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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지아(1) 공항에서 쿠알라룸프르 시내로 가는 KLIA 열차.. 쿠알라룸프르에서 20km 떨어진 '바투티가' 라는 소도시 전철역 주변 풍경 첫날..바투티가 전철역에서 슈나이더 회사까지 3km를 걸었다. 철로 위 육교를 건너는데 계속 휘청거려 조심스러웠다 쿠알라룸푸르 시내의 삼성 갤럭시 광고판.. 국왕이 서울로 모델로 쿠알라룸푸르를 도시화하라고 했다 한다. 고층건물이 빽빽이 들어서고 있다. 출근시간대의 쿠알라룸푸르 시내.. 말레이지아엔 중국인이 10%정도 산다고 한다. 자본은 더 예속되어 있다. 중국은행이 보인다 낡은 택시들.. 절반은 세금때문에 자가용 영업등록을 안 한 채 불법 영업한다고 한다. 관광객들에게 바가지가 심함.. 숙박비를 카드 결재를 받질 않아 시내에 하나 있는 시티은행을 찾느라 고생했다. 마티즈를 그대.. 2015. 6. 5.
쿠웨이트 출장(3) 쿠웨이트시티 사막의 풀 사막의 꽃에도 가시가 돋아나 있다. 사막의 모래로 구운 벽돌을 쌓아 집을 짓는다. 일반 주택은 모두 철근콘크리트 구조가 아닌 3층의 벽돌집이다. 집집마다 정원에 천막이 있다. 유목 생활을 기리고 무슬림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걸프케이블 회사 방문.. 어딜 가든지 차와 함께 생수를 준다. 식당 주방장 방글라데시인 게이디.. 한국에 와서 한식요리사 자격을 취득했다. 2015. 6. 5.
쿠웨이트 출장 중..(2) 변압기, 스위치기어, 차단기를 조립 생산하는 알 아레아 쿠웨이트 국영회사. 산업단지 내에 15개의 공장이 있다. 알 아레아 변압기 공장.. 일하는 직원의 90% 이상이 인도인.. 북한 청년 두 명도 이 곳에서 일했다. 쿠웨이트 음식, 허브 등 향신료가 전혀 입에 맞질 않아 처음 일주일 간은 설사를 했다 쿠웨이트 화폐, 1 쿠웨이트달러(KWD)=4000원 정도... 쿠웨이트 주유소..잔 돈 거스름 돈 때문인지 모두 5만원 10만원 권 등의 카드를 구입하여 결재한다 51리터 주유비가 12000원 정도이니까 1리터에 235원이다. 퇴근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의 모슬렘 성전.. 2015. 5. 22.
쿠웨이트 출장 중...(1) 듀바이공항 면세점 쿠웨이트 쿠웨이트 시티 숙소 옥상에서 내려다 본 쿠웨이트시티 주택가 쿠웨이트 시내 SK E&C 현장 사무실.. 일반 주택을 빌려 사무실로 썼다 식당.. 조식 석식을 모두 이곳에서 해결, 공장 방문 땐 쿠웨이트 음식이 입에 맞질 않아 토스트, 찐 계란, 과일을 싸가지고 가서 해결.. 사무실 근처의 가로수들..죽어가는 나무.. 주택가 정원 사막...원유 시추공들이 보인다 사막의 초목들... 자세히 보면 모두 잎에 뾰족한 가시가 돋아나 있다 방글라데시인 주방장, 한국요리사 자격을 취득했다고 한다. 순하고 착했다. 2015. 5. 22.
주영이 졸업 2015. 4. 6.
1987년, 어머니.. 숙이를 만난 그 해 가을,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태해지셨다. 어머님이 입원한 지 2개월여 지난, 어느 가을 날 늦은 오후, 교내 방송에서 어머님이 계신 병원으로 가보라는 멘트가 있었다는 얘길 듣고 급히 부평 연합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을 찾아 가늘어진 어머니 손을 감싸니, 나를 알아보고 주루룩 한 줄기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 가족은 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날 밤, 자정을 10여분 남기고 어머님은 눈을 감으셨다. 평생 고생만 하시고 효도 한 번 못받아 보신 어머님.. 네비게이토 동아리 학우들이 3일 동안 함께 해 주었다. 숙이도 이틀간 설겆이 등 궂은 일을 거들어 주었다 어머님이 떠나신 후, 해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어머님이 떠난 후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창고를 개조.. 2015. 2. 2.
1987년 여름.. 1987년, 어수선했던 1학기가 지나고 하기방학을 하면서 인천 경인에너지 내, 야외수영장을 관리하는 알바를 했다. 이 시기, 알바가 그렇게 활발한 편은 아니었는데, 정부가 시위를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알바 채용을 정책적으로 권장했다. 첫 날, 남학생 넷, 여학생 여섯명이 안내받은 장소에 모였다. 남학생 넷 중 한 명은 우리 학교 기계과였고, 둘은 고대, 체대.. 여학생들은 인천대, 인천교대, 성심여대생들이었다. 여학생들은 사무보조, 남학생들은 회사 내 야외 수영장 관리일을 맡았다. 남학생 네 명은 사내 수영장에서, 개장시각 전 물 교체, 약품 투여, 개장 후 안전관리 일을 했는데, 회사의 수영장을 여름방학동안, 직원 가족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이 때 인연이 되어 숙이를 알게 되었다. 숙이는 전남 나주 출.. 2015. 2. 2.
1987년.. 1987년은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 해이다. 나에겐 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해이고, 군 제대 후 2학년에 복학한 뒤 여러 일이 있었던 잊을 수 없는 해이다. 2학년에 복학했는데, 학기 초부터 교내 시위가 계속되고 어수선했다. 전국 대학들이 직선제 개헌 데모를 하면서 학교재단 투명성 요구, 부정 입학 등의 학내 민주화 요구의 회오리가 세차게 일었는데, 우리 학교도 교내 인경호에 있던 학교 설립자 이승만 동상이 학생들에 의해 철거되고,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회에 의해 부정입학자 명단이 공개되면서 총장, 재단 퇴진 요구 등 시위가 커져 갔다. 우리 전기과도 교수들의 강의 수준, 보직교수 대신 시간강사에 의한 강의 등으로 불만이 쌓여 있던 중, 전기공학과 교수 가운데 모교 출신의 교수님 한 분을 제외한 모든 교.. 2015. 2. 2.
22 세기말에서 21세기로 접어드는 충무로의 배우 세계엔, 어떤 변화가 있었다. 새로운 연기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20대 초반의 반짝이는 외모로 어필하는 존재들이 아닌, '연륜 있는 신인'들이었다. 우린 [넘버 3](1997)에서 송강호를 발견했고, [접속](1997)에서 전도연과 접속했으며, [초록 물고기](1997)의 한석규와 조우했다. [박하사탕](2000)은 설경구와 문소리라는, 낯설지만 곧 친숙해질 두 배우를 소개했다. 그리고 여기에, [넘버 3]와 [쉬리](1999)로 '돌아온 최민식'이 있었다. 이미지 목록 배우라는 직업의 속성이 타인의 삶을 관객에게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라지만, 최민식만큼 ‘산다는 것’의 느낌을 ‘찐하게’ 전달하는 배우는 흔치 않다. 이것은 단순한 몰입이나 체중 조절 혹은 헤어.. 2015. 1. 7.