 크게 낙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이명박 정부의 정치 보복이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사람들은 모두 검찰이 대통령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검찰이 잘못한 거 맞다. 그렇지만 검찰은 행동대원에 불과하다. 핵심에는 청와대와 언론 권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특별기획 2부에서는 누가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심층 취재했다. 우선 노 전 대통령에게 직접 칼을 휘두른 검찰 수사에 대해 파헤쳤다. 현직 검사들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보수 언론과 맞섰다는 이유로 노 전 대통령이 당했던 무자비한 비판과 조롱도 취재했다.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검.. 2009. 7. 27.
미완의 개혁..봉하마을 7일간 ‘미완의 개혁’마저 서민의 전설이 되다 탈권위주의와 탈지역주의, 그리고 서민 정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대 무기이자 최고 업적이다. 노 전 대통령의 노력으로 서민은 푸른 하늘을 잠깐 한 뼘쯤 구경’했다. [시사인 90호]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6월 항쟁 뒤 구성된 13대 국회의 노동위원회에서 초선인 노무현 의원을 처음 만났다. 여당 4선 의원이던 나는 야당의 노동위 3총사라는 노무현·이해찬·이상수 의원을 점잖게 대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노 의원은 마치 미국 영화배우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그런 반항아였다. 정부 노동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언성을 높여서 거듭 항의하던 끝에 책상 위에 쌓인 서류뭉치를 내던지고 의원 직을 사퇴하겠다며 퇴장하기도 했다. “그놈의 성깔머리…”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온다. 그.. 2009. 7. 27.
인간 노무현/이정우 외 가까이서 본 인간 노무현 이정우 (경북대 교수·전 대통령 정책실장)청와대에서 2년6개월간 매일 본 노 대통령은 대인이었다. 소탈하고 꾸밈없으며 인간적이고 유머가 넘쳤다. 불의한 강자에게는 강했고 약자에게는 따뜻했다. 실수에는 관대했고 거짓말에는 불호령을 내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참여정부에서 2년6개월간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씨(오른쪽)는 “노 대통령은 항상 정책으로 국민에게 내실 있는 도움을 주기를 원했다”라고 말한다.지난 1주일은 ‘국민 눈물’ 주간이었다. 울어도 울어도 자꾸 눈물이 났다. 지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믿을 수가 없다. 더구나 그분은 워낙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이라 더욱 실감이 안 난다. 평생을 양심적으로 살아온 분으로서 마지막 한 달에 겪었을 심적 고통, 그 억울함을 생각하.. 2009. 7. 27.
되돌아 본 노무현 [시사인] 시사인 [90호][사진으로 보는 노무현의 삶]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대장정 지독한 가난 딛고 입지전을 쓴 희망의 시기’,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한 ‘열정의 시기’, 결단을 내린 용기의 시기’, 농촌으로 돌아온 ‘새 도전의 시기’를 사진으로 살폈다. 지독한 가난 딛고 입지전을 쓰다 Ⅰ. 희망의 시기(1946~1980년) [90호] 2009년 06월 01일 (월) 11:57:42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국민장장의위원회판사직을 7개월 만에 그만둔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78년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경남 김해시 진영읍내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말이 달리는 모양처럼 생긴 바위산이 있다. 옛날에 봉화를 올렸다 하여, 이름이 봉화산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46년 8월 봉화산 아래 .. 2009. 7. 27.
도덕,증오,도전,촛불 [한겨레21] 위험한 칼끝, 도덕성[특별기획]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열쇳말 ① 도덕… 비도덕적 인간에게는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고, 도덕적 인간에게는 끝없이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역설노무현. ‘도덕성’과 ‘정치개혁’을 언급하지 않고 그 이름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이름은 한국 정치사에 정치개혁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노무현식 정치개혁’을 가장 든든하게 뒷받침했던 것이 바로 도덕성이었다.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세운 것도 도덕성이고, 숱한 정치적 위기에서 그를 구해낸 힘도 도덕성에서 비롯됐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23일 서거했다. ‘노무현식 정치개혁’을 뒷받침했던 것은 그의 도덕성이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노 전 대통령 임시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 2009. 7. 27.
상복보다 더 시커먼 조중동/`민주세력 총결집..` [한겨레21] 상복보다 더 시키먼 조중동의 속내 [분노의 기억] 족벌언론과 관제방송 KBS의 ’애도 저널리즘’…타살 공범관계 뒤덮으려 ‘탈정치’ 덧칠하다당신은 슬프던가? 제호 아래, 5월의 폭우를 맨몸으로 맞고 선 봉하마을 추모객들의 먹물 같은 표정 사진은 당신 심장 안으로 삼투압되던가? 호외판 1면 가득 실린 망자의 얼굴 사진을 보며, 30m 바위 아래로 자유낙하해 ‘쿵’ 하고 마침표를 타자(打字)한 어느 굴곡진 삶의 중력가속도가 당신 가슴에도 와서 울리던가? “그분이 다 안고 가셨는데 이젠 싸움 그만해야”라고, 자갈치 아줌마의 회한을 생선 토막 치듯 집자(集字)해 ‘화합과 단결’의 메시지로 재구성한 베를리너판 1면 고딕 제목을 볼 때, 당신도 자살 너머 망자의 유훈을 서늘하게 대면할 수 있던가? » .. 2009.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